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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에서 본 케이팝의 양면 (글 목수정)
    대중음악아카이브/분석과 비평 2020. 10. 10. 00:44

    *원문: m.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681177

     

    "케이팝이 불편해졌다"... 프랑스인들이 충격 받은 이유

    [2020 케이팝 월드 리포트] 프랑스에서 본 케이팝의 양면

    www.ohmynews.com

    2020.10.08

     

    지난 9월 딸이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클럽활동이 있었는데 연극·사진·마술·일본만화 등 11개의 클럽활동 중 케이팝이 있었다. 이미 중학교 시절에도 10여 명의 아이들이 학교 내 케이팝 팬클럽을 자처하며 함께 공연을 보고 관련 정보를 주고 받으며 열정을 나눈다는 얘기를 들었던 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대략 20년 전부터 케이팝이 유럽 사회에 퍼져가고 있었으나, 최근 5~6년간의 약진은 확실히 두드러지는 것이었다.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케이팝 노래 개인교습을 하는 한국 음악도가 있는가 하면, 파리의 차이나타운에는 케이팝 관련 소품 전문매장들이 문을 열고,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생겼다. 외국인들에게 불어를 가르치던 어학원에 한국어반이 신설되고, 케이팝 전문 잡지들도 잇달아 창간되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케이팝은 프랑스인들의 일상에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케이팝이 프랑스 사회에 흡수된 문화현상임을 넘어 폭발적 확장세를 타게 된 것은 2013년 BTS의 등장과 그 시기를 같이 한다. 특히 두 번에 걸친 BTS의 프랑스 공연을 통해 팬덤은 절정에 이르렀다. 2018년 10월 파리 아레나 호텔에서 열린 첫 번째 콘서트와 2019년 6월 파리 축구경기장(Stade de France)에서 열린 두 번째 콘서트의 전무후무한 초고속 매진 기록(20분), 콘서트 전날부터 공연장 주변을 가득 채운 팬들의 열광은 프랑스 미디어들로 하여금 케이팝 현상을 앞다투어 분석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프랑스의 케이팝 팬 숫자는 백만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초, 케이팝은 프랑스에 부드럽게 그러나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케이팝 스타들이 보여주는 라이프 스타일과 아시아 문화는 유럽의 소녀들을 매혹했다. 그들은 일본만화를 통해 보던 것들을 케이팝과 드라마를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 BTS는 2013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기획된 그룹이다.

    7명의 소년은 모두 잘 생겼지만, 각자 다른 개성을 지녔고, 팀 내에서 코믹함, 섬세함, 진중함, 반항아 등 각자가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적절한 시점에 시장에 나왔다. 프랑스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이전의 케이팝은 여전히 저평가되는 면이 있었으나 그들이 등장한 2013년은 케이팝이 성숙함을 획득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 BTS 성공엔  SNS를 통한 홍보와 이미지(사진, 비디오)가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이 뮤직비디오에 지극히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들의 춤, 합성영상, 가사와 정확히 부합하는 그들의 의상들은 키치(Kitsch)적이지만, 다각도로 정밀하게 계산된 것들이다.

    아미라 부르는 그들의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BTS는 끊임없이 그들의 사진, 메시지, 비디오를 노출한다. 마치 늘 곁에 있는 친구처럼. 그들의 노래는 청소년들이 겪는 갈등과 고민, 사회 문제들을 다루기도 한다. 그들의 노래에 담긴 이러한 메시지는 청소년들에게 BTS를 단순한 보이밴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끊임없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BTS가 "love yourself"라고 말할 때 그의 팬들은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한다.


    방송사 프랑스 인터(France Inter)는 2019년 3월 1일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가 데이비드 로스차일드의 말을 빌려 BTS가 프랑스 소녀팬을 파고든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아무도 모르던 BTS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이밴드가 되었다."  

