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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일리닛, "골목 상권의 맛집 같은 컨텐츠가 되길 바란다"
    힙합 아카이브/랩 창작가들 2015. 12. 26. 16:03

    원문: http://www.hiphopplaya.com/magazine/18827




    2015.12.11


    HIPHOPPLAYA (이하 힙플) : 하반기 빅앨범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등판한 웰메이드 앨범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감회가 어떤가? 


    Illinit (이하 일) : 음.. 발매시기에 대한 생각은 사실상 하지 않았고, 준비가 되는대로 앨범을 냈다.

    감회를 말하자면 지금까지 냈던 어떤 앨범보다 기분이 좋다. 잘 만들었다기 보다 거의 처음으로 원하는 대로 만든 앨범인 것 같아서 나한테는 1집같은 앨범이다. (웃음)




    힙플: 담백하게 등장한 앨범이어서일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순수하게 좋은 앨범이 묻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정작 본인의 마음은 어떤가? 


    일 : 이 앨범을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애초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원하는 걸 했기 때문에 불안함 같은 건 전혀 없다. 골목 상권의 맛집처럼 컨텐츠가 좋고 느낄 수만 있다면 구전을 통해서라도 소문이 날 거고, 그랬을 때 알아서 사람들 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힙플: 앨범이 나온 뒤 주변 반응은 좀 어떤 것 같나? 


    일 : 주위에 팬/친구인 베스트들이 몇 명 있는데, 걔내들이 맨날 피드백들을 캡처해서 카톡으로 보내준다. 원래 내 얘기는 잘 없으니까 신기했겠지.. (웃음) 한동안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런 카톡들을 봤는데 ‘너 존나 좋대!’ 이런 말들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피드백이 많이 있다는 건 어쨌든 좋은 거니까




    힙플: 독립 레이블 Triple I로 활동을 하다가 작년부터 팩토리보이(Factory-Boi Records)에 합류했다. 음악 환경에 있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일 : 일단 녹음실이 생긴 것, 그 다음이 엔지니어링 작업 같은 앨범 제작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내가 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해결되는 게 가장 크다. 팩토리보이는 페임제이(Fame-J)라는 친구가 대표로 있는 곳인데, 그 친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내가 아이디어로만 가지고 있던 걸 소리로 구현해주니 모든 게 달라졌다.




    힙플: 앨범 이야기를 해보자 ‘98은 상징적으로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98년도는 일리닛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일 : 나는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중학교 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한국 정서에 적응해야만 하는 시기를 보냈다. 억압돼있었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애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일로 우연히 다시 미국에 가게 됐는데, 그때가 98년도였고 그 해는 나한텐 굉장히 의미가 깊은 해다.


    물 만난 물고기가 됐던 것 같다. (웃음) 일단 마음이 편했던 게 한국에서는 힙합을 몰래 좋아했는데 그곳에서는 대놓고 좋아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그 시기에 ‘ill’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일리닛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그게 벌써 17년이 지났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에 와서 그때를 돌아보니까 기분이 묘해지더라. 어릴 적에 그저 멋있어 보이려고 장난 식으로 내린 선택이 지금 이 나이를 먹고 이런 앨범을 만들게 했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그 연도에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면 내 몸뚱이는 부모님이 만들었지만, 일리닛이라는 존재는 온전히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거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니까 말이다. 그것 자체로 98년도는 나한테 창세기가 되는 시절이다. 




    힙플: 질풍노도의 시기를 미국에서, 그것도 힙합의 황금기와 함께 지나온 세대다. 지금의 일리닛한테 굉장히 큰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일 : 확실히 그렇다. ‘Made In ‘98’ 가사에도 나오지만, 98년도에 블랙스타(Blackstar)의 앨범이 나왔고, 제이지(Jay-Z)의 [Hard Knock Life]가 출시되고, 에미넴(Eminem)의 [Slim Shady LP] 아웃캐스트(Outkast).. 엄청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거든. 게다가 사후 앨범이지만 비기(Notorious B.I.G)의 [Born Again]이나 투팍(2pac)의 [Greatest Hits] 이런 앨범이 나오던 시대니까. 돌이켜보면 정말 어마 어마 했다. (웃음)




    힙플: 정서적으로 풍요로웠던 때겠다.


    일 : 풍요롭고, 모든 게 기대되던 시절이다. ‘야 투팍 죽었는데 또 앨범 나온대!’ 하던 그런 추억들이 이 앨범에 있어선 굉장히 뜻 깊은 기억들이 됐다.




