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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드렁큰 타이거, 그 진실과 오해 (출처: 리드머)
    힙합 아카이브/랩 창작가들 2020. 10. 2. 21:25

     

     

    프롤로그

    한국 힙합의 역사 속에서 드렁큰타이거만큼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뮤지션도 아마 없을 것이다. 몇몇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에 의해 그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뮤지션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때로는 일반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과장된 소식 때문에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픈 몸으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지금까지 그와 관계된 상황들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여러 힙합 커뮤니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심지어는 최근 루게릭병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박승일 씨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디지털 싱글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지난번 인터뷰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나 역시 그의 음악을 들어오며 감탄과 실망의 교차를 여러 번 경험했던 힙합 팬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한 뮤지션에 대한(꼭 드렁큰타이거가 아니더라도) 평가의 잣대가 비껴나가도 너무 비껴나갔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번 굳어진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마치 한국힙합 씬의 죄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그의 허풍? 그렇다면 그가 했던 말은 정말 다 허풍일까? 드렁큰타이거는 한국힙합 씬의 제일가는 허풍쟁이란 말인가?

    최근 리드머뿐만 아니라 여러 힙합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그에 관한 글을 보면서 난 정말로 궁금해졌다. 과연,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어디까지일까에 대해서…. 그래서 난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여기 드렁큰타이거가 직접 말하는 여러분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있다. 더불어 ‘희망승일 : 행복의 조건’이라는 디지털 싱글에 관한 이야기와 여러 힙합 팬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까지.


    ‘희망승일 : 행복의 조건’이라는 디지털 싱글에 관하여

    박승일 씨 관련 다큐멘터리의 음악 작업에 참여한 계기
    일단 제가 아픈 지가 알려진 것보다 오래됐어요. 예전에 리드머와 인터뷰할 때도 안 좋은 상태였는데, 발부터 마비가 오더니 나중에는 반신마비가 돼서 걷지도 못할 정도였죠. 병원에 가면 전부 디스크인 것 같다면서 디스크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단순히 디스크는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포털사이트에 ‘내 몸에 마비가 오고 있어요.’라고 검색을 하고 이것저것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박승일 씨의 루게릭병에 관한 글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솔직히 처음에는 감명을 받기보다는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더 앞섰습니다. ‘아, *발 이거다. 내가 루게릭병에 걸렸구나!’라는 생각 말이죠. 한동안 박승일 씨가 쓴 글들을 보면서 지내다가 잠시 잊고 살았는데, 신경과에 가서 MRI를 찍고 나서 척수염인 것을 알게 됐고 희귀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겉은 멀쩡해 보여도 신경다발에 염증이 생기는…. 일단 제일 큰 문제는 독한 약으로 없앴지만, 신경이 다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찰나에 KBS의 문소산 PD님께서 박승일 씨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으시는데 박승일 씨가 눈으로 쓴 글을 랩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박승일 씨가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서 바로 쓴 글이었죠. 그런데 처음에는 ‘이걸 과연 랩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어요. PD님께서 곡비는 별로 안 되지만, 도와달라고 하시는데, 순간 ‘아! 이게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돈은 그냥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데 쓰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작업하는데 고심을 많이 했었는데, 방송에 나간 뒤 반응이 좋아서 기뻤고요.  