     

     2019년 6월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에서 '러브 유어셀프 :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 SPEAK YOURSELF) 공연을 펼친 방탄소년단.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8개 도시에 문을 연 케이팝 춤 학교 

    10년 전 리옹에서 처음 문을 연 이후 파리, 릴, 렌, 스트라스부르, 제네바, 툴루즈, 마르세유 등 프랑스와 스위스에 걸쳐 8개 도시에서 케이팝 댄스를 가르치는 무용학교(K-Studio Press Play)를 키워온 제인 카르다(Jane Carda)의 얘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케이팝이 프랑스 시장에서 성장해 온 단면을 엿보게 해준다.

    "우리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주로 케이팝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다.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좀 더 가까이 케이팝을 느끼고 싶어서, 케이팝 춤을 배워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각 클래스의 이름도 한국의 성으로 지었다. 권, 강, 조, 윤 등. 학생들 자신이 마치 한국인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문을 열었던 첫해엔 10명 정도가 모였다. 다음 해엔 20명, 그 다음 해엔 50명이 되었다. 그 때부터 파리, 마르세유 등 매년 새로운 케이팝 무용학교를 새로운 도시에 열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도시에 문을 열지 않은 첫 해지만, 내년에도 또 다른 도시에 문을 열게 될 것 같다. 처음엔 아이들이 케이팝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해도, 부모들이 그게 뭔지 모르고, 진지한 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학생 수가 적었다. 이젠 케이팝에 대해서 미디어가 많이 이야기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부모들이 쉽게 동의해 준다."

    수강생의 80%는 13~19살의 청소년이다.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또렷한 추세여서 최저 수강생 연령을 10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20~30대의 어른들도 제법 있다. 수강생의 90%는 케이팝 안무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케이팝 춤을 바탕으로 해서 또 다른 창작무용을 하는 반도 있다. 케이팝 자체가 힙합·팝·록·랩 등 다양한 장르의 종합이듯이 케이팝 춤도 다양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진행하는 창작 케이팝 무용도 여러 가지 춤에서 자유롭게 영감을 얻어 안무가 이뤄진다.

    모든 교사들은 프랑스인이고,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으며, 기획사의 오디션에 참여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수강생 중 일부는 한국에 가서 기획사들이 여는 오디션에 도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수강생이 케이팝에 대한 애정을 한국 드라마·음식·뷰티 쪽 등으로 넓혀가는 것도 일정하게 보이는 패턴이라고 한다.  

    10년 전 우연히 접한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고 처음 한국이란 나라에 눈을 뜬 그는 그때부터 한국과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 후 잿더미가 되어 가난에 허덕이던 나라였지만 온 국민이 단결해서 눈부시게 일어선 나라가 아닌가. 그 에너지와 열정, 역동성… 이런 것들을 드라마와 케이팝 가수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지치도록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로 함께 무언가를 이뤄가는 모습들이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와 우리의 팀들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고, 함께 땀 흘리면서 뭔가를 함께 이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한다. 그런 한국의 정신을 우리가 만드는 잡지나 무용학교를 통해서 전하고 싶다."

    설립자 제인 카르다가 전하는 포부다.
     

     BTS 파리 공연 기다리며 '댄스 삼매경'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들이 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교외의 대형 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 앞에서 콘서트를 기다리며 함께 춤을 추고 있다. 2019.6.8 ⓒ 연합뉴스

     
    케이팝의 이면 마주한 팬들 

    그러나 커진 덩치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케이팝 현상에 대해서 장밋빛 이야기만 떠돌고 있진 않았다. 케이팝 산업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들이 노출되면서 적잖은 파장이 번지는 중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데뷔 후 6년 만에 BTS 멤버들이 첫 장기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자 그의 팬들은 물론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직업군이건 최소 연 5주의 유급 휴가를 보장받으며 휴가를 인간이 갖는 기본권으로 간주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BTS 멤버들이 그동안 감내해야 했던 노동 강도는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언론들은 케이팝 세계의 무대 뒤 현실을 신랄하게 보도했다.
     

