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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경향] 한국 힙합 랩 음악 비평 특집 (2026년 7월)
    힙합 아카이브/한국힙합 랩 2026. 7. 15. 18:22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7130600001

     

    그 멋졌던 힙합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성 넘치는 자기표현으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호령하던 장르가 있었다.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대학 축제 섭외 1순위를 놓치지 않던, 그 기세등등하던 힙합이다. 그런데 어느새 차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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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7130600011

     

    “한국 힙합, 공중에 떠 있는 나무처럼 뿌리 못 내려…늘 불안하고 위기감”

    ‘건전 가요’와 함께 자란 소년은 처음 힙합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힙합은 금기를 깨는 일 같았다. “설탕을 한 번도 안 먹어보다가 꿀을 한 주먹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힙합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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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7130600021

     

    혐오와 극우 앞에 선 래퍼들…랩으로 쓸 얘기 얼마나 많은데

    최근 힙합 신(scene)에 벌어진 두 개의 장면이다. #장면 1. 20세 래퍼 ‘리치 이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당일인 지난 5월 23일 공연을 계획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리치 이기는 노 전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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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멋졌던 힙합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박효재 기자


    개성 넘치는 자기표현으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호령하던 장르가 있었다.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대학 축제 섭외 1순위를 놓치지 않던, 그 기세등등하던 힙합이다. 그런데 어느새 차트에서도, 무대에서도, 청년들이 열광하는 자리에서도 힙합은 밀려났다. 악뮤 이찬혁이 노래한 그대로,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져버렸다.

    이 한 줄은 2021년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번째 시즌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나왔다. 머드 더 스튜던트의 ‘불협화음’에 피처링으로 힘을 보탠 이찬혁이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이건 하나의 유행 혹은 TV쇼.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라고 뱉었다. 당시엔 다른 장르 뮤지션의 도발로 읽히기도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예언처럼 남았다.

    숫자는 냉정하다. 3년 공백 끝에 부활한 <쇼미더머니> 12번째 시즌은 6회에서 시청률 0.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찍었다. 2012년 첫 방송 이래 시리즈 역대 최저다. 첫 회 시청률 0.6%는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1%를 넘지 못한 기록으로 남았다. 국내 공인 음악차트인 써클차트(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집계하는 국가 공인 차트)의 2025년 연간 리뷰를 보면, 연간 100위권에 든 곡은 댄스 38곡, 발라드 30곡, 록·메탈 16곡인데 랩·힙합은 단 3곡에 그쳤다. 이보다 낮은 장르는 포크·블루스, J팝, 성인가요(각 1곡)뿐이었다. 써클차트는 “랩·힙합의 하락세가 뚜렷한 반면 록·메탈이 대세 장르로 올라섰다”고 결론지었다. 이 추락은 실력의 문제도, 단순한 유행의 문제도 아니었다. 방송이라는 인공호흡기에 장르 전체를 매단 기형적 구조가, 그 호흡기를 떼는 순간 드러낸 결과에 가까웠다.

    뿌리 없이 떠 있던 나무

    힙합이 가장 멋졌던 순간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뱉어내던 때다. 곱게 정제된 발라드가 득세하던 1990년대, 힙합은 거친 단어로 사회를 직격하고 자기 삶을 날것으로 드러내면서 존재감을 뽐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자기 언어로 내지르는 솔직함, 그 기세등등함이 곧 힙합의 멋이었다.

    그런데 힙합이 미디어와 자본에 기대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그 멋이 흐려졌다. 방송이 원하는 그림, 자본이 원하는 상품을 좇다 보니 눈치 보지 않던 장르가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힙합 1세대 그룹 가리온의 MC메타는 초기 <쇼미더머니> 제작진의 진심을 인정하면서도 방향이 어긋나는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가 참여한 시즌 1에서는 연습 장면 촬영용 곡까지 필요해 이틀에 한 곡씩 신곡을 만들어야 했다. “이틀 만에 신곡을 만들어 그걸 전 국민이 볼 수 있게 방송하는 게 말이 되냐”며 싸웠지만, 방송의 논리는 달랐다. 방송에 기대는 사이 정작 힙합이 스스로 설 무대와 자기를 알릴 창구는 오히려 사라져갔다.

