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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이란 무엇인가? (글 손아람)힙합 아카이브/랩 2010. 11. 5. 21:00
랩의 미학 : 랩이란 무엇인가?
손아람(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1. 들어가며 : 랩이란 무엇인가?
랩 하는 이들이 자주 받는, “랩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정답처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글쎄요.” 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복합적인 문화적 기원으로부터 비롯되어 여러 예술 형식들 사이에 은근히 자리하고 있는 랩을 가시적인 몇 가지 잣대로 정의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다. 또한 고작 발생기로부터 20여 년 지난 그것은 아직 예술의 범주라기보다는 사회 현상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좀 더 타당함 직하여, 청소년들의 극성스런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새로운 퍼포먼스에 예술적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이론화에 대한 강박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보았을 때 랩은 발생한지 고작 20년 된 제기차기에 지나지 않는다. 제기차기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정규 스포츠가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현재를 말하자면 그것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능성 많은 유희일 뿐이다.
랩은 분명히 새로운 대체 예술―그것은 문학일 수도 음악일 수도 있고 어쩌면 새로이 탄생하는 장르일 수도 있다―로서 필요 충분한 기능성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로 분류하는 데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랩의 발생이 여타 현대 예술의 발생 과정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태동한 새로운 예술 장르들과 기존 예술 안의 새로운 형식들과는 달리, 랩은 매체 혹은 테크놀로지의 발명이나 변화하는 문화적 분위기로 인해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의 발생과정에는 최근 몇 세기 안에 발생한 예술들이 모두 갖춘 ‘선구적 천재의 창의적인 시도’ 라는 모던하면서도 낭만적인 요소가 결핍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랩은 백인의 유산이 아니었고 따라서 과장이 다분할지라도 확실한 권위를 더해 줄 수 있는 학술적인 지원도 받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 랩은 퇴폐하고 희망 없어 보이는 흑인 빈민가의 클럽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천재의 시도가 아닌 대중적인 유행을 통해 자리 매김 했고, 흑인들 중에서도 가장 극빈한 계층이 즐기던 문화의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은 예술이거나 아니면 그 무엇으로 분류하던 간에 가장 가능성 있고 매력적인 장르다. 랩을 섣불리 학술적으로 논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그것의 가능성을 지켜보려는 관심 있는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랩이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이 때 이른 작업이므로 나는 그저 랩의 모습을 윤곽 지으려고 한다. 분명치 않은 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는 늘 터무니없는 이해를 낳는다. 나는 랩이 그렇게 터무니없이 이해되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랩에 관한 항목을 신설한 것들에 한해서지만,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랩은 ‘리듬에 맞춰 말을 빨리 하는 것’ 혹은 ‘가사를 곡조 없이 읊조리는 것’ 인데, 이것은 랩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욕이다. 랩을 그렇게 설명한 어떤 백과사전도 문학을 ‘마감에 맞춰 글자를 빨리 쓰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랩은 전혀 이해되어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랩이라는 형식을 창시한 흑인들은 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흑인들을 단순히 새로운 형식을 지칭하는 ‘rap’이란 단어보다는 그것의 성격을 지시하는 단어 ‘emceeing'을 선호한다. ’emceeing'이란 단어는 랩이 실제적으로 퍼포먼스되면서 관중을 감화시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수필가가 글 쓰는 일을 글자를 적는다기보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으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흑인들의 랩, 곧 emceeing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나서, 이들은 과장된 어조로 emceeing이란 곧 군중을 움직이는 힘을 의미한다고 외친다. 물론 수용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예술도 퍼포먼스도 아니겠지만, 랩 음악이 세계적인 장르로서 자리잡으며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말을 빨리 하는 것이 신기하기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 명백하다. 랩이 퍼포먼스로서 이루어지며 관중을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봄 없이 랩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2. 랩과 시(詩)
랩을 하는 이들은 흔히 자신을 시인으로 일컫는다. ‘나는 시인이며, 나의 가사는 시이고, 나의 시는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 는 내용은 하나의 약속된 서문과도 같아서 거의 모든 랩 가사에 한번씩은 쓰이곤 한다. 이것은 상투적인 자화자찬이지만, 흥미롭게도 실제로 랩은 형식적으로 시와 아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영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고 있다. 걸러지지 않은 단어들은 시어일 수 없다는 종종 있는 랩에 대한 비난이 완전치 못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그것이 욕설일지라도―가 순간적으로 놀랄 만큼 분명한 감정을 환기시키는 창의적인 시어로 변신하는 때를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하기 때문이다. 랩의 가사는 퍼포먼스를 위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발화되는 즉시 관중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즉흥적이고 살아있어야 한다.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시어는 적어도 랩에 있어서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죽은 단어이다. 모든 퍼포먼스는 행위자와 수용자에게 동시적인 것이며, 단 한번에 끝난다.
