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출처 리드머)
    힙합 아카이브/힙합 2010. 11. 27. 23:11


     
    2002-11-14 
     
    Ain't Nuthin' But A She Thang: 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1)

    출처 | Weiv.co.kr ( http://www.weiv.co.kr )
    글 | 양재영 cocto@hotmail.com | contributor  


    여성 힙합,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흑인 여성 힙합을 이 짧은 지면에 모두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국내에서는 지금껏 여성 힙합 전반에 대한 소개나 진지한 문제제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덕분에 스스로 힙하퍼라 칭하는 이들 조차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단지 주류 시장의 '마초' 남성 래퍼들의 구색 맞추기 정도로 간주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여성 힙합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여성 힙합에 대한 제대로 된 개괄적인 소개와 진지한 논의가 절실해 보인다. 하지만 해야될 얘기들이 너무 많기에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이다. 주류 시장과 언더그라운드 씬을 활보하는 당대의 무수한 힙합 여걸들에 대해 장광설을 해댈 수는 없을 것이고, 하물며 힙합이 태동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20여 년에 걸친 연대기를 단번에 풀어놓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미국의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음악적 실천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주류 미디어를 비롯한 미국 사회의 지배 담론에 대응해 온 방식들을 간략하지만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미국 여성 힙합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선입견은, 미국 내 주류 사회와 문화 산업의 흑인 여성 힙합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다. 당연히 미국 여성 힙합에 대한 논의는 간략하나마 이러한 지배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함께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으로서 처하게 되는 인종주의,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 그리고 '하층 계급' 출신으로서 겪어온 경제적 억압에 대해, 대부분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음악적 실천에 기초한 다양한 층위의 전략들을 통해 적응하거나 맞서게 된다. 특히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면서 동시에 빈민 출신의 여성이라는 '삼중고'에 기반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들이 필연적으로 주류 미디어나 문화산업의 편견, 무지, 억압과 맞대응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사회 문화적, 정치 경제적 편견에 맞서는 열렬한 '여성 전사'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이는 단지 그들을 남성 중심의 힙합 공동체의 성적 도구로 묘사하는 것 못지 않게 극단적이며 위험하다. 사실 그들과 동료 아프로 아메리칸 남성 힙합 뮤지션들의 역설적인 관계, 그리고 백인 여성 중심의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미묘한 대응은,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과 그들 음악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일면적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그들이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과 구조적 불평등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여러 가지 전략들을 제대로 살펴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 힙합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 여성 힙합의 힙합 공동체 내에서의 새로운 역할, 나아가 보다 큰 문화 정치적 가능성들을 타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여성 힙합 vs. 남성 힙합

    미국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에 의해 규정되는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의 극단적 형태로 나뉘어진다. 이는 국내 힙합 팬들이 지닌 여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한 이미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첫 번째는, 미디어나 문화산업이 일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성차별주의(sexism)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전사'로 포장하고 마케팅하는 경우다. 물론 지난 20여 년간 상당수의 여성 래퍼들이 남성 중심의 힙합 시장에서 랩 가사 뿐 아니라 다양한 연계 활동을 통해 여성의 주체적 권력과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 래퍼들의 이러한 '안티 섹시스트(anti-sexist)'적인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남성 래퍼들을 성차별주의자(sexist)로 단일하게 재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류 미디어에서 이렇게 여성 래퍼들과 남성 래퍼들을 일종의 상반되고 적대적인 관계로 묘사하면서, 결국 랩과 힙합의 '성 정치(sexual politics)'가 지닌 복합적이고 때론 모순적인 측면들은 필연적으로 간과하게 된다.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서던 랩 혹은 '섹스 랩'의 제왕 2 Live Crew
     
