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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동물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글/기고문 2020. 9. 30. 23:13

    ※보리출판사 '개똥이네 집' 175호 기고문

     

    무엇을 ‘동물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글 박하재홍

     

    코로나 때문에 두 달여 문을 닫은 ‘전주동물원’의 동물들이 예전보다 건강해졌다고 한다. 이곳의 동물들은 보통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사 장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관람객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것이란다. 반면, 대구에서는 배를 쫄쫄 굶어 갈비뼈가 드러난 사자 두 마리가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자를 책임지는 사람은 뉴스 화면에 나와서, 코로나 사태로 입장료가 끊긴 암울한 상황을 하소연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사자가 굶어 죽을 지경이라니! 며칠 새 전국 각지에서 생닭 4백여 마리가 도착했고, 사자는 기력을 회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혼자 50마리의 생닭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자 두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80여 종의 동물 200여 마리가 실내에 갇혀있다.

    나는 4년째 꾸준히 빼놓지 않는 일과가 있다. 날마다 ‘동물복지’ 관련 뉴스를 몽땅 읽어보고, 간략하게 정리해서 트위터에 올리는 것이다. 하루 90분 내외의 시간이 걸리는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이 구독하고 공유하기에 보람이 크다. 전주동물원의 동물들이 건강해졌다는 좋은 소식은 1,200회 공유되었고, 대구의 사자가 굶주리고 있다는 나쁜 소식은 478회 공유 되었다. 며칠 동안이나 각종 신문과 방송들이 사자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 같다. 코로나와 가엾은 사자라니, 어지간히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니까. 언론에서는 연일 ‘대구의 한 동물원’이라고 지칭했는데,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햇빛 한줌 없는 실내에 동물을 가두어 놓고는 어떻게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트위터로 뉴스를 전할 때 ‘동물복지를 구현할 수 없는 대구의 실내동물원’이라고 길게 풀어썼다. 며칠 후 관련 소식을 다시 전해야 할 때는 ‘민간 영리시설인 실내동물전시관’이라고 바꿔 썼다.

    나는 원래 동물원이란 명칭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도 안 봤다. 이유는 동물원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걸려서. ‘동물원이 낭만적인 곳인가? 언젠가 동물원이란 이름은 사라졌으면 좋겠어, 진짜 동물을 보살피는 곳만 남아서 동물보호구역이나 동물보호시설로 불리면 좋겠네.’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대규모 실내동물원의 등장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을 헤집어 놓았다. 한 마디로 동물원이라는 이름조차 내어주기 아까운 현대도시 동물수용소가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그런 곳에 주말 관람객이 1천명 넘게 몰린다고? 생각할수록 어안이 벙벙하다. 이제는 ‘미술관 옆 실내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찍힐 판인가 싶다. 반면, 국내의 공영동물원들은 꾸준히 윤리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12년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들을 모두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동물복지라는 용어가 널리 확산되었고, 동물원이 수행해야할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점점 활발해진 덕이다. 최소한, 돌고래처럼 ‘동물복지가 불가능한 동물’은 아예 사육하지 말자. 동물복지가 가능한 동물만 최선을 다해 돌보자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기린의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 ‘퍼즐 먹이통’을 제작한다거나, 열악한 원숭이 사육사를 과감히 확장한다는 소식을 하나 둘 접할 때마다 동물원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게다가 실내동물원이니 체험동물원이니 하는 동물감옥이 인기를 끄는 현실 앞에서 ‘동물원이라는 이름이라도 제대로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노트북 앞에서 주구장창 뉴스만 읽고 있는 내가 맘대로 얘기할 주제는 아니다. 전문가 영역에 있는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고, 다행히 연락할 분이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청주동물원의 동물을 책임지게 된 최태규 수의사다. 청주동물원은 작년 가을, 웅담채취용 사육곰 농가에서 구조한 새끼곰 3마리를 받아들인 곳이다, 곧이어 곰 사육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큰 공사를 감행했다. 이는 1997년부터 청주동물원에서 살아온 반달곰 ‘반순이’이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 오랜 시간동안 반순이는 시멘트바닥이 전부인 골방에서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이제 청주동물원의 곰 사육사의 방사장에는 부드러운 흙과 풀이 깔려있다. 놀이터처럼 얽혀있는 튼튼한 나무기둥도 있고, 곰들이 올라타기 좋아하는 튼튼한 해먹도 걸려있다.

