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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퍼(Cypher)의 유래와 의미에 대하여
    글/칼럼 2020. 10. 1. 13:07

    2020.2.25

     

    힙합에서 말하는 ‘사이퍼’란

    무엇인가?

    글. 박하재홍

    도움. B-boy 프로그 / MOnica Chang

     

    힙합문화 안에서 ‘사이퍼’(Cypher, Cipher)의 정확한 유래와 의미는 무엇인가? 유명한 래퍼들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 사이퍼가 무엇인지 물어보자. 대부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일렬로 늘어선 여러 명의 래퍼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정해진 비트 위에 자신의 랩 솜씨를 뽐내는 거예요. 보통 한 사람당 1~2분 정도 랩을 하고, 가사는 미리 써오죠.” 이런 사이퍼는 방송물에 적합하도록 본래의 사이퍼 방식을 변형시킨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제작하는 랩 사이퍼 콘텐츠 ‘XXL 프레쉬멘 사이퍼’가 그렇다.

     

    2016 XXL Freshman Cypher

     

    래퍼들을 출연시키는 전 세계의 방송들 또한 이런 사이퍼를 선호한다. 한 마디로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본질적인 사이퍼의 원형을 지키고 유지해줘야 한다. 한국의 김치는 다양한 레시피로 변형되어, 새콤한 양배추 피클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건 흥미롭고 재미난 일이다. 하지만, 원래의 김치는 이렇다는 걸 알려줄 필요는 있지 않은가.

    사이퍼는 일렬이 아니라 둥그렇게 모여서, 즉흥적인 ‘프리스타일’(Freestyle)을 펼치는 행위다. 사이퍼는 흡사 어떤 부족의 의식이나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이퍼는 참여자들에게 ‘힙합의 마음’을 전달한다.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온정 있고 자비로운 마음 말이다.

    특히, 힙합의 정체성을 지닌 비보이, 비걸에게 사이퍼는 아주 중요한 소양이다. 비보이(B-boy), 비걸(B-girl)은 브레이킹(Breakin’) 춤을 추는 사람이고, 성별 구분 없이 ‘브레이커’(Breaker)라고도 부른다. 세계 최고의 브레이킹 대회 중 하나인 '레드불 비씨원‘(Red Bull BC One)을 주최하는 기업 ’레드불‘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사이퍼는 모든 브레이커가 진정으로 춤에 대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공간입니다.”

    It’s the place where all breakers truly come together to share their love of the dance.

    저 문장에서 브레이커를 래퍼로, 춤을 랩으로 바꿔보자.

    “사이퍼는 모든 래퍼가 진정으로 랩에 대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장소입니다.”

    It’s the place where all rappers truly come together to share their love of the rap.

    사이퍼를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이퍼는 모두의 마음에 내포된 ‘경쟁심’을 이용해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하며, 모두의 성장을 돕고 싶어 하고, 모두를 연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힙합의 마음이다. 그 마음의 공간에서는 험한 욕설이 오가는 싸움조차 창조적인 놀이로 바뀌어 버린다.

    문제는 ‘사이퍼에 참여하고 싶은 의지’를 지닌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더 음악적으로 뛰어난 래퍼인지 가리기 좋아하는 힙합 장르의 음악 팬 대부분, 동네 공원에서 펼쳐지는 사이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이퍼에서 뱉는 프리스타일 랩들은 음악적인 가치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 랩들은 대개 녹음해서 음반에 담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지, 언어의 원초적인 리듬이 현대도심에서 매력있게 발현되는 현장이며,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가 암호처럼 펼쳐지는 흥미로움이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그걸 예술로서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2000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라임의 예술》(The Art of Rhyme)이 그랬다.