    단순히 방송을 위한 음악에서 디지털 싱글로 발표되기까지
    그 방송이 나가고 어떤 분이 요양소를 지을 땅을 기부해 주셨어요. 그런데 요양소를 지을 비용이 부족해요. 그래서 이 디지털 싱글이 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전액 기부를 결정했어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신 그 분들도 완전히 이 일에 빠지셨어요. 시청률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으시고, 박승일 씨와 같이 생활하시면서 찍으셨고요. 이 프로그램을 하고 징계까지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박승일 씨가 쓴 글을 부른 사람이 드렁큰 타이거고 힙합인데다가 심의도 안 거쳤는데 ‘쪽팔리게’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말이에요. 그랬는데도 상관 안 하시고 좋은 일을 위해 힘쓰는 모습에 정말 감동했어요. 투병 중인 박승일 씨,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제작진의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빠져들었고요. 어쩌면, 저 역시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가끔 제가 DT 사이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고는 하는데요, 이게 도저히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아닌데도 기사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좀 이상한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어떤 때는 참 싫었는데 이번 일은 ‘넌 가식적인 새끼야. 이걸로 한번 떠볼라고.’, ‘착한 놈이라는 소리 들으려고’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리고 욕하는 사람이 100명이 있더라도 30명 정도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번에는 찌라시를 다 돌렸어요. 그런데 박승일 씨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는데 ‘드렁큰타이거가 박승일 씨에게 바치는 노래’식으로 포커스가 맞춰져서 안타까웠어요. 이건 박승일 씨의 노래인데 말이에요. 전 메신저일 뿐이에요. 그 분이 쓴 글을 제가 그대로 읊는 것이니까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조그만 요양소라도 만들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가지고 꿈을 잃지 않는 그 분이 정말 위대한 거죠. 그런데 마치 제가 박승일 씨를 위해 바치는 노래로 알려지고 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 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가식적이라고 해도 좋다. 이 곡이 홍보만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때 여러 힙합커뮤니티가 힘을 합쳐서 좋은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생각했어요. 한 명당 500원씩만 클릭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여러 커뮤니티에 한 번도 안 뜨고 저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만 가득하더라고요. 정말 섭섭하고 안타까웠어요. 왜 이런 일에는 관심을 안 가져주실까. 내가 힙합 씬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밉상이 됐을까도 생각해보고…. 그래서 제가 그 분들께 죄송하다고 그랬어요. 괜히 제가 이 일을 맡게 돼서 별 도움도 못 되는 것 같다고…. 다른 MC들이 맡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저 때문에 역효과가 난 것 같아서 솔직히 속이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리드머와 이번 자리를 빌어서 저는 정말 이걸 홍보하고 싶어요. 가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어요.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 한 번쯤 클릭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리드머에서만큼은 제가 박승일 씨를 도와줬다는 식으로 미화되지 않고 모든 포커스가 박승일 씨에게 맞춰졌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바람이에요. 


    진실과 오해

    미키아이즈는 Wu-Fam?

    우탱클랜(Wu-Tang Clan)이 잘 나가던 때에는 우팸(Wu-Fam)이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커지던 시기였어요. 꼭 우탱클랜의 정규 멤버가 아니어도 우팸이 될 수 있었죠. 저희의 이름이 우탱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고요. 처음에 드렁큰 클랜(Drunken Clan)이라고도 했었듯이…. ‘자이언트 로봇(Giant Robot)’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때 저는 우웨어(Wu-Wear)의 모델도 잠깐 했었어요. 태권도복을 입고요. 제가 태권도를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미키아이즈(Micky Eyes)는 워낙 배틀 MC였기 때문에 여러 명과 배틀을 하고 다녀서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줬었어요. 또, 미키아이즈와 저는 당시 알케미스트(Alchemist)와 학교 동창이라 친구 사이였는데 그럴 때 우탱 측과도 만날 수 있었고, ‘ok. 이제부터 넌 우팸이야.’라고 했던 거예요. 물론,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사람들이 기억이나 하겠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때 캐패도나(Cappadonna)가 Wake Up Show(필자 주:Sway & King Tech가 진행하는 쇼)에 나와서 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타이거 JK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라고….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그때 제가 힘든 상항에 처해 있었는데 디제이직(DJ Jhig)이 전화를 해서 “Yo. 지금 캐패도나가 네 얘기 하고 있어.” 라고 전해 왔죠. 그래서 ‘아! Wu에서 그래도 우리의 존재를 조금은 알고 있구나.’라고 얘기를 한 적은 있어요. 그리고 미키아이즈가 캐패도나와 ‘Free JK’라는 곡을 만들어서 데모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하는 도중에 제가 나와 버려서 무산된 일도 있었어요. 미완성 버전의 곡이 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이런 사실이 와전이 되서 마치 우탱클랜 측과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알려진 것 같네요. 이런 점이 참 안타까워요(필자 주:독자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잠깐 참고의 말씀을 드리자면, 당시 우팸이라는 의미는 우탱클랜의 정규 멤버들을 비롯한 이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작업하던 프로듀서 및 MC, DJ들-예를 들면,  Cappadonna, Mathematics, True Master, Killarmy, 12 O'clocks, 62nd Assassins, DJ Silent 등등-, 그리고 우탱클랜의 음악을 좋아하고 뜻을 같이 하고자 하는 전 세계의 뮤지션과 팬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였다.)

