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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촌책방 촛불 켜는 날
    글/기고문 2010. 10. 25. 04:37



    ㅣ 2006년 2월호 주제가 있는 수필ㅣ

    신촌책방 촛불 켜는 날


    글쓴이_책방지기 박하재홍

     


        신촌 구석진 골목길 끝자락에 책 향기가 감도는 한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가 만든 두 번째 헌 책방, 이곳의 이름은 ‘뿌리와 새싹’입니다. 좋은 책을 양분삼아 자연을 닮은 뿌리와 새싹으로 자라나라고 지은 이름입니다. 워낙 숨어있는 곳이라 손님들이 코 앞 에서 헤 메이기 쉽 상이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새로운 발걸음이 있어 책방 입구에 거미줄 칠 걱정은 아니 합니다. 어둠이 외롭게도 짙어지는 12월, 그 마지막 금요일 밤에 신촌책방은 전기 불을 끄고 촛불을 켜기로 했습니다.

      

       책방에 촛불을 켠다 하면 “책이 보이나?” “불장난 하지 마라” 등등 여러 말을 듣기 마련이겠지요. 촛불은 책방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밝혀집니다. 문명의 플러그를 뽑아 버리고 촛불의 흔들림 안에서 한 박자 천천히 숨을 쉬어 보기 위해서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은 작은 나무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낮게 둘러 앉아 꼭 촛불의 밝기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책방에는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 가져온 책은 무엇인지. 우리는 이 시간을 ‘촛불과 낭독의 밤’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남이 이야기 하는 동안은 내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절대 고민하지 않기! 한 사람의 목소리에 토 달지 않고 집중하는 연습은 그 동안 듣기보다 말하기에 단련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판단보다 이해를, 우리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려 몸을 웅크리는 옆 사람의 책장 위로 촛불을 밝혀 주며 독촉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아 참, 이 초는 밀랍으로 만들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초들은 석유의 정제물인 파라핀으로 만들지요. 밀랍은 꿀벌들의 집입니다. 양봉이 끝나고 버려지는 것들을 그대로 정제해 초로 되살리기에 불을 태워도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석유문명이 지긋지긋하게 지구를 괴롭혀온 만큼 책방은 이 시간만이라도 자연의 속도와 빛깔을 닮아 보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곳의 책방은 처음부터 그러한 방식들을 무던히 시도해 왔습니다. 버려진 목재들을 주워 책장들을 만들고, 벽돌 공장에서 내팽개친 벽돌들을 고스란히 옮겨와 한옥 안의 정원이며 계산대를 꾸미기도 했구요. 벽지대신 오래된 세로줄 책 낱장을 뜯어 풀칠한 노력도 가상합니다. 그럴싸한 간판도 없어 문을 열고 들어서야만 사람들은 이곳이 책방인 줄 알지요. 그렇기에 촛불과 어울립니다. 밤이 길어지면 서울은 눈을 현혹시키는 온갖 전구들로 사람들을 불나방처럼 몰고 다니지만, 그 빛은 파괴적입니다. 어둠과 그림처럼 섞여있는 촛불의 명암에 잠시 익숙해진 동공은 평소와 달리 도시의 날카로운 불빛에 예민해질 것 입니다. 촛불에 둘러 쌓인 우리들은 그 사실에 촛불을 끄고 밖으로 나서기가 조금 망설여지기까지 합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그리고, 우리들은 서두르지 않고 대답합니다. "누구나 촛불모임을 하게 된다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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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책방 ‘뿌리와 새싹’은 여성환경연대가 지정한 촛불가게 4호점으로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촛불과 낭독의 밤’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rootsandsh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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