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잠보! 눈부신 아프리카의 야생이여
    글/기고문 2010. 11. 3. 19:00


    공정여행, 세계를 가다_케냐와 르완다
    잠보! 눈부신 아프리카의 야생이여.
    글 사진ㅣ 박하재홍


    내 생애 최초의 세계 여행, 1년간의 방랑을 꿈꾸며 모아두었던 쌈짓돈은 안 그래도 넉넉지 못한 형편에 환율 급등의 악재가 겹쳐 그 액수가 보잘 것 없었다. 가장 부담이 되는 예산은 바로 비행기 값을 비롯한 각종 육로 교통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콧바람을 내쉬며 세계 지도 위에서 하나 둘 방문할 나라 수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프리카만은 포기할 수 없지! 다른 대륙의 여러 곳을 포기하더라도 비좁은 버스 안에서 버둥대며 흑인들과 몸을 맞대고, 초원의 야생 동물들을 목격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몇 나라만큼은 꼭 가볼 작정이었다. 거의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를 만들어 내고 놀랍도록 발전시킨 흑인들의 정신적인 고향 아프리카, 드넓은 야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는 그 곳을 놓치고 만다면 세계 여행 자체가 무색할 것만 같았다.

    요새 들어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자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서점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여행 안내서들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국내외의 개인적인 여행기가 몇 가지 출간되어 있을 뿐, 전문 여행책자라곤 중동과 맞닿아 있는 이집트 한 권 뿐이니....... 그래서 더욱, 인터넷의 아프리카 여행 동호회의 존재는 단비처럼 소중했고 아프리카에 애정과 배려를 지닌 이들의 정보는 나의 행선지를 ‘케냐’와 ‘르완다’로 이끌었다. 케냐는 사파리를 위한 야생과 마사이 족을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관광국가면서도 여러모로 경비가 비싸지 않고, 199?년 한 차례 끔찍한 역사를 겪었던 르완다는 이제 그 고통을 청산하고 ‘고릴라 트래킹’이라는 생태 관광 상품을 모범적으로 운영하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자원 봉사자들이 르완다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는 말에 더 관심이 쏠렸다.

    이집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택시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왼편 초원 위로 무리지어 있는 얼룩말들이 벅찬 탄성을 이끌어 낸다. 마치 그 얼룩말 무리가 자신의 자랑인양 연신 벙글거리던 운전기사는 어물쩍 바가지를 씌우고는 사라져 버렸지만,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보던 초원과 얼룩말의 선명한 광경은 잊을 수 없는 여행의 낭만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 그 후 경험했던 2박3일 간의 사파리 캠프에서는 낭만을 넘어 나를 새로 깨닫게 하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힘을 발견했다. 아마 사파리를 거쳐 간 대부분의 이들 또한 나와 같지 않았을까? 누구하나 특별한 훈시를 받은 것도 아니건만, ‘마사이 마라’의 평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작은 새 한 마리조차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설레어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행동이라니! 느릿느릿 게으른 걸음의 무표정한 사자 한 마리가 서너 발치 앞으로 지나갈 치라면 그야말로 사파리 차량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반응은 언뜻 이상한 구석이 있다. 텔레비전에서만도 수십 번을 보았던, 수년간 촬영하고 정수를 뽑아 편집한 자연 다큐멘터리 영상 속의 동물들과 비교하자면 그저 고개 숙여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는 버팔로 떼들이나 저 멀리서 도망가 버리는 민감한 몽구스들의 모습은 심심하기 이를 데 없으니 말이다. 먼지 날리는 흙길을 한 참을 달려 간간히 만날 수 있는 동물들도 대부분 기린이나 코끼리와 같이 이미 동물원에서 친숙한 동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인간에게 속해있지 않은, 독립적인 야생의 존재란 얼마나 위대한지를. 사파리 첫날, 눈 따사로운 석양 아래 걸음을 옮기는 치타 한 쌍의 고독하고 우아한 뒷모습에 넋을 잃고 있을 즈음 아마도 사람들은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우월감을 벗어 놓았을 것이다. 시끄러운 기계 문명의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있을지언정 야생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면서.

