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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랩퍼, 그 먼길을 가다
    글/기고문 2010. 10. 25. 04:09


    랩퍼, 그 먼길을 가다


    박하재홍 a.k.a buzz


        서른이 되야 진정한 랩을 구사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은 슬며시 나를 긴장시킨다. 내 나이 스물 여덟,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지 4년 째. 이제 서른도 코 앞이다. 서른 정도의 나이는 되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깊이가 생겨 랩에 생명력이 부여 된다는 말일진데, 랩이란 철부지 시절에나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의아한 얘기일테다. 랩을 좋아한 건 (대부분이 그렇듯이) 서태지 시절부터다. 정신없이 가사를 따라 외우고 춤을 추다가 20대 초반,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드나들면서 진짜 랩퍼는 춤을 추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때론, 출 수도 있겠지만..)

     

        랩의 묘미는 머릿속 생각들을 즉시 비트로 만들어 내뱉는 프리스타일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바뀌면 랩의 내용도 분위기도 그 만큼 변화를 겪게 된다. 엉뚱하게도 나는 채식주의와 동물권리를 위한 곡을 처음 만들었다. 극렬한 폭력을 자아내는 식습관과 단백질 신화를 강제하는 사회에 대한 감정의 폭발! 그 때부터 마이크를 들고 거리를 쏘다녔다. 같이 랩을 하다가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 이들도 있고, 아직까지 ‘더 실버라이닝 (the SILVER LINING)’이라는 팀으로 함께하는 친구들은 거리의 열악한 무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실버라이닝’은 먹구름 뒤로 해가 비출 때 생기는 구름의 은빛 테두리다. 희망을 뜻하는 다소 생소한 단어지만, 이 단어를 처음 발견한 순간 내 검은 눈동자엔 실버라이닝이 반짝이는 듯 했다. 어둠없이는 빛을 인식 할 수 없으니까! 인종차별의 억한 감정이 그대로 노출된 할렘가의 힙합은 백인사회에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었고 그 어둠 속에서 랩은 흑인들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니 이 또한 먹구름과 햇빛을 닮았다. 그러나, 그 희망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백인들을 욕하던 힙합은 인기를 얻으며 결국 소비적인 백인사회를 닮아갔고 폭력적 요소는 시대성 없는 껍데기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동부힙합과 서부힙합의 총질에 역사적 랩퍼가 죽어버린 사건도 오래되지 않았다. 흑인해방을 외치던 그들이 서로를 죽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고민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렸다. 킹 목사가 랩을 했다면? 비폭력주의, 분노하지 않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묘법을 찾고 싶었다. 그것은 ‘실버라이닝’의 빛과 어둠의 상대성 안에도 숨겨져 있는 의미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평화바람’의 객원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더 실버라이닝’은 파병반대 널린노래방을 거쳐 목요일 길바닥평화행동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무대보다 차가운 거리 위에서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고 싶다. 지금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랩꾼, 춤꾼들과 어울리며 자발적인 거리문화를 만들어 본답시고 바쁜 척은 다하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자유로운 정신, 춤을 추며 저항하는 비폭력의 정신, 길바닥 무대란 수단의 발판이 아닌 걸. 그 자체로 나의 삶, 나의 흔적인 걸! ” 랩퍼, 그 길은 멀고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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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ILVER LINING(더 실버라이닝)은 ‘core, 웅술, buzz’ 세 멤버로 구성된 비폭력주의 랩음악 팀입니다. 공연소식과 음악은 www.silverbeat.net 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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