    남성 래퍼를 섹시스트로 그리고 여성 래퍼를 페미니스트로 단순 규정하는 주류 담론에 대한 반증들은 미국 힙합의 지난 역사에서 쉽게 발견된다. 성차별주의에 맞서는 대표적인 여성 래퍼로 평가받아온 엠씨 라이트(MC Lyte), 퀸 라티파(Queen Latifah), 시스터 술자(Sister Souljah), 요요(Yo Yo) 등이 의외로 섹시스트 남성 래퍼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을 전후한 시기,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를 비롯한 서던 래퍼(Southern rapper)들의 여성 차별적인 랩과 원색적인 공연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전사로 평가받던 대부분 여성 래퍼들은 이들 남성 래퍼에 대해 주류 미디어를 통한 비판을 거부했었다. 사실 흑인 여성의 주체적 권위 확보를 위해 노력했던 그들은 분명 서던 랩의 선정성과 공격성에 대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주류 미디어와 지배 담론의 섹시스트 흑인 래퍼들에 대한 비판이 필연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일반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인종주의로 연결되는 과정 또한 알고 있었다. 남성 흑인 래퍼들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이 지배 담론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단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는 여성 래퍼들이 동료 남성 뮤지션들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를 삼갔던 것은 물론이다. 성 차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인종적 동료일 수밖에 없는 남성 래퍼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흑인 여성 래퍼들의 고민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음악에서도 표현되듯이,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다양한 모순적 방식으로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흑인 남성 래퍼들을 때론 비판하지만 때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역으로, 흑인 남성 래퍼 모두가 성 차별주의자는 아니라는 점도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여성의 권익을 강조하는 곡들로 호응을 얻고 있는 당대의 탈리브 퀠리(Talib Kweli) 같은 뮤지션 뿐 아니라, 심지어 투 라이브 크루를 중심으로 노골적인 성 표현과 여성 비하가 득세하던 시기에도 이미 상당수의 남성 힙합 뮤지션들이 이를 비판하고 급진적 흑인 여성 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나 드 라 소울(De La Soul) 같은 이들은 진보적인 여성 래퍼들과 다양한 연계 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당시 주류 랩의 '마초'나 '핌프(pimp)' 감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곡들을 흔쾌히 연주했다. 가령 드 라 소울의 "Mille Pulled A Pistol On Santa",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Description Of A Fool", "Date Rape" 같은 곡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닥터 드레(Dr. Dre)와 NWA의 남성 우월주의를 통렬하게 까발렸던 팀 독(Tim Dog)의 "Fuck Compton"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2.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이다?"

    미국 사회의 지배 담론에서 강조되는 흑인 여성 힙합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는, 힙합 혹은 랩을 흑인 남성의 전유물로 가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이 경우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은 힙합 공동체에서 철저히 주변적 존재이거나 기껏해야 성적 상품화를 위한 대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페미니스트 여성 전사에 대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주류 미디어의 여성 힙합 뮤지션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묘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담론에 따르면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안티-페미니스트(anti-feminist)'적인 태도를 취해야하며, 결국 마초 남성 뮤지션들에게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여성 힙합에 대한 일방적 무시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남성 힙합 뮤지션들에 비해 현재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수적으로 절대 열세이다. 그나마도 주류 시장의 스타급 여성 뮤지션들은 대부분 몇몇 남성 중심 패거리에 기생하고 있다. 더욱이 모든 남성 래퍼들이 섹시스트가 아닌 것처럼 여성 래퍼들 역시 모두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페미니스트의 태도를 취하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을 남성의 전유물로 가정하는 것은 힙합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지속되어온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고와 역할을 철저히 평가 절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낸시 게바라(Nancy Guevara)는 힙합 초창기인 1970년대 중, 후반에 이미 아프로 아메리칸과 라티노 여성들이 래퍼로서 그리고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브레이크 댄서로서 뉴욕 힙합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자신의 1996년 논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가령 1978년에 이미 레이디 비(Lady B)는 여성 래퍼로서 최초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힙합이 음악 산업의 대형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여성을 힙합에서 배제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은 1980년대 초반 1세대 힙합 스타들을 배출하던 시기에 이미 힙합을 대도시 게토 청년의 독점적인 문화인양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Salt-N-Pepa의 기념비적 데뷔앨범 [Hot, Cool And Vicious](1986)

