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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비트메이킹, 오마주와 표절 사이에서 길을 잃다 (출처 리드머)
    힙합 아카이브/한국힙합 랩 2011. 3. 1. 01:17
    한국의 비트메이킹, 오마주와 표절 사이에서 길을 잃다
    글. 황순욱 / 업데이트. 2008-12-15



    먼저 어디까지나 이 글은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된 '차가운 비판'임을 밝혀둡니다. 그렇지 않다면 애써 게으른 제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이렇게 발언을 할 이유가 없었겠죠. 한편, 모자란 지식과 어설픈 표현 때문에 생기는 오해와 오류는 조언을 해주시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짧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씬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면 소명을 다한 거라 스스로 자위하며 그럼 이야기를 풀어보죠.

    발단은 이것입니다. 며칠 전과 오늘 저는 한국힙합이라는 이름 아래 있는 몇 개의 신곡을 들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메인스트림의 곡이고, 다른 것은 다들 아시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곡입니다. 당연하게 기대를 했었죠. 그런데 웬걸? 그 곡들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본 미국의 곡을 그대로 흉내 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뭐 사실 크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이런 경험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는 지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 짚고 넘어갈 것은 이것이 그저 힙합 씬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힙합 혹은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 이미 가요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것을 마냥 두고 볼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만약 이것이 작은 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저 사소한 아마츄어의 욕심으로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이미 공중파에 나와 이러저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수들을 통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는 일반대중의 영역까지 넓어집니다. 대중은 마냥 듣기만 하는 바보가 아닙니다.

    이런 반론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오마주다. 저는 이것이 그냥 말장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것들은 분명히 표절이었습니다. 네트워크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을 때 대중보다 많은 음악을 접한 전문가들이 내놓은 그런 곡들은 '아는 사람이 없을 거야'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의도된 표절곡이었습니다. 네. 지금은 아닙니다. 듣자마자 이것은 누구의 곡을 흉내 낸 것이라고 금방 알 수 있고, 모르더라도 곧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러자 표절은 오마주로 바뀌었습니다.

    오마주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자신의 음악이 형성되는 것에 일조했고, 너무나 사랑했기에 굳이 새겨놓는 하나의 새김입니다. 그런데 아직 미국 차트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음악을 따라 하고서는 오마주라니요. 물론 곡이 너무 좋아서 흉내 내 볼 수는 있지만, 이것을 상품으로 둔갑시켜 팔 때에는 원래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힙합 뮤지션이 듀스나 서태지의 가사를 인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듣게 된 언더그라운드의 싱글 하나가 또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몇 년전 요절한 미국 여성 싱어의 히트 싱글을 흉내 내었다는 결과에 도달했습니다. 이것 역시 오마주같습니다. 갖다 베끼기에는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고, 몰래 차용했다기엔 악기 구성이며 모든 것이 너무 똑같습니다(피해가려면 템포라도 바꾸었을 겁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니 상관이 없을까요? 누차 강조하겠지만, 비용문제로 샘플 클리어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모방'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씬의 문제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씬이 단지 메인스트림이 되지 못한 자들의 마이너리그 같다는 것입니다. 언더는 있지만, 인디는 없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인디라는 것은 기획사의 커다란 상업구조 때문에 버려야 할 예술가의 개인적인 목표를 잃지 않고자 애써 독자적인 작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다르게는 메인스트림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작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는 한 주에도 수 개의 힙합앨범이 쏟아져 나옵니다. 물론, 그중에는 패기 넘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선하다고 느끼는 그런 앨범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사운드를 잘 만들고 레코딩을 뛰어나게 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고급스럽고 빛깔이 곱더라도 '모조품'를 지향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래서는 굳이 원본을 두고 사본을 택하여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도 원본이 될 수 있는 스타일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요즘에 나오는 한국의 힙합음악들이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에서 이것들은 자아를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신의 트랜드를 미국의 것과 거의 같은(혹은 뛰어난) 수준으로 만들어 내지만, 반면에 스스로 생각해낸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힙합이 미국에서 온 음악이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적인 것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만들라는 겁니다.

    왜 뮤지션이 예술적 창조자가 아니라 기술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까? 얼마 전 미국에서 스냅 댄스를 유행시킨 젊은 래퍼 겸 프로듀서가 있었죠. 굉장히 단순한 곡이었고, 이것을 듣고 정말 잘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빌보드의 꼭대기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소리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의 음악이 설익었을지언정 자기만의 것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기술적으론 형편없지만, 그것에는 자신의 색이 있었습니다. 누구와 비슷한 무엇이 아니었기에 성공을 한 것이죠.

    한국의 음악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 너무 훌륭합니다. 아마추어들도 그 복잡한 시퀀싱 소프트웨어를 프로처럼 다룹니다. 그렇게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을 모두 따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배워가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좋아서 흉내 내 본 음악이 결과물이 되어 대중에게 손을 흔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술가 자신을 인스턴트 기술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번은 국내의 힙합뮤지션과 팬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한 분의 새 앨범이 미국의 많은 스타일을 능숙하게 재현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프로 중의 프로가 그렇게 한 것은 정신적인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누군가에게 보일 방법은 이제 너무 많습니다. 요즘 이런 것을 만들어 보았다며 블로그에 올렸으면 저도 환영했을 겁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존경받는 한 뮤지션의 새 앨범이었습니다.

    한국의 음악인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 하루 세끼 밥값도 벌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음악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입니다. 누구도 뮤지션이 되어야 할 의무를 가진 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고자' 좋은 것을 따라했다면, 오마주는 다시 표절이 됩니다.

    저는 절대 음악이 상업적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편을 지지합니다. 또한, 이것은 샘플 클리어런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한국의 힙합이 자생력을 갖추기에는 미국씬의 의존도가 너무 높고, 스타일 카피가 아무런 저항없이 행해지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기술과 장비만 있다면 기존의 음악을 흉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뮤지션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좁은 씬에 지원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가난한 예술가가 되느냐? 부유한 기술자가 되느냐? 현실에서 그 답은 쉽게 내릴 수가 없겠지만 나는 차라리 '가난한 예술가'의 음악이 듣고 싶습니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황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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