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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담 ‘지금, 한국 힙합을 논하다’
    힙합 아카이브/한국힙합 랩 2018. 12. 6. 02:11

    원문: https://goo.gl/vRAZT3


    힙합은 자유잖아, 혐오는 아니잖아

    대담 ‘지금, 한국 힙합을 논하다’


    “힙합이 대세”라는 말이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일곱번째 시즌 <쇼미더머니 트리플세븐>이 지난달 초 화제 속에 방송을 마쳤고, 래퍼 12명과 깊게 나눈 인터뷰를 담은 힙합 영화 <리스펙트>도 지난달 28일 개봉했다. 한편, 래퍼 산이가 공개한 곡 ‘페미니스트’가 여성혐오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래퍼 도끼가 부모의 빚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천만원은 내 한달 밥값밖에 안되는 돈”이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는 등 잡음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한겨레>는 한국 힙합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유지성 프리랜스 에디터, 래퍼 팔로알토·자메즈 등 4명이 지난달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얘기를 나눴다.


    기자 영화 <리스펙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김봉현(이하 김) 한국에서 힙합을 두고 한편에선 “내 인생을 바꿨다”고 찬양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쓰레기, 가치 없는 음악”이라고 욕한다. 아직도 힙합을 폄하하거나 본질을 알려 하지 않으면서 쉽게 단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힙합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보는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팔로알토(이하 팔) 한국 힙합 역사가 제대로 보전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힙합 커뮤니티만 봐도 예나 지금이나 늘 비슷한 논란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자료가 제대로 쌓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이런 영화를 만든다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연했다.


    곧바로 한국 힙합이 진짜 대세인가에 대한 주제로 들어갔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쇼미더머니>로 이어졌다. <쇼미더머니>는 국내에 힙합 붐을 일으킨 공신이자 힙합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운 주역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기자 요즘 힙합이 대세라는데, 맞나?


    팔 최근 10년을 돌아보면 <쇼미더머니>가 논란 속에서도 회차를 거듭하며 흥행했고, 방송 출연 래퍼들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또 초등학생부터 모든 연령대 사람들이 힙합에 관심을 갖고 즐겨 듣게 됐다. 숫자로 증명할 순 없지만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힙합이 대세가 된 건 맞는 것 같다.


    유지성(이하 유) 크게 보면 전성기 맞다. 다만 <쇼미더머니> 최고 시청률을 보면, 시즌 5가 2.9%, 시즌 6가 2.5%, 시즌 7이 1.7%였다. 이게 어떤 사인이라면 사인이다. 시즌 7을 보면, 기술적 측면에선 상향평준화됐다. 하지만 인물을 놓고 보면 시즌5의 비와이나 시즌 6의 우원재 같은 새로운 존재가 없었다. 나올 만한 사람은 다 나와서 이젠 어느 정도 정점을 찍고 위기가 올 수도 있는 단계라 생각한다.


    김 제작진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악마의 편집, 노이즈 마케팅 같은 걸 확 줄였다.


    팔 이번 시즌에 함께 나온 딥플로우, 더 콰이엇 등 프로듀서들이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시작한 또래들이다. 서로 마음도 잘 맞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제작진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제작진도 그걸 받아들여줬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시즌 4때도 참여했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자메즈(이하 자) 시즌2에 처음 지원했다가 예선 탈락했고, 시즌 3 때 방송에 나왔다. 군대 전역한 뒤 휴학하고 음악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멋모르는 패기로 밀고 나갔고, 시즌 4에서는 좀 더 높이 올라갔다. 돈도 좀 벌고 사람들도 나를 알게 됐다. 이후 아티스트로서 어떤 태도로 음악을 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즌 6에 나가서는 그런 고민을 보여주려 했다. 시즌 7에 참여한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힙합을 많이 봤다. 시즌 3·4는 자극적이었는데, 시즌 7은 그런 거 없애고 반대로 간 거다.


    팔 시즌 4에서 자극이 극에 달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 발표한 ‘마이 팀’이라는 곡 때문에 방송에서 오묘하게 산이랑 대결구도로 비쳐졌고, 결국 디스 배틀 미션에서 갈등이 생겼는데, 시청률이 높았다. 래퍼들은 싸움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디스 배틀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디스와 랩 배틀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자 시즌 4에서 베이식 형과 디스 배틀을 해야 했는데, 저는 형한테 그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흐르면서 감정에 동요가 생기더라. 이런 분위기를 만든 상황이 싫었다.


    김 랩 배틀이란 게 세팅을 해서 감정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얼마나 재치있게 공격하느냐를 즐기고 끝나면 악수하고 헤어질 수 있는 거다. <쇼미더머니> 랩 배틀은 세팅도 문제였지만, 누가 더 재치있게 잘했는지가 아니라 오직 도덕적 관점에서만 재단하는 일부 시선도 아쉬웠다.

