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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부엌에는 맛난 이야기가 있다
    글/기고문 2010. 10. 28. 19:40


    동네부엌에는 맛난 이야기가 있다



    글. 박하재홍

     

     

     

    장미, 오소리, 청바지, 지구인, 엄지, 돌고래, 그리고 에이미. 이렇게 여덟 명의 알뜰한 쌈지돈이 모여 시작한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부엌. 점심시간 열 두 시 정각에 맞춰 오면 식사한끼 내어 주겠다는 살림꾼 에이미 님의 말씀이 솔깃해 종종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성미산 학교와 마포두레생협, 그리고 동네부엌까지, 서울에 이런 동네가 또 어디 있으랴살짝 시샘 어린 마음으로 도착한 동네부엌에는 마침, 한 쌍의 모녀가 조촐한 밥상을 차려 놓고 있다. 이건 이름이 뭐게? 봄에 나는 냉이야 따님에게 나물 반찬 이름을 조근조근 알려주는 엄마 혜련 씨는 딸 윤서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찾아 온단다. , 초등학교 친구들이 달콤하지도 않은 유기농 반찬거리를 좋아 할래나? 윤서가 직접 반찬을 고른 것인지 엄마가 챙겨준 것인지 목격하지 못했으니 의구심이 밀려온다. 그때 씩씩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나 망설임 없이 접시에 반찬을 담기 시작한다. 물어보니, 윤서와 같은 학교의 1학년 어린이. 불순한 의도로 밥상을 마주하고 은근슬쩍 말을 건네본다. 집에 안가고 왜 여기로 와요? 반찬이 맛있어서. 집에서 밥 먹는 게 좋은데 엄마가 없을 때는 와서 골라 먹어요. , 의외의 대답이다. 이미, 동네부엌의 살림꾼들은 성미산 학교 150명 학생의 급식을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 대부분은 이곳 단골처럼 어린이들이고 스무 명 남짓은 중학생인데, 맛에 대한 불만은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중학생 쪽이 크다고 하니 조기 교육보다 중요한 조기 유기농의 효험이 실감나는 설명이다. 그래도, 불만은 맛깔 나게 달래야 하는 법. 동네부엌은 학생들의 의견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새로운 반찬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다.

    반찬가격은 창업이래 3년째 복지부동이다. 그래서, 살림살이는 근근한 편. 그 형편으로는 벌이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냉정할 만도 한데, 반찬 비법이 궁금해 찾아오는 이들을 내쫓기는 커녕 부엌까지 들여 눈치껏 배우도록 배려하고 있다. 마음 씀씀이도 과연 동네 부엌답다. 하긴, 동네 엄마들의 반찬 품앗이가 이 사업의 디딤목 아니었나. 인정이 매서울 리 없다. 얼마 전 아침 밥상에서 엄마가 내어 놓은 말린 감 장아찌를 씹다가 순간 멍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감을 말려다가 만들었지. 엄마는 아무일 아니 듯 말씀하셨지만, 난 새삼 그 놀라운 기술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 혼자 밥해먹을 신세라면 결국 라면신세 면치 못할 게 뻔한데, 서둘러 그 비법을 전수받아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마저 출렁였던 그 아침. (동네부엌 역시 도제방식 이야말로 이 사업의 가장 좋은 방식이라 일러 주었다.) 나 같은 채식주의자들이 핀잔 받기 쉬운 한국이라지만, 맛난 풀 반찬들이 즐비한 이 땅이야 말로 채식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 말하고 다닌다. 동네부엌에서도 내 입맛에 맞춘 반찬을 고르기란 어렵지 않았다. 스물 두 가지 정도의 반찬 중에 절반은 순 식물성이다. 브로컬리 버섯볶음, 김파래 무침, 콩조림, 시금치, 고비나물 , 고비나물은 머지? 궁금한 내 눈치에 빨간 앞치마의 장은선 님이 고사리보다 더 연한 고사리과 나물이라고 살짝 알려 주신다. 씹어보니 고사리보다 진득하고 담백하니 더 맛있다.

    반찬은 며칠 두어도 괜찮은 밑반찬과 날마다 새로 만드는 일일 반찬으로 나뉘어 있다. 내가 고른 반찬은 대부분 냉장실 안에 보관된 일일 반찬이라 혀 끝 감촉이 상큼하고 시원하다. 우물거리며 에이미 님에게 이것저것 여쭈어 보는데 함께 살림을 맡고 있는 장금이 언니가 여행을 가신 터라 매우 바쁘신 눈치다. 반찬 재료는 바로 이웃하고 있는 마포두레생협과 여성민우회생협에서 조달하고 고추장 된장 우엉 등은 생산지에서 직접 받는다고 한다. 월 회비를 내는 회원들은 일주일에 세 번 반찬을 가져가고, 1회용 대신 튼튼한 반찬 통을 이용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이처럼 마음씨로나 경제적으로나 소박한 서민층인지라 사업상 어려움도 적지 않으련만, 다섯 평 작은 자리에서 지금의 열 다섯 평 가게로 옮길 수 있었던 탓도 동네 품앗이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향긋한 유기농 밥상의 내음이 채 입가에서 사라지기도 전, 일 손을 두고 온 책방으로 마음이 앞선다. 바삐 부엌 문을 나서며 뒤늦게 살림꾼들에게 랩퍼라 소개하자 에이미 님도 록밴드의 보컬이었노라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잠깐의 음악적 교감 그리고, 오늘 맛보지 못한 하얀 떡꼬치의 아쉬움. 그 둘의 나란한 배웅이 햇살 좋은 부엌 앞 길로 한참을 내어다 본다

    동네부엌:
    www.mapocoop.org/dongne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8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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