    한국 힙합이 어떻게 커왔는지를 그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정보에 굶주린 이들은 PC통신에 모였다. 그가 몸담은 블렉스(Blex)는 1996년 하이텔에서 출발한 초창기 힙합 동호회로, 여러 1세대 래퍼를 배출한 산실이다. 이 온라인 문화가 오프라인으로 내려온 무대가 마스터플랜이다. 2000년대 초 신촌에 있던 힙합 클럽으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결집한 사실상 유일한 자생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전성기를 MC메타는 오히려 예외로 본다. “우리가 겪은 게 그 타이밍에 벌어진 터무니없는 기적이었구나 싶더라. 한국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돌아봤다.

    애초에 사회·문화적 공감대, 장르가 커나갈 산업적 기반이 약했다는 얘기다. 미국 힙합이 빈민가 흑인 문화에서 밑바닥부터 자라난 것과 달리, 한국은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외국 문물을 먼저 접한 부유한 이들이 힙합을 들여왔다. 일부 래퍼는 미국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영어로 가사를 썼다. MC메타는 “왜 영어냐고 물으면 ‘그냥 멋있으니까 쓰는 것’이란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며 “우리는 그걸 진짜가 아니라 흉내라고 봤다”고 꼬집었다. 소외된 계층의 저항, 파티 음악이라는 맥락은 옅어진 채 랩 스타일만 수입된 셈이다.

    인공호흡기로 살린 인기

    2001년 마스터플랜이 문을 닫은 뒤로는 정기적으로 무대가 열리는 소규모 공연장의 명맥마저 끊겼다. 록이 홍대 클럽을, 재즈가 소규모 라이브 무대를 기반으로 명맥을 이어온 것과 대조적이다. 그 허술한 땅 위에 2012년 <쇼미더머니>가 들어섰다. 방송은 힙합을 대중 앞으로 끌어냈지만, 동시에 방송 없이는 팔리지 않는 구조로 장르를 가뒀다. 언더그라운드 무대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조명을 받으려면 방송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그 통로가 사실상 <쇼미더머니>뿐이라는 게 뼈아팠다.

    프로그램 인기 자체가 시들해지면서 한국 힙합의 민낯이 드러났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초반에는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제작방식의 반복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나왔던 사람이 또 나오고, 심사위원급이 도전자로 내려오고, 전 시즌 우승자가 다시 참가한다. 새 얼굴이 없으니 참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디스전과 이른바 ‘악마의 편집’으로 화제를 만들던 공식도 열 시즌 넘게 되풀이되면서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강 평론가는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에 힙합 시장 전체가 들썩인다는 건, 그만큼 장르의 뿌리가 허약하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쇼미더머니>라는 동력이 떨어지자, 그 프로그램에 통째로 얹혀 있던 한국 힙합의 대중적 접점도 함께 주저앉았다.

    이 시기 힙합 레이블도 흔들렸다. 2010년대 힙합의 중흥을 이끈 것은 래퍼가 직접 대표를 맡은 독립 레이블이었다. 뜻이 맞는 래퍼들이 모인 ‘크루’에서 출발해 회사로 발전한 도끼와 더콰이엇의 일리네어 레코즈, 팔로알토의 하이라이트 레코즈, 딥플로우의 비스메이저컴퍼니(VMC)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음원 시장의 파이가 줄면서 자생력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2020년 일리네어가 10년 만에, 2022년 창립 12년의 하이라이트가 문을 닫았고, 2023년 VMC는 회사를 유지할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며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문을 닫는 곳이 이어지는 사이, 힙합 뮤지션들은 생존을 위해 대형 자본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AOMG가 대표적이다. CJ ENM은 2016년 AOMG 지분 51%를 약 44억원에 인수했고, 이후 박재범이 대표에서 물러나며 지배력을 75.5%까지 끌어올렸다. 자본이 적자를 메워주는 대신 회사의 주인 자리가 창작자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가면서, 크루 특유의 끈끈함과 자유로움은 옅어졌다. 2024년 그레이, 우원재, 사이먼 도미닉 등 간판급 아티스트가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돈과 나, 그 사이에서 사라진 이야기

    힙합이 대중과 만나던 가장 큰 접점은 결국 메시지였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한국 힙합의 메시지는 초기부터 그 시대 청소년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다고 짚었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 이데아’로 입시 경쟁을 정면으로 때린 게 시작이었다”면서 “그 뒤로 아이돌 H.O.T.가 ‘전사의 후예’에서 학교 폭력을 얘기하고, 라이벌 그룹 젝스키스는 ‘학원별곡’으로 입시 현실을 다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랩은 10대가 ‘이건 내 얘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노래였다”고 덧붙였다. 힙합을 소비하는 세대의 삶과 노래가 겹쳐 있었다는 얘기다.