    덕분에 한동안 힙합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받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드디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음반 산업의 새로운 전략이든 아니든 간에, 특히 솔트앤페파(Salt-N-Peppa)의 데뷔앨범 [Hot, Cool And Vicious](1986)가 더블 플래티넘 음반이 되면서 여성 래퍼들의 메이저 음반시장 진출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미즈 멜로디(Ms. Melodie), 엠씨 레이디 디(MC Lady "D") 등이 솔트앤페파의 뒤를 이을 즈음, 올드 스쿨의 또 다른 여걸 엠씨 라이트의 싱글 음반 "Paper Thin"(1988)은 라디오 방송 없이도 발매 후 6개월만에 12만 5천장을 팔아치우며 여성 래퍼들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뒤이어 솔트앤페파의 1990년 앨범 [Blacks' Magic]의 첫 번째 싱글 Expressions가 발매 일주일만에 골드를 획득하면서 새로운 세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위한 물꼬를 완전히 텄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흑인 남성의 일방적 지배를 거부하고, 평등한 남녀관계와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노래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1990년대 이후 활약해온 힙합 여걸들의 이름은 아마 대부분의 힙합 팬들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폭시 브라운(Foxy Brown), 릴 킴(Lil' Kim), 이브(Eve), 로린 힐(Lauryn Hill),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같은 이들은 현재 미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확고한 슈퍼스타들이다. 어디 그들뿐인가. 바하마디아(Bahamadia), 프린세스 슈퍼스타(Princess Superstar), 미스틱(Mystic) 같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실력파 여성들 또한 점차 세를 넓히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이름은, 지배 담론의 지속적인 무시와 무지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힙합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은근한 비중과 역할을 암시한다.


    3. '그녀들'의 목소리

    그렇다면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랩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사실, 앞서 언급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힙합 공동체 내에서의 적잖은 비중을 인정한다해도, 그들의 음악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비록 로린 힐이나 미스틱이 흑인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를 대변할지언정, 폭시 브라운과 릴 킴부터 이브에 이르는 주류 시장의 흑인 여성 래퍼 대부분은 우리의 편견을 더욱 깊게 할뿐이다. 즉 그들이 남성 마초 래퍼들의 곁다리거나 노골적으로 포장된 성적 상품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면, 실제 흑인 여성 래퍼들이 무엇을 노래하며 그 노래들은 자신들의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 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특히 랩 음악을 곰곰이 따지고 듣는다면 내용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분모로서 특정한 정치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것이 노골적인 성에 대한 표현이든,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 문화적 실천에 관한 얘기든 이 모든 것은 결국 '성 정치(sexual politics)' 혹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투쟁의 문제로 해석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흑인 남성 래퍼들의 가사가 대부분 경찰에 대한 비판부터 흑인 정체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종 정치(racial politics)'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본다면, 이러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대조적인 관심은 자못 흥미롭다.

    결국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랩은 본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그리고 다양한 태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남녀간의 권력 배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때론 보다 적극적으로 성 권력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적 실천이 흑인 남성 힙합 뮤지션들과 적대적 위치 혹은 종속적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주장 혹은 문제제기가 오히려 힙합 뮤지션을 포함한 흑인 남성들과의 동등한 대화 과정을 매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에서 가장 빈번한 소재이자 주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남녀관계'다. 이때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노래 속에서 남성과의 이성애적 관계를 표현하는 여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혹시 힙합 공동체의 남녀관계가 일방적이고 불평등할 뿐이라고 막연히 전제한다면, 아마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노래를 통해 주로 남성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하거나 혹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 종속된 여성의 모습만을 보여줄 거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녀관계를 다루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래는 대부분 이러한 편견을 거부한다. 사실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여성 다수가 처한 복합적인 사회, 경제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남성에 대한 태도와 관계 맺기에 반영된다. 인종적 불평등과 열악한 경제적 현실에 맞서야 하는 그들의 생존전략은 마초적인 동료 남성들을 대하는 모습에도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이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이 흑인 여성의 현실에 대한 표본 구실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남녀관계를 다루는 대부분의 랩 속에는 묘한 긴장들이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 흑인 남성들의 마초적 행동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인종적 불평등을 공유하는 공동체 동료로서 그들에 대한 신뢰가 공존한다. 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파렴치한 언행과 통제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이를 피하고 완화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남성을 유혹하는 특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남성의 경제적 특권에 맞서는 전술을 취하기도 한다.

