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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사는 문학이다 (출처 리드머)
    힙합 아카이브/랩 2010. 11. 30. 23:39



    원론적 논의 I - 가사는 문학이다 (1) 
    글. 오승환(Sticky Bits of The UKP) / 업데이트. 2008-12-24
     

    ⑴ 아는 만큼 보인다.
    몇 년 전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문학적인 가사’라는 어떤 이들의 앨범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면 문학이지 문학적인 건 또 뭐지? 문학의 꼴을 한 다른 어떤 것인가?’ 그래서 그 내막을 좀 더 들여다보고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그 속에는 온갖 착오와 오해, 무지에서 비롯된 과도한 용기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씬에는 이런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문학적인 가사란 이야기 형식을 취하며 소시민적 감성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이미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를 시작했어야 했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음악(樂)’은 ‘음악(樂)’이지 ‘음학(學)’이 아니지 않느냐”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음악(樂)’은 굳이 ‘음학(學)’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알고 행동하는 것과 모르고 행동하는 것에는 치명적인 차이가 있다. ‘논의’는 기존의 것에 대한 깨달음과 반성을 주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각설하고, 필자는 지금부터 두 개의 큰 단원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는 ‘힙합’이라는 문화양식 속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사’의 영역을 왜 철저하게 ‘문학’으로 인식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문학의 일부라고 볼 수 있는 가사’에 어떤 단위를 어떻게 적용, 혹은 응용하여 작품 평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본고에서 언급되는 ‘문학’은 전적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논의를 바탕에 둔 것임을 밝혀둔다.

    ⑵ 왜 문학인가?
    먼저 문학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어렴풋이는 알고 있듯이 문학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그리고 문학은 말문학(구비문학)과 글문학(기록문학), 이 두 가지로 존재한다. 즉, 문학은 음성을 통해 말로 전해지는 것과 어떠한 글을 통해 기록되어 보관이 가능한 것. 이 두 가지로 구성되는 것이다.

    (※참고 : 문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글로 적어서 하는 문화활동 전반을 뜻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언어예술을 문학이라고 하는 협의의 개념이 이미 오래 전에 나타났고, 그 범위와 특징에 관한 지속적인 논란 끝에 요즘은 기록문학뿐만 아니라 구비문학도 문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하에 문학을 조금 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문학은 ‘언어(말과 글)로 이루어진 형상과 인식의 복합적 예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렵다. 하지만, 사실 간단하다. 먼저 ‘형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재창조된) 질서를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실용적인 언어가 아니라 어떠한 긴장된 질서를 통해 다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식’이라는 것은 그냥 아무 뜻 없는 말장난이 아니라 그 언어 안에 무엇인가 담겨져 있어 그것을 알(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우선 형상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이나 글이 일상생활에서 쓰일 때에는 지니지 않았던 어떠한 질서를 지니고 있어서 그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이나 글과는 구별된다면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나 상징, 사건의 구성 같은 것들이 모두 그러한 질서의 예이다. 시, 소설, 희곡 등을 문학이라고 해온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바로 그런 것들을 갖춘 데 있다.

    예를 들어 ‘세 번째, Skill. 걸치는 옷이 아닌 Rapper를 움직일 근육이 되지’ (M.C, E-Sens, New Blood Rapper Vol.1 (2008))’라는 가사를 보자. 일상적으로 말하면 ‘Skill은 근육’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구절을 만든 작사가는 ‘근육’이라는 낱말의 속성을 이용해 ‘Skill’이라는 낱말의 개념에 대한 자신의 주관이 잘 표현되도록 ‘다시’ 만들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는 쓰이지 않던 언어가 작사가를 통해 어떠한 질서를 갖게 된 것이며, 이러한 것을 일컬어 ‘형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상은 문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문학은 형상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형상으로써 관심을 끄는 정도가 문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도 아니다.)