    DT가 4집 작업을 할 때 BTNH의 레이지본(Layzie Bone)이 술에 취해서 녹음실에 와 공짜로 한 벌스(Verse)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어울리는 곡이 없다고 그냥 보냈다.
    당시 같은 녹음실을 썼었어요. 그때 세드릭더엔터테이너(Cedric The Entertainer)라는 분을 만났었는데, 그분이 중계자 역할도 해주셔서 모든 것이 잘 이야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같은 엔지니어와 작업을 했거든요. 이 분이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코미디언인데요, 당시 세드릭도 자신의 앨범을 준비 중이었어요. 중도에 포기를 했지만요. 여하튼 같은 곳에서 녹음 중이던 레이지본(Layzie Bone)이 저희 곡 중에서 “토요일 밤”이라는 곡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한국 힙합이라고 하면 외국에서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의 음악을 듣고 ‘와,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하고 느낀 거였죠. 이게 저희 음악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당시 레이지본은 한국음악이 다 동양적인 분위기의 음악만 있는 줄 알았던 거죠. 그러면서 ‘쿨’하게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어요. ‘와~ 레이지본이 우리하고?’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당시 저희가 욕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가 참 힘든 시기이기도 했는데, 외국 힙합처럼 공격적인 것을 시도해 보고 싶었죠. 가사에서도 말이에요. “파티타임, 토요일 밤, 소주병을 깨 부시고, *새끼들을 패버리고” 등등…. 우리가 갱스터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좀 파격적인 것을 만들어보자 해서 다 만들어놨기 때문에 레이지본과 함께 하지 않았죠. 이게 참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요, 저희가 잘나서 ‘너랑은 어울리는 음악이 없어. 가.’가 아니라 지금까지 말씀드린 상황이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욕심도 참 컸고요. (웃음) 당시 레이지본과 만났던 경험은 정말 신기했어요. 예를 들면, 만약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나스(Nas) 같은 유명 래퍼를 봤다면 여러분도 신기했을 것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음악인이기 이전에 저 역시 힙합 음악의 팬이라 레이지본을 보고 신기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이었는데, 왜 거짓말처럼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제 잘못일수도 있겠죠? (웃음) 아마 절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이야기를 해도 싫어할 거예요.  

    JK가 고등학교시절 아이스큐브(ICE CUBE)와 디스전을 펼쳤다.
    이것도 사실이에요. 단지 와전이 되었을 뿐이죠. 당시 미국에서는 유대인을 욕하는 음악이 나오면 유대인 집단에서 들고 일어나서 고소까지 하면서 바로 무마가 됐었어요. 그런데 동양인을 욕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죠. 심지어는 짝이나 주위 친구들조차도 그게 괜찮은 건줄 알고 찹수이(chop suey) ass라고 말하고는 했어요. 찹수이가 잡채라는 뜻이거든요. 잡채가 원래 중국음식이잖아요(필자 주:잡채는 원래 중국음식으로 한국잡채와 중국잡채는 좀 다르다고 한다.)? 아이스큐브(Ice Cube)의 “Black Korea"라는 곡에서도 ‘찹수이나 먹는 놈들’이라는 가사가 나와요(”Or your little chop suey ass'll be a target”). 이럴 때 제가 이런 부분을 라임바이라임(Rhyme by Rhyme)으로 이슈화해서 학교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이스큐브의 그 곡의 가사에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라임바이라임으로 반박하면서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이슈화시키려고 했죠.

