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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슬릭은 걸어간다…더 '나은 길'로, 더 '나의 길'로
    힙합 아카이브/랩 창작가들 2020. 9. 7. 15:11

    원문: www.nocutnews.co.kr/news/5407536

     

    [노컷 인터뷰] 여성 뮤지션의 '화합' 보여준 예능 '굿걸' 출연한 래퍼 슬릭 ②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2020-09-07


    '굿걸' 멤버들 여전히 단톡방에서 서로의 활동 응원해
    정규 3집 준비는 무산됐지만, 넓게 가능성 열고 작업 이어가는 중
    '좋은 소리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음악 들어, 의무로 느껴진 적 없어
    "소수자 감수성 예민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슬릭이라는 뮤지션의 정체성 확고해져"
    많은 것이 달라진 코로나19 이후, "혼란스럽지만 열심히 살아내려 해요"

    래퍼 슬릭 (사진=슬릭 공식 페이스북)


    CBS노컷뉴스는 엠넷 예능 '굿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출연한 래퍼 슬릭을 서면 인터뷰했다.

    슬릭(SLEEQ)은 2012년 5월 믹스테이프 '위클리 슬릭'(Weekly SLEEQ)을 낸 후 이듬해 첫 번째 싱글 '라이트리스'(Lightless)로 데뷔했다. 단독 싱글 네 장과 협업한 싱글 두 장을 거친 후 첫 번째 정규앨범 '콜로서스'(Colossus)를 냈고, 이 앨범은 2017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올해의 과소평가된 앨범'에 선정됐다.

    슬릭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2016년 찾아왔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올라온 때가 바로 그즈음이었다.

    'IS(이슬람국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하부조직으로 출발)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칼럼, '창녀'라는 비하적 표현은 물론 '처녀가 아닌 여자'를 조롱하는 등 여성혐오가 가득한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 팟캐스트… 숨 쉬듯 반복되는 여성혐오가 부적절하고 부당하다는 공론이 형성되고, 나아가 이 같은 언행을 한 인물을 '거부'하고 '퇴출'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인 게 2015년이다. 2016년에는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범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벌어졌고.

    슬릭은 그해 방송된 유튜브 콘텐츠 '마이크 스웨거 2'에 출연해 힙합씬에도 만연한 여성·소수자 혐오 문화를 비판했다. "여긴 아직도 계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아직도 게이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아직도 아무도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모른다면서/그게 힙합이라고 하면 나는 오늘부터 힙합 관둠"

    자연스럽게 슬릭은 '페미니스트'로 호명됐다. 엠넷 예능 '굿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서는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래퍼'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고, 슬릭은 첫 방송에서 "사고하는 사람으로서 페미니스트라고 저를 소개하겠다"라고 밝혔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화는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는 그의 행보를 응원하고 지지했고, 누군가는 못마땅해하거나 극렬히 비난했다.

    이에 대해 슬릭은 CBS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늘 부담스럽고 두려운 건 맞다"라면서도 "제 세상에서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데에는 오히려 페미니즘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굿걸'을 하면서 '협업'에 더 관심이 생겼다는 근황과 함께, 앞으로의 음악 활동 계획도 들어봤다.

    일문일답 이어서.

    10. '굿걸'은 특히 여성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는데요. 뛰어난 개인이 만나 여러 조합으로 좋은 무대를 선사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관계성'이 두드러진 점이 사랑받은 요인 중 하나였어요. 치타, 에일리, 장예은, 제이미, 윤훼이, 전지우, 퀸 와사비, 이영지, 효연 씨가 어떤 동료였는지 짧게 말씀해 주세요.

    저희도 촬영하면서 그 지점을 참 좋아했어요. 상대 팀이 누가 오든 우리는 우리만의 무대를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며 응원해주니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이 친해졌습니다. 오히려 저희끼리의 관계성을 더 중점적으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했고요. 아홉 명의 굿걸들이 다 어떤 동료였는지 한 명 한 명 말씀드리면 인터뷰가 안 끝날 것 같습니다^^;; 정말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고, 아직도 단톡방에서 활발히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슬릭은 유닛을 하고 싶은 멤버로 뽑히지 못했지만, 이후 짝이 된 효연과 꾸민 '블라인딩 라이츠' 무대로 최고의 유닛 1위로 뽑혀 플렉스 머니를 받았다. (사진='굿걸 '캡처)
    11. '굿걸'이 스페셜 방송도 없이 딱 8부작으로 끝나서 아쉽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미처 하지 못하고 끝내 아쉽다, 싶은 게 있는지요.

    아무래도 신곡과 무대 위주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많은 관객 앞에서 퍼포먼스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처럼 생방송으로도 저희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었고, 방송 초반의 송 캠프와 대구를 이루는 마지막 송 캠프를 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아무튼 조금 더 오래 굿걸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저희도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12. 이번 기회로 '협업'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는데, 음악 활동과 관련해 구체화한 계획이 있나요.

    '굿걸' 촬영을 계기로 조금 본격적인 협업 음반을 발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조금 심각해지면서 지금은 협업 음반 준비는 중단되었고, 예전처럼 다시 혼자 하는 작업 위주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13. 데뷔했을 때부터 '슬릭'(SLEEQ)이 무슨 뜻인지 질문 많이 받으셨다고 했는데, 인터뷰를 보니 별 뜻은 없다고 해서 의외였어요. 그래도 무언가 끌리는 게 있어서 활동명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처음 랩 네임을 정하려고 했을 때, 좋아하던 래퍼 이름이 한글로는 2음절, 영어로는 1음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지어보고자 했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슬릭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뭔가 '이걸로 결정!', '평생 내 랩 네임은 슬릭이다' 이런 결심은 아니었고 일단 이것보다 나은 게 생각나지 않으니 써 볼까 하다가 굳어졌네요.