    대략 12살 때부터 미래의 스타들은 기획사들에 의해 매우 엄격한 캐스팅을 거쳐 선발된다. 이후 그들은 거의 군대식 훈련 과정을 거친다. 기숙사 생활, 노래와 춤에 대한 초강도의 일상적 훈련. 케이팝은 1㎜까지 정확히 계산된 정확한 율동으로 유명한 만큼 그들의 훈련은 가혹하다. 사생활 부분에 있어서도 음식, 친구들과의 우정, 애정 생활 등은 기획사에 의해 엄격히 관리, 통제된다. (…)

    가수들은 흔히 '노예 계약'에 묶여 있다. 중간에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싶다면 일은 복잡해진다. 계약을 파기하려면 가수는 기획사가 그들에게 투자한 금액의 2~3배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좋든 싫든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고 기획사와 결별하기 전에 그들이 요구하는 수입을 벌어들여야 한다.

    스타들은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기획사에 빚을 지는 셈이고, 커리어가 시작되면서 빚을 갚아나가는 셈이 된다. 2017년 초 한국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기획사들이 체결한 계약들이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폭로한 바 있다. 


    프랑스 인터는 2019년 8월 12일 케이팝 스타들의 고단한 노동 조건을 이렇게 묘사하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홍보 활동 강행을 요구받은 엑소의 전 멤버 Z. 타오의 사례를 상세히 전했다.

    한때 트위터에서는 BTS의 팬들이 기획사를 향해 던진 '멤버들을 숨 쉴 수 있게 놔두라'는 캠페인성 메시지가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케이팝 팬인 10대들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눠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이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전에는 BTS, 엑소, 블랙핑크 등 인기 케이팝 그룹들을 두루 좋아했지만 이제는 마마무라는 걸그룹 하나만 좋아한다는 까미유(15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 기획사들이 얼마나 멤버들을 혹사시키는지 알게 된 후로는 그들의 음악에 열광하는 것이 마치 기획사들의 착취에 동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속 좋아하기 힘들어졌어요.  마마무는 일단 멤버 수가 적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또렷이 보였고, 마케팅에 덜 휘둘리는, 좀 더 여유롭게 활동하는 독립적인 그룹으로 보였어요. 물론 그들의 음악도 마음에 들었고요."

    까미유는 팬클럽이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팬들 사이에 그룹 멤버들에 대한 숭배(Fétichisation) 현상이 있어요. 그룹의 노래를 다 좋아하지 않고, 어떤 노래는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하면 협박하는 듯한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죠. 그래서 극성스러운 팬클럽과는 거리를 두게 되죠." 

    4년 전부터 '루나(이달의 소녀)'라는 걸그룹을 좋아하면서 케이팝의 세계에 입문하고, 한국어 교재를 사서 독학으로 가사를 익히기도 한 쥐스틴(16세)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루나를 좋아하고 아이즈원도 한 때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기획사의 지나친 마케팅이 눈에 들어오면서 케이팝 그룹들의 퍼포먼스를 보기가 힘들어졌어요. 어릴 땐 유명한 그룹들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걸 좋아했지만 산업이 만든 상품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기획사의 요구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 같달까. 그래서 지금은 개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좋아하게 되었어요.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바뀌었고, 퍼포먼스보다 음악적 퀄리티를 찾게 된 거죠. 지금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아이유, 김세정이에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쥐스틴은 "음악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중음악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한국 음악은 그 중 하나라고 했다. 김세정이 OST를 불러서 보게 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을 통해 몰랐던 한국의 역사도 접했고, 한국 음식을 알게 되었으며, 얼마 전 일어난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케이팝은 제가 몰랐던 세계로 저를 인도해 준 거죠."

    결국 소녀는 제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 한 요소로 한국 대중음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 걸 목격한다고 쥐스틴은 전한다. 어린 친구들은 보는 음악에 빠져들고 나이를 먹을수록 듣는 음악 쪽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과도한 팬심의 부작용 '코리아부'

    케이팝에 열광하는 팬들 사이에도 몇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다. 광적인 케이팝 팬들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가 코리아부(Koreaboo)인데 케이팝, 케이드라마를 알 뿐이면서 한국을 다 아는 듯 행세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집착이 과도해 언어의 사용과 행동, 외모까지 한국인으로 행세하려 드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 만화, 일본 대중문화를 광적으로 좋아해 스스로 일본인인 듯 행세하는 이들을 일컫는 키쿠잡(Kikoojap)이란 말도 존재하는데 키쿠잡에서 코리아부로 옮겨가는 이들, 이 둘 다를 정체성으로 가진 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주변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집착하는 팬의 단계를 지칭하며 기피 대상으로 여겨진다.
     