    힙플: 실제로 단어들이나 묘사들이 정말 생동감 있는 곡이었다. 게다가 앨범 자켓의 사진도 이 곡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GKMC]에서 도요타 벤이 맴도는 것처럼 이 앨범의 고증 같은 사진일 것 같은데 


    일 : 이 앨범의 자켓 사진은 실제로 98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아마 여자친구 집 앞이었을 거다. 이 사진을 어떻게 보게 됐냐면, 한 번은 마이노스(Minos)와 함께 우리 집에서 술을 먹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 내가 취한 상태로 ‘야 나 옛날에 어땠는지 알아?’ 하면서 옛날 사진을 꺼내서 보여줬다. 그런데 마이노스가 그 사진을 보더니 ‘와 이거 대박 앨범 자켓 같다’ 라며 너무 멋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 10년만에 박스에서 옛 사진들을 꺼내서 보게 됐다. 정말 모든 것들이 다 떠오르더라 


    ‘이땐 이랬고, 똥차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다 면허가 없어서 내가 애들 다 픽업하고 내려다 주고.. 스피커는 또 완전 똥이라서 베이스 하나도 없는데 베이스 있는 것처럼 그루브타고 있었고..’ 이런 시시콜콜한 기억들을 마이노스와 같이 있던 사람들한테 한참 얘기 해줬는데.. (웃음) 그러면서 ‘아.. 나 이 얘기 너무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바로 가사작업에 들어가서 그 다 다음날인가 이 곡의 가사가 나온 것 같다. 그래서 말씀해준 것처럼 당시의 풍경을 글로 그리는데 있어서 이 사진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힙플: 그때는 이 사진이 이런 식으로 쓰일지 알았나? (웃음)


    일 : 실제로 이 앨범이 나왔을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이 앨범을 17년전 아무것도 모르던 저 새끼한테 바칩니다.’ 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그때 걔는 음악을 계속 할지, 나중에 이 사진이 자켓에 쓰일지 상상도 못하고 그저 똥 폼만 잡고 있는 거거든. (웃음) 





    힙플: 앨범 자켓이 된 사진 외에 이 앨범의 영감이 된 가장 큰 사건은 뭐가 있나? 


    일 : 사운드적으로는 아마 당시에 내가 듣고 있는 음악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겠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 같고. 정신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딥플로우(Deep Flow)다. 딥플로우랑은 1년 전부터 뒤늦게 알고 지내왔는데, 결국에 이 앨범을 정규 단위로 내게 된 건 딥플로우 덕이 크다.




    힙플: 그 말은 [양화]가 이 앨범의 영감이 됐다는 말인가? 


    일 : 양화를 듣기 이전에도 딥플로우와 술을 몇 번 먹었는데, 딥플로우가 항상 나한테 하던 얘기가 ‘형 정규내야 돼요. 정규를 내야만 보여줄 수 있어요. 보여줘야만 해요’ 라는 말이었다. 걔는 디스코그래피를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나에 대해서 얘기 좀 해달라고 했을 때는 항상 ‘디스코그래피가 중요해요’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했더니 ‘형 정규 내면 분명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정규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에 [양화]가 나왔지. 자극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의 정신적인 영감을 그 인물과 그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걔한테 이걸 직접적으로 얘기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마 걔도 대충은 알고 있을 거다. (웃음)




    힙플: 이 앨범이 정말 좋았던 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 의도한 부분이 있나? 


    일 : 트랙리스트 순서대로 노래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이거 만들었다 저거 만들었다 하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딱히 트랙배치에서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중에 보니까 어떤 시간 순서대로. 끼워 맞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나 그 사진을 보고 나서 정하게 된 기본적인 구성은 옛날의 나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걸 끌어와서 지금의 내가 어떻게 걔를 바라보는지 이야기하고, 미래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곡마다 할 얘기들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힙플: 앨범의 흐름을 따라서 ‘Beer In My Backpack’까지 들었을 땐 ‘98 힙합키드의 생애가 화려하진 않아도 꽤 잔잔한 영화가 됐다고 말하는 것 같다. 딱 현재의 모습인 것 같다. 


    일 : 그때는 굉장히 모났었고 센척하는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한번은 ‘Beer In My Backpack’을 듣고 피타입 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거 완전 너 같다’라고 하더라.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곡은 그냥 지금의 내 상태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즐겁고,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있고, 고통이 없는 상태랄까.. 예전에 비하면 정말 그렇다. 왜냐면 예전에 했던 센 척들. 차 위에 올라가서 혀로 볼을 빨아서 간지나는 표정 지으려고 하고..(웃음) 그런 것들이 일종의 두려움 같은 거거든. 도마뱀이 날개 펼쳐서 쌔 보이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두려움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다. 