    MC메타는 “우리 때는 리얼이 되는 게 중요했고, 지금은 가장 핫하고 센 기믹이 되는 게 중요한 시대”라고 봤다. 기믹은 남과 구별되기 위해 내세우는 과장된 콘셉트를 뜻한다. 초기의 사회비판 서사는 옅어졌고, 2010년대 들어 자기과시, 이른바 플렉스가 힙합의 주된 정서로 자리 잡았으며, 2020년대 들어서는 그 무게중심이 사회구조 비판보다 개인의 정체성 탐구 쪽으로 더 기울었다. 홍혁의 CBS 라디오 PD도 같은 변화를 감지한다. 그는 “예전엔 시야를 넓게 봐서 사회문제를 얘기했다면, 요즘엔 내면에 집중해 우울하고 힘든 걸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사회를 향하던 시선이 개인의 내면으로 좁아지면서, 여러 세대가 함께 공감할 넓은 접점은 그만큼 줄었다.

    힙합 뮤지션들이 자초한 이미지 추락도 있다. 돈 자랑하고 강한 척하던 이들이 병역 면제, 세금 체납, 성범죄, 마약으로 스스로 이미지를 끌어내렸다. 이와 같은 메시지와 이미지의 괴리는 곧 돈의 문제로 번진다. 올해 래퍼 리치 이기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자, 대형 힙합 페스티벌 ‘랩비트 2026’ 측은 그의 출연 계약을 취소했다. 홍 PD는 “선곡이든 섭외든 힙합 뮤지션을 선택하는 데 리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국 입장에서는 힙합이 요즘 트렌드도 아닌데 굳이 장르적으로 영역을 넓힐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꼬집었다.

    빈자리는 걸그룹과 보이밴드가 채웠다. 써클차트 2025년 연간차트에서 가수별 점유율은 걸그룹 에스파가 1위, 2위는 보이밴드 데이식스가 차지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모던록 밴드의 음악은 메시지 면에서 대중과의 접점이 넓고 방송에 걸기에도 부담이 적다. 한때 가장 멋진 장르로 여겨지던 힙합이 이제 그 자리를 밴드에 내주는 세대교체의 신호다.

    거품이 빠지고 난 뒤

    다만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밀려난 것은 힙합이라는 음악이 아니라 힙합이라는 신(scene)의 대중적 존재감이다. 강 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 힙합이 죽었다는 일부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힙합은 틱톡이라든지 여러 SNS 플랫폼을 통해 소비되고, 음악적으로도 K팝에 트랩과 드릴 리듬으로 잔뜩 스며들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데이터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의 2025년 결산에서 힙합은 R&B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장르였고,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오디오 스트리밍 점유율 24.6%로 1위였다. 강 평론가는 “한국 힙합 시장이 원래 크지 않았고, <쇼미더머니> 시즌에만 반짝했다.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어떡하나를 십수년간 걱정했다. 지금은 그 거품이 빠지고 민얼굴이 드러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의 해법은 대체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방송 의존을 버리고 자생적 토대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강 평론가는 “방송에 의존하는 분위기를 버리고, 힙합이 꼭 대중화돼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MC메타의 전망도 다르지 않다.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는 신으로서만이라도 탄탄히 자리 잡으면 “빈약한 나무의 뿌리가 두툼해지고 땅도 단단해질 것”이라고 봤다. 그는 현실적인 대안도 덧붙인다. 힙합을 뿌리에 둔 대형 아이돌 스타와 공존하는 길을 고민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BTS 역시 기본적으로 힙합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아이돌 진영이 닦아놓은 대중적 통로를 활용하는 것이 신의 저변을 넓히는 방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힙합은 방송이 부풀린 거품 위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그 거품이 빠진 지금 남은 것은 애초에 허약했던 뿌리다. 밀려남은 추락이라기보다 제자리를 찾는 과정일 수 있다. 이찬혁이 5년 전 무대 위에서 던진 그 한줄이 여태 회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힙합이 왜 안 멋져졌는지, 신은 아직 답을 내놓지 못했다.

     

    MC메타 “한국 힙합, 공중에 떠 있는 나무처럼 뿌리 못 내려…늘 불안하고 위기감”

    신주영 기자

    ‘건전 가요’와 함께 자란 소년은 처음 힙합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힙합은 금기를 깨는 일 같았다. “설탕을 한 번도 안 먹어보다가 꿀을 한 주먹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힙합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말투로 뱉을 수 있는 유일한 장르였어요.” 30여년이 흘러, 그는 힙합과의 첫 만남을 이같이 회상했다. 지금도 그는 힙합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힙합의 개척자이자 산증인 MC메타 얘기다. 지난 7월 3일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속한 힙합듀오 가리온(MC메타·나찰)은 1998년 결성됐다. 사람으로 치면 30세를 바라보는 나이다. 국내 힙합 역사에서 가리온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 10 우승자인 조광일이 결승 무대에서 ‘가리온’이라는 제목의 곡을 부르며 자신이 한국 힙합 계통의 ‘적통’임을 내세웠을 정도다.