랩이 영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영시가 음율에 맞춰 운(韻;Rhyme)을 붙여가며 내용을 잇는 고대 음유시인의 시로부터 비롯된 흔적을 가지고 있듯이, 랩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랩의 최초 형태는 70년대 뉴욕과 그 근교의 클럽 DJ들이 음악에 맞춰 여흥구를 지르던 것이었다. 그 여흥구가 내용을 갖추게 되고 본래 여흥구의 자리는 rhyme으로 대신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시 본래의 발생과정과 흡사할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영어를 쓰는 Afro-American들은 영어의 문법구조를 따라 마치 영시를 짓듯이 라임을 붙였다. 시간이 흐르며 랩이 거창하게는 흑인들의 사상을 담는 방법으로 진화하고, 고대 음유시인의 시와 같이 군중을 감화하는 역할까지 갖추어가면서, 발생기의 형식적인 흔적은 기능적인 측면과 함께 랩퍼를 곧 음유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군중의 앞에서 자신의 시를 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랩퍼는 시인보다도 더 음유시인에 근접해있다. 랩은 현대적으로 부활한 음유시인의 예술로서 자리잡을 가능성을 지닌 흥미로운 형식이라고 생각된다.
3. 랩 가사의 미학과 현주소
들어봐, 내 얘길 들어봐
모두 한창 나이 되면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뭐 좀 해보려고 하면 또 군대를 가야 되고
좀 잘나가게 될 만하면 군대 걱정하고
또 통일 되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되고
내 머리 자꾸 빠질 걱정 그만해도 되고
나 군대 가기 싫어 빨리 통일 되야 되고
그리고 북한 여자 내가 한번 만나볼 수 있고
한 유명한 랩 그룹이 ‘통일’을 주제로 부른 노래가사의 일부분이다. 아마 이 가사는 랩이 사생아처럼 모든 품위 있는 예술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만든 이 노래를 듣는 어떤 청소년들도, 통일에 대해서 이보다 진지하지 못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군대를 가기 싫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발상은 충분히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사는 일상적인 생각을 멋지게 드러낸 시라기보다는 표현력이 없어 실패한 낙서에 가깝다. 대개의 랩 가사는 이런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두가 나란하게 누워 있는 이곳
수백 개 묘비만 남은 텅 빈 이곳에
여기저기 무덤 앞
무덤덤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한 할머니의 한 맺힌 소리
그 누구를 탓하는 것도 아닌
그저 분단된 조국의 한 맺힌 통곡의 소리
아픔의 소리 이제 그쳐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다함께 외쳐봐
같은 노래의 다른 랩퍼가 쓴 부분의 가사이다. 제법 품위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단어를 선택했지만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진부하다. ‘수백 개 묘비만 남은 텅 빈 곳’ 이라던가 ‘할머니의 한 맺힌 소리’ 같은 구절은, 번듯해 보이지만 어느 시나 소설에서 한번쯤 본 듯한 상투적인 이미지를 무턱대고 묘사했을 뿐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담아내고 있지 않다. 언뜻 통일 기원 문학 캠페인에 응모하는 중학생의 시처럼도 느껴지는 이 가사는, 일상적인 감정을 풀어 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품으로서 완결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 않기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랩 가수들의 수준은 거기가 거기여서, 현재까지 발표된 랩 음악의 가사들은 소박하지만 주제가 없거나, 진부한 주제를 현학적인 문구로 다루지만 내용이 없거나, 주제도 내용도 수준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랩 가사를 쓰는 이들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어느 누구도 랩을 문학의 범주 안에서 생각해본 일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한다. 음악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적절히 rhyme을 활용하고, 나아가 문학적인 감수성까지 가진다는 것은 고대의 음유시인들에게 요구되던 수준 높은 능력이다. 하지만 랩이 불량한 종족으로부터 전파된 청소년들의 저급한 문화쯤으로 치부되는 지금으로서, 누군가 이상적인 가사를 쓸 수 있다면 그는 불량하며 저급하다는 낙인을 견디고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천재일 것이다. 나는 그런 느닷없는 천재의 출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화에서든 창조하는 집단은 그것을 향유하는 집단의 수준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하기에, 새롭게 탄생한 세련된 표현 형식은 싸구려가 아니라 그저 싸구려 용도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4. 운(韻;Rhyme)
랩에 있어서 rhyme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급했듯이 랩은 음악에 맞춰 재치 있게 rhyme을 짜 넣는 놀이가 굳어진 형식이며, 아직까지도 랩퍼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는 수준 있는 내용의 가사를 rhyme을 써가면서도 무리 없이 표현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랩에 쓰이는 rhyme에 관해서는 현재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영어와 한국어의 어문구조의 차이로 인해, 한국적인 rhyme의 구사를 두고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한 논란의 배경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우리말과는 달리 굴절어에 속하는 영어는 단어를 구성하는 음소들이 조합하는 방식으로서 몇 가지 고정된 유형이 존재하고, 그것을 표기하는 발음기호들이 존재한다. 우리말은 상당히 다양한 유형으로 음소들의 조합이 전개되는 편이지만, 영어의 단어들은 라틴어원의 단어들에 몇 가지 접사를 붙여 파생시킨 단어가 많기 때문에 고정된 음가가 없는 대신 뚜렷하게 드러나는 발음 유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라틴어조차도 굴절어에 속하는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로서 분명한 발음 유형이 존재한다) 영시에서 사용된 rhyme이란 결국 같은 계열의 발음 유형을 활용하는 것이고, 영시의 rhyme작법을 그대로 물려받은 랩의 rhyme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Edgar Allan Poe의 ‘Alone'으로, 표본적인 영어 rhyme을 구사한 시이다.