    인식의 측면으로 넘어가 살펴보면 ‘인식은 핵심 의미’라는 것만 기억하면 사실 별로 말할 것도 없다. 바보의 중얼거림에도 그 스스로에게는 나름의 중심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다시 만들어낸 이상 의미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개별 작품의 의미적 완성도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말이나 글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어떠한 (핵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만을 전하는 말과 글은 형상을 배제해야 뜻하는 바를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실을 알리는 데 쓰이는 말과 글도 형상화를 거치면 오해가 발생하기 십상이므로 문학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사생활, 역사, 사상 등을 다룬 글이라 하더라도 그 나름의 형상화를 거치고 난 후라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형상과 인식 모두를 취하고 있어야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놓고 랩(Rap) 가사를 생각해보자.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난다. 작사가는 그의 경험, 사색, 혹은 상상 등에서 나온 어떠한 소재 및 감성을 가지고 가사를 쓸 것이다. 그 가사는 치밀하게 완성되어있든 허술하게 나열되어있든 전달하고자하는 특정 ‘의미’가 녹아있을 것이며 그 가사는 힙합의 문화적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운율을 포함한 여러 가지 표현, 플로우, 스킬 등으로 ‘형상화’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랩 가사'는 ‘형상’과 ‘인식’이라는 문학을 문학으로 인정하게 하는 필수조건을 충족시키므로 문학의 일부로 볼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된다.

    하지만, 여기서 누군가는 되물을 수 있다. “작사가의 생각이 투영되어 다시 만들어진 이상 의미는 있기 마련이라 인식의 영역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형상의 영역에서, 어느 한 작사가의 특정 작품이 기존의 다른 작사가들의 그것들과 비교해 어떠한 운율이나 스킬, 플로우 등도 담고있지 않다고 판단됨과 동시에 일상에서 쓰이는 것과 동일한 언어로 만들어졌다면 그것 또한 문학으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랩 가사로 볼 수 있는가?”

    가정이지만, 일리 있는 반박이다. 일정 부분에서 ‘라임무용론’과도 연관이 있는 이 반박에 대한 답 찾기를 필자는 두 번째 작은 단원에서 전개될 이전 시대와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21세기의 ‘대중문학론’에서부터 시작하고자한다.

    ⑶ 논의의 연장을 기약하며
    본래 ‘원론적 논의Ⅰ’은 하나의 큰 단원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개념을 잡아가는 단계다보니 글이 다소 길어져 부득이하게 작은 두 개의 단원으로 나누기로 했다. ‘원론적 논의Ⅰ’의 두 번째 작은 단원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대중문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보고, 그 테두리 안에서 ‘가사는 문학이다’라는 본 주제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그리고 본론 마지막단의 예시 반론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좋으면 그만이지 꼭 그렇게 개념까지 들먹이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있나?”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해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현실적인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것은 바로 ‘개별 작품의 합당한 평가 기준 확립’을 위해서다. 확실한 인식에 이은 개념 정립의 작업이 생략된 평가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고민하여 대략적인 기준이라도 잡아나가야만 누군가의 가사처럼 ‘가짜가 진짜를 욕하는’ 곤란한 상황이 오지 않는다.

    지루한 얘기가 길어졌다.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여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본문 중 예시로 사용한 특정 작사가 및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예시일 뿐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 어떤 뮤직 비즈니스도 개입되어 있지 않음을 확실히 밝히며 글을 마무리한다.

    Website : www.TheUKP.com / www.Unknown-Place.com


     언노운 피플(The UKP): 스티키 비츠(Sticky Bits)와 빈티지 80 (Vintage 80)으로 이루어진 힙합듀오. 2008년 2월, 가사에 시나리오 작법을 도입한 '올드체리모텔(Room 54)'이 수록된 [Tell a Vision]을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했으며, 앨범의 타이틀곡 "필립 말로우의 잃어버린 소녀 pt.1"은 제16회 대한민국영상대상에서 우수상 수상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Discography
    [Tell A Vision] (2008)
    [Autumn Again] Remix EP (2008) 
     

    기사작성 / Contributor 오승환(Sticky Bits of The U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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