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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미더머니의 '디스배틀'은 힙합문화에서 가능한 용어인가?
    글/칼럼 2020. 10. 1. 12:57

    2019.9.29

     

    힙합이라 불리는 큰 문화에서 '배틀'과 '디스'는 별개의 용어다. 힙합에서 배틀battle과 디스diss둘 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 둘의 용어가 쓰이게 된 사연과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배틀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에서 10대 갱들의 물리적 패싸움이 춤싸움으로 변환된 것에 기인한다. 그래서, 초기의 배틀은 실제로 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춤을 췄고 이긴 쪽에서 상대방의 음향시스템을 빼앗을 정도로 거칠었다.

    하지만, 브롱크스에서 힙합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동네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동네에서 브레이킹을 추는 아이들은 이제 싸우는 '적'이 아니라, 함께 배틀을 즐길 수 있는 '동료'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이제 배틀은 서로의 발전을 돕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겨루기'가 되었다.

    배틀은 물리적 폭력 보다 예술적 행위를 갈망한 10대들의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다.

    랩 배틀은 춤 배틀 보다 늦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랩 배틀은 춤 보다 공격적이지 않았다. 상대방을 모욕하는 표현없이 랩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981년 '쿨모디'가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하는 표현으로 큰 호응을 얻어 승리했고, 이후 그런 '디스 표현'이 랩 배틀에 안착되었다.

    중요한 점은 랩에서 ‘디스 표현'과 '디스'는 그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랩 배틀 대회를 직접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험한 말을 뱉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격투기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랩의 기술을 최대치로 발휘하기 위해, 서로를 전자오락 캐릭터화 시켜서 겨루는 것이다.

    디스 표현을 심하게 해도 그 목적이 상대방을 모욕하는 '디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격성을 이용해 자신의 랩 기술력을 끌어 올리는데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 바탕 서로를 모욕하는 말로 배틀을 마친 두 래퍼가 악수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즉, 래퍼들 사이에서 '디스'는 어떤 래퍼가 누군가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실질적인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하는 행위만 얘기한다. 그래서, 루피는 2018년 12월 인터뷰에서 '미국힙합에서 디스는 문화 아닌 굉장한 적대심의 표현'이라고 답하며, 면도가 자신을 디스했을 때 '다신 안 볼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간혹 래퍼들 간에 심각한 디스전이 일어난다면 랩 실력을 겨루는 선에서 사태가 진정되고 화해를 바라는 것이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다. 2015년, 아이스큐브는 유명 래퍼들 간의 디스전을 우려하며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옛날에 나와 커먼 사이의 비프beef(악감정)도 오해가 있었어. 좀 손을 쓸 수 없게 돼버렸지. 파라한 목사가 개입해서 상황을 바로잡도록 도와줬던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프들은 너무 위험하거든."

     

    래퍼 커먼과 아이스큐브 (2016)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긴다. 힙합문화의 댄서들 사이에선 '디스'란 표현이 사용되는가? 그렇지 않다. 2010년 전후로 브레이킹 댄서들에게 이른바 '쉣토킹'(배틀을 할 때 욕을 뱉어 상대방을 자극하는 짓)이 유행처럼 번졌다가 많은 댄서들이 이 행위에 문제를 제기해 사라졌다. 또, 배틀이 싸움으로 번질 경우를 대비해 힙합 댄서들은 항상 중재의 방침과 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힙합문화에서 '디스'와 '배틀'은 완전히 다른 용어다.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힙합을 통해 창법의 한 형식으로 자리매김한 랩은 갈수록 힙합문화가 아닌, 힙합음악이라 불리는 ’장르의 상품화’에 헌신하고 있다. 힙합음악 시장에서 성공한 다수의 래퍼들은 아예 ‘나는 힙합이 아니라, 내 자신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까진 괜찮지만, 누구든 게토에 만연한 폭력성을 예술적인 무술로 변환시킨 힙합의 평화의지를 왜곡해선 곤란하다.

    당신이 랩의 팬이고 힙합의 팬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지, 이 둘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힙합이란 존재가 왜 세상에 필요한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삶에 힙합을 응용할 수 없을 뿐이다.

    힙합문화연구자 박하재홍

    김정원 (비보이 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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