    그러다가 LA 폭동이 있었을 때, LA의 로데오(Rodeo)에 있는 ‘Roots Of Rap'이라는 행사에 초대가 됐습니다. 로데오라고 해서 비버리힐즈에 있는 그 로데오가 아니고요, 백인이나 동양인을 찾아볼 수 없는 미국에서도 정말 험악한 동네인데, 제가 동양인 최초로 초대가 되서 여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시 멜로우맨에이스(Mellow Man Ace), 마스터에이스(Masta Ace) 등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때 초대된 이유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한번 욕먹어보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좀 웃겼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보려고 부른 것 같았는데, 당시 반응이 좋았어요. 이 계기로 LA 로컬 라디오 방송에 나가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이것이 제 솔로 1집의 마지막에 스킷에도 수록이 되어 있어요. 이런 식으로 대응을 했던 거죠. 그때 많은 사람도 알게 됐고요, 제가 랩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래퍼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고 저라도 뛰어들어서 얘기해주고 싶고, 잘못된 것들을 알리고 싶었죠. 제가 뭐 Ill MC고 멋지게 보이고 싶고 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못 참겠더라고요. 제가 그 행사에 처음 초대됐을 때, 주위에서는 가지 말라고 말렸어요. 가면 죽는다고…. 그래도 가서 무대에 섰고, 이후 3회 연속으로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친해진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소울브라더즈(Soul Brothers)의 비럽(B-Love)이었고, 덕분에 Delicious Vinyl 레이블에 있었던 리틀래스칼즈(Little Rascals)라는 LA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멤버 스크램(Scram)과도 친하게 되서 제 솔로 1집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프리스타일펠로우쉽(Freestyle Fellowship)이나 프로젝트 블로우드(Project Blowed)를 쫓아다니고는 했죠(이들과 인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 리드머 인터뷰의 ‘드렁큰 타이거 인터뷰 1부’를 참고 바랍니다).

