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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래퍼, 동부의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2012. 12. 28. 14:32

    래퍼, 동부의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동부청소년센터 1기 수업을 돌아보며.

     

    글 박하재홍

    올해 초여름, 우리 마을 ‘송당리’에서 시동을 걸면 느긋하게 운전해도 15분이면 도달할 거리에 청소년센터가 탄생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 동안은 주로 제주시내에서 수업을 진행해 왔다. 먼 거리도 그렇지만, 시내를 중심으로만 활동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못마땅하던 차였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집중된 문화와 소비에 질려 제주까지 이주를 했건만, 여기에서도 도시에 매달려야 하다니....... 시내를 벗어난 제주의 지역에도 충분한 인구와 다양한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나와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수업을 제안할 때도 지역 도서관에 우선 문을 두드렸고 마을에서 만난 청소년들과 음악 감상 동아리를 만들어 보려고도 했건만, 흐지부지 끝나기 일 수였다. 시내에서 나의 수업은 대체로 평이 좋았다. 랩 음악을 들으며 ‘인문’의 즐거움에 ‘입문’하는 수업.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낸 수업이었는데, 이제는 종종 전국으로 강의를 하러 다닌다. 불안이 엄습한다. 이러다, 일을 좇아 제주를 떠나게 되면 어쩌지? 어떻게든 제주에서, 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정신없이 일해 보고 싶은데 말이다.


    세화리에 둥지를 튼 동부청소년센터는 그런 나에게 새로운 기대와 도전을 주었다. 대체로 수업에 자신 있는 편이었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학생들의 감수성과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수업을 진행하다간 큰 코 다친다. 지난 6개월 동안 진행한 이곳에서의 수업은 나 스스로에게 60점 밖에 주지 못하겠다. 좀 더 세심하게 애정을 쏟아야 했다. 지역에서 일을 한다는 건, 보편적인 무엇과는 또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나의 수업을 좋아했던 친구들이 더 이상 인기가요에만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에 숨통을 틘다. “선생님,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푸른솔아’ 같이 들어요!” 상업 방송국에선 틀어주지 않는 음악들을 찾아 듣는 것, 대중음악 한 곡을 듣더라도 자신의 관점으로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습관은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인문의 즐거움이다. 음악 한 곡에 담겨 있는 열정과 철학의 흔적을 차곡차곡 발견하다 보면 내 삶을 위한 ‘방송국’이 만들어 진다.


    남이 만든 음악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가사를 써보고 싶은 학생은 나와 글쓰기에 돌입한다. 막상 연필을 들고 긴 문장을 써내려가려면 막막해 진다. 종이가 캄캄하다. 그런데도, 학교가 수면실이라는 한 학생은 내게 잊히지 않을 말을 해주었다. “이 시간만을 기다려 왔어요.” 11월 16일 오후 5시, 동부청소년센터 1기의 발표회 날, 우리는 창작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 전날 밤 12시를 넘어서까지. 막상 마이크 앞에선 너무 긴장했다. 연습 때 넘치던 기운은 어디론가 새어 나가 버렸다. 무엇일까....... 내가 또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자신의 글을 하나의 작품으로 끝까지 마무리한 래퍼들을 더 멋지게 연출해 주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래, 다시 기운을 내서 겨울의 모임을 구상 해야지. 세상엔 같이 듣고 싶은 음악이 가득하고, 종이를 채울 쓸거리도 빼곡하잖아. 동부청소년센터가 잠시 휴식을 하고 있을 동안, 나는 동아리 모임을 진행할 계획이다. 2기 청소년들과 새롭게 만날 날을 준비하면서. (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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