    초기 힙합 클래식 중 하나인 엠씨 라이트의 "Paper Thin"이나 솔트앤페파의 "Tramp" 같은 곡은 남녀관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대표적인 사례다. 엠씨 라이트가 자신의 남자 친구의 진실하지 못하고 "백짓장처럼 얇은" 사랑을 통렬한 비판한다면, 솔트앤페파는 아내를 속여가며 여성들을 유혹하는 한심한 남성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물론 이 두 노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네네 체리(Neneh Cherry)의 "Buffalo Stance", 마니 러브(Monie Love)의 "It's A Shame", 아이스 크림 티(Ice Cream Tee)의 "All Wrong" 등도 앞의 두 노래에 충분히 견줄만하다. 심지어 경제적 부를 앞세워 여성들을 갖고 놀려는 남성들을 교묘히 역이용하는 노래들도 있다. 아이스 제이(Ice Jay)의 "It's A Girl Thang", 니키 디(Nikki D)의 "Up The Ante For The Party" 등의 노래에서 표현된, 경제적 불평등에 기반한 일방적 남녀관계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여성 랩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다.

    결국 상당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남녀관계를 다루면서 남성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연약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길 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하다면, 남녀관계를 여성 입장에서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젊은 흑인 여성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을 위해 전진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러한 곡들이 단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불평과 불만을 표현한 정도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정당하고 직접적인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 대접받기 보다, 단지 불평 가득한 '앙탈'로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남성에 대한 공격과 비판만이 능사는 아니다. 최소한의 사적인 불만과 문제제기까지도 장차 성 권력관계의 전환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권력관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 기술 뿐 아니라, 흑인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적 실천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남성 (뮤지션들)과 직접적인 경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1980년대 후반 록산느 샨테(Roxanne Shante)의 "Roxanne's Revenge"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동료 여성을 비꼬아 크게 히트했던 U.T.F.O.의 곡 "Roxanne, Roxanne"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지만, 동시에 흑인 남성이 지배하던 힙합 공동체 나아가 게토 거리에서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계속)

    * 참고 문헌
    Guevara, Nancy. 1996. "Women Writin' Rappin' Breakin'," in Droppin' Science: Critical Essays on Rap Music and Hip Hop Culture, W. E. Perkins (ed.).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02-11-14 

    Ain't Nuthin' But A She Thang: 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2)

    출처 | Weiv.co.kr ( http://www.weiv.co.kr )
    글 | 양재영 cocto@hotmail.com | contributor  


    2) "여성이여, 단결 투쟁하라"
    전통적인 랩의 핵심이자 미덕은 때론 떠벌리고 때론 과시하는 라임이다. 이는 여성 래퍼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에서 다루어지는 두 번째 중요한 주제는 바로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를 한껏 높이자"는 것이다. 단순히 남녀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성숙한 사회 의식을 뽐내기 위해 열변을 토한다. 나아가, 자신을 포함한 아프로 아메리칸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정치적 권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한다.

    여성 힙합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0년을 전후한 시기, 이러한 경향을 주도했던 이는 단연 퀸 라티파(Queen Latifah)였다. 그녀는 진보적 흑인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보무 당당한 태도와 다양한 사회적 관심들을 진작부터 보여주기 시작했다. "Latifah's Had It Up To Here", "Come Into My House", "U.N.I.T.Y" 같은 그녀의 곡들은 기본적으로 남성 청중을 주도하는 여성 래퍼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특히 데뷔 앨범 [All Hail The Queen]에 수록된 "Ladies First"는 흑인 여성의 확장된 정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 단순히 흑인 여성들의 단결과 독립된 목소리를 강조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부의 식민지적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흑인 여성의 공적 정치 활동의 중요성까지 주장한다. 말하자면, 전세계의 흑인 여성들을 규합하는 강력한 '블랙 우먼 다이아스포라(black women diaspora)'를 세우자는 것이다.
      