    힙플: ‘Beer In My Backpack’을 타이틀로 정한 이유라면? 


    일 : 원래 난 타이틀을 정하지 않는 주의라서 맨 처음에는 타이틀을 어떤 곡으로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음원 사이트에도 걸어야 하고 하니까 정하긴 했는데, 처음에는 ‘Made In ‘98’을 하려다가, 사람들한테 들려줬을 때 조금 더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냐 라는 의견이 있었고 나도 거기에 동의를 해서 그냥 정했다. (웃음)




    힙플: 결국엔 ‘자유로운 존재’가 되면서 앨범을 종착시킨다. ‘눈떠’라는 곡은 자유를 얻게 된 어떤 계기가 될 것 같다.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 


    ‘눈을 감고 나의 정신 떠

    더 깨끗하게 보였지 높이서 

    다시 말해 제자리에 앉은채

    내 세상을 바꿔놨지 단숨에

    행복해졌어 갑자기 새 길을 텄어..’ – 자유로운 존재




    일 : 음.. 2012년 이전에 스나이퍼 사운드에서 나오면서 어떤 슬럼프 같은 걸 겪었다. 그때 음악을 접을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맨날 술만 마시면서 폐인처럼 살았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살다간 정말 병신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살아나보려고 이것 저것 책도 많이 읽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존재’의 가사 2절에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단숨에 내 세상이 바뀌어있었다는 가사가 있는데 정말 명상을 통해서 한 순간에 내 마인드를 바꿔놨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알게 됐고. 다시 음악을 해서 나를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즈음에 믹스테잎도 내고, 팩토리보이도 만나게 된 건데. 그러니까 어떤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아무도 날 구원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정신차리게 됐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힙플: 스나이퍼 사운드 시절의 일리닛은 분명 어떤 부분에선 궤도에 오른 랩퍼였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공백도 길었고 말이다.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나? 


    일 : (웃음) 궤도에 올랐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며 들어봤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솔직하게 말하면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였다. 물론, 그때의 음악들이 부끄럽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나 자신을 보여줬다기 보다는 내가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이런 길로 간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워너비적인 모습들.. 물론, 그것 또한 내 선택에 의한 거였지만 뭔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느낀 순간에도 절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냥 나는 여기서 끝이구나, 난 그냥 이런 음악 하는 사람이고 이 틀을 절대 깰 수가 없구나’ 


    모든 걸 리셋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빠지다 보니 모든 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거지 (내 커리어가)거짓말 같았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은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할 말도 없는 상태로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힙플: 스나이퍼 사운즈 자체나 당시를 함께 했던 동료들에 대해서 지금은 어떤 감정인가? 


    일 : 음.. 죄송한 것도 있고, 감사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 지금 막 떠올려보면 어찌됐든 모든 걸 선택한 건 나였기 때문에 그들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손가락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억지로 ‘앨범 안내면 죽여버릴 거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웃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크다. 차라리 그때 내가 먼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라는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런데 나조차도 어떤 흐름에 편승한 채로 살았기 때문에 그건 나의 잘못이 분명하고, 지금은 오히려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힙플: 답변 내용이 마치 ‘Half-Duplex’의 가사의 구절 같다. (웃음) 


    ‘사건마다 자신을 대변하는 lawyer 

    피고석엔 남 아닌 내가 앉아 

    남 탓이나 덕 없이 전부 나의 책임인 게 보여’ – Half-Duplex



    일 : 맞다. 피해자도 나고, 가해자도 나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힙플: Half-Duplex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한쪽 방향에서만 통신이 가능한 방식’이다. 이 곡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일 : 그 곡은 사실 옵티컬아이즈 엑셀(Optical Eyes XL)이 자기 앨범에 넣으려고 만든 곡이었다. 심지어 이미 가사도 있었는데, 그걸 들었을 때 내가 빡 꽂혀버려서 나도 가사를 바로 쓰기 시작했다. 통일성을 주기 위해서 엑셀이 써놓은 첫 구절 ‘얼굴은 어려도’로 시작을 하는데 하다 보니까 그냥 중구난방 별에 별소리를 다하게 되더라. (웃음) 결국에 말하고 싶었던 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고, 나는 내가 너무 좋고,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건 상관없고, 모든 걸 내가 책임진다였다. 