From childhood's hour I have not been
As others were I have not seen
As others saw I could not bring
My passions from a common spring
From the same source I have not taken
My sorrow I could not awaken
My heart to joy at the same tone
And all I loved, I loved alone
Then in my childhood, in the dawn
Of a most stormy life was drawn
From every depth of good and ill
The mystery which binds me still
From the torrent, or the fountain
From the red cliff of the mountain
From the sun that round me rolled
In its autumn tint of gold
From the lightning in the sky
As it passed me flying by
From the thunder and the storm
And the cloud that took the form
When the rest of Heaven was blue
Of a demon in my view
우리말로 rhyme을 만들자면 영어 rhyme의 작법과 같은 원칙이 부재함으로 인해 한참을 헤매게 된다. 그것은 한국어가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특이한 위치에 자리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국어는 교착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교착어는 어떻게 보면 rhyme을 만들기 가장 쉬운 언어라고 볼 수 있다. 교착어에서 단어를 문장으로 조합하는 접사나 조사들은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독자의 눈은 수 천 번의 ‘-이다’ 와 ‘-있다’, 그리고 ‘었다’ 를 스쳐 지나간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영어에서의 라틴어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단어는 중국어 어원의 한자어인데, 영어와 라틴어가 함께 굴절어에 속하는 언어임에 반해 한국어와 중국어는 전혀 다른 계열의 언어라는 점이다. 중국어는 고립어에서 속하는 언어로서, 이름 그대로 음절들이 고립된 형태로 대등하게 결합하기 때문에 단어를 발음하는 유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말은 교착어로 분류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굴절어와 교착어에 한 다리씩을 걸친 언어인 셈이다.
고립어인 한자어로 운을 맞추는 일은 단어가 아니라 음운 단위로 이루어졌다. 같은 음가로 발음되는 동음이의어의 한자가 운으로 주어지면 그것으로 시조를 지어 가야금조에 맞추어 읊는 오래된 유희는 현재 랩퍼들이 가사를 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랩은 한자어와 동시에 한국어로 쓰인다. 한자어만이 쓰인 한시를 짓듯이 음절 하나를 꺼내어 rhyme으로 맞춘 랩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으며, 그렇다고 하나의 문장에 꼭 한번씩은 들어가는 조사로써 rhyme을 맞추는 것은 너무 심심해 보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국어 rhyme의 새로운 체계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법체계나 문장의 호흡 단위에는 상관없이 비슷하게 발음되는 부분을 추출하여 rhyme으로 쓰자거나 형용사와 부사를 만드는 파생접사들을 rhyme으로 활용하자는 등의 제안들이 힘을 얻었는데, 그 중 어느 하나를 표준적인 방식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언어 자체가 구조적으로 절대적인 성향을 띠지 않는 한, 어쩌면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 이상적인 운용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5. 나오며 : 표현수단으로서 랩의 가능성
1990년대 이후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많은 그룹들이 랩이라는 형식적 요소를 수용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랩은 운문의 형식을 지니지만 결국은 산문이고,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구체적인 말이지 시가 아닌 것이다.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청각적인 집중력과 함께,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산문의 요소까지 갖추었다는 것이 랩의 매력이다. 대중 음악은 랩의 등장으로 인해 가장 거대한 문화 산업을 넘어 새로운 미디어이자 대중과의 의사소통 채널로 기능할 수도 있다. 나는 랩이 성악에 쓰일 수 있는 모든 형식을 통틀어 가장 선동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장담한다. 5분 짜리 음악이라면, 하나의 역사로 남을 정치적인 연설이 랩으로 표현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5분 짜리 음악에서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압축되고 발췌된 정치적인 한탄이 고작이다. 의사소통 채널로서의 음악의 기능을 대폭적으로 향상시켜줄 이 새로운 형식이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청소년과 흑인 뿐 만이 아니다.
또한 상식을 초월한 엽기적인 가사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백인 랩퍼 Eminem의 음악은, 어쩌면 랩 음악이 모던하면서도 독특한 표현 양식을 가진 Post-Opera로 자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Eminem은 아내를 죽인 남편, 자살하려는 사람, 혹은 악마의 역할까지 맡아가며 1인칭 시점의 소설과도 같은 가사를 즐겨 쓴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일상적인 억양과 화법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듯이 랩을 하는데, 5분 내외로 완결되어야만 하는 대중음악에서 그러한 극적 구성은 랩 음악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할 것이다.
랩이 음악적 표현 수단의 하나로서 정착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음악사에 있어 드물게 자유로운 형식의 도래를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악 형식의 하나로서 랩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험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랩이 무엇인지를 알려야 할 때다. 무엇을 시도해도 말이 빠르다는 것 이외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까. 하찮은 글에서도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좋은 랩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