    '갱스타 비치' 세대를 대표하는 여걸 Foxy Brown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독립된 힘을 보여주려는 이러한 노력은 앙트와넷(Antoinette)의 "Who's The Boss"나 요요(Yo Yo)의 "Stompin' To The 90's" 등의 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강경파는 아니지만 솔트앤페파(Salt-N-Pepa)도 "Everybody Get Up" 같은 곡으로 이들을 뒷받침했다. 물론 퀸 라티파 세대 이후에도 이러한 진보적 전통은 지속되고 있지만, 사실 예전과 같지는 않다. 미스틱(Mystic) 같은 걸출한 언더그라운드 여걸을 제외하면 현재 주류 시장의 공격적인 여성 래퍼들은 대부분 새로운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자기 스스로를 '갱스타 우먼(gansta women)' 혹은 '갱스타 비치(gangsta bitches)'로 포장하는 것이다. 가령 폭시 브라운(Foxy Brown)이나 이브(Eve) 같은 이들은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갱스타 우먼' 혹은 '갱스타 비치'는 1990년대 주류 남성 힙합의 트렌드가 적잖이 반영된 것이다. 
    즉, 남성 갱스타 래퍼들이 취해온 폭력에 대한 환상을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 전유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게토 거리를 활보하는 거친 이미지에 독특한 '섹스 어필'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 여성 래퍼의 정체성은 모호한 이중성을 띠게 된다.


    3)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일련의 진보적 좌파 성향 혹은 페미니스트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여성 힙합 뮤지션 대다수가 자신의 음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앞서 언급한 남녀관계에 관한 것과 함께, 자신을 비롯한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미적 과시 혹은 성적 자유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남녀관계를 다루는 랩에서 대부분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마초적 남성이 주도하는 일방적 관계와 가부장적 권위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음악적 전술들을 취한다는 얘기는 이미 했었다. 마찬가지로, 흑인 여성 랩의 또 다른 핵심 주제인 '섹스' 혹은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 역시 중요한 사회 문화적 함의를 내포한다. 사실 주류 시장 여성 래퍼들의 '야한' 뮤직 비디오나 선정적 단어를 남발하는 랩은, 그들의 음악이 단지 남성에 대한 유혹을 목적으로 할뿐이며 결국 스스로 흑인 남성 래퍼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고 있다는 편견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의 신체와 성적 자유를 핵심 주제로 하는 여성 래퍼들의 랩은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 지배 담론에서 주변화되어온 흑인 여성들에게 새로운 공간과 목소리를 제공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흑인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자유에 대한 표현을 통해, 이들 여성 래퍼는 흑인 남성 래퍼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쾌락에 대한 전제들을 깨부수기를 요구한다. 더불어,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 담론이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의 신체를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도전해 왔다. 사실, 1980년대 후반 이전까지만 해도 흑인 여성 특유의 풍만한 특정 신체 부위들은 주류 담론에서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매체들이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해 아예 언급을 회피했던 것을 상기하면, 1990년대 이후의 지나친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솔트앤페파의 "Shake Your Thang" 뮤직 비디오와 거칠 것 없는 랩을 필두로 최근의 릴 킴(Lil' Kim)이나 이브에 이르기까지, 흑인 여성 래퍼들의 솔직한 성적 표현들이 이러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특히 그들은 미국의 주류 대중 문화에서 묘사되지 않았던 게토 흑인 여성들의 고유한 문화적 기호와 경험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흑인 여성에 대한 지배 담론의 외면에 대담하게 맞서 왔다.

