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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힙합에서 '올드스쿨'과 '뉴스쿨'의 구분
    힙합 아카이브/힙합 2012. 9. 25. 23:57

    Old School Vs. New School  (출처: zennscript.com)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는 Rap Dictionary에 따르면, '스쿨(School)'이라는 말은 '힙합사에 있어서의 특정 시기(a specific era in hiphop history)를 의미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보통 25~30년 사이의 힙합의 역사를 두개의 시기로 나눠서 올드 스쿨과 뉴 스쿨로 구분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구파, 신파 정도가 되겠다. 누가 언제부터 이 스쿨이라는 말을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런 이분법은 10년 이상 힙합 씬에서 일상적인 용어로 통용되어 왔다. 음악적 대화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어지는 보편성이나 일반성에 비해, 명확히 합의된 개념이나 통일된 기준이 없다는 점은 의외로 놀랍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Rakim은 뉴 스쿨 아티스트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올드 스쿨 아티스트이다. 즉, 필자나 화자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기준에 따라 양 스쿨에 포함되는 시기 및 아티스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구분의 기준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적으로 음악이 어떻게 변화해왔고, 무엇이 그 변화의 기점이 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그 변천의 흐름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여러 가지 변화 중에서 어떤 변화에 무게중심을 두느냐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각각이 가지는 기준 마련의 근거가 달라진다. 이렇게 다양한 기준들이 같이 통용되는 것은 25년 정도의 (타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면 짧은 기간 안에 힙합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어 왔고, 그 하나 하나의 변화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와 중요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럼 몇 가지 주요한 기준들과 그 기준의 근거가 되는 생각들을 살펴보자. (이 기준들은 모두 Rap Dictionary에 소개된 것들이고, 그 근거에 대한 주석을 필자가 덧붙인 것이다.


    ■ Run DMC 이전과 이후 (1984년)

    이 기준은 세대 개념의 구분법이라고 할 수 있다. Run DMC 이전의 원조 1세대 힙합 뮤지션들(ex. Kool Herc, Grandmaster Flash, Cold Crush Brothers, Sugar Hill Gang, Treacherous Three, Funky Four Plus One 등)만 올드 스쿨, 이후 등장한 2, 3세대 뮤지션들은 모두 뉴 스쿨로 보는 견해이다. 두 시기를 구분하는 기준들 중에는 가장 빠른 시점을 가지는 것으로 올드 스쿨의 포함 범위가 작아 때로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즉, 올드 스쿨의 포함 범위가 작은 만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올드 스쿨과 뉴 스쿨의 범위에서 빗겨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특히 80년대 중반에 등장한 아티스트들이 이런 축에 속하는데, 위에서 예를 든 Rakim, 그리고 LL Cool J나 기준이 되고 있는 Run DMC도 엄밀히 이 기준을 따르자면 뉴 스쿨이지만 말하는 이에 따라서는 올드 스쿨로 분류된다. 뚜렷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가장 간단 명료한 기준이긴 해도 그렇게 일반적인 기준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 Public Enemy의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앨범 이전과 이후 (1988년)

    이 기준은 힙합의 메시지적 측면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 앨범 이전에도 Grandmaster Flash & Furious Five의 "message"와 같이 사회비판과 현실고발의 내용을 담은 곡들이 있었지만 올드 스쿨 랩의 가사는 주로 놀고 마시는 파티와 자기과시를 메인 테마로 했었다. 이 앨범 이후 Public Enemy, Boogie Down Production, 기타 Nation Of Islam(미국 이슬람교 총단)에 귀의한 여러 힙합 뮤지션 들(ex. X-Clan, Rakim, Gangstarr, Pete Rock & CL Smooth, etc..)에 의해, 랩 가사에 계몽성과 정치성을 담은 음악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 N.W.A. 이전과 이후 (1988년)

    이것은 웨스트코스트의 갱스터 랩 무브먼트(88년 NWA의 앨범)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올드 스쿨로 그 이후를 뉴 스쿨로 보는 입장이다. 이 기준은 아마도 G-Funk와 갱스터 랩이 힙합 씬 전체를 뒤덮을 듯한 기세를 떨치던 90년대 초-중반, 그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갱스터 랩의 조류가 거대한 것이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의 시점까지 적용해서 기준으로 삼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 기준의 문제점은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 랩 씬이 95년이후로는 거의 맥을 못추고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흐름이 크긴 했어도 이기준을 전체 힙합사와 씬에 적용시키기에는 좀 하자가 있다.