     

    이 영화는 90년대 뉴욕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가득 메웠던 랩 사이퍼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기록했고,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전 세계 래퍼들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다. 당시에는 휴대용 음향장비가 없었기 때문인지 주로 비트박스에 맞춰 랩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힙합그룹 '업타운'의 윤미래가 1997년도 곡 ‘내일을 위해’에서 “래퍼라면 비트박스도 할 줄 알아야지”라고 랩을 쓴 이유일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왜 브레이커와 래퍼들은 거의 같은 방식의 사이퍼를 세대에 걸쳐 전수하고 있는가? 브레이커와 래퍼가 같이 모여서 사이퍼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브레이커는 브레이커들끼리, 래퍼는 래퍼들끼리 사이퍼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사이퍼는 공연형식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수련방법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기술을 경쟁적으로 비교하며 격려하고 교류하는 목적이기 때문에, 장르가 다르면 섞일 수는 없다. 둘째, 선호하는 리듬의 속도가 다르다. 브레이커들은 보통 110BPM 이상의 속도를, 래퍼들은 80~90BPM 내외의 속도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서로 다른 둘이 같은 방식의 사이퍼를 전수하는 이유는 이 두 집단이 힙합이라는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에 영향을 받는, 힙합의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무리이기 때문이다.

     

    케이알에스원(KRS-One)의  《 힙합의 40년 》  강연 중에서

     

    《힙합댄스를 시작하기》(Beginning Hip-Hop Dance)라는 책의 저자는 사이퍼를 설명하기 위해 ‘힙합 우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이퍼는 ‘힙합 우산’ 아래 모든

    형태에 필수적입니다. 댄스 커뮤니티 전체에서

    대화에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전달하며

    성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It is integral to all forms under the hip-hop umbrella. It is a way of engaging in conversation,

    transmitting ideas, and enabling growth throughout the dance community.

    2010년 이전까지 ‘힙합 우산’의 존재는 비교적 명확했다. 전 세계 랩스타들의 뮤직비디오에서 브레이커와 DJ, 그라피티 라이터가 등장하는 건 다반사였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힙합이라 불리는 장르음악은 그 우산 아래 머물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실험성과 성장 속도가 대단해서 이제 힙합음악은 힙합문화라는 우산을 벗어나 대중음악이라는 큰 우산 아래 머물기를 원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랩스타이자 힙합뮤지션으로 사랑받는 ‘빈지노’가 2019년 8월, 힙합음악 전문미디어 ‘힙합엘이’(HIPHOPL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힙합 아티스트가 아닌 거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런 면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힙합엘이 빈지노 인터뷰 중에서

     

    빈지노는 자신이 힙합으로 불리길 원하지 않아도, 음악팬들은 그를 힙합으로 분류할 것이다. 그리고, 힙합음악을 다루는 매체는 그를 주목할 것이다. 왜냐하면, 힙합문화와는 별개로, '힙합음악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겐 힙합의 정체성이 없다고 얘기하는 아티스트의 힙합장르 작품을 통해서 힙합문화를 해석할 수는 있는 것인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힙합문화’와 ‘힙합음악 문화’에는 물론 정서적 형식적 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힙합문화’와 ‘힙합음악 문화’는 누군가의 존재성을 증명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힙합음악 문화에서는 ‘정식으로 녹음된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힙합문화는 그 무엇보다 즉흥성의 살아있음을 사랑한다. 래퍼 엑스지빗(XZIBIT)은 90년대를 회상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어떤 금 목걸이를 두르고 있든, 사이퍼 랩을 해내야 했죠.” 9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힙합음악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웨이크업 쇼’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사이퍼 랩은 당연히 ‘프리스타일’이다.