    단지 학교에서 행했던 그 일이 어떻게 소문이 퍼져서 ‘Roots of Rap'이라는 행사에까지 초대될 수 있었는지?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논문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논문을 발표하지 않고 앞서 말씀드린 아이스큐브의 그 곡에 대해서 발표를 했죠.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권리라고 말을 했어요. “난 힙합음악에 푹 빠진 팬 중의 한 명으로서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을 욕하면 안 되고, 흑인을 욕하면 안 되는 이 사회에서 동양인을 욕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느냐!”하면서 논문대신 음악을 틀고 슬랭때문에 못 알아듣는 부분은 설명을 하고 가사 하나하나에 대해 랩을 하면서 반박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이게 재밌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LA 위클리(LA Weekly)의 기자들한테서도 소식이 왔고, 점점 소문이 퍼졌어요. 그렇게 해서 행사에도 초대받고 라디오에도 나가게 됐던 거죠. 그런데 이러한 일화가 국내에서 상당히 와전이 됐던 것 같네요.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도 떳떳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필자 주:사실, 타이거 JK가 ‘Roots Of Rap'이라는 행사에서 아이스큐브의 “Black Korea”라는 곡에 대해 대응하는 랩을 했다는 것은 그가 처음 가요계에 등장했을 때부터 힙합음악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일화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가 사실보다 과장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필자도 놀랐다. 뭐 그동안 매체의 잘못된 보도가 큰 역할을 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A의 클럽에서 라스코(Roscoe Umali)가 팻조(Fat Joe)와 랩 배틀을 붙어서 이겼다.
    이건 뭐 저와 라스코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증명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LA 멜로즈 스트릿 가에 클럽 엘레멘트(Element)라는 곳이 있어요. 완전 깡 힙합클럽이에요. 시설도 거의 없고, 하이클래스 급의 클럽이 아닌 아담한 곳인데, 워낙 멋진 곳이라 많은 래퍼들이 와서 공연도 하고 홍보도 하는 그런 곳이에요. 그 클럽에 프리스타일 배틀 나잇이 있어요. 많은 래퍼들이 프리스타일 배틀을 벌이고는 하는데, 여기서 자주 배틀을 하던 래퍼가 바로 라스코에요. 그리고 라스코가 팻조를 이기는 痼?직접 목격했고요. 팻조 말고도 여러 명과 배틀을 해서 이긴 적도 있고, 진 적도 있어요. 당시 팻조는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팻조가 1집을 발표했을 당시) 그곳에 와서 배틀을 했던 것 같은데, 라스코에게 진 사람이 팻조 외에도 워즈워스(Wordsworth)도 있어요(워즈워스가 4집을 발표했을 당시). 그리고 팻조가 라스코에게 졌다고 해서 팻조가 라스코보다 못한 MC냐, 그건 절대 아니잖아요? 그 유명한 마이카나인(Mikah9)도 신인 래퍼에게 진 적이 있어요. 엘레멘트 클럽이 그런 곳이에요. 프리스타일펠로우쉽의 마이카나인은 인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감히 이기기가 힘든 상대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왜 나쁘게 와전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재밌는 일화인데 말이에요. 꼭 배틀에서 이겼다고 해서 우리가 잘났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외국의 힙합문화 속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일들이고, 전 힙합 음악의 팬으로서 직접 겪었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밌는 일화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일반 방송에 나가서 할 수도 없고요. 어떤 분들께는 저의 이런 이야기가 안 좋게 들렸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힙합 커뮤니티 안에 계신 분들은 힙합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네요.        


    디디(Diddy)가 2집을 작업할 당시(이때는 Puff Daddy라는 이름으로 활동), 작업제의를 받았는데 손만 흔들라고 해서 하지 않았다.
    이 일화는 드렁큰타이거가 처음 나왔을 때, 한국에서도 힙합음악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 미국 쪽의 오해에서 비롯됐어요.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 디디와 콜라보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직접 스튜디오까지 갔었어요. BMG였을 거예요. 회사로 연락이 왔는데 비록 회사에서는 디디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아티스트인데, 우리와 콜라보를 하고 싶다고 전해오니까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우리도 기분이 어느 정도는 들떠있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어떤 곡에 참여를 시킨다고 했냐하면, 그 곡 있죠? “One, One~~"하는…. (필자가 혹시 ”P.E 2000"이라는 곡이 아니냐고 하자) 아 맞아요. 그 곡. 그 곡에서 “One, One~~"하는 부분을 외쳐달라고 했어요. 디디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드렁큰타이거가 굉장히 큰 한국의 힙합 문화 속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줄로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홍보를 위해 DT에게 코러스 부분을 외쳐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혈기가 왕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가 왜 One, One, One~~ 만 외치는 것을 하냐.”고 하면서 회사 측과 많은 논의를 했어요. 이게 또 잘못하면 디디를 욕하는 게 될 수도 있는데….  (웃음) 여하튼 우리는 코러스 부분만 외치는 것은 못하겠다고 했고, 그러니까 그쪽에서는 “Ok, 그럼 몇 마디 더 참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끝에 애드립을 넣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저희가 정중하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디디와도 작업을 할 뻔 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젊은이의 자신감이라고나 할까요?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퍼프대디가 우리를 원했는데, 우리가 하기 싫다고 그랬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어쨌든 사실이에요.    

