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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돼지, 동막골을 공격하다
    글/기고문 2010. 10. 25. 04:07


       
        멧돼지, 동막골을 공격하다


          개봉 한 주만에 관객 2백만을 가뿐히 뛰어 넘으며 최고의 흥행가를 질주하고 있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아이들처럼 ‘막’살라고 붙여진 이름의 ‘동막골’에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인민군과 한국군의 총부리와 수류탄 마져 호미자루와 감자더미로 바꾸어 놓는 놀라운 마법이 있다. 결국, 동막골을 빨갱이 소굴로 대충 짐작해서 대량 폭탄투하를 계획하는 한국군의 작전과 이에 대항하는 동막골 ‘연합군’의 최후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전쟁 영웅주의를 뿌리채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 이름 붙여진 전쟁의 허구성을 한 꺼풀 벗겨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광기란 사상, 민족, 조국이라는 전체주의의 폭력성에 함몰된 인간성의 상실과 억지로라도 적을 만들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작전’의 섭리다. 그리고, ‘웰컴투동막골’에서는 영화적 묘미를 위한 ‘작전’으로 멧돼지 사냥이 연출되었다. 동막골의 꼬마를 향해 살인적으로 달려드는 멧돼지의 모습은 마치 원령공주의 성이난 멧돼지 신(神)처럼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그 멧돼지를 합동작전으로 멋지게 처치한 후 불에 구워먹는 군인들은 그제서야 완전한 ‘연합군’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왜 멧돼지가 아이를 공격했는지, 또 멧돼지가 정말로 그렇게 위험한 동물인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실로 멧돼지는 달려오는 힘이 시속 60km의 경차와 맞먹을 정도로 대단하지만, 자신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왠만해선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놈이다. 그릇 두드리는 소리나 밧줄을 무서워하는 소심한 구석까지 있다. 하지만, 감독은 “월드컵 4강때와 같은 감격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할 뿐이다. 백인영화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두려운 식인종이고 인디언들은 광란의 폭도였듯이 멧돼지는 그렇게 영화에 출연한다.

         

           장면장면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작품 속 인물과 동화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웰컴투동막골'에서 멧돼지 한 마리 죽이는 장면 때문에 너무 심하게 딴지 거는 건 아닌지 글을 쓰는 내 자신도 못내 불안하다. 그러나, 전쟁의 맹목적인 폭력성에 대비되는 인간의 평화 본성을 그려내는 영화에서 존재에 대한 몰이해의 폭력성이 화해의 요소로 이용되는 것을 묵인하기 또한 불안하다. 더 딴지를 걸자면 멧돼지와 ‘연합군’의 갈등적 대립이 영화 막판의 폭격기와 ‘연합군’의 갈등으로 변화하며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구조가 결국은 어떻게든 적을 만들어 내는 전쟁의 모순과 닮아있던 것 같아 캥기는 구석도 있다. 밭농사를 망쳐놓는 멧돼지 습격을 걱정하는 부락민들에게 “한 마리를 눈에 멍이나게 혼내주면 그 녀석이 돌아가 무리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코미디 대사야 말로 ‘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동막골의 판타지를 설명하는 명대사가 아닐까.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왜 있는지 알고 싶거든 깊은 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가여운 비명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_ 중국 고대 문헌의 시(詩) 중에서  

    글 박하재홍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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