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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놈 위의 길 보이는 나는 이영지 (글 랜디서)
    힙합 아카이브/랩 창작가들 2020. 11. 20. 00:36

    원문: 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43

     

    나는 놈 위의 길 보이는 나는 이영지 - 시사IN

    이영지는 올해 만 17세의 고등학생 래퍼다. 단단한 발성과 정확한 발음, 우직한 가사가 특징이다. 호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어딜 가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른바 ‘인싸’다. 이영지가 처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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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양한모

     

     

    •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 2020.7.23 

    이영지는 올해 만 17세의 고등학생 래퍼다. 단단한 발성과 정확한 발음, 우직한 가사가 특징이다. 호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어딜 가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른바 ‘인싸’다. 이영지가 처음 유명해진 것은 2019년 방송된 엠넷 〈고등래퍼 3〉에서였다. 1회 초반 출연자들이 즉석으로 콩트 같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교복 넥타이를 끝까지 매는 건 힙합이 아니다.” “자퇴를 하지 않으면 힙합이 아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은연중 ‘이런 게 힙합의 저항정신이다’라는 정형화된 생각에 기반한 대화였다. 이영지가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서 배웠어, 그런 힙합?”

     

    고작 지나가는 대화였다 해도, 저항정신보다 그것의 표상에 더 매달리는 힙합 신에 보내는 절묘한 한마디였다. 교복을 입고 나온 그는 재미있게도 친구들을 제치고 〈고등래퍼 3〉의 우승자가 되었다. 최연소이자 엠넷 혼성 힙합 경연사상 최초의 여성 우승이었다.

     

    〈고등래퍼 3〉이 끝난 지 약 1년 만에 다시 출연한 엠넷 〈GOOD GIRL:누가 방송국을 털었나〉(굿걸)와 MBC 웹 예능 〈힙합걸 Z〉에서 그는 눈부시게 성장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타고난 낮은 톤 목소리를 더 잘 다루게 됐고, 무대 장악력 역시 베테랑들 사이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승부 근성으로 부단히 연습한 결과였다.

     

    그의 SNS 댓글을 보면 그를 통해 힙합에 입문했다는 여성 팬이 많다. ‘나는 내가 힙합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내가 힙합에 이렇게 공감할 수 있을지 몰랐다’ 같은 의견들이 보인다. 힙합 본토에서 성찰 없이 그대로 넘어온 여성혐오적 문화가 이제껏 얼마나 많은 여성 뮤지션과 팬들의 진입을 막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새로운 팬들은 이영지를 통해 ‘힙합 음악의 흥겨움과 해방감이 이런 맛이었구나, 나도 이런 음악의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감상을 만끽하고 있다. 나와 닮은 정체성을 가진 스타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영지는 지난 몇 년간 방송가에서 보기 힘들었던 모습의 소녀다. 힙합과 함께 등장한 이영지는 방송이 차마 그를 틀에 맞추기 전에 자기를 드러내버렸다. 그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았다. 그의 행보는 단순한 천재라기보다 영웅의 서사다. 천재는 재능의 여부로 결정되지만 영웅은 시대와 호응한다.

     

    지난 5월 ‘도전’을 주제로 열린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한계는 없다〉 강연에서 이영지는 자신이 아직은 작지만 뿌리가 깊은, 장래에 바오밥나무처럼 크게 자라날 나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굿걸〉에 함께 출연한 페미니스트 여성 래퍼 슬릭은 이영지에게 보내는 롤링페이퍼에 “난 힙합 신의 거친 풍파가 너무 힘들었지만 영지라면 그 소용돌이들을 랩 몽둥이로 부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을 남겼다. 밀레니얼 세대로서는 이 다부진 Z 세대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의 가사를 보면 더 보탤 말도 없이 그저 응원만 우러나온다.

     

    “걸어가야 돼. 걸어가되 보폭 크게 넓히고 속도는 중요치 않은 장기전임을 눈치 채고 더 멀리 봐야 돼. 멀리 봐.” “뛰는 놈 위의 나는 놈 위의 길이 보이는 나는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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