     

    래퍼들이 즉흥 랩을 프리스타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90년대부터다. 그렇다면, 80년대에는? ‘커밍탑오프더헤드’(Comming Top off the head) 또는 ‘오프더돔’(Off the dome) 랩이라 불렀다. ‘머리(head, dome)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는 랩’ 정도의 뜻이다. 당시에는 즉흥 랩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 없이 자유롭게 작사한 랩을 ‘프리스타일’이라고 불렀다. 다소 충격적인 사실은 80년대에 음악적 성과를 이룬 유명한 래퍼들이 즉흥 랩을 수준 낮게 봤다는 점이다. 1963년생 래퍼 ‘쿨모디’(Kool Moe Dee)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힙투더합,힙합》 114쪽 (폴 에드워드 지음 / 최경은 옮김)

     

    힙합문화는 래퍼보다 엠씨(MC)라는 명칭을 선호하고, 70년대의 엠씨들은 모두 랩을 즉흥으로 했다. 그런데도, 즉흥 랩 엠씨를 수준 낮게 평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9년, 인류 최초의 랩 음반 ‘래퍼의 기쁨’(Rapper's Delight)이 발매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유능한 래퍼들이 너도나도 음반 제작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랩을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즉흥 랩은 현장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해도, 고치고 다듬을 수 없으니 음악적 구성력이나 문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사한 랩과 즉흥 랩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상호보완적이다. 심혈을 기울여 작사한 랩들은 훌륭한 교재가 되어 즉흥 래퍼들의 표현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 음반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래퍼도 즉흥 랩의 에너지를 이용하면 훨씬 더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올드스쿨 힙합음악의 대명사 런디엠씨(Run-D.M.C.)가 즉흥 랩 배틀의 분위기로 가사를 써서 1984년에 발표한 ‘애송이 엠씨들’(Sucker MCs)이 그렇다.

     

    덧붙여 런디엠씨가 시대를 초월해 힙합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이유 중 하나는, 힙합 본연의 정체성을 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타고 TV에 출연하는 래퍼들이 연예인을 따라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차려입을 때, 런디엠씨는 그 모습을 몹시 못마땅했다. “우리는 그냥 게토의 흑인들처럼 입고서 공연하자고!” 특히, 런디엠씨가 항상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저렴한 가격의 ‘아디다스’였다. 당시 나이키와 리복, 휠라 등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디다스는 런디엠씨 덕분에 돌파구를 찾게 된다. 고가의 옷은 더 이상 힙합문화 뿐만 아니라, 힙합음악이라는 장르를 상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다른 대중음악 장르의 공연자들 차림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래퍼 로직(Logic)은 무대에서 ‘에브리바디’라고 쓰여 진 후드티를 자주 입었다. 자살예방을 위한 그의 곡 ‘1-800-273-8255’은 2017년 빌보드차트 3위에 올랐다.

     

     

    런디엠씨가 게토의 패션으로 힙합의 정체성을 회복시켰듯이, 90년대 뉴욕의 평범한 래퍼들은 ‘떠오르는 대로 주절대는 랩’이라고 폄하 당했던 즉흥 랩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우선 즉흥 랩에 ‘프리스타일’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워싱턴스퀘어 공원에 모여들어 몇 시간씩 랩 사이퍼를 진행했다. 그때까지 프리스타일 랩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배틀 같은 데서 주로 쓰이는 것이었다.

    그 움직임에 함께한 유명 래퍼로는 상업적이지 않았지만,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모스뎁’(Mos Def)과 ‘탈립콸리’(Talib Kweli)가 있다. 탈립콸리는 《힙합 에볼루션》(Hip-Hop Evolution) 인터뷰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한다. “랩을 해서 음반을 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문화를 우대하는 것이 목표였죠. 제가 보기엔 그것이 원래 힙합의 목표였습니다.”

     