    동료 흑인 남성들이 지닌 성적 편견을 교정하고 나아가 백인 여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지배 담론의 미적 기준에 도전하면서, 흑인 여성 래퍼들은 젊은 아프로 아메리칸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 래퍼들의 육체적, 성적 자유에 대한 표현은 필연적인 한계에 부딪히면서 때론 모순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남성 래퍼와 메이저 음반회사 간부들이 힙합 음악의 실천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제도적 권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은 지배적 성 담론에 대한 흑인 여성 래퍼들의 직접적인 도전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더욱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가사 표현의 도덕적 기준을 흑인 남성 래퍼들과 공유한다는 점은 이들 흑인 여성 래퍼의 치명적 약점이 된다. 가령 솔트앤페파의 "Shake Your Thang"은 노골적인 성 표현으로 악평이 나있는 남성 래퍼 서믹스어랏(Sir-Mix-A-Lot)의 "Baby Got Back"과 그 내용 면에서 동일한 범주로 묶일 수 있다. 말하자면 여성의 신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4. 페미니즘과 흑인 여성 힙합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음악적 실천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간단하나마 살펴보았다. 흑인 여성의 사회, 정치적 실천과 자주적 힘을 강조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즉 남녀관계를 묘사하거나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자유를 표현하는 경우에도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결코 흑인 남성들의 편견이나 심지어 백인 사회의 지배 담론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왔음을 이제는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 뮤지션을 비롯한 흑인 남성들의 성적 억압에 대한 이들 여성의 좌절과 분노 속에는, 그들과의 사회 문화적 유대와 정서적 공유 혹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성 정치에 기묘히 공존하는 '무한한 가능성'과 '필연적 한계'는 바로 이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여성 힙합 뮤지션의 음악적 실천이 진보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먼저, 전술한 것처럼, 흑인 남성 래퍼들과 성 담론을 둘러싼 대화를 진행해야 하고, 동시에 보다 넓은 맥락의 사회적 담론들과 투쟁을 해야한다. 특히 페미니즘의 충실한 수용과 해석은 진보적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거쳐야 할 필연적 단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백인 여성 중심의 미국 주류 페미니즘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가정은 금물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진보적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다소 모호하고 복합적인 대응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흑인 여성들의 모순적인 일상 환경은 그들을 획일화된 페미니스트 전사로 전환시키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즉, 아프로 아메리칸 남성들의 성적 억압이 초래하는 실망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결코 인종적 동료인 이들 남성에 대한 동정과 유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스트 담론이 1990년대 초까지도 여전히 백인 이외의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소외시 한 것은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불신을 결정적으로 부추겼다. 말하자면 이들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은 다른 마이너리티 여성 문화 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자체를 이슈화하기에 앞서 페미니즘 내의 '인종' 정치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시절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은 가장 성공한 '블랙 쇼 비즈니스 우먼'으로 변신한 Queen Latifah

    주류 언론 심지어 흑인 미디어 진영에서도 페미니스트로 평가를 받았던 퀸 라티파나 엠씨 라이트(MC Lyte)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거부하는 것은,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그 속에는 동료 흑인 남성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이 내재해 있다. 퀸 라티파는 트리샤 로즈(Tricia Rose)와의 1993년 인터뷰에서 "(주류) 페미니즘의 '반-남성적' 포지션이 남성의 태도를 교정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드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내 음악 작업이 그들과 같은 '반-(흑인)남성'의 태도를 담지한 것으로 규정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의 미묘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심지어 엠씨 라이트는 같은 인터뷰에서 "(흑인) 여성의 독립과 남녀간의 상호의존은 동시에 가능하다"라고 모순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특히 투 라이브 크루의 노골적인 성 표현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면서도, 자신의 '비판'은 주류 미디어와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불만'과는 전혀 다르다고 굳이 첨언한 것은 이들 흑인 여성의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경계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소위 '포스트-페미니즘' 세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활동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릴 킴이나 폭시 브라운 같은 갱스타 비치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외모와 음악적 표현을 통해 기존 흑인 여성의 복종적이고 순종적 이미지를 거부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수동적 여성상에 대한 그들의 대안은, 소비주의에 중독된 게토의 갱스타 흑인 청년에 대한 무차별적 동경과 모방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흑인 여성의 권력 확보는 남성 중심의 힙합 문화에 대한 경배와 일방적 수용을 통해 가능하다는 또 다른 모순된 결과의 반복에 이르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모호한 태도는 결국 '인종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동시에 동료 흑인 남성과 대립해야 하는' 그들의 모순적인 사회 문화적 지위로부터 기인한다. 즉,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는 흑인 여성과 남성들의 중요한 심정적,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인종을 넘어선 여성간의 유대를 곤란케 만드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유색 인종 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들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더욱이 기존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도 폐쇄된 문을 개방하면서 미국 내 여성 운동은 점차 인종적 경계들을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 뮤지션을 포함한 상당수의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기존 페미니즘을 흑인 여성이나 흑인 공동체와의 구체적 연관성이 부재한, 단지 백인 여성만의 사회 운동으로 간주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배타적인 분석 범주로 취급해온 미국의 주류 페미니즘이 이 이중적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에 보다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면, 흑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 여성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여전히 좁아 보인다.