    힙플: 단순하게 외골수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XL의 경우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시켰다.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들.. (웃음) 


    일 : 맞다. 각자 조금씩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제목을 정하기 전에 이 가사들을 보면서 이건 그냥 술자리에서 존나 취해가지고 사람들이 듣던 말던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해대는 그런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소주테이블’ 이런 제목을 생각했었는데 엑셀이 ‘Half-Duplex’ 라는 제목을 던져줬다. 단방향 통신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일방적인 얘기를 하는 거다.




    힙플: ‘Half-Duplex’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보상 없는 씬 혹은 시스템에 대한 일방적 고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 : 처음 제작 의도가 그렇지는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씬에 대한 시각을 일방적으로 꾸역꾸역 전송한다는 점에서 맞는 얘기다. 




    힙플: 그러고 보면, 이번 앨범에 참여한 피쳐링진들은 대부분이 불한당의 프로젝트 앨범 [A.T.C.N]에서 커넥션이 이어져온 것 같다. 피쳐링진들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된 건가?


    일 : 말한 대로 저스디스(Justhis)나 넉살은 불한당에서 냈던 [A.T.C.N]이란 앨범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나는 피쳐링을 정할 때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고, 함께 놀면서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생각났던 게 이들이고, 흔쾌히 작업을 해줬다. 




    힙플: 프로듀서들의 비중을 이번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XL과 페임 제이의 존재감이 눈에 띄는데 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일 : 사실 나도 비트를 몰래 찍고 있는데, 너무 좆밥이어서 이번 생에는 절대 세상에 못 나올 거 같지만.. (웃음) 어쨌든, 페임제이는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사운드나 느낌을 나의 흥얼거림이나 대화를 좀 하는 걸로도 그걸 캐치해서 내 의도와 거의 일치하게 소리로 만들어내는 수준이다. 둘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는 것도 있지만, 정말 뭔가 합이 잘 맞는다. 


    XL이랑도 일주일에 한 번씩 조기 축구회처럼 무조건 만나서 놀듯이 작업을 한지 한 6개월 정도 됐는데, 그 작업들 중에서 제일 느낌 있고, 내가 지금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뽑아냈다. 한 마디로 페임제이와 XL은 늘 상 함께 하고 있는 만큼 정말 순산했던 작업들이었던 것 같다.




    힙플: 다른 얘기로 일레븐과의 프로젝트 앨범은 앞으로 또 기약이 있는 건가? 


    일 : 최근에 이 앨범을 만들려고 집중하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보류중인 상태다.




    힙플: 오랫동안 폼을 유지하고 있는 베테랑 중 한 명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일 : 그런데 그게 기이한 현상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그럴만하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가 맨 처음으로 작품을 냈던 게 십 몇 년이 지나긴 했지만, 그 사이에 음악을 안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거든. 그때 계속 열심히 하고 있었으면 지금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니 지금 이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는 너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힙플: ‘Rap Superstar 보다는 Livin’ hiphop이 나의 꿈’ 같은 구절을 보면 애초에 거창한 야망가와는 거리가 먼 타입 같기도 하다. 


    일 : 그게 나한테도 되게 중요한 구절인 게, 나는 아버지가 음악을 하는 걸 반대하셨기 때문에 항상 뭔가를 거스르면서 이걸 했어야 됐다. 우리는 아직까지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흑인 아티스트들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옆에서 힙합음악을 듣고 있고, 삼촌이 음악을 들려주는 그런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저 평범한 한국애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정말 큰 인물이었거든. 모든 것 앞에서는 쫄지 않을 수 있는데 그때의 아버지는 정말 두려운 존재였고, 굉장히 오랫동안 뭔가를 거스르면서 꿈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제서야 인정하시고 좋아해주시는데.. (웃음) 당시에는 그걸 거스르면서 아버지의 뜻과 나의 꿈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다 보니까 항상 길을 잃은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그냥 리빙 힙합만 할 수 있어도 존나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랩 슈퍼스타도 물론 좋지만, 그건 리빙힙합을 해야만 갈 수 있는 다음 레벨이기 때문에 리빙 힙합도 못하는 상황에서 바랄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 마인드 셋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리빙힙합만 해도 좋은 거지. 내가 이렇게 입고 이렇게 말하고,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면 충분하다. 




    힙플: 그럼 지금은 어떤가? 랩스타를 꿈꿔 볼만한 시대 아닌가? 