    《힙합 에볼루션》에서 모든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는 래퍼 ‘셰드’(Shad)는 탈립콸리의 말에 어느정도 동의할까? 그는 당시의 랩 사이퍼 운동을 힙합음악 장르의 발전에 도움이 된 특수한 과정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공원에서 줄기차게 기가 막힌 즉흥 랩을 들려준 ‘슈퍼내츄럴’(Supernatural)은 당연히 ‘프리스타일 엠씨’로서 충분히 존경받아야 한다. 명반을 남긴 랩 아티스트와 수준을 비교당해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저 래퍼는 프리스타일은 되게 잘하는데, 음악은 별로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힙합문화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한 것이다. 그건 “저 비걸은 프리스타일은 되게 잘하는데, 안무를 짜면 별로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와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래퍼에게 ‘리튼(Written: 써놓은) 랩’과 ‘프리스타일 랩’이 있듯이 브레이커에게는 ‘세트무브’(Set Move)와 ‘프리스타일’이 있다. 세트무브는 미리 짜놓은 일련의 동작을 뜻한다. 래퍼는 사이퍼에서 중간 중간 재치 있게 리튼 랩을 넣거나 남의 랩 가사를 인용할 수 있고, 브레이커는 프리스타일에 세트무브 동작을 적절히 섞어 춤을 출 수 있다. 하지만, 사이퍼를 즐기려면 무조건 프리스타일이 우선이다. 실력의 차이나 명성의 정도와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교류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돕는 ‘힙합의 마음’이 작동하려면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토론에서 열린 비걸 행사 포스터. 2019년 5월 5일, 4시부터 9시까지 사이퍼와 배틀이 진행되었다. ​

     

    사이퍼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미국의 어떤 브레이커는 90년대에 래퍼들이 사이퍼라는 말을 썼고 브레이커들이 그걸 따라 썼다고 한다. 또 어떤 브레이커는 사이퍼는 70년대 중후반, 힙합의 4대 요소가 하나로 응집한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파티 때부터 사용된 말이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1973년 힙합의 창시자라 불리는 DJ 쿨헉(Kool Herc)이 브레이크비트를 반복시켜 청소년들이 춤을 추게 된 그때부터 사이퍼는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미국 곳곳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Diaspora: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에서 사이퍼 형식의 퍼포먼스가 발견됐다고 얘기한다. 이 증언들을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1) 사이퍼 방식의 집단 행위는 DJ 쿨헉의 파티(1973~1977년)에서 브레이킹이 시작될 때부터 있었다. 당시 사이퍼의 분위기는 배틀에 가까웠다. 사이퍼란 명칭은 없었기 때문에 잼(Jam)이나 재밍(Jamming)으로 불렸을 것 같다.

    2) 최초로 사이퍼만의 가치가 부여되고 사이퍼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건 아프리카 밤바타가 '줄루네이션'(Zulu Nation) 운동을 내걸고 1975년에 시작한 DJ 파티에서 부터다. 하지만, 80년대를 거치는 동안 널리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3) 90년대 뉴욕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촉발된 랩 사이퍼를 통해 사이퍼란 용어가 힙합문화 전반에 널리 전파되었다.

    아프리카 밤바타는 파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갱단들 사이의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흑인사회운동단체 ‘5퍼센트 국가’(5% Nation)의 조직원들을 지역 경찰로 섭외했다. 그리고, ‘5퍼센트 국가’의 우주론이 바로 사이퍼였다. ‘5퍼센트 국가’는 원형 형태 안에서 영적인 에너지가 전달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다음과 같은 코스모그램(우주론 도형)을 도안했다.

     

    《Beginning Hip-Hop Dance》 76쪽 (E. Moncell Durden 지음) ​

     

     

    5퍼센트 국가의 창시자는 ‘래퍼런스 13X’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1964년, 뉴욕 할렘에서 5퍼센트 국가를 설립했다. 그 이름은 오직 5%의 사람들만이 진실을 알고, 10%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숨기고 공모하며, 85%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 밤바타는 5퍼센트 국가의 이론과 무슬림 흑인사회운동의 이론을 차용해 줄루네이션의 ‘7가지 무궁한 가르침’(Seven Infinity Lesson)을 작성했다.

