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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기_
아파오면 난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붉게 상기된 얼굴
그렁그렁한 두 눈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다
아이의 얼굴엔 욕심이 없다
하느님을 미워하지도 않고
나쁜 말을 하지도 않는다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아이는 내게 되묻고는
얼굴을 돌려 묻어 버린다
<1999>
민들레_
목이 아파 기침을 하면
민들레 씨앗같은 그리움이 피어 나온다
뿌리내릴 곳을 찾아 헤메이다가는
다시 나의 머리위로 내려앉을 민들레 씨앗
언젠가 그 씨앗을 흰 종이에 곱게 접어
너에게 보내야지
열어보아선 안될 판도라의 상자처럼
<1998>
내 나이 스물 하나_
나에게도 책 한권에 며칠밤이 지나가는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내 나이 스물 하나 _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추웠다
그 새벽 옹졸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너의 꿈이 있었고
울먹이는 어린애처럼 연약했지만 그 만큼 순수했던 나의 꿈이 있었다
잠들기 전, 차가운 이불 속에서라도 따뜻한 사람들을 꿈꿔왔고
너를 그리워했던 내 나이 스물 하나
너는 아직도 그런 나를 기억하는지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은
고요한 샘물같아 눈부시구나
<1998>
붉은 바람_
바람에 머리를 말리는 사춘기 소녀처럼,
너의 붉은 옷자락 끝을 따라 거리를 내달린 적이 있었다.
달려온 길을 붉게 물들이던 너의 옷자락.
손끝에 스치는 설레임
그 환각적인 증세는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너는 붉은 옷을 즐겨하는지
지금도 그 거리위를 내달리면 바람이 분다
온통
붉게 물들이는 바람이 분다
<1998>
가로등_
가로등이 흔들리고 불빛이 번진다.
그 불빛에 몰려드는 이름모를 벌레들처럼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이 몰려드는 것일까
격렬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지만
결국엔 지쳐 가벼운 바람조차 견딜 수 없이
파편처럼 흩어지는 벌레들 마냥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이 몰려드는 것일까
그렇게 흩어지는 것일까
<1998>
날 개_
모르고 있었다
나의 등뒤로 돋아나는
날개가 있었다는 것을
천사의 날개처럼 눈부시지는 않다
하지만 그 누가 천사의 날개를 보았으며
나의 날개 또한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속 깃털 하나까지 견딜 수 없도록
숨이 가파오는 하늘 가까이에서
날갯 짓을 멈추지 않을 테니
마침내,
나의 두 날개가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날아 다가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 일까
<1998>
여름 후_
여름이 끝나가는 건
밤이 길어지는 것
따뜻함이 더욱
소중해 지는 것
<1998>
피 로_
나는 피곤하오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열정이기 때문이오
죽음은 휴식이오
죽음은 늘 내 숨에 맞붙어 동시에 숨쉬어 오오
그리곤 지친 몸을 스며들 듯 보듬아 주며 속삭이는 것이오
죽음은
그 속삭임은 너무나 깊어
나는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소
그래서 나는 죽음이 두렵고
한편으론 몹견디게 궁금한 것이오
어쩔 수 없이
그럴때면 나는
죽음을 골똘히 생각하며
빠르지 아니하게 연거푸_
술을 마시다가는
빈 술병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오면_
나는 다시 열정으로 가득차는 게오
결국
그대로요
나는 피곤하고
몹시 살아있어 유쾌하오
<1998>
가 시_내 가슴
자라온 가시
조용히 뚫고나와
피로써 나를 적시네
입술이 새하얗게 떨려
다신 네게
입맞춤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온몸이 새하얗게 떨려
다신 네게
안길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멈출 수 없네
가시는
그렇게
나를 적시네
<1998>
단 풍_
겨울에 맞서
꽃을 피워낼 수는 없을 지라도
자신을 벗기어
색 물결을 이루어 내는 잎들을 보라
목놓아
노래 부를 수 없을 지라도
진실된 노래는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나니여기진실된 좌절은진정, 아름다운 희망이어라
<1998>
그리움_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진다 노래하지만 내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있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밟는 깊은 허무처럼 빠져드는 그리움이
물 속에 번져가는 ink방울처럼 내 안에 번져가는 그리움이 있다
나와 그리움이 하나되는 눈물 맺힌 설레임이 있다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