    드렁큰타이거의 2집에는 미국의 유명래퍼들이 참여할 것이다.
    이 부분은 제 잘못도 분명 있는데, 일단, 저는 누구누구와 교류가 있다고 말한 것들이 잘못된 시각으로 비춰질 줄은 몰랐어요. 당시 함께 하려고 했던 유명 뮤지션이 바로 알케미스트(Alchemist)였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알케미스트는 저하고 미키아이즈와 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에 친분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알케미스트를 통해서 디제이먹스(DJ Muggs)도 같이 하기로 했었어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알케미스트는 처음에 래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훌리간즈(The Whooliganz)라는 그룹에서 말이죠. 그러다가 알케미스트는 디제이먹스의 눈에 들어서 그에게 프로듀싱을 배웠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알케미스트와 친분이 있었던 저희도 디제이먹스를 소개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비용 문제 때문에 결국 작업이 무산 됐었어요. 그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칼 같았거든요.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들도 있지만요. 당시 알케미스트가 친구니까 2000만원에 해준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2000만원이면 우리 앨범 전체 제작비랑 맞먹는 돈이거든요. 그래도 이게 알케미스트의 입장에서는 참 커다란 배려였죠. 저희는 큰 기획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됐고, 그 다음에는 아시다시피 제가 감방에 들어갔었기 때문에 또 일이 성사될 수 없었고요. 감방에 다녀온 후에는 기획사 측에서 빨리 3집을 내고자 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언급했던 사항이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 떠벌리고 다닌 게 아닌데 제가 막 떠벌리고 다닌 것처럼 현실이 되어 버려서 억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해요. 실현은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실제로 많은 교류가 있었고, 그게 현실로 다가올 것 같을 때마다 자랑이 아니고 리포트라고 할까요? 우리 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는 했던 거였는데…. 그리고 그동안 시도했던 많은 일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정글까지 설립했을 때, 바로 병신이 돼 버렸어요. 이게 운명인지 전 항상 중요한 시기에 사건이 터지고는 했어요.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을 때 1년을 쉬게 됐죠. 저도 정말 분통이 터지고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에 한 일이 있다면, 많은 분의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이겠네요. 그동안 저를 꽉 막힌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강했잖아요? 뭐 한정된 사람들하고만 작업을 한다면서 말이에요. 전 원래 숫기가 없어요. 사는 곳도 먼데다가 집에 박혀서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돈이나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고 싶은 분들의 작업에 힘이 닿는데 까지 참여를 했어요.