    긴 시간 한국 힙합을 지키고, 또 지켜봐온 그에게 한국 힙합 위기론을 묻기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항상 위기라서 그런 질문을 들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저한테는 한국 힙합의 흥망성쇠가 그다지 와닿지 않아요. 늘 그냥 고만고만했죠. 조금 더 좋아 보이거나 덜 좋아 보이거나 이런 차이지. 힙합은 늘 언더도그였죠.”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힙합은 위기인가.

    “<쇼미더머니>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을 거다. 올해 시즌 12가 방영되기 전까지 약 3년 동안 위기론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힙합은 그냥 늘 이렇게 뿌리를 못 내리고 떠 있는 형태였다. 뿌리를 내리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힙합은 공중에 떠 있는 나무 같다. 언제 나무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술한 땅이다. 열매가 제대로 맺힐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늘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이 있다.”

    -왜 뿌리를 못 내렸나.

    “힙합 클럽 마스터플랜이 2001년에 문을 닫았다. 이후 그와 유사한 형태의 정기 공연을 여는 소규모 공연장이 단 한 번도 생긴 적 없다. 그 역할을 2012년 시작된 <쇼미더머니>가 한 것도 같다. 그런데 스티로폼 같은 느낌이었다. 능력 있는 힙합 뮤지션들이 노력도 많이 했다. 미국 남부 힙합을 가져와 한국에 잘 접목했고, 새로운 뮤지션들도 나왔다. 하지만 땅이 튼튼하지 않으니 그걸로는 부족했다. 하이라이트레코즈, VMC, 일리네어레코즈 등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3개 레이블이 다 문을 닫았다. 우리가 마스터플랜에서 랩할 때와 규모 차이만 있지, 한국 힙합은 여전히 연약하다.”

    “저한테는 한국 힙합의 흥망성쇠가 그다지 와닿지 않아요. 늘 그냥 고만고만했죠. 조금 더 좋아 보이거나 덜 좋아 보이거나 이런 차이지. 힙합은 늘 언더도그였죠.”

    -그럼에도 힙합을 떠나지 않았다.

    “1996~1997년쯤 랩을 시작했다. 그 전의 나는 힙합 음반 수집가였다. 당시 배고팠던 게 첫 번째가 정보, 두 번째가 음반이었다.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국 음악방송을 봤고, 지하상가에서 밀수 CD를 웃돈 주고 샀다. 그러다 20세 무렵 ‘힙합퍼’가 됐다. 흑인음악 동호회 ‘검은소리’를 했다. 회원들이랑 반은 추측, 반은 어설프게 해석된 정보를 가지고 때려 맞추고는 했다. 그게 엄청 재밌었다. 힙합은 계속 바뀌었고, 예측불허였다. 그런데 이건 ‘추억팔이’가 아니다. 힙합의 신선함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퇴진의 영순위와 도둑놈패’라는 곡을 냈다.

    “힙합을 하며 지켜온 가치관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당시 공연할 때 채증을 당하기도 하는 등 별 일 다 있었다. ‘쫄지는’ 않았다. 다만 가족들이 걱정했고, ‘나만 생각할 게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의 나는 훨씬 더 음악 쪽에 에너지를 쓰지만, 여전히 안테나 하나는 정치·사회에 가 있다.”

    -요즘 힙합 음악은 예전보단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내가 모든 Z세대 힙합 뮤지션들의 곡을 찾아본 것이 아니라서 답변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현재 젊은 세대는 본인들의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과는 모양새가 다를 수는 있구나 싶다. 동시에 (음악이 사회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도 느낀다.”

    -Z세대 힙합엔 ‘불나방’이 드물다.

    “그럴 수 없는 시대다. Z세대는 똑똑하다. ‘나한테 별 도움 안 되는데 굳이 왜?’라는 계산이 된다.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힙합신에서) 사라지지 않나. 반면 나는 영리한 롤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나는 음반 수집가일 때부터 ‘언제나 진실해라’, ‘페이크(가짜)가 되면 안 돼’라고 스스로 세뇌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예 다른 생각을 가졌겠다는 생각도 한다.”