    ■ Native Tongue Family 이전과 이후 (1989~91년)

    이 기준의 근거가 되는 앨범은 De La Soul의 <3 Feet High And Rising>('89)과 A Tribe Called Quest의 ('91)이다. Native Tongue Family 소속 아티스트들이 내놓은 일련의 앨범들은 이전의 앨범들이 가졌던 목적(Entertainment or Education)을 벗어나 힙합을 순수한 예술적 형식(Art Form)의 하나로 한 단계 진화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전자는 힙합사상 최초의 concept 앨범으로 꼽히고 있고 후자는 힙합 사운드의 혁신을 이루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후자의 앨범은 힙합 사운드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독자적인 사운드로 발전되는 그 끝마무리 점이자 새로운 사운드가 시작된 기점으로 본다.

    ■ MC Hammer & Vanilla Ice 이전과 이후 (1990년경)

    산업화와 상업화는 다른 말이다. 힙합이 79년 이후 음반 시장에 진입하며 산업화되고, 음악에서의 상업성이라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아티스트의 창작 활동에 개입되어 왔어도 힙합의 플레이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게임의 법칙(도덕률?), 또는 장르 자체가 가지는 내적 충실성(integrity)은 어떤 한도 내에서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엠씨 해머 이후 힙합은 넘어서지 않아야 할 어떤 선을 넘어 버렸다. 팔아먹기 위해 장르 자체가 도구화되었다고 할까? 엠씨 해머와 이후 등장한 몇몇 스타 플레이어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힙합이 대중의 입맛에 영합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팔리게 되고 팝 랩(Pop Rap)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 밖에 랩 스킬 상의 변화를 주요 근거로 보아 KRS-One과 Rakim의 등장(86년경)을 두 스쿨의 경계로 보는 견해도 꽤 있다. 이 둘의 등장 이후로 라임 패턴이 복잡해지면서 올드 스쿨 특유의 4마디로 딱딱 끊어서 가는 규칙적인 플로우가 조금씩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견해도 꽤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Wu-tang Clan의 ('93)이나, Dr. Dre의 ('92), Souls of Mischief의 <93 Til Infinity> ('93) 같은 각각의 앨범들을 구분의 경계로 주장하는 견해도 있긴 한데 이런 것들은 있다는 것만 알고 그냥 넘어가도 되겠다.

    이상 몇 개의 기준들과 그 기준의 근거에 대해 훑어보았는데, 어느 하나가 적확한 기준이라고 못박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각각의 기준들은 힙합의 발전사에 있어 나름대로 중요한 변환의 기점이 되고 있고 딱히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삼아 이쪽은 이거고 저쪽은 저거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에는 주저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대, 메시지, 사운드 그리고 랩 스킬 상의 흐름의 변화가 어느 한 순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 년간의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그러나 비순차적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하나로 이어져 있는 연장선상의 어느 한 점을 삭뚝 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어느 한 해, 한 아티스트 혹은 한 앨범을 딱 꼽아서 구분하기 보다, 87년에서 91년 사이를 크게 변화의 점이지대로 삼아 그 전후를 나눈다. 즉, 87년~91년은 올드 스쿨과 뉴 스쿨이 혼재하는 변화와 격동의 시기, 그 이전은 완전히 올드 스쿨, 그 이후는 완전히 뉴 스쿨로... 위에서 말해졌던 기준들도 처음 Run DMC로 나누는 기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87년 이후의 것들이다. 87년 경부터 해일처럼 일어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힙합은 하나 둘 씩 올드 스쿨의 딱지를 떼어가다가 91-92년 사이를 즈음해서 이 변화들을 서서히 마무리하고 92년 이후로는 완전히 뉴 스쿨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도 80년대 후반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90년대 초반 이후를 뉴스쿨로 보는 것은 거의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힙합학자도 아니고, 굳이 이런 것들을 세세히 따져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하는데, 독자들께서는 그저 이런 견해들이 있다는 정도만 아시고 대충 양분되는 맥의 흐름들을 짚고 계시기만 하면 될 듯 싶다. 기회가 될 때마다 중요한 앨범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들어 보면서 '아.. 이쯤에서 음악들이 이렇게 변하는구나'하고 확인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음악 감상법이 될 듯... 그렇지만, '올드 스쿨, 촌티 나서 싫어!!! 나는 요즘꺼만 들을거야' 이러셔도 당연, 무방하다. 취향이 아닌데 굳이 하기 싫은 고적답사를 할 필요는 없다. 끝으로 이런 용어적인 문제, 개념적인 문제는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글을 맺는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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