    최태규 수의사는 우리나라 사육곰 구조와 보호소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의 활동가이자, 영국 에딘버러대 수의과대학에서 응용동물행동학 및 동물복지학 석사를 받은 동물복지 전문가다. 작년 한 해 동안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야외 캠페인에서 자원활동으로 랩을 한 덕분에 약간 친해지게 됐다. 청주동물원의 정문은 코로나 예방 체온측정을 하느라 관람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폐쇄되었던 동물원이 다시 개장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공영동물원은 인기에 비해 수익률이 매우 낮다. 아니, 언제나 적자다. 최근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부산시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일방적으로 휴원한 사태도 적자구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적자를 내는 동물원을 지자체가 굳이 유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각 지자체에는 동물 종 보전의 책무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걸 보여주려는 것일까? 궁금한 점을 최태규 수의사에게 물어봤다.

    지자체에서 공영동물원을 자랑거리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원지이기 때문이에요. 동물원은 보통 공원을 관리하는 부서에 속해 있어요. 축산·농업 부서에 속한 곳도 있고요. 영국의 동물원은 우리와 달리 모두 민영이지만, 운영주체가 동물학회 같은 곳이라서 목적은 비영리적입니다. 동물관리가 아주 체계적이죠.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수익이 끊기는 국면에선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공영동물원이 더 나은 점도 있고요.

    지금의 모든 공영동물원이 생크추어리(보호구역)처럼 전환될 수도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영국의 ‘요크셔 와일드라이프 파크’가 일반적인 동물원에서 생크추어리형 동물원으로 탈바꿈을 하자, 오히려 수익성이 높아졌습니다. 동물을 보기 더 힘들어졌지만, 관람객들의 만족도는 높아진 거예요. 청주동물원의 거대한 ‘물새장’도 새를 멀리서 관찰해야 합니다. 조망대에서 관람객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요. 경이로워 보이거든요. 공영동물원이 이런 방향으로 개선되려면 환경부의 정책이 중요하고요.

    동물원이라 불릴 수 있으려면 어떤 기본조건이 필요할까요?

    동물원의 기본조건은 법이 정해주는 것인데, 201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통과된 동물원·수족관법은 아직 너무나 미흡합니다. 동물원 설립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개정되어야 실내동물원 같은 곳을 막을 수 있어요. 최소한 만지고 먹이주고 실내에만 머물게 하고 옮겨 다니면서 전시하는 곳은 허가받을 수 없도록 해야죠. 세계적으로 동물원은 동물의 종 보전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태규 수의사의 머릿속에는 이런 저런 개선 아이디어가 줄줄이 가득하다. 우선 수돗물로 가득채운 콘크리트욕조에서 살고 있는 물범 2마리를 환경이 좋은 제주도의 아쿠아리움으로 보낼 계획이다. 대신 열악한 수달 사육사를 대폭 개선하면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다행히 예전보다는 이런 제안을 하고 추진하는 과정이 조금 수월해졌다고 한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동물, 원>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덕도 있다. 청주동물원을 배경으로 사육사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 이 영화에 관람객들은 평점 10점을 쏟아냈다. 나는 아직 안 봤다. 이글을 마치고 꼭 구입해서 보고 나의 한줄 평을 인터넷에 더하려 한다. 나의 한줄 평 하나가 동물원의 한 평을 개선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 박하재홍

    동물에게 친절한 인류를 꿈꾸는 래퍼, 힙합문화연구자다. 청소년도서 『랩으로 인문학 하기』와 동물복지 안내서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등을 썼다. 페이스북 ‘소셜힙합연구소’와 트위터 ‘동물복지 봇’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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