    5. 글을 마치며

    간단하나마 미국 여성 힙합의 음악적 실천, 그리고 연관된 사회, 문화적 의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여성 힙합 뮤지션 중에서도 특히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여성 래퍼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기술되었다. 이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아무래도 미국의 여성 힙합 뮤지션 상당수가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었으며, 또한 그들 대부분이 엠씨잉에 편중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여성 힙합의 양적, 질적 성장은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우선 엠씨 뿐 아니라 여성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성장이 유달리 눈에 띤다. 더욱이 그 중 상당수는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 아니다. 가령 디제이 쇼티(Shortee) 같은 백인 여성이나 롤리 로(Roli Rho) 같은 아시아계 여성 디제이들은 남성 턴테이블리스트를 능가하는 탁월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더욱이 미 각지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빼어난 여성 엠씨들이 눈부신 활약을 벌이고 있다. 좀 지난 얘기지만, 프리 더 하니 다크(Pri The Honey Dark) 같은 여성 엠씨는 1997년 블레이즈 배틀(The Blaze Battle) 대회에서 수 십여 남성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배틀 엠씨로 인정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성향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성장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인종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선 여성 힙합의 이러한 비약적 성장은 힙합 문화와 음악 전반의 거대한 지형 변화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 힙합의 새로운 흐름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서둘러 오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이 글에서 부족한 구체적인 음악적 사례들은 함께 업데이트되는 10장의 여성 힙합 앨범 리뷰로 대신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성 힙합의 수작 혹은 문제작으로 평가되는 10장의 대표적인 앨범을 꼽아보았다. 퀸 라티파의 전형적인 블랙 페미니즘부터 폭시 브라운이나 이브의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신세대 여성주의까지, 여성 힙합의 다양한 흐름을 어느 정도 감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로, 솔트앤페파의 [Hot, Cold And Vicious](1986), 이미 웨이브에 리뷰가 올라와 있는 로린 힐(Lauryn Hill)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1998),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의 [Supa Dupa Fly](1997)는 이번 선정에서 제외되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각각의 리뷰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이 세 앨범과 뮤지션들이 여성 힙합 아니 미국 힙합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소중한 것임을 재차 강조하는 정도로, 아쉽지만 이들에 대한 얘기는 줄여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작업이 오랜 기간 힙합 음악과 문화의 성장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왔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될 듯싶다. 그들은 남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작업에 때론 협조하고 때론 도전하면서 힙합 음악의 고정되고 편협한 관성들을 깨부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무엇보다, 남성 래퍼들의 성 차별주의에 대해 비판과 포용을 병행해온 그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편으로 그들은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자연스럽게 인종주의와 젠더를 둘러싼 이슈들과 관련해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과 지속적으로 경합해왔다. 특히, 흑인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와 역사를 지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흑인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인종주의에 찌든 미국 대중 문화의 미학적 가치들을 전복하려 했던 기나긴 투쟁은 여성 힙합의 또 다른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결국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의상과 외모, 라임을 통해 표현되는 존재감은 게토의 젊은 흑인 여성들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자주적인 실천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되어온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인종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선 여성 힙합 전반의 새로운 변화는 물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성과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과 분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남성 힙합 팬들이 여성 힙합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제거하고 그들의 음악적 실천을 보다 진지하게 수용한다면, 그들은 훨씬 여유롭게 21세기 힙합 공동체의 또 다른 주체로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참고 문헌
    Rose, Tricia. 1994. Black Noise: Rap Music and Black Culture in Contemporary America. Middletown: Wesleyan University Press.

     ※ 해당 글은 웹진 Weiv(http://www.weiv.co.kr)에서 허락을 받고 개제하고 있습니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웹진 Weiv 양재영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