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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태국 코끼리를 품에 안다.글/기고문 2010. 10. 28. 19:58
치앙마이 ‘코끼리 자연공원’ 방문기 여름휴가, 태국 코끼리를 품에 안다. 글 사진 l 박하재홍 1. 코끼리, 이처럼 낯설고 친숙한 동물이 또 있을까. 두 팔을 엇갈려 코끼리 노래에 맴맴 돌던 어린 시절, 코끼리는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갇혀있을 망정 한낱 구경꺼리가 아닌 마음 넉넉한 어른의 형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다른 이들의 기억도 나와 닮았기 때문일까. 몇 년 전 쇼에 동원된 6 마리의 코끼리가 대공원을 탈출해 소동을 벌였을 당시,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는 “그들을 이해한다” 라는 네티즌들의 동정어린 의견이 빈발했다. 비록 탈출을 기도했던 코끼리들은 사회적 물의를 반성하는 ‘사죄의 쇼’까지 덤으로 감당해야 했지만, 그 희생 덕분인지 코끼리 조련의 잔혹함은 점차 '일반 상식' 으로 확대되고 있다. 어느 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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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고기가 좋아요!”글/기고문 2010. 10. 28. 19:45
“나는 콩고기가 좋아요!” 어느 날 깜짝, 내게 다가온 채식주의 선언. 글: 박하재홍 솔직히 말하고 시작하자. 수 십년 동안 길들여진 쫄깃한 육고기 맛의 2 % 가 잊혀지지 않아 선택한 것이 콩단백으로 만든 가짜고기, 콩고기였다고. 채식을 선택한 이래, 콩고기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나의 의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던 삼등공신 콩고기! 그리고, 그와 유사한 여러 형태의 식물성 고기들이 건네 주었던 적지 않은 위안이여. 그에 대한 고마움은 여태껏 뚜렷하다. 그런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 하면서 고기 맛을 허락했던 그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그건 바로 ‘채식주의’란 ‘고기 맛이 나지 않는 채소를 많이 먹겠다’ 는 의미가 아닌 ‘동물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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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부엌에는 맛난 이야기가 있다글/기고문 2010. 10. 28. 19:40
동네부엌에는 맛난 이야기가 있다 글. 박하재홍 장미, 오소리, 청바지, 지구인, 엄지, 돌고래, 그리고 에이미. 이렇게 여덟 명의 알뜰한 쌈지돈이 모여 시작한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부엌’. 점심시간 열 두 시 정각에 맞춰 오면 식사한끼 내어 주겠다는 살림꾼 ‘에이미’ 님의 말씀이 솔깃해 종종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성미산 학교와 마포두레생협, 그리고 동네부엌까지, 서울에 이런 동네가 또 어디 있으랴…살짝 시샘 어린 마음으로 도착한 동네부엌에는 마침, 한 쌍의 모녀가 조촐한 밥상을 차려 놓고 있다. “이건 이름이 뭐게? 봄에 나는 냉이야” 따님에게 나물 반찬 이름을 조근조근 알려주는 엄마 ‘혜련’ 씨는 딸 윤서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찾아 온단다. ‘음, 초등학교 친구들이 달콤하지도 않은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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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권리가 있어요글/기고문 2010. 10. 25. 05:04
알을 낳고 싶어하지 않는 암탉을 위한 항변 “동물도 권리가 있어요.” 글쓴이: 박하재홍 몹시 춥던 겨울날, 난 허기진 배를 주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찜을 향해 재빠르게 숟가락을 치켜 들었지. 그 때였어, 동화 의 주인공 ‘잎싹’의 앙상한 날개와 부리가 눈앞을 스쳤던 것이. 좁디 좁은 철망 안에 갇혀, 자신의 소중한 알을 품어볼 수도 없는 현실에 진저리 치며 ‘절대로 알을 낳지 않겠어! 절대로!’ 라고 부리를 앙다물던 ‘잎싹’ 말이야. 다행히도 내가 먹을 계란찜의 달걀은 ‘동물복지인증’ 허가를 받은 식품이었어. ‘동물복지인증’은 농장동물이 너무 가혹한 환경에서 사육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제도야. 이 제도는 동물을 좋아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식품회사와 동물주인들을 설득해서 만들었지. 나쁜 환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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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 혐오와 연민 사이글/기고문 2010. 10. 25. 04:52