    라스코(Rascoe)가 자신의 앨범에서 Jin Da MC와 작업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진이 90% 오케이를 했을 때 제가 이 사실을 말했었는데, 막판에 매니지먼트에서 요구한 돈 문제 때문에 성립이 안 됐어요. 하지만, 진과는 굉장히 좋은 관계로 남았고요, 그 덕분에 다른 일들이 많이 터졌어요. 이포티(E-40)가 라스코를 많이 도와줬거든요. 두 곡을 같이 녹음했는데, 앨범에 다 수록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벌써 디제이케이슬레이(DJ Kay Slay)하고 디제이후키드(DJ Whoo Kid)가 라디오에서 틀기도 했어요. 반응이 좋다는 소리도 들리고요. 우선 한 곡은 지금 비디오도 다 찍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리드머를 통해서 그 스니핏(snippet)을 공개하려고요. 원래는 빨리 빨리 일을 진행해서 제가 만나러 다니고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입원을 해있는 바람에 일이 늦어졌어요. 솔직히 나중에 ‘펑’하고 터트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미리 공개를 하게 된 점이 좀 아쉽기는 해요. 그래도 저를 쉴 틈 없이 계속 열심히 달리게 만들어주시는 분들(타이거 JK에 대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분들)이 있어서 고맙기도 합니다. (웃음) 그리고 이번에 디제이바부(DJ Babu)하고 그 전에 하려다가 못했던 디제이먹스(DJ Muggs)와도 작업이 성사됐어요. 디제이바부의 비트를 라스코가 보내주기로 했고, 거기에 저도 랩을 할 예정이에요. 진이랑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 절 허풍쟁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대신 그동안 교류를 시도했던 다른 많은 분과 작업을 할 수 있게 됐고, 라스코 덕분에 저도 외국 앨범에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진과의 친분도 계속 유지하고 있고요. 또, 이외에도 영블러즈(Young Bloodz)의 션폴(Sean Paul *댄스홀 뮤지션 션폴과는 동명이인), 엠씨쥬스(MC Juice *필자 주:시카고 출신의 MC로서 1997년 Scribble Jam freestyle battle에서 에미넴을 이긴 것과 프리스타일의 신이라고 불리는 슈퍼내츄럴과 불꽃 튀는 배틀을 벌인 일화로 유명한 MC다) 등이 참여했어요. 일단, 미국 현지에서는 E-40와 함께한 “Live It Up"이라는 곡이 디지털싱글로 라디오에서 플레이되고 있고요. 라스코의 앨범의 국내 홍보는 저희가 맡아서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정글의 모험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DT의 대장이 발표하는 앨범이고, 절 허풍쟁이라고 불러왔던 사람들에게 그동안 실현되지 못했던 여러 일들을 지금부터 천천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진과는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그 분들께 꼭 전해주세요. (웃음) 어쨌든 리드머를 통해서 이런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서 기분이 좋네요.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한 가지 더 있어요. 라스코가 블랙아이드피스(Black Eyed Peas *이하 BEP)의 아플드압(Apl.De AP)과 굉장히 좋은 교류를 갖게 됐어요. BEP의 곡 중에 “Bebot(필자 주:필리핀 슬랭으로서 끝내주는 여자를 뜻하는 단어다. 이 곡은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표되지 않았으며,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의 몇몇 나라에서만 발매될 예정이라고.)"이라는 곡이 싱글로 발표돼서 지금 필리핀에서 대박이 났는데요, 이 곡의 리믹스 버전에 라스코가 참여하기로 했고, 아플드압도 라스코의 앨범에 참여해주기로 했습니다. 운 좋게 윌아이엠(Will.I.Am)의 곡도 받게 됐고요. 그리고 셀프사이언티픽(Self Scientific *필자 주:Chance Infinite과 DJ Khalil로 이루어진 듀오. 특히, DJ Khalil은 50 Cent를 비롯한 Tony Yayo, Young Buck 등 G-Unit 사단의 앨범뿐만 아니라 The Game, Raekwon, Cypress Hill, Xzibit 등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이라는 팀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참! “Bebot"의 리믹스에는 저도 참여했어요. 뭐 가사는 별 내용이 없는데 재밌었습니다. 벌써 제 부분을 녹음해서 보낸 상태에요. 일단, 앨범에 앞서서 지금 플레이되고 있는 E-40와 함께한 곡과 DJ Babu가 준 트랙을 묶어서 디지털 싱글로 발표를 해보려고요.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국내 힙합 씬에 참 재밌는 일이잖아요? (웃음)

    소스지에 동양인 최초로 타이거 JK가 나왔다!
    저는 소스지에 나왔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필자 주:사실 필자도 다소 당황스러웠다. 소스지에 나왔다는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어쨌든 많은 분이 제기한 의문점이기 때문에 질문을 감행했다). 소스지가 아니라 XXL과 스핀매거진(Spin Magazine)에 최초로 나왔던 것은 맞습니다. 어떤 일로 잡지에 나왔건 전 제 사진이 나왔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에 아직도 집에 걸어놓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말한 적은 있어도 제가 소스지에 나온 첫 번째 한국인이었다는 말은 한 적이 절대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가 되니까 안타깝네요.  