     파리의 케이팝 매정 TAI YOU 매장에 있는 BTS 멤버들의 사진을 담은 카드 ⓒ 목수정

     
    BTS의 팬, 정확히는 BTS의 한 멤버의 광팬인 사춘기 딸을 지켜본 한 엄마는 그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에 빠진 딸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는데 그 대상이 실재하는 인물이 아닌 웹상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던 거죠. 한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딸이 SNS를 통해 그 가수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 얘기만 했죠. 마치 그 가수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처럼. 그 열정이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그가 먹는 한국음식을 먹게 하고… 더불어 나 역시 모르던 나라 한국을 알게 되었죠. 파리에 첫 공연이 있었을 땐 함께 공연을 보러갔어요. 벨기에에서 딸을 데리고 온 아빠도 있더군요. 두 번째 공연 땐 이웃의 한 아빠가 아이들 넷을 데리고 가주었죠.

    그런데 2년쯤 지나니 아이의 태도가 바뀌더군요. 고교생이 되고, 주변에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면서, 딸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구체적이 된 거죠. 웹상에 있던 연인과 거리를 두고, 현실의 삶에 성큼 발을 딛기 시작했죠. 여전히 BTS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진 않더군요. 이젠 비판적 시선도 서슴지 않고 드러내죠."  

    BTS는 딸의 사춘기를 동반해준 가상의 연인이었고, 낯선 문화에 눈뜨게 해주었으며, 타인의 시선으로 프랑스 문화를 바라보게 해준 대체로 긍정적 경험이었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어느 시대에나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음악 그룹들이 있었다. 지금 BTS를 비롯한 케이팝 그룹들은 21세기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보이그룹, 걸그룹이 되었다. SNS와 유튜브가 전통 미디어의 권력을 넘어서는 시대에 이르러 소녀들 곁을 파고든 홍보 전략, 잘 훈련된 퍼포먼스, 그들이 노래를 통해 던진 적절한 메시지, 그렇게 해서 형성된 팬 그룹의 열정적 지지는 케이팝 돌풍이라는 지구적 현상을 만들어준 요소들이다.

    기획사의 막대한 투자와 치밀한 계획, 철저한 훈련, 마케팅 전략에서 탄생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한 현실이 야기하는 어두운 측면들이 말하는 사건들이 케이팝의 성장을 궁극적으로 발목 잡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점이 팬들을 실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파리에 있는 국립동양어대학(INALCO) 한국어학과에도 케이팝, 케이드라마의 영향으로 매년 많은 신입생들이 모여들지만, 3학년이 되면 1학년 때 있던 학생의 10~20%만이 남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케이팝에 기반한 열정의 수명을 의미하기도 하고, 학문으로서의 한국학, 한국문화가 여전히 충분한 연구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2019년 발간된 프랑스출판조합(SNE)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출판계가 번역 출간한 해외 출판물의 언어별 순위 1위는 영어(64%), 2위 일본어(12%), 3위 독일어(6%), 4위 이탈리아어(4%), 5위 스페인어(3%)였고 한국어는 순위권에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케이팝과 드라마를 타고 지구촌을 점령한 듯한 착각은 영상과 SNS로 소통하는 세대에서만 통하는 현실임을 알려주는 단적인 통계다. 케이팝과 드라마가 불러일으킨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상황인데 한국 정부가 문화 영역 전반에 대한 지원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쉽다.  

    케이팝이 선봉에 선 한류를 통해 우리가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에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그러나 불가능하진 않은 가정이다. 김구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전제가 된 생각은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착취와 희생을 재료삼아 행복을 생산하는 자본의 위선이 벗겨질 때, "높은 문화의 힘"을 향한 새로운 지평은 열릴 것이다.

     

    #케이팝 #케이 드라마 #프랑스 공연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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