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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콩고기가 좋아요!”
    글/기고문 2010. 10. 28. 19:45


    “나는 콩고기가 좋아요!”
    어느 날 깜짝, 내게 다가온 채식주의 선언.

    글: 박하재홍


      솔직히 말하고 시작하자. 수 십년 동안 길들여진 쫄깃한 육고기 맛의 2 % 가 잊혀지지 않아 선택한 것이 콩단백으로 만든 가짜고기, 콩고기였다고. 채식을 선택한 이래, 콩고기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나의 의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던 삼등공신 콩고기! 그리고, 그와 유사한 여러 형태의 식물성 고기들이 건네 주었던 적지 않은 위안이여. 그에 대한 고마움은 여태껏 뚜렷하다.


      그런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 하면서 고기 맛을 허락했던 그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그건 바로 ‘채식주의’란 ‘고기 맛이 나지 않는 채소를 많이 먹겠다’ 는 의미가 아닌 ‘동물착취의 과정을 수반하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 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채식주의 선언은 한 발자욱 더 나아가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싱어가 주창한 ‘동물해방’의 정치적 목표까지 가슴 속에 새기게 한다. 물론, 모든 채식주의자 또는 이데올로기의 냄새를 지닌 ‘주의자’의 호칭을 원치 않는 채식가들까지 모두 같은 입장일리는 없다. 백 명의 채식주의자에게는 채식에 대한 백가지 기준과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채식에 대한 ‘단계론’이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 많은 사람들은 곧 바로 묻곤 한다. “우유까지 먹니? 아님 계란까지?” 그럴 경우 난 대답한다. “내 입맛이 허락하는 선까지만 먹는데. 계급주의 같은 단계식 구분은 싫어.” 나에게 채식은 ‘동물 착취를 유발하는 모든 종류의 생산품 소비를 줄여 나가는 실천’의 한 방식으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아리송 할 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채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용어가 ‘동물’이라는 것만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듯 하다.


    (여기서 우선 두 가지만은 전제 조건으로 삼아 주길 바란다. 첫 번째는 100% 채식으로도 부족한 영양은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지구상에 현대 사회의 육식으로 말미암은 오만가지 악재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 이 둘에 대해선 넘쳐나는 자료들과 공방전이 오고가고 있으니, ‘입맛’에 따라 자료를 수집하기란 어렵지 않다)


      심슨가족의 고민 많은 딸내미 ‘리사’도 그랬고, 베스킨라빈스31 의 상속을 거부한 ‘존 로빈스’도 그랬다. 갑자기 햄버거를 입에서 토해낸 ‘대니 서’에게도 동물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란 견딜만 한 일이 못되었다. 즉, 채식주의자란 인간에게 시달리는 동물의 고통이 안스러워 잠을 설치기도 하는 심약한 자들이다. (여기서 잠을 설치는 정도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고통의 수치와 비례한다.) 글쎄,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동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 타당성을 학문적 또는 정치적으로 고민하고 논의를 확산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동물권리’라는 이론을 발전시켜 사회 제도적으로 눈에 띌만 한 성과를 만들어 가고 있기에, 채식주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제발, ‘동물권리’와 ‘동물애호’를 혼동하지 말기를) 한국에서도 공중파 다큐멘터리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방영으로 채식동호회 회원이 급증한 이후로는, 명상과 종교, 식이요법의 권역에서 동물권, 환경, 여성,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영역으로 채식주의가 확장되어 채식을 ‘선택’하는 연령대가 2~30대 이하로 낮아지게 되었다. 또한, 채식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맑은 피’의 기능성은 ‘웰빙’의 문화적 코드와 적극 결합하여, 일명 ‘배부른 소리 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가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잔혹한 ‘공장식 축산’의 놀라운 성과로 이토록 고기가 도처에 넘쳐 나지 않았다면, 채식을 선택할 가능성은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존 로빈스’ 가 묘사한 젖소들의 생생한 고통에,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뚝뚝 흘려 놓고도 한 여름이면 배스킨라빈스 분홍빛 의자에 앉아 유유자적 에어컨 바람을 즐기고 있는 내 자신을 보라. 유제품을 제외한 그 많은 동물성 음식에 무관심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고기 맛에 환장할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막상 내 손으로 도살을 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했다면 난, 채식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수 천만 인구의 배를 불리고 있는 그 많은 도살장은 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그리고, 누가 대신 그 궂은 일을 도맡아 현대의 백정으로 차별 받고 있는가? 직접 동물의 숨통을 따는 꺼림칙한 일은 구조적 차별에 무력한 이들에게 몽창 떠넘기고, 나는 화학 세제나 왕창 써가며 기름기 끈적거리는 석쇠를 닦고 있다니... 비겁하고 반환경적이지 않은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해야만 생태적으로 정당하고 비폭력적일까? 고기는 이처럼 나에게 골칫덩이일 따름이다. 그러니,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먹지 않는 게 속 편하고 자연스럽다. 식도락이 없다고는 말하지 말아 달라. 비록 콩고기의 가식적인 힘을 빌어 채식주의 선언을 했던 구차한 이력이 버젓하다지만, 혀끝에서 희미해지는 고기 맛 대신 점점 되살아난 식물성의 감각은, 나의 밥상을 향긋하고 즐겁게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니까. 날마다, 기분 좋은 마법처럼.

    박하재홍: 비폭력주의 랩그룹 <실버라이닝>의 랩퍼이며, 다음 채식동호회 <지구사랑 vega>의 회원으로 맛난 풀반찬이 즐비한 한국을 채식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 여기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 일하고 있다.

    (고려대학원신문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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