    한편 5퍼센트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래퍼들은 즉흥 춤 행위로 만들어지는 무리의 둥근 형태를 ‘사이퍼’라 칭했다. 5퍼센트 국가의 이론에서 사이퍼는 완성된 0도, 즉 360도를 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360도는 120도의 지식, 120도의 지혜, 120도의 이해로 구성된 자아에 대한 지식을 상징했다. 서로를 견제하며 뽐내기에 집중하는 집단 행위를 사이퍼라 칭함으로서, 개인과 집단의 수양을 도모했던 것이다. 70년대 힙합의 초창기를 배경으로 삼은 미국 드라마 《더 겟다운》에는 이런 가르침의 분위기가 한껏 팽배했던 아프리카 밤바타의 파티 현장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영어 사전에서 사이퍼(Cypher, Cipher)를 찾으면 암호라는 뜻이 나온다. 사이퍼라는 영단어는 숫자 0을 의미하는 아랍어 ‘시프르’(sifr, صفر)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숫자 0이 암호와 360도를 동시에 뜻하게 된 것일까? 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우선 찾아낸 정보는 초기의 암호들은 문자를 숫자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암호화했고, 이를 ‘사이퍼즈’(Ciphers)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또, 사이퍼 휠(wheel)이나 사이퍼 디스크(disc)를 검색하면 다양한 원형 모양의 암호판이 나온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숫자 0은 그 모양 때문에 360도를 뜻하게 된 걸 수도 있다. 여하간, 4세기경 인도에서 발명되어 아랍에서 실용화된 숫자 0은 무한, 우주, 신 등 종교적으로 여러 신성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사이퍼 디스크는 1470 년 이탈리아 건축가 Leon Battista Alberti 가 개발 한 암호화 및 해독 도구입니다.

     

     

    힙합문화는 ‘하위문화’(서브컬쳐: Subculture)로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 곳곳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난 집단에서 여러 종류의 하위문화가 발생하고 사라졌다. 지배적인 주류 가치에서 배격당한 이들이 주류문화를 거부하고, 그에 반하는 스타일을 창조해 '삶의 정당성'을 요구한 것이다. 하위문화 중에서 힙합문화는 특이한 점이 있다. 공동체의 폭력을 줄이기 위한 뚜렷한 목적을 설립하고, 지식을 전파하기 좋아하며, 경쟁적이면서 포용적인 교류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힙합문화는 교육 분야와 밀접하다. 가령,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동네에서 예술적인 지역 공동체로 탈바꿈한 콜롬비아 메데인 시에는 힙합학교가 5곳이나 있다 그중 ‘꾸아뜨로 엘레멘투스 스쿠엘라'(4 Elementos Skuela)의 학생 수는 6백 명이고 여학생의 비율이 40%에 달한다고 한다. 또 다른 힙합학교인 ‘카사 콜라초’(Casa Kolacho)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동체 회복의 가치를 담은 그라피티 투어 가이드를 진행하고, 그 수익으로 수업 예산을 마련한다. 두 곳 모두 힙합스콜라들의 열정과 헌신을 바탕으로 힙합문화의 4요소를 두루두루 전파하고 있다. 사이퍼에 참여하는 태도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 중 하나일 것이다.

     

    꾸아뜨로 엘레멘투스 스쿠엘라 (사진: Crew Peligrosos)

     

    미국의 대표적인 래퍼 중 한명인 켄드릭라마가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사이퍼를 시연한 사례도 아주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랩 가사를 활용한 학교의 문학수업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자진해서 학교에 방문했다. 힙합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그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선의로 자신의 대표곡을 한 두곡 쯤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굳이 교실 바닥에 학생들과 둥그렇게 모여 서서 즉흥 랩으로 사이퍼를 진행했다. 왜 그랬을까? 나의 해석은 이렇다. 그날만큼은 힙합이라는 음악장르의 아티스트라기 보다 힙합문화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교육자로서 학교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나 뮤지션의 정체성이 강한 래퍼일수록 프리스타일 랩 사이퍼에는 관심을 두지 않거나 기피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프리스타일의 특성상 생각만큼 랩이 잘 안 뱉어질 수도 있고, 실력과 상관없이 나이 어린 사람의 강렬한 에너지에 밀리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래퍼들이 프리스타일과 사이퍼를 좋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단지, 누군가는 사이퍼에서 힙합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두근거리고, 뛰어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2020.2.25

    #소셜힙합연구소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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