    -리치이기 사태는 어떻게 봤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게 끝이다. 자기표현이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는 래퍼의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세대, 환경 등에서 얼마만큼 받아들여지고 얼마만큼 배척되는지는 본인이 감내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볼 때 ‘이거 끝내주는데, 왜 이렇게 못 알아보지?’ 하고 혼자서 삐지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 먹고 보니 (당시 대중의 반응이) 맞았다. (대중의) 반응은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낳은 총체적 결과다. 어릴 땐 수용을 잘 못 하지 않나. 나만 ‘억까’(억지로 깎아내리는 것) 당하는 것 같고, 내 음악만 제대로 평가 못 받는 것 같고. 그런 이상한 착각을 했다.”

    -후배 래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내가 어린 래퍼들에게 많은 말을 듣고 싶다. 딥플로우가 가리온 3집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를 했다. 당시 딥플로우에게 ‘랩 구리면 욕해라’, ‘이딴 게 랩이야?’라고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전권을 줬다. 그때 엄청 많이 배웠다. 우리는 음악밖에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 관점 혹은 위치에서 음악을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늘 한 방향으로만 왔구나 싶었다.”.

    -8월에 신보가 나온다.

    “8월 11일 오후 6시 정규 4집이 나온다. 총 11개 트랙으로 구성된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빈티지’다. 트렌디한 힙합을 듣는 분들에게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1~3집과 달리 이번 4집은 소속사나 외부 프로듀서 없이 나랑 나찰 단둘이서 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음반이다.”

    -제작 기간은.

    “3개월 걸렸다. 올해 초에 인천음악창작소에서 낸 공모전을 발견했다. 음반 제작 지원 사업이었다. 통상 그런 공모전은 신예 뮤지션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건 경력 제한이 없었다. 정규작 부문에 지원해 선정됐다. 그래서 2월 말부터 급하게 음반 준비를 했다. 창작소 지원 덕에 마스터링도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세계 최정상급 스튜디오 중 하나로, 비틀스의 녹음 장소로도 유명)로 보냈다.”

    -3개월 만에 앨범 제작이 가능한가.

    “우리도 3개월 만에 음반 하나를 뚝딱 만든 게 처음이다. 내가 전체 총괄을 맡아 콘셉트 및 서사 기획, 작곡·편곡을 다 했고 믹스도 참여했다. 그야말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정규 2집 때 겪은 공황장애와 비슷한 증상을 겪을 정도로 힘들었다. (제작 기간이 빠듯하다 보니) 외부 인사의 모니터링이나 피드백은 전무한 상황이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혐오와 극우 앞에 선 래퍼들…랩으로 쓸 얘기 얼마나 많은데

    이혜리 기자

    혐오·조롱 논란 이어 멸공 메시지도…“1020 남성의 인터넷 문화, 랩에도 반영”
    내부 자정작용 보이지 않는 힙합 신…자유로움과 다양성, 힙합 문화 특성 살려야


    최근 힙합 신(scene)에 벌어진 두 개의 장면이다.

    #장면 1. 20세 래퍼 ‘리치 이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당일인 지난 5월 23일 공연을 계획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리치 이기는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랩 가사를 썼다. 공연 출연자 명단엔 팔로알토, 더콰이엇 등 유명 래퍼가 포함돼 있었다. 노무현재단이 혐오 공연이라며 반발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리치 이기는 “저의 행실과 부주의를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했다.

    #장면 2. <쇼미더머니> 시즌 5 우승자인 인기 래퍼 ‘비와이’가 지난 3월 <쇼미더머니> 시즌 12 무대에서 “싹 다 까보면 놀라겠지. 그 급은 마치 선구안 위”라는 랩을 했다. 12·3 불법 계엄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한 상황에서 나온 랩이라 선관위 저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5월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곡인 ‘사우스사이드 프리스타일’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육성이 삽입됐다. 가사엔 공산주의를 겨냥한 듯한 표현이 담겼다.

    사회학자인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책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에서 오늘날 극우는 이념적 무장과 조직적 활동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스포츠, 패션, 요리, 온라인 채팅방 등의 일상적 문화 속에서 극우적 정서가 퍼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타벅스는 프로모션 문구를,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응원 구호를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롱 표현으로 써 논란이 됐다.