    자 한국 힙합도 <쇼미더머니>도 사춘기와 시행착오를 거쳐온 것 같다. 결국 시즌7에선 보기 좋았다.


    김 <쇼미더머니>가 7년을 해오면서 변해왔고, 그에 대한 내 판단도 처음보다는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7년 동안 <쇼미더머니>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고, 이제 빠져나오는 시점 같다. 이제부터 한국 힙합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힙합계에서 불거진 여성혐오, 여성비하 논란에 대해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 최근 산이의 ‘페미니스트’ 논란도 그렇고, 힙합계에서 여성비하 논란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미국 힙합계에서도 이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팔 젠더 이슈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는데 조심스럽다. 저도 잘 정리가 안된다. 산이의 노래를 제리케이와 슬릭이 받아치면서 번진 디스전은 이수역 폭행 사건에서 비롯된 건데, 내게는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기보다는 양쪽의 과열된 싸움으로 보였다. 사실 힙합에서 ‘비치’(bitch·암캐, 여성을 비하하는 욕으로 많이 씀)라는 가사를 많이 쓴다. 나는 가사에 쓰지 않는 편이지만, 많은 래퍼들이 여성비하나 혐오보다는 상대방을 공격할 때 쓰곤 한다. 하지만 기원 자체가 여성으로부터 비롯된 단어이기에 누군가에겐 불편할 것이다. 참 복잡한 문제다.


    김 미국에선 ‘비치’에 대한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다. 우리도 깊은 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비치’라는 말을 쓰기만 하면 여성혐오론자로 낙인 찍힌다. 딥플로우가 랩 배틀에서 ‘비치’라는 말을 썼다가 ‘한남충’이라고 공격받았다. 물론 공격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딥플로우가 평소 어떤 가사를 쓰는 래퍼였는지, 어떤 작품을 냈는지, 랩 배틀 규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함께 수반됐어야 했다.


    자 나는 ‘비치’라는 단어를 쓰고 싶으면 쓸 거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게 힙합이다. 그걸 막으면 힙합이 아니다. 쓰고 싶으면 쓰고, 그걸 비판할 자유도 있다. 고민은 각자의 몫이다.

    유 힙합은 자기 얘기를 한다는 특성상 사회적 콘텍스트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콘텍스트를 고려하고 그래도 써야 한다면 쓰면 된다. 다만 대응을 잘 했으면 한다. ‘힙합은 원래 그런 거야’ 하기보다는 ‘내가 이걸 표현하기 위해서 이 말을 썼어’ 하고 설명하는 게 좋다.


    이야기는 블랙넛의 성희롱 논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블랙넛은 지난해 여성 래퍼 키디비를 겨냥한 가사를 담은 랩을 발표했고, 키디비는 모욕죄 등 혐의로 고소했다.


    유 힙합에서 말할 자유가 있다지만, 블랙넛의 경우엔 키디비에게 상처를 줬다. 그걸 옹호할 순 없다.


    자 키디비는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래퍼의 표현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아티스트에게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팔 표현의 자유도 존중하지만 어떤 개인이 큰 상처를 받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따라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블랙넛이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유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본인도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팔 힙합에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래퍼 개개인마다 생각이 다르다. ‘힙합은 이래’ 하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다.


    유 남성중심인 것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남성우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나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과거에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줬을 수 있겠구나.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힙합계에선 밑바닥부터 음악으로 자수성가한 랩스타들이 자신의 업적과 부를 과시하는 문화도 있다. 국내에선 도끼가 대표적인 래퍼다. 하지만 도끼는 최근 “천만원은 내 한달 밥값밖에 안되는 돈”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 도끼의 해명 영상 전체를 보면 그런 생각 못한다. 그 발언은 조롱의 의미가 아니라 ‘잠적하지 않았고 돈이 없어서 안 주는 게 아니다’라는 걸 강조하는 의미였다.


    팔 도끼가 어떤 의도로 얘기했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도끼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정리해서 말했다면 오해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안타깝다.


    자 난 도끼가 그렇게 대응하는 게 멋있었다. 도끼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음악으로 이렇게 됐고, 그런 태도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뿐이다.


    팔 도끼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힙합계에는 도끼 같은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다. 그런데 도끼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힙합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친 거다.


    김 힙합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일리있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오해, 편견, 누명이 늘 과도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 힙합이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도 좋다. 그걸 벗어야 하니 더 할 일이 생긴 것 아닌가. 더 열심히 하도록 에너지를 준다. 한국 힙합에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많은 데 비해 아직 시장이 작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고, 나도 열심히 내 몫을 할 거다.


    진행·정리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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