라따뚜이, 혐오와 연민 사이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이었다. 밤 9시, 어둑한 홍대 놀이터 작은 나무 사이로 뛰노는 쥐들과 마주친 것이. 열 마리쯤이었을까. 혹시나 사람에게 들킬까봐 조바심내는 쥐들의 움직임, 그 고단함, 삶의 무게. 필시 무리지어 사는 동물들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갈등과 화해, 우정과 싸움이 있겠지... 쥐들의 사회가 궁금해진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라따뚜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을 때, 스크린을 통해 펼쳐진 쥐들의 무리 속에서, 관객들의 혐오감 섞인 탄성 속에서 나는 홍대 놀이터의 그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라따뚜이의 쥐들 또한 영화 속 캐릭터로서 허구적으로 의인화 되었지만, 쥐를 팬시적으로 그려낸 다른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들과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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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냉장고글/기고문 2010. 10. 25. 04:49
여그 마당에 다들 느긋하게 둘러앉았으니, 한판 신나게 놀아들 볼란가요? 좋지~! 여그 저그에서 이런 사연 저런 사연을 들고들 왔겄다. 올커니~ 어디 한번 그 사연이나 들어 볼까나. 그렇지~ 여그 널찍한 마당에는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따로 없겄다. 옳치~ 누구나 썩~하니 나서서 가슴 속 묻어둔 이야기를 술술 한번 풀어내 보시오들. 좋~다! 저그 얌전하게 앉아계신 선상님이 먼저 한판 놀아 보시겄소. 양희창 선상이라고 멀리 제천에 있는 간디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고상이 많으실터인디~ 어디, 그 사연 좀 들어 봅시다. 박수~! 요즘도 개천에서 용이 난답니까 │양희창 (간디학교 교장)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이 아니야, 이제 그런 소리하면 썰렁개그 하냐고 비웃는걸, 돈이 받쳐주니 일찍이 원정출산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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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도 생태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글/기고문 2010. 10. 25. 04:44
월간 '함께사는길' 2006년 8월호 나는 거리의 랩퍼가 되기로 결심했을 즈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단백질 신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자본의 톱니바퀴로 가동되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 그 감춰진 고통을 암울한 비트 위에 분노로 터뜨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나의 랩에는 서서히 환경운동의 냄새가 배어갔다. 어렵사리 비폭력 저항의 랩그룹을 결성해 서울 한복판에서 새만금 방조제 앞까지 숱한 공연을 다니는 동안, 내 가슴 속에는 숨겨진 돌뿌리 같은 고민이 무디게 돋아나고 있었다. 그 돌뿌리는 내게 물었다. ‘랩퍼도 생태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알다시피 힙합은 미국의 할렘가에서 태어난 문화다. 도시의 구석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분노와 열망이 그 중심에 박혀 있는 힙합은, 역시 도시에서 태어나 이산화탄소를 마구 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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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책방 촛불 켜는 날글/기고문 2010. 10. 25. 04:37
ㅣ 2006년 2월호 주제가 있는 수필ㅣ 신촌책방 촛불 켜는 날 글쓴이_책방지기 박하재홍 신촌 구석진 골목길 끝자락에 책 향기가 감도는 한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가 만든 두 번째 헌 책방, 이곳의 이름은 ‘뿌리와 새싹’입니다. 좋은 책을 양분삼아 자연을 닮은 뿌리와 새싹으로 자라나라고 지은 이름입니다. 워낙 숨어있는 곳이라 손님들이 코 앞 에서 헤 메이기 쉽 상이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새로운 발걸음이 있어 책방 입구에 거미줄 칠 걱정은 아니 합니다. 어둠이 외롭게도 짙어지는 12월, 그 마지막 금요일 밤에 신촌책방은 전기 불을 끄고 촛불을 켜기로 했습니다. 책방에 촛불을 켠다 하면 “책이 보이나?” “불장난 하지 마라” 등등 여러 말을 듣기 마련이겠지요. 촛불은 책방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밝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