    힙합, 랩 음악은 어디로 갈까. 리치 이기, 비와이의 두 장면은 랩을 즐겨듣는 한국의 10~20대 남성들의 인식과 정서가 어떻게 보수화·극단화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과거 여성 혐오적 가사로 비판을 받았던 래퍼들은 이제 극우적 정서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배제할 것인지의 분기점에 섰다. 차별이 범죄가 만연하던 미국 빈민가에서 흑인들이 평화와 저항의 뜻으로 읊었던 랩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모해 여기까지 왔는지, 그 배경을 살펴봤다.

    유명해지고 싶은 젊은 래퍼들

    리치 이기의 곡 ‘Junseok Lee’에는 “난 단일화 없이 달려, I feel like a 이준석”, “2025 Rich Iggy는 노무현처럼 jump”, “너는 중국이랑 친해 문재인이구나” 등의 가사가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을 희화화하고 중국과 우호적 관계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대남’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갈라치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현’, ‘운지’, ‘일베’, ‘응디시티’ 등 일베 관련 용어로 가사 검색을 해보면 리치 이기 외에도 여러 곡이 나온다. 래퍼 치트키의 곡 ‘머글래’에는 마약을 먹는다는 내용과 함께 “난 노무현처럼 노무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다른 래퍼들의 곡엔 “I’m a real mc, No 무현 MC”, “난 음악으로 요리해 MC무현 짱” 등이 나온다. 대체로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맥락 없이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사용한 경우다. 일베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당수 랩 가사에서는 돈 자랑과 과시(플렉스), 여성 비하와 성적 대상화(반페미니즘), 나의 랩 실력으로 성공한다(능력주의)는 정서가 발견된다.

    랩 음악을 하거나 연구해온 이들 사이에서 리치 이기와 비와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준은 래퍼가 자신의 소신, 신념을 갖고 랩을 썼는지, 가사에 설득력이 있는지다. 제한 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는 랩의 특성상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더라도 그 표현을 쓴 이유가 분명하다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혐오와 조롱, 모욕적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치 이기는 “가사 안에 왜 노무현을 말하는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 반면, 비와이는 “잃을 게 많은데도 그런 가사를 쓴 것은 신념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대부분의 래퍼가 자극적인 혐오 가사를 쓰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계엄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하고 극우적 움직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인기 래퍼인 비와이의 행보는 상징성과 파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랩들이 담고 있는 정서와 감각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러한 정서가 축적됐는지다. 리치 이기는 사과문에서 “고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대중과 관련 유가족분들이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언행을 단지 유명세를 위해 일삼아 왔다”고 밝혔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혐오·조롱 가사를 썼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따져보면 리치 이기는 20세로 <쇼미더머니>(2012년 시작)로 랩을 배운 세대다. 래퍼들이 대결을 펼치고 순위 경쟁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극대화됐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능력자로 인정받았다. 명품 옷을 입고 슈퍼카를 타는 래퍼 도끼는 랩으로 자수성가한 표상이다. ‘힙합은 자유’라는 명분 아래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정당화됐다. 돈을 마음껏 쓰고 과시하는 ‘플렉스’가 유행했다. 청년들이 취업난과 고용 불안, 열악한 주거환경 등 경제 양극화를 몸소 느끼면서도 뭉쳐 싸우기보단 능력주의를 믿으며 각자도생하는 현실은 쇼미더머니와 흡사했다.

    비슷한 시기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약자 혐오, 지역 비하 표현이 공공연히 나왔다. ‘재미’를 내세운 혐오와 조롱의 언어들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청소년·청년들의 일상 용어, 놀이 문화로 퍼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7월 7일 발표한 설문조사(전국 초·중·고교 교사 1109명 대상)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가 89.3%나 된다. 청소년·청년세대 내에 형성된 정서가 랩 가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쇼미더머니>의 위력은 엄청났지만 반대로 <쇼미더머니>가 없으면 좋은 랩 음악도 흥행하기 어려웠다. 잘 팔리는 것을 찾는 래퍼들의 공간에 자극적인 혐오 가사가 밀고 들어왔다. 일종의 혐오 비즈니스다. 래퍼 최삼은 “철학이나 신념 이야기하는 래퍼가 많지 않은 이유는 결국 돈이 안 돼서”라고 했다. 최삼은 “10~20대가 거의 비난에 가까운 인터넷 문화에 젖어 있는데, 그걸 랩으로 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것 같다. 리스너가 많아지면 체급이 알아서 커진다”고 했다.