    14. 2018년 정규 2집 '라이프 마이너스 에프 이즈 라이'(LIFE MINUS F IS LIE) 발매 이후에는 주로 싱글을 내며 활동했습니다. 정규 3집을 준비 중이었던 거로 압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굿걸' 촬영 바로 직전에 3집 준비가 한번 무산되었어요. 이런저런 음악적인 한계를 느껴서 준비하던 것들을 전부 정리했습니다. 지금도 사실 뚜렷한 3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넓게 가능성을 열고 다른 형태의 팀, 다른 장르의 음악 등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 왼쪽부터 퀸 와사비, 슬릭, 장예은, 전지우, 치타, 제이미, 에일리, 윤훼이, 이영지, 효연 (사진='굿걸' 캡처)
    15. 지난달 25일 새 싱글 '걸어가'(Go So Hard)를 냈습니다. 가사에 '더 나은 길로 걸어가/더 나의 길로 걸어가'라는 부분이 있던데, 슬릭 씨가 생각하는 '더 나은 길'과 '더 나의 길'은 무엇일까요.

    원래 그 부분의 가사가 '더 곧은 길로/ 더 좋은 길로/ 더 옳은 길로/ 더 뻗은 길로' 등 최종 결정된 가사보다 조금 더 딱딱한 느낌이었습니다. 데모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수정한 가사이기도 해요. 최근에 저의 정치적·사회적 성향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서, 나의 말들이, 나의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권유나 강요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요.

    어찌 되었든 저의 신념은 저만의 것이고, 이에 동의해준다면 저와 조금 더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의 길은 저에게는 그전보다 더 나은 길이고, 더 저만의 길이라는 의미를 담아 최종적으로는 '더 나은 길/ 더 나의 길'로 가사를 완성했습니다.

    16.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리듬이 매력적이어서 힙합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어디서 작업 아이디어를 얻고 음악을 만드는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뭔가 꾸준하게 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매력적인 것에 푹 빠지는 성격인데, 이런 제가 유일하게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라면 새로 나오는 음악을 세심히 캐치하고 좋은 소리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음악을 듣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슬럼프에 빠졌던 두어 달 정도를 제외하면 십여 년 정도 계속 이런 습관으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습관이 한 번도 저에게 의무로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어요. 늘 좋은 음악을 좋아하려고 하는 마음이 들어 음악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7.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 씨와 함께하는 2인조 밴드 '늦은 감은 있지만'으로도 활동 중이죠. '슬릭'의 활동과 '늦은 감은 있지만'의 음악적 지향은 다른가요.

    글쎄요. 넓게 보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결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와 다른 필드에서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신 남메아리 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의 세상에서 저 혼자 생각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도출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함께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세상을 비슷하게 바라보며 나눈 이야기들이 노래에 담길 때 의미 있다 생각하여 앨범 단위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18. '마이크 스웨거 2'(2016)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혔고, '굿걸'에서도 첫 소개 때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었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그만큼 백래시도 거세졌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한국은 페미니즘 이외에도 다른 소수자 감수성을 드러내기 쉬웠던 적 없는 사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늘 부담스럽고 두려운 건 맞아요. 저는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제 직업, 주변 사람들 등 제 세상에서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데에는 오히려 페미니즘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제가 음악을 하며, 혹은 다른 활동을 하며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소수자 감수성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슬릭이라는 뮤지션의 정체성이 확고해지기도 하고 제 스스로의 삶에도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슬릭의 첫 번째 싱글 '라이트리스', 정규 1집 '콜로서스', 2017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처음 선보인 곡 '마 걸즈', 정규 2집 '라이프 마이너스 에프 이즈 라이', 듀오 '늦은 감은 있지만'으로 발표한 첫 싱글 '담', 지난달 25일 발표한 신곡 '걸어가' 앨범 표지
    19. 페미니스트, 비거니즘(종 차별에 반대하고 모든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사상) 등 슬릭 씨가 지향하는 가치가 한국에서는 아직 보편적인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립감이나 막막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어려움을 털어내시(려고 노력하)나요.

    저처럼 뭔가 밖으로 드러내고 살다 보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이 조금씩은 주변에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일로 만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최대한 부담 없이 저의 신념을 말하는 편이고,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을 표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페미니스트고 비건이지만 사람은 같이 지내다 보면 그런 것들보다는 성격이나 취향 등 개인적인 특성에 의해 더 친해지거나 하는 것 같아요.

    20.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많은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창작자이자 예술가'이고 '시민'인 슬릭에게 가져다준 변화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사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두어 달 정도의 스케줄만 머릿속에 두고 그때그때 관심이 생기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저조차도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에 예술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나의 창작은 정말로 나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요. 무섭고 혼란스럽지만 적응기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내려 합니다. 앞으로 공연/문화 산업도 이전과는 아주 다른 결의 변화를 감내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점도 굉장히 두렵고, 결국엔 적응만이 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1. 앞으로 슬릭 씨가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공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귀띔 부탁드려요.

    저에게 음악은 늘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직감적으로 '와 좋다, 이 노래는 이러이러해서 너무 좋다'라는 느낌이 드는 노래들을 사랑해왔고, 창작자가 된 지금에서는 그런 음악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무언가를 궁금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노랫말에 담긴 것들은 지금의 제가 궁금해하는 세상입니다. 듣는 이에 따라 그 내용이 이질적일 수도 있고, 부러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 번도 노래를 만들기 위해 궁금해하지 않은 것들을 가사로 쓴 적은 없습니다. 제 음악이 좋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고, 별로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노래 중 취향에 맞는 것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가장 값진 관심은 '왜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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