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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소비 실험이야기
    글/기고문 2010. 10. 25. 03:41
    [2003년 미틈달] 작은것이 아름답다

    I 녹색은 생활입니다 I


    나의 소비 실험이야기


                                                              
    상큼한 주스 한 잔이 간절할 때, 썬키스트와 델몬트를 외면하고 냉장고 앞에 서서 유심히 제주감귤을 찾아보는 버릇은 내게 숨바꼭질 같은 재미를 준다. 때론 뻔뻔한 초국적 브랜드만으로 가득한 진열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지만. '꽝! 다음 기회를'

    특정 소비가 불러오는 결과를 예상해 보고, 선택 기준을 세워보는 재미를 나는 <간디 자서전-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에서 배웠다. 채식과 비폭력의 사상을 알고 싶어 군 생활 중 읽기 시작한 이 책이 내게 보여준 간디의 식생활은 금욕이나 수행 방법이 아닌,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간디는 다양한 방식으로 식생활을 시도했다. 학창시절 '영국을 이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친구의 꾀임에 몰래 고기를 먹기도 하고 한때는 과일만 먹는 프루테리안(Fruitarian)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체의 양념 없이 야채만을 데쳐 먹으며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나는 이런 실험적 방식에 매료되어 망설임 없이 군대에서도 채식을 시도할 수 있었다. 고기 맛에 길들여져 채식을 주저하기만 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남에게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일 나만의 소비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처음 농장동물의 착취 여부만을 고려했던 나의 소비 방침은 점점 확대되어 갔다. 동물실험을 통한 화장품이나 가죽제품의 사용도 껄끄러웠고, 채식과 환경을 함께 보자니 농산물도 다 같은 농산물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나게 되면 포장 뒷면에 적혀있는 성분과 원산지를 꼼꼼히 읽어봐야만 궁금증이 풀렸다. 그렇게 소비에 한층 예민해지고 피자와 가죽워커가 내게서 자연스레 멀어져 가던 즈음, 녹색연합의 '2002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소식이 전해왔다. 나는 강렬하게 쏟아내는 힙합음악을 좋아했고 랩으로 동물권리와 환경적 메시지를 노래하고 싶어 B.N.D 캠페인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서울 한 복판의 발칙한 B.N.D 공연을 준비하면서 '지역적으로 소비하고 지구적으로 낭비'하는 잘못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연신 붉은 웃음을 흘리며 햄버거를 팔아대는 '날씬한' 삐에로가 평소에는 밉게만 보이더라도 간혹 친구들을 따라간 맥 씨(氏)네 친절한 종업원을 접하게 되면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 앞에서 나는 햄버거 하나를 물 건너 팔기 위해 낭비된 세계의 자원과 공장식 사육장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동물의 처지와 그 동물의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사라져 버린 열대우림과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토착민들의 아픔을 맹렬히 떠올릴 수는 없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만이 가득할 뿐이다. 단지 햄버거뿐이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세련된 스타일과 편리한 생활을 일러주는 숱한 브랜드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현실을 만들어내는지! 내 지갑을 털어 그들을 돕지 않으려면 부단한 소비의 연습이 필요하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소비'하는 버릇을 들이려면 말이다.

    지난 겨울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로운 소비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굴지의 근검절약형 인간이 아닌 이상 주위에는 도통 쓰지 않는 물건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되는데 몇 달 만에도 그 양은 상당하다. 그 물건들에 붙어있는 집착을 훌훌 털어 버리고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자선 사업체에 기증해 보자. 그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구입한다면 소비가 곧 나눔이 되는 경제생활이 완성된다. 물론 이건 경제적 논리로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공짜로 주고 돈 주고 사가야 하는 마당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실험을 지속해 본다면 전체적으로 당신의 주변은 깔끔히 정리되고 알뜰해 질 것이다.
      
    대니 서는 생활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작은 선택을 통해 '의식있는 스타일(concious style)' 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친환경적이면서도 모던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이 스타일 역시 기존의 소소한 소비 습관을 뒤엎는 '상식'을 요구한다. 이를 받아들이려면 번거롭게도 자신을 다그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익숙해 진 후에는 복잡하게 엉켜있던 생활은 간소해 지고 돈도 절약되리라. 그리고 일년에 단 하루!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내 생활에서 실험해 본다면 어떨까? 과감히 지갑을 꽉 닫아 버리는 소비반란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테니까.

     

    글쓴이 박하재홍 님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다음 채식동호회 '지구사랑'을 이끌고 있다. 작년 '2002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Buy Nothing Day' 캠페인를 계기로 녹색연합에 첫 발을 내딛었다. 동물과 환경을 위한 채식문화 만들기가 그이를 움직이게 하고 꿈꾸게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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