    래퍼 탐쓴은 “자극적인 가사들을 보면 아무런 뜻도 없이 인신공격과 남을 상처 입히는 데만 집중돼 있다”며 “혐오 조장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며 자란 세대가 랩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랩에도 (혐오 가사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탐쓴은 한국 힙합의 현실에 대해 “아직까지도 좋은 음악의 힘이 한국 힙합을 부흥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낭만일 뿐”이라며 “현실적으로는 AI(인공지능) 뮤직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찾아 듣는 음악은 점점 더 자극에 몰두하게끔 패스트푸드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음악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좋은 음악이 나와봤자 이 사람과 앨범의 존재 자체를 모르면 의미는 미미하다”며 “그렇다 보니 결국에는 슈퍼스타가 먼저 돼야 하고 (래퍼가) 유튜브를 먼저 켜는 1인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힙합과 극우를 연구해온 문화평론가 윤광은씨는 리치 이기 논란에 대해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힙합 신의 일반적 동향, 구조적 문제가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윤씨는 “일베란 커뮤니티 자체는 자연 소멸하고 있지만 ‘일베적인 것들’이 밈의 형태로 퍼져나가 젊은 남성들 중심의 인터넷 문화, 사회의 극우적 성향과 연결된 채 공유되고 있고, 리치 이기 같은 래퍼는 그런 동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사건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건과 같은 시기에 터진 건 극우적 인터넷 문화가 오프라인 대중문화로 침투하는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이기에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윤씨는 한국 힙합의 발상지가 인터넷 힙합 동호회였고, 그 이후 신이 재생산돼온 거점도 인터넷 힙합 사이트였던 점을 짚었다. 윤씨는 “(힙합이) 인터넷 문화 아래 놓여 있는 측면이 있고, 2010년대부터 일베의 등장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우경화돼온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젊은 세대 우경화의 중요한 특징은 반민주당, 반페미니즘 정서인데 젊은 래퍼와 리스너들이 이런 성향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1020 남성의 집단적 정서 반영

    정창훈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 힙합의 우경화가 힙합 장르 본래의 법칙, 내부 논리 속에서 발현된다고 분석한다. 힙합은 제한 없이 자신을 표현하되 발언권이 주어진 순간 스스로를 ‘주변부’로 정체화하고 중심부를 향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1970년대 미국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힙합이 태동할 때 흑인들은 인종차별과 빈곤, 범죄 등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주변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백인 중심의 주류문화와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 반발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주변성은 최근 한국 힙합에서 변질했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래퍼인 10~20대 남성은 주변부에 위치시키고 여성,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진보 정치인, 소수자, 국가폭력의 피해자 등을 저항, 반발해야 하는 ‘중심부’로 여기는 식이다. 약자의 위치는 현실과 달리 설정되기도 한다.

    정 교수는 “(한국에선) 예를 들어 내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우리 집이 정말 가난해서 주변성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낸다”고 했다. 정 교수는 “그렇다 보니 어른들의 문화가 싫은 것이고, (입시 등) 성공법칙에서 이탈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주변성을 만들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문화가 된 것”이라며 “‘그걸 랩으로 역전시킬 거야. 내가 모든 걸 차지해버릴 거야’라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또 “힙합은 범죄와 갱단이 있던 빈민가에서 출발한 문화였고 힙합이 갖고 있는 정신은 unite(연합)이었다. 밖에서는 싸우고 총을 쏴도 파티 문화 안에 들어오는 순간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라며 “힙합이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문화인 이유가 그 문화를 소중하게 키워왔기 때문인데, 그런 것은 상실됐다”고 했다.

    힙합문화연구자 박하재홍씨는 “랩은 수다와 대들기에 특화된 장르다. 그래서 랩에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의 남성들이 지금 무엇에 대들고 싶어하는가, 어떤 수다를 떨고 싶어하는가가 그대로 드러난다”며 “(이를테면) 지금 민주당이 주류이고 권위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대들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박하씨도 역시 최근 한국 랩 음악은 원래 힙합 문화가 추구하던 것과는 다르다고 봤다. 박하씨는 “2010년 정도까지는 미국에서도 공동체를 위해서, 뭔가 우리 삶에 의미 있는 것을 위해서 대들어야 한다는 게 있었다. 게토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차별, 괄시받는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대들기였다”며 “게토의 현실을 증언하고 항변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지만, 2010년 이후엔 희미해졌다”고 했다.

