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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술의 전통과 랩 그리고 힙합 (글 박애경)
    힙합 아카이브/랩 2012. 1. 8. 23:07



    구술의 전통과 랩 그리고 힙합

    박애경  

      1992년 여름은 랩의 충격으로 시작했다. 한국 메탈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의 정현철이 두 명의 춤꾼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스래쉬 메탈(thrash metal, 일반적인 메탈보다 더 거친 사운드를 가진다)의 금속성 사운드와 댄스 리듬, 거친 지껄임, 익숙한 멜로디가 혼재된 <난 알아요>는 기존의 가요와는 다른 감성과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낯선 이 음악은 단번에 10대의 감수성을 장악했다.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서태지 신화는 '랩'이라는 새로운 양식과 함께 출현한 것이다. 강렬한 리듬과 랩, 익숙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난 알아요>는 90년대를 평정한 랩댄스 가요의 전범이 되었다. 서태지에서 촉발한 랩에 대한 관심은 랩의 기원을 찾으려는 부산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랩이 '지껄이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 흑인 하위 문화의 일환이라는 것은 랩의 충격 이후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댄스 불패의 신화는 이처럼 랩의 열풍에서 시작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에도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아 본 적이 없었던 흑인 음악이 우리 나라에서 급작스레 주목받기 시작했고, 한국인은 유난히 멜로디를 좋아한다는 통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랩 열기는 자연스럽게 이를 배태한 힙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힙합(Hiphop)은 세기말을 지나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 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힙합이 전 세계 젊은이의 감수성을 장악하고 패션, 나아가 문화 코드를 통일한 사건은 20세기 대중 음악사를 바꾼 한 장면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힙합이란 원래 랩을 중심으로 춤, 패션, 거리 낙서(그래피티, graffiti)등을 총괄하는 흑인 하위 문화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슈가힐 갱(Sugarhill Gang)이 1979년에 발표한 노래 <래퍼의 즐거움(Rapper's Delight)>에서 랩 뮤직, 브레이크 댄스, 거리 낙서를 힙합 문화의 라이프 스타일로 지정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힙합의 시작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재즈의 요소와 흑인 특유의 에토스, 저항 의지를 담은 가사를 결합한 힙합은 자연스럽게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세대의 하위 문화와 7,80년대 세대를 통합시켰다. 이 가운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랩이었다. 랩은 DJ 믹싱의 기계 조작에서 출발하여 육성으로 하는 리얼 랩으로 옮아가며 흑인 민족주의를 전파하는 유력한 통로가 되었다.

       힙합은 80년대 들어서 게토의 비 보이(B-boy, 우리말로 하면 비행 청소년 정도) 이미지와 흑인 특유의 에토스를 탈색시키려는 비즈니스 전략의 경계 위에서 다양한 변종을 파생시켰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MTV에서 편성한 힙합 전문 프로그램이었다. 흑인 하위 문화에 머물던 힙합은 이를 계기로 백인 중산층 출신의 청소년들에게 급속히 파고들었다.

