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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팬’의 힙합 커뮤니티 회고록 (글 블루프린트)
    힙합 아카이브/랩 2017. 1. 23. 17:58

    원문: http://il-il.goham20.com/49961




    [PINKPRINT] ‘여팬’의 힙합 커뮤니티 회고록


    2017년 1월 20일




    감개무량이라고 해야 할까? 상전벽해일까? 버벌진트의 [그것이알고싶다] 가사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분명 나는 ‘K-hiphop’신에서 나온 가사를 보고 있는 것이고, 그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 그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아도 …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넘어지는 / 순간부터 하나도 / 말 안 되는 거 … 혐오의 단어는 내뱉고 싶지 않아 / 나에겐 더 /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까”  버벌진트의 [그것이 알고싶다] 중에서

    슬릭의 프리스타일 랩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한국의 힙합 음악, 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될 정도로 강렬한 장면들도 있고, ‘느낌’이나 ‘분위기’라고 해야 정확할 정도로 희미하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그 모두가 여성인 내가 리스너로 취급받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 혹은 배제의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교묘한 배제

     

    “OOO알아요? 여자분이 대단하네.” “여자분이 힙합 듣고 대단하시네요.” 이 말 자체도 이상하지만, 이런 말조차 “얼빠”로 취급받는 여성들에게는 ‘하사될 수 없는 칭찬’이었다. 본인들(힙합 커뮤니티의 ‘중론’을 제시하는 남자 팬들)의 기준에서 잘생긴 래퍼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대단한 여성’이 아닌 철 없고 ‘진정성’이 결여된 이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듣거나, ‘좋아요’, ‘별로예요’가 아닌 좀 더 길고 자세한 감상을 말하거나, 다른 나라의 힙합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은 모두 신기하고 특이하고, 자신의 칭찬을 받을만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채로 공연장 대기 줄에 서 있는 이들은, 그날 밤 공연 후기에 “확실히 여자 팬들이 대다수네요. 공연장 물 다 흐리네요”하고 주절거리는 글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그동안 들어온 여팬들에 대한 수많은 칭찬과 불평들은 곧 남팬들이 힙합신에서 갖는 우월한 위치의 상징이자, 그것을 공고히 하려는 행동들이었다고 본다.


    래퍼들도 마찬가지로 여팬들을 ‘특별하게’ 본다. 많은 래퍼들이 소위 말하는 ‘소녀팬’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애매한 것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라고 조언하는 대상이거나,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캐릭터에서 조금이라도 발전하지 않았다. 특히 00년대 중반부터는 ‘힙합 여중생’ 혹은 ‘힙합 여고생’으로 여팬들을 지칭하는 말들이 자주 사용됐다.


    “힙플: 요즘 공연장 등에, 이른바 힙합 여고생, 힙합 여중생 생긴 것이..

    Tablo: 몰라요, 제가 그것에 도움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힙합플레이야 매거진 [Tablo (of Epik High)] 인터뷰 중에서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이며, 여성은 힙합을 좋아할 리 없고, 좋아한다 해도 외모를 보고 팬이 된 것 아니면, 오로지 나의 칭찬을 받을 만한 대상이라는 서사는 어디로 보나 여성혐오 그 자체다. 헛헛한 심정이지만, 나 역시 그러한 남성 힙합 팬들이 주축이 된 커뮤니티 안에서 사교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그 이미지에 맞춰 행동했다. “전 여자인데도 그런 음악 좋아하는데요?” 간접적인 나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성 음악인들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는 분위기, 또 여성팬들이 힙합 공연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윤미래’라는 여성래퍼의 교과서


    2006년~2007년 즈음, ‘챕터투’라는 여성 래퍼 듀오가 데뷔했다. 이런 말이 들렸다. ‘윤미래처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래퍼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공연에서 래퍼는 그런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한테 윤미래처럼 할 수 있냐고 하는데, 윤미래는 윤미래고, 우린 우리예요.’ 절망적이게도 바로 지금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윤미래와 타 여성래퍼를 비교하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모 래퍼는 동료 가수의 쇼케이스에서 “이번(신곡)에 계집 보컬 좀 넣었어요”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얼빠’와 함께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또 다른 래퍼는 SNS에서 “기집애”라는 표현으로 힙합 팬들을 표현해서 비판을 받았다. 가사에서도 ‘여자애들’, ‘계집애들’ 같은 표현으로 여성들은 멋모르고 어리석은 사람들로 묘사된다. 동료 래퍼중에 여성이 있음에도, 자신의 공연장의 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그런 표현을 들어야한다. 그리고 그런 래퍼들이 같은 앨범 안에서는 자신의 어머니나 애인에게 전하는 애틋한 곡을 노래한다.  


    힙합 커뮤니티들에 ‘여자’를 검색해봤다


    ‘여자 래퍼 본 후기’라는 제목으로, 여성인 MC들을 외모적으로 평가하고, 남성이지만 같은 크루 안에서 여성, 정확히는 ‘아줌마’로 놀림당하는 이를 포함해 그를 마치 여자인 듯 평가하고 조롱한다. ‘여자 래퍼들은 남자보다 ‘원래’ 못 한다’는 뉘앙스의 문장들도 수두룩하다. 그들의 음악적 성취를 평가할 때마저, 가장 먼저 나오는 수식이 “예쁘고 ..” 인 것을 마주했을 때의 이 허탈감은 십여년 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

    편집. 슈슈

    섬네일 이미지. 버벌진트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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