    더블드래곤(Double Dragon)이 칸예웨스트(Kanye West) 밑에서 프로듀싱을 배웠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래퍼에게 비트까지 몇 곡을 줬다.
    일단, 더블드래곤은 정글 소속도 아니고요, 자랑을 해봤자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형제로 이루어진 프로듀싱 팀인데, 이 친구들이 작업한 곡이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오고 있고, 지금 브루클린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팀이에요. 그래서 전 이 친구들이 저에게 곡을 준다고 했을 때, 정말 고마웠어요.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도 저작권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단지 힙합이 좋아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참 자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이 친구들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과 칸예웨스트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네요. 칸예웨스트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더블드래곤이 아니라 제 앨범에도 많이 참여했던 케빈한이라는 친굽니다. 실제로 칸예와 교류를 했던 친구죠. 제가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헐리웃과 산타모니카에 있는 악기점의 기타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칸예웨스트와 친해져서 그가 첫 번째 앨범을 작업할 때 어시스트로 참여를 했어요. 칸예가 원하는 악기를 봐주면서 프로듀싱을 배웠고요. 그래서 “울렁거려”나 “Rock Your Body", “편의점“ 같은 케빈이 쓴 곡들을 들으면 칸예웨스트 적인 샘플링이 많아요. 보이스 샘플을 쓰는 점이나 드럼을 찍는 부분을 거기서 배웠기 때문인데 대신 한국음악에서 샘플을 많이 쓰기 때문에 한국의 칸예웨스트 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게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이 친구에게 많은 주목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정글에서 이 친구를 뺏어왔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국에서 작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제가 이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케빈이 정글에 들어올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당시 그의 음악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한국 음악을 샘플링하면서도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했고, 멋있었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칸예웨스트 밑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무브먼트 음악 성향과 다르기 때문에 이현도 씨 앨범에 무브먼트 식구들의 참여를 자제시켰다는데, 실제로는 JK와 이현도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정말 크나큰 와전이 된 사실이네요. 일단, 무브먼트 친구들이 제가 시킨다고 하고 안 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물론, 지인들끼리 뭉쳐서 ‘에이, 저건 아닌 것 같아. 누구누구 음악 별로야.’라는 말들은 사람이니까 하죠. 누가 해코지를 하려고 하면 친하니까 뭉치는 일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다 모이게 해서 지시를 하고 이런 건 절대 사실이 아니에요. 취향이 달라서 안 한건 멤버 개인 각각의 일이고, 저는 그때가 5집이 나와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는데, 도레미에 속해 있을 때 이현도 씨의 앨범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였어요. 이걸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제가 무브먼트가 모여서 앨범 작업을 하거나 하면 절대 돈 때문에는 하지말자고 한 건 있었어요. 왜냐면 무브먼트 멤버 각각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돈 문제가 걸릴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 상관없이 좋은 의미에서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현도 씨가 ‘힙합구조대’에 참여를 원했는데 사람들이 하기 싫어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국내 사정상 그대로 말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렇다보니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소문이 자꾸 와전이 되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현도 씨하고는 두 달 전쯤에 통화도 했어요. 지금 인터넷 상에서 일 때문에 우리 사이가 서먹서먹해진 것 같은데 기분이 이상해서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요. 오해도 잘 풀렸고요. 솔직히 이현도 씨도 한편으로는 오해를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파서 그런지 꼬였던 모든 일을 다 풀고 싶어지더군요. 그리고 제가 만약에 무브먼트의 사장이고 월급을 주는 입장이면 이런 일이 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제가 이런 인간으로 비춰지게 됐는지…. “(근엄한 목소리로) 하지마.” 이건 아니잖아요? (웃음)  


    에필로그
        
    드렁큰 타이거(Tiger JK)는 얼마 전 전 소속사였던 도레미 레코드를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동료들과 함께 정글 엔터테인먼트라는 소규모 레이블을 만들었고, 현재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는 희귀병인 척수염을 앓고 있었고(리드머 인터뷰 시에도 그의 초췌한 모습에 매우 놀랐었다), 근래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모질게 자책하는 듯 보였다.
    그는 리드머를 통해 밝힌다. 앞서 언급했던 국내외의 여러 프로젝트가 이제 하나둘씩 성사 되어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국내 힙합 씬에 재밌고 신선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것이라고. 혹시 아직도 그에 대해 남아있는 의혹이 있다면, 이제부터 새로 시작되는 그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보고 난 후로 그 의혹을 잠시 접어두는 것은 어떨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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