       팝음악의 타자로, 흑인 중심주의 - 정확히 말하면 아프로아메리칸 Afro-American 중심주의 - 의 음악적 발현으로 출발했던 힙합은 이후 보편적 음악 문법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랩은 만국 젊은이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힙합계의 여걸 로린 힐(Lauryn Hill)의 솔로 데뷔 앨범 <잘못된 교육(Miss education)>이 보수적이라는 평판을 받는 그래미상(1990)을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은 힙합이 대중음악의 승자로 부상했음을 내외에 선포하는 의식이었다. 슈가힐 갱의 노래가 나왔던 1979년, 힙합과 랩의 운명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힙합과 랩의 열풍은 노래의 형태가 아닌 '구술적 발화(spoken)'가 지배적 음악 양식이 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랩이 인종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고 언어의 경계마저 훌쩍 넘는 동안 배타적인 흑인의 자민족 중심주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지껄임'의 양식만 남게 되었다. 물론 랩의 증식과 다양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것을 부차적인 현상으로 치부해버리는 시선에서부터 흑인 정신의 일방적 후퇴를 지적하는 아카데믹한 견해에 이르기까지 복잡 다양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이야기를 우리 나라로 돌려보자. 한국에서 힙합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댄스 가요의 열풍에 편승해 순조롭게 진입한 후 10대 하위 문화로 정착했다. 방송에서 고만고만한 랩댄스 가요를 되풀이하여 틀고 있는 동안 거리의 10대들은 힙합 패션과 춤에 열광했다. '강남은 힙합 강북은 복고'라는 말은 10대를 넘어 20대에까지 침투한 힙합 패션의 열기를 보여준다면 대학로와 노원역의 이른바 '힙합돌이'는 춤이 10대의 자기 표현방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음악보다 패션 코드와 춤으로 힙합을 체득한 것은 90년대 중반 잠시 불었던 재즈 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으로서의 재즈 붐이 컴필레이션(compilation) 앨범 몇 개로 끝나며 여피들의 배경음악으로 정착된 데 반해 힙합에서는 원류에 가까워지려는 음악적 움직임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힙합의 종주국에서 건너온 수입 래퍼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업타운과 원타임, 드렁큰 타이거 등 미국 흑인가에서 성장한 경험을 지닌 래퍼들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도전적인 발언을 던지며 본토의 힙합을 한국에서 재현하려 애썼다. 본토 힙합의 재현은 한마디로 '얼마나 흑인과 가까워지는가'에 집중되었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영어 랩을 구사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힙합 씬은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대거 가세하며 한결 풍성해졌다. 주로 신촌의 라이브 클럽 '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한국어로 된 랩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자국어 랩의 영역을 개척하는 한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을 확고히 구축했다. 주류에서는 DJ DOC같은 래퍼들이 '양아치 정신'을 공공연히 표방하며, 게토의 언어인 랩이 뒷골목 은어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각기 다른 진영에서 진행되어 온 모색은 <2000 대한민국>과 같은 편집 앨범을 통해 '소통'을 전략적으로 도모하는 단계까지 진입하고 있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힙합이 순조롭게 정착되어 자국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수많은 나라 중에서 유독 이곳에서 힙합이 성공적으로 정착된 이유는 비료적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힙합의 핵심을 이루는 랩은 '제2의 구술 문화'의 도래를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안전한 방법으로 알리고 있다. 아니 랩이야말로 각 문화권 속에 잠재되어 있던 구술의 전통을 아주 시의적절하게 호출해냈다고 할 수 있다. 잠복되었던 언어가 리듬에 실려 하나씩 드러날 때의 폭발적인 힘과 강렬한 교감은 시 낭송의 전통을 그린 영화 <슬램(Slam)>에서 실감나게 재현되고 있다. 마음 속에 쌓여 있던 분노는 자연스럽게 랩으로 터져나오고 랩은 또다른 랩을 호출한다. 흑인들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구술 언어의 전통이 게토의 삶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랩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 역시 구술 언어의 전통이 깊고 비교적 충실히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입에 들러붙는 4·4조에 대한 선호는 가사라는 중세적 장르가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삼행시나 사행시 짓기도 비록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는 있지만 잠재된 구술 문화의 전통이 일상의 영역에서 약간 뒤틀린 형태로 발휘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랩은 곧 판소리 사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구술 언어의 전통과 이를 문화적으로 범주화하려는 시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판소리 사설과 휘모리 잡가에서 말을 이어가는 '엮음'의 방식은 랩의 즉흥성, 상황 의존적인 발화, 장황하고 논쟁적인 어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구술 언어의 전통과 아주 행복하게 합치되고 있다. 랩이 짧은 시간에 지배적 양식으로 자리잡은 요인은 이처럼 우리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래 문화인 랩과 구술 언어인 판소리의 사설의 상관성>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문화 모두 구술 언어의 전통을 기본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관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판소리 가설과 휘모리 잡가에서 말을 이어가는 구술의 방식은 랩의 즉흥성, 상황 의존적인 발화, 장황하고 논쟁적인 어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구술 언어의 전통과 합치되고 있는 것이다. 랩과 판소리는 또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주절주절 아무거침 없이 나타낸다는 면에서도 상관성을 나타낸다.

    주제 : 구술 언어의 전통과 랩 그리고 힙합의 상관성

    요지 :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랩과 힙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구술 언어의 전통과 그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글의 구조

     1)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음악 등장
     2) 랩에 대한 관심
     3) 랩 열풍과 힙합에 대한 관심
     4) 힙합의 기원과 문화적 영향
     5) 힙합의 급속한 전파
     6) 힙합과 랩이 음악적 대중화
     7) 구술적 발화로서 힙합과 랩의 열풍
     8) 10대 하위 문화로 정착한 한국의 힙합
     9) 원류에 가까워지려는 힙합의 음악적 움직임
     10) 래퍼들에 의한 힙합의 정착 과정
     11) 제2의 구술 문화로서의 힙합
     12) 구술 언어의 전통과 랩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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