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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광선에 쏘인 신촌책방
    글/기고문 2010. 10. 25. 04:20

    <아가천사> 2006년 1월호
    달광선에 쏘인 신촌책방



    신촌 구석진 골목의 아름다운가게

    신촌 기차역 근처의 주택가 막골목. 그 앞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가게가 있다. 자칫하다간 꽁꽁 얼어붙는 겨울바람을 맡으며 1시간이나 헤메일 수도 있지만, 손님들은 포기하지 않고 이곳을 찾아 원망과 기대를 한 번에 쏟아낸다. 따뜻한 백열등 아래 가지런히 혹은, 삐뚤빼둘 놓여있는 책들은 어느 책방과도 달라 보인다. 긴 지구여행을 마친 보헤미안의 손길이 닿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 수채화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한 책장들과 그림들, 버려진 것들을 모아 만들어낸 화분이며 의자들은 저마다 살아있는 숨을 내쉰다.

    책방지기, 달광선을 만나다

    이곳은 아름다운가게의 헌 책방이다. 재단의 기부문화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류무종 선생님이 선뜻 내어주신 기금으로 보물섬에 이어 두 번째 책방이 태어났다. 책방 공간은 가게 역사상 처음으로 한옥이다. 그것도 바로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하루 종일 열명이나 될까한.., 나는 이곳을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이 충만한 재활용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한 번 오고 나면 영원히 머리 속에 각인되는 책방이 되고 싶었다. 그런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누군가는 어디 있을까. 나의 헤메이는 발걸음은 결국 홍대 놀이터 골목 어귀의 작은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버려진 것들을 살려낸 방랑자들의 가게. 그곳에는 여성 수공예 작가팀 ‘달광선 프로젝트’와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활용은 모험, 44일 간의 끈질긴 작업

    달광선은 자신있어 했다. 나 또한 달광선을 100% 신뢰했다. 청학동이라는 주점을 달광선이 쏘이는 신촌책방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매일같이 꿈을 꾸었다. 한옥은 어려웠다. 썩어가는 서까래, 날아온 조각처럼 몇 개 남지 않은 기와, 현대식으로 꾸민다고 꽁꽁 막아버린 사방의 벽들. 달광선은 철거부터 시작해야 했다. 손망치 두 개로도 벽은 허물어 지고 막혀있던 하늘을 훤히 뚫린다. 이곳에 하늘 뚫린 정원을 만들고 자연과 소통하는 에너지를 책방에 불어 넣을 수 있겠지! 11월이 되면서 문도 없는 이곳에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지만 속도는 좀처럼 붙지 않았다. 필요한 재료들을 어디선가 주워오고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새롭게 만들어 내기까지는 예술가의 인내처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지연되고 오픈일은 다가오는데 책방은 하루 전까지 어수선하기만 하다.

    12월 1일 손님 마중하기

    오픈 당일 새벽 3시, 우리는 작업을 중단하고 청소부터 하기로 했다. 책들은 분류별로 꽂지도 못했다. 새벽의 어스름에 짓눈개비가 뿌려오는데 모두의 머리 속은 멍했다. 달광선은 예상과 달리 시간에 쫓겨 만들어 내고 싶던 작품들을 반도 만들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더욱 피로했다. 아침 10시, 초청손님들과 가게 식구들이 하나 둘 책방에 찾아오기 시작하고 11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의 발걸음은 북적이지는 않지만 끊이지 않았다. 팔려나간 책들의 빈자리를 사람들의 감동으로 채워나갔다. 되살리는 일, 충혈된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재활용 작업의 고된 시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밤, 달광선과 까페에 둘러앉아 조금은 편안해진 숨을 내쉬며 보충해야 할 작업들에 대해 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촌책방은 현재 진행형

    미완된 작업들이 남아서기도 하지만 책방은 매일매일 변화하는 진행형이다. 무엇이 필요하면 당장 불편하더라도 쉽게 사지는 않는다. 어디엔가 필요한 것이 버려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없으면 만들어 보기라도 해야지. 7시가 지나면 책방에서 모임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기도 한다. 환경 메세지가 담긴 쪽지들을 살짝 붙여 놓기도 하고 전기를 된통 잡아먹는 온풍기 대신 20년 전 구식 석유난로로 추위를 녹여본다. 석유문명의 고별을 상징하는 마지막 퍼포먼스 같으니까. 언젠가 기와가 없는 지붕을 태양열 판으로 덮어 보고 싶다. 손님들이 늘 변화의 에너지 속에서 초록으로 충전될 수 있도록 책방은 골목 깊이 숨을 들이쉬며 식물성 삶을 살고 있다.

    글/ 박하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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