    일 : 맞다. 지금까지 얘기한 건 온전히 내 이야기인 거고, 모두의 경우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한테 랩 슈퍼스타를 꿈꾸냐고 물어보는 거라면 되면 좋지만, 아님 말고다. 그러니까 목표는 그냥 음악을 계속 하는 거다. 물론, 슈퍼스타가 된다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안전한 보험이 될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명세로 골치 아프고 싶지는 않다. (웃음) 지루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명성이라는 걸 혐오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위선적이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힙플: 아마 많은 랩퍼들이 비슷한 딜레마를 겪을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씬을 보면 어떤가? 그런 혐오감이 번지기도 하나


    일 : 그런데 이게 웃긴 건, 나 스스로한테만 그런 강박이 있고, 씬에 대한 거시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어떤 심사위원으로서 여기를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이래야 한다. 이대로 한국힙합 괜찮은가? 쇼미더머니 괜찮은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에너지를 들이는 게 너무 귀찮다. 만약 FAME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슨 자연인 같은 이야기로 빠지는 것 같은데 (웃음) 그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걸 수도 있겠다. 넌 네 거 하고, 난 내 거 하고 




    힙플: 예전 인터뷰를 보면, 지금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 똥고집을 부려보는 중이라는 말을 했었다. 주변에 동료들이 쇼미더머니에 참가하는 걸 보면 나가고 싶지 않나? 


    일 : ‘항상’이라는 노래에서 가사로 그 얘기를 했다. 물론, 내가 나가는 상상도 당연히 해봤다. 샤워할 때 쇼미더머니 나간 것처럼 프리스타일 해보고 막 해봤는데.. (웃음) 존나 이상하더라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나는 그냥 시청자가 어울린 다는 거였다. 이번에는 시청도 많이 못했지만, 그건 내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에 나가서 잘된 사람들을 우러러 보지도 않고, 나가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걸 왜 부끄러워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단지 내 것이 아닐 뿐이지 그걸 선택한 모든 사람들한테 나름의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힙플: 만약 다음 시즌에 프로듀서 제의가 들어온다면? 


    일 : 안 들어올 거다. (웃음) 생각 안 해봤다.




    힙플: 1년 동안 랩퍼사냥이라는 피드백 컨텐츠를 진행했다. 최근의 신인들을 보며 든 생각이 궁금하다. 


    일 : 물론, 못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들었을 때 충격적인 것들도 있었고. 그런데 뭐든지 그렇지 않나 피라미드처럼 되어있어서 못하는 사람만큼 잘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랩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인구가 많아졌을 뿐이지 현상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컨텐츠는 그 안에서 좋은 걸 찾아서 피드백을 해주는 거였기 때문에 아닌 것들은 아니라고 얘기 했다. 그리고 그 컨텐츠를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던 건, 한 달에 한 번씩 딥플로우랑 술제이 만나고 락힙합 사람들 만나서 술 먹는 거였다. 그런 것들이 되게 재미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고찰을 하거나 이런 건 없었던 것 같다. 




    힙플: 그들 중 주목할만한 신인을 찾아냈나? 


    일 : 흠.. 지금 딱 물어봤을 때 기억나는 인물이 얼돼 밖에 없는 것 같다. 되게 느낌 좋았다. 그렇지만, 평가라고 하기 애매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나름의 상대평가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절대평가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그렇게 눈에 띌만한 신인은 없는 편이었던 것 같다. 




    힙플: 지난 앨범 [Airborn]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피지컬 앨범으로 발매했다. 


    일 :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있었지만, 피드백을 받기 전부터 내가 이 앨범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CD를 구워서 나오기 2주 전부터 혼자 듣고 있었는데 그냥 내가 듣기가 좋더라고 (웃음) 그래서 CD를 내가 하나 가지고 싶었다. 나중에 더 나이 들었을 때 한번 꺼내보고 싶고. CD는 이제 프린팅 하고 있고, 아마 12월 중순 정도에 발매하게 될 것 같다.




    힙플: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에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이 있다면?


    일 : 만약 한 곡만 꼽으라면 ‘Made In ‘98’이다. 마치 사진 속에 있는 나처럼 만들 때는 몰랐는데 나한테 정말 중요한 트랙이 됐다. 할 때는 대충 재미있게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의미가 깊더라고. 




    힙플: 혹시 못다한 말이 있다면!


    일 : 힙합플레이야에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왔을 때 되게 기분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좋은 피드백 해주신 분들도 너무 고맙다. 난 계속 할거니까 앞으로도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기사작성 | 차예준 (HIPHOPPLAYA.COM)


    일리닛 (https://www.instagram.com/jayi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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