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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건, 도시의 쓰레기 봉지로 뛰어드는 사람들
    글/기고문 2011. 1. 15. 02:29

    희망의 배낭_현대 도시의 대명사, 뉴욕시티
    프리건, 도시의 쓰레기 봉지로 뛰어드는 사람들
    글 사진ㅣ 박하재홍 


      1년 동안의 세계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마지막 방문할 도시로 미국 동부의 ‘뉴욕시티 (NYC)’를 점찍어 두었어요. 가슴 뛰며 보았던 숱한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 흑인음악인 재즈와 힙합의 탄생지이기도 하고, 브로드웨이라는 화려한 뮤지컬 거리를 만들어낸 뉴욕시티는 누가 뭐라 해도 대중문화예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죠. 지난 1999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테러로 쌍둥이 고층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참사가 있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뉴욕시티의 글자가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를 즐겨 입으며 ‘뉴요커’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가 되고 싶어 해요. 저는 과연 뉴욕시티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곳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 너무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찾아가기로 한거에요. 무엇보다 뉴욕시티에서 탄생한 괴짜들의 모임, ‘프리건' (Freegan) 에도 꼭 참석해 보고 싶었구요.

    버려지는 식료품을 향해 ‘다이빙’하는 프리건들

      제가 ‘프리건’을 처음 알 게 된 것은 몇 년 전,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 방영되었던 어느 시사프로그램 덕분 이었답니다. 밤늦은 거리를 무리지어 다니며 슈퍼마켓과 제과점 등에서 내다놓은 검정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프리건’들, 놀랍게도 쓰레기 봉지 안에는 너무나 깨끗한 빵과 각종 식료품들이 즐비했어요. 호텔 앞이 어수선 하다며 쫓아내려는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버리면서도 기쁘고 씩씩한 표정으로 각자의 가방 안에 음식들을 가득히 담아가던 이들은 예상과 달리 공무원, 학교 선생님 등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이 음식들로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건 당연하고 하루는 공원에 나가 집 없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던데, 그들의 생소한 이름은 자유를 의미하는 영단어 ‘프리’ Free 와 철저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 Vegan 을 합쳐 만들었다고 했지요. 충분히 쓸 만한 것도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버리는 도시의 못된 습성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런 모임을 시작했고, 지금은 다른 나라에도 프리건 모임이 번져나갈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해요. 재밌는 건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이들의 행동이 ‘다이빙’이라고 불려 진다는 거죠. 실제로 그 행동이 물속에 뛰어드는 모습과 닮아서라기보다는 낭비적인 도시인의 삶터에 도전적으로 뛰어드는 각오와 그 환희가 ‘다이빙’과 비슷해서는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뉴욕시티에서 프리건을 만나는 방법

      프리건들은 인터넷에 각자의 ‘다이빙’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모임 날짜를 정하고 다 같이 모여 움직여요. 뉴욕시티의 프리건 다이빙은 한 달에 2번 정기적으로 있는데, ‘미트업’ (Meet up)이라는 프리건 누리 집에 미리 공지를 하지요. 참여를 원하는 누구든지 모임 장소에 그냥 나가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절차 같은 것은 없어요. 아, 식료품을 담아갈 봉지나 가방은 꼭 준비해야겠지요! 저는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다이빙’ 전에 진행되는 2시간짜리 회의에도 참석해 보았지요. 시간은 저녁 7시 즈음이었는데 모임장소로 공지 되었던 건물의 로비가 폐쇄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화려한 내부 장식과 영화촬영 장소로 유명한 기차역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의 바닥에 의자도 없이 주저앉아 한참을 이야기 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열심히 하는 것인지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회의에 참여한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임의 주역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답니다. 3년 전 방송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마들린 넬슨' 씨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거든요. 심각한 회의가 끝나자 드디어 회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첫 번째 다이빙 장소인 도너츠 소매점으로 출발! 그곳에는 이미 스무 명 정도 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요, 마침 촬영을 오신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한 분은 한국에서 오신 학생이라 무척 반가웠어요. 거리 위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라지만, 검정 쓰레기 봉지는 새것으로 아주 깨끗했답니다. 봉지의 묶인 끝을 풀자 안에는 먹음직한 베이글 빵 수 백 개가 답답했던 얼굴을 내밉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구요, 두 번 째 장소인 슈퍼마켓 앞에서는 유통기한이 하루나 이틀이 남은 포장식품들과 신선한 유기농 샐러드, 심지어 값비싼 과자들이 쓰레기봉지 안에서 줄줄이 쏟아집니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몇 몇의 뉴요커들도 이런 광경에 놀라워하며 당장 모임에 참여하더라고요, 하하.

      프리건들의 풍성한 저녁 만찬

      다이빙이 있는 다음날에는 프리건 회원의 집에서 흥겨운 저녁만찬이 열립니다. 어제 쓰레기 봉지에서 얻은 ‘수확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정하고 함께 모여 요리를 하는 거지요. 저는 채소를 다듬는 정도만 도와주었는데도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훌륭한 요리를 대접받을 수 있었어요. 모두들 어찌나 요리에 대한 조예와 관심이 깊은지 백인 남자 한 분은 자신이 직접 만든 ‘김치’를 보여 주기도 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워낙 건강한 자연식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한국의 김치를 미국입맛에 맞춰 만들어 드시는 것 같았는데, 절인 배추의 새콤달콤한 향과 맛이 일품이더라고요. 세 시간 동안이나 왁자지껄 요리를 하고 나니 슬슬 허기도 지고 ‘금강산도 식후경’, 없던 입맛도 생기는 것이 당연한 법칙이지만 버림 받았던 재료들이 이렇게 멋진 음식들로 부활한 만큼 음식을 꼭 꼭 씹는 맛이 더욱 즐겁고 고소했답니다.


      뉴욕시티 여행에 주어졌던 단 열흘 의 기간 중 프리건 모임에 이틀 동안이나 참여하느라 다른 명소들의 방문을 여럿 포기해야 했지만, “프리건을 통해 뉴욕의 숨겨진 매력을 이해할 수 있었어!”라고 말하고 싶네요. 화려한 상업광고와 소비적인 도시의 겉모습 속에는 다양한 인종과 음악의 어울림만큼이나 다양한 성향들의 사람들이 엎치락뒤치락 각자의 이상과 철학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 다른 모습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어울리기도 하며 뉴욕시티의 개성을 만들어 가고 있었으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풍족하고 낭비가 심한 도시에서 밤거리의 쓰레기 봉지를 당당하게 뒤지며 이러한 활동을 홍보까지 하는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가난한 사람들과 1초 마다 망가져 가는 지구 자연의 비극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괴짜 같은 행동은 유별나다기보다 오히려 당연해 보이지 않나요? 뉴욕시티와 여러모로 상황이 다른 한국에서 이들처럼 즐겁게 쓰레기통을 뒤질 수는 없겠지만,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하고 과식하지 않으며 음식을 남기지 않는 꼼꼼한 습관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프리건’의 좋은 친구입니다.


    월간 '리딩프렌즈'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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