    대중은 래퍼들의 혐오 가사를 많이 비판했지만 정작 힙합 신 내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디스전(곡으로 서로를 비판하는 것)’도 혐오 가사를 소재로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광은씨는 “보다 근본적으로 신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런 역할을 맡아줘야 할 기성 래퍼들이 침묵하거나 신의 분위기에 동조하고 편승한다는 점이 크다”고 했다. 힙합 신의 주도권을 젊은 래퍼들이 갖고 있고, 기성 래퍼들이 뭔가를 지적하면 ‘꼰대’가 돼버리는 분위기도 여러 문제를 방치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구 사람으로 대구 사투리 랩을 하는 래퍼 탐쓴은 곡 ‘역전포차’(2022년)와 ‘덥다’(2024년)에서 ‘~노’를 함부로 갖다붙이며 혐오의 의미로 쓰는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일베식 표현으로 최근 정치권에서 이를 두고 일베 감별 논쟁이 붙었다. 탐쓴은 “좌나 우를 지지해서 그런 가사를 쓴 게 아니라 사투리를 연구하고 그걸로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투리가 폄훼되는 게 화가 나 쓴 것”이라며 “그런데 사실 한 번도 이렇게 수준 있는 공방은 없었던 것 같고, 이것을 힙합의 문제로 봐야 될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다. 탐쓴은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디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와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되는 랩을 하는 래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 분위기는 말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자유로움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약자 혐오, 돈·능력 자랑을 비판해온 래퍼 최삼은 리치 이기 논란이 다소 갑작스러웠다고 했다. 10년 전 래퍼 블랙넛이 여성 혐오 가사로 큰 논란이 됐지만 힙합 신은 그닥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최삼은 “리치 이기가 유일하게 그렇게 한 것도 아니라 (다른 래퍼들이) 뭐라고 지적하거나 손절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라며 “(자극적인 혐오 가사를 쓰면) 주목을 받아 돈을 벌 수 있고, 다들 그냥 뒀고 오히려 샤라웃(지지)을 해주는데 당연히 그 길로 가지 않겠나”라고 했다.

    최삼은 ‘록은 1번이고 힙합은 2번이다’라는 우스갯소리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최삼은 “막상 랩 하는 사람들 만나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느 한 부분만 갖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며 “오해받아 속상한 것도 있지만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도 맞다.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고 비판을 하다 보면 내부에서도 고민하는 곳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최삼은 특히 리치 이기 공연의 출연자 명단에 올랐던 유명 래퍼들이 ‘왜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참여하려고 했느냐’는 비판을 받은 과정도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최삼은 “그걸 보고 있는 다른 래퍼들도 ‘랩을 쉽게 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을 것”이라며 “그러면서 조심하게 되는 것은 좋다”고 했다.

    날것의 삶을 랩으로 풀어내다

    물론 래퍼들이 모두 극우이거나 돈 자랑, 여자 이야기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음악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래퍼가 많이 있다. 22세인 래퍼 고트는 대전힙합노동조합을 만들고 곡 ‘칭어 딩겨’를 통해 한국 힙합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사 현장 아르바이트 등 육체노동의 시간과 감정을 가사에 녹여냈다. 고트는 “모두 다 자기만의 삶이 있고,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한국에선 (랩 가사가) 거의 다 돈, 마약, 가난인 게 신기했다”라며 “한국 힙합은 창작 문화가 아니라 성공한 스타일을 따라가는 카피 문화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힙합에서 노동을 말하는 게 새로운 시도이고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0~20대 힙합 리스너들이 랩에서 돈 자랑과 여자 이야기만 원한다는 것도 오해일 수 있다. 고트는 노동을 연결한 시도에 대해 “10대 초중반이 새로운 힙합 음악을 많이 접하는 시기이고, (그들이) 지금의 대중이라고 본 것”이라며 “아티스트가 정한 콘셉트와 주제에 따라 대중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트는 “나이가 들면서 (기존 힙합의) 멋과 플렉스는 우리한테 알맞지 않은 옷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가사 쓸 주제가 얼마나 많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최삼은 “힙합은 사랑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만이 아니라 ‘돈 없어서 굶어 죽겠다’, ‘생리통 때문에 죽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엄청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 좋지만 현실에서 사랑을 말하지 못하는 시기도 있지 않느냐. 그 시기에도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힙합을 찾는다. 그래서 10대들이 더 힙합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한다. 겪은 삶에 대한 말이라 날것의 느낌이 있다”고 했다. 랩은 각박한 현실에 치이고 힘들 때 숨통 역할을 하고, 그 어느 음악 장르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낸다.

    박하재홍씨는 게토에서 힙합이 탄생했을 때를 다시 말했다. 박하씨는 “괄시받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던 게 힙합이고, ‘그곳을 벗어나야 해’가 아니라 ‘그곳도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힙합이었다”고 했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을 게토를 낙원으로 만들며 힙합은 전 세계적 인기를 끌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힙합은 죄가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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