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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히브리스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압축한 책이다.인류학 2023. 4. 2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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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20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호모 히브리스/요하네스 크라우제 외
호모사피엔스 ‘진화의 길’ 집중 조명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과의 관계
현생인류 DNA 증거로 분석·확인
무덤 만들기에서 인간의식 탄생 엿봐
감염병 등 재앙 통해 인류의 길 질문
5000년 전 타이완이 현생인류 대팽창의 마지막 거점개는 2만~1만 5000년 전 인간의 충직자 동반자가 되었다. 책과함께 제공<호모 히브리스>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압축한 책이다. ‘히브리스(hybris)’는 ‘지나친 오만과 자신에 대한 맹목적 과신’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집단이 자만에 빠져 자멸할 수 있다는 경계의 뜻을 지닌 단어다. 책에 따르면 20세기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히브리스로 만들었다. 인간이 고성능 뇌로 성취할 수 있는 극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호모 히브리스에 대한 경계는 책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다.
책의 90% 이상은 호모 사피엔스가 걸어온 진화의 길에 대한 설명이다.
첫째 7만 년 전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올 때, 이미 다른 인류 2종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시베리아에 동서로 넓게 퍼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데니소바인이 있었다. 이 데니소바인은 시베리아~인도차이나 반도에 남북으로 퍼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3종의 인류가 서로 경쟁했으나 성관계도 가졌다는 것이다.
4만 년 전까지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의 권역으로 확산했는데 이들 3종의 인류는 서로 경쟁하면서 피를 섞기도 했다. 현생인류의 확산 추이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분포도. 책과함께 제공그 증거로 현생인류 DNA 속에 ‘그들’이 남아 있다. 네안데르탈인 DNA는 아프리카 이외 지역 현생인류 게놈의 2% 비중을 차지하고, 데니소바인의 DNA는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호주 원주민 게놈의 5% 비중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데니소바인은 20만 년 전 2개 개체군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북부 데니소바인은 알타이산맥과 티베트에, 남부 데니소바인은 뉴기니, 호주에 살았다. 북부인의 흔적일까. 데니소바인 DNA는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도 아주 작은 비중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둘째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앞지르면서 세계를 정복한 것은 4만 년 전이다.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것일 수 있는데 ‘생존’과 함께 ‘삶’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은 ‘육신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점을 엿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의식, 인간 의식의 탄생이 그것이다. 인간 의식의 비밀은 뭘까.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달리 현생인류는 거대 동물을 거침없이 남획했다. 매머드뿐만 아니라 숱한 동물 종을 남획으로 멸종시킨 것이 현생인류였다. 자기파괴적 충동일까. 그래서 세계도 파괴하는 걸까.
2017년 뼈 분석 결과, 25만 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호모 날레디의 복원 모습. 책과함께 제공그 파괴성이 역설적이고도 발전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현생인류가 그 이전 인류의 발이 닿지 못한 시베리아 동부, 극권 위쪽 지방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 연장으로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급속 확산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걸음, 진출이었다는 것이다.
셋째 현생인류 확산에 큰 재앙 사건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7만 4000년 전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 폭발이었다. 지난 200만 년 이래 최대 화산 폭발로, 2010년 수 주 동안 유럽 항공 교통을 마비시킨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에 비해 2만 배나 강력했다. 그로 인해 현생인류의 동아시아 확산이 2만 5000년간 멈췄다. 세상의 멸망에 비견됐는데 그 멸망을 뚫고 인류는 확산한 것이었다.
가족관계가 끈끈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의 추정 모습. 책과함께 제공넷째 현생인류 대팽창의 마지막 교두보는 5000년 전 타이완이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를 통해 밝힌 ‘오스트로네시아 팽창’이 그것이다. 당시 중국과 이어져 있던 타이완을 거점으로 물로 덮여 있는 ‘수반구’ 태평양의 수천 개 섬으로 몇천 년에 걸쳐 확산한 것이다. 아프리카 동부 섬 마다가스카르까지 확산했다. 이와 함께 4900년 전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서 주로 남자들이 말을 타고 이동해 유럽을 거의 정복해 오늘날 유럽의 인도유럽어족이 탄생했다고 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스텝지역 사람들을 이동하게 한 동력은 무서운 페스트였다고 한다. 무서운 질병이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안겨준 것이다.
4만 여 년 전 다부진 두개골의 현생인류인 유럽 수렵 채집인의 추정 모습. 책과함께 제공인류사 대부분의 시기에 질병 감염병은 사실 신의 형벌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백신과 항생제를 개발하면서 인류는 그 신의 형벌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게놈을 해독하고 유전자 가위로 인간 설계도까지 손댈 수 있게 됐다. 인간은 고도의 뇌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적은 우리 자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적 진화를 끝낸 호모 사피엔스가 자기 파괴의 메카니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파괴냐 새로운 도약이냐. 도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것조차 넘어설 수 있는 것은 호모 히브리스가 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책은 묻는다. ‘당신들, 할 수 있어?’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강영옥 옮김/책과함께/344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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