    케냐의 사파리가 ‘야생으로의 초대’였다면 르완다의 고릴라 트래킹은 ‘야생으로의 탐험’이었다. 중간 걸음으로 2시간 동안, 대나무 숲이 빽빽한 ‘비룽가’의 산 중턱을 넘어 갖가지 따가운 풀들이 무성한 산꼭대기까지 좁은 길을 내어 올라가면 ‘마운틴 고릴라’ 일가족이 살고 있는 영역에 도달한다. 한 고릴라 가족을 방문하는 한 조의 인원은 최대 10명 정도인데, 운 좋게도 내가 속한 조는 단 4명뿐이라 긴장감이 더했다. 목소리를 속삭이듯 줄이고 큰 동작을 취하지 말라는 현지 안내자의 신신당부. 마지막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풀숲 사이사이, 검은 털의 숲속 인류들이 낯선 이들을 주시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초록 식물들 안에서 유난히도 윤기가 흐르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도도하기 이를 데 없다. 서 너 마리의 고릴라들이 주위를 빠르게 휙 휙 지나가며 좀 노려보는가 싶더니 이내 무관심으로 돌변, 각자 할 일에 전념하고 마니 우리로선 좀 섭섭한 일이다. 그래도, 고릴라 공화국의 신비한 매력에 취해버린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새끼를 업고 지나가는 어미와 등 위에 은빛 털을 가진 덩치 대장, 나무 덩굴에 매달려 시끄럽게 타잔 놀이를 즐기는 어린 고릴라들을 바라 보다보면 제한된 1시간의 관찰시간은 달콤한 꿈결처럼 허무하고 행복하게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살육 당했던 마운틴 고릴라의 안녕은 이제 르완다 회복의 척도이자 상징이 되었고 그로 인한 관광수익은 빈곤한 주변 마을의 환경 개선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니 손을 떨며 들인 큰돈도 지금은 전혀 아깝지 않다. 그 외에도 고아가 된 기린들을 돌보면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소풍 기금을 조성하고 있는 ‘나이로비 기린센터’ 또한 동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장소다. 반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머무는 동안 방문했던 ‘라이온 파크’ 는 아기 사자를 만져 보고픈 사람들의 욕구만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동물의 복지가 엉망인 동물원 같은 시설이었기에 곧장 방문을 후회하고 말았다. 여전히 심각한 빈곤과 질병,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여행자들이 자연과 동물, 인간 요구의 균형점을 찾아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있는 여행상품들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격려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최초의 인류를 낳은 아프리카 대륙의 후손으로서, 야생을 흠모하고 경외하는 인간으로서,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협동심으로 나는 또 다시 아프리카로 떠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그래,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 인이다.


    여행 귀띔


    1.지역에 따라 말라리아 약은 복용하지 않아도 좋다.
    케냐 나이로비 시내와 마사이 마라 캠프에 머무는 동안 가끔 모기에 물리긴 했지만 말라리아 약을 먹을 필요까진 없었다. 복용을 하더라도 막상 모기에 물리면 허탈하게 감염되는 경우가 많고, 병원에 가면 3일 만에 완치된다 하니 선택은 자유. 르완다에서도 말라리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간혹 침구류에 벼룩이 있을지 몰라 꼼꼼히 살펴야 했다.

    2.간단한 아프리카 역사책을 읽어 보자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과 언어는 최초 인류 발현지라는 증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오해가 풀리기 시작하고 이해심이 깊어졌다. 5백년 식민지 역사의 상처를 껴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어려움은 또 어떠한가. 더불어 흑인 음악의 역사를 아는 것도 여행을 풍부하게 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은 거의 모든 대중음악의 창시자이고 여전히 그들의 정서는 음악 속에 살아 있으니 말이다.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여행 중 들려오는 모든 음악에 귀가 곤두설 것.

    3.자원 활동을 하며 지낼 수 있다
    다양한 비영리 단체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지내는 것은 무엇보다 현지인과 직접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행자에게 자원 활동을 연결시켜 주는 여행사나 여행 동호회를 통해 신청하거나, 개별적으로 단체에 문의를 해보아도 좋다. 단, 숙식에 대한 일정 금액의 돈을 지불하는 것은 상식이니 섣불리 공짜를 바라지는 말자. 프로그램이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자원 활동 참가비는 천차만별이다. 야생 동물 보호소의 자원 활동 프로그램도 매력적이다.


    '한국전력공사 사보' 2010년 11월호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