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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토니아 (Antonia, 2006)
    힙합 아카이브/영화 2012. 1. 9. 00:20


    안토니아 (Antonia, 2006)
    감독 : 타타 아마랄
    브라질 | 90분 | 35mm | 컬러 | 드라마
     


    원문: http://wizaard.blog.me/20035791452


    음악과 꿈이 있는 한, 친구들이 있는 한…
     
    힙합 그룹 안토니아.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프레타, 바바라, 마야, 레나는 랩을 사랑하고 힙합가수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빼어난 가창력과 외모를 가진 그녀들이기에 지금은 비록 닥지닥지 지붕이 맞닿아 있는 달동네에 살고 있지만, 빛나는 내일이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그녀들 앞의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남성중심적인 힙합 음악계에서 여성랩퍼로 성공하기란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섹시한 몸놀림과 부드러운 음색으로 백코러스를 해 주는 것 정도지, 무대를 휘저으며 관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거친 랩을 퍼부어대는 랩퍼가 아니다. 더구나 가난과 폭력이 일상인 브라질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힙합이라는 꿈만큼이나 절실한 것이다.
    그런 그녀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접을 수 없는 힙합에 대한 꿈과 그 꿈을 함께 키워온 네 명의 친구들이다.

    네 친구들의 굳은 연대 역시 궁핍한 일상의 무게에 떠밀려 갈라지고 헤어지기 일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친구는 그녀들을 다시 일으키고 네 명의 아마조네스는 빛나는 힙합 전사로 무대에 선다.


    자... 여기까지 보면 헐리우드 고난극복성공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드림걸즈>를 보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주워들은 풍문을 종합해보건대, 네 명의 여성맴버들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흡사할 것 같다. 뿔뿔이 흩어졌던 네 사람이 갈등을 극복하고 무대에 다시 서는 부분은 대충 해피엔딩으로 봉합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허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단점들을 충분히 덮어줄 만큼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운 힙합음악과 결이 살아 있는 브라질 빈민가 일상의 묘사가 가지는 힘은 강하다.

    사실 힙합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여성랩퍼는 낯설다. 육두문자를 빼놓고는 도저히 그 맛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힙합을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거친 말놀이에 불편함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여성힙합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안토니아의 랩을 들으며 윤미래를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열여섯의 나이에 스무살이라고 속이며 무대에 처음 올라 지금까지 10년 동안 변치 않고 흑인 랩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녀. 반라의 의상으로 주구장창 웨이브댄스나 추든지 워우어~ 국적불명의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든지 하지 않으면 여가수가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윤미래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드렁큰타이거나 리쌍 같은 거친 남성 랩퍼들 사이에서 그녀는 위태로워 보였다.(나만 그렇게 느꼈나? -_-;) 그녀 옆에 다른 여성 랩퍼 한 명만이라도 든든하게 서 있더라면 안토니아처럼 그렇게 어깨를 걸고 거침없이 랩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 영화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쯧... -_-;;) 아무튼 하고 싶었던 말은 윤미래의 랩을 들으며 행복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안토니아의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 영화가 브라질 빈민가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본 이유는 사실 딱 한 가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과 공포가 떠나지 않았다. 프레타가 딸과 더불어 얹혀 사는 바바라의 집으로 가는 달동네 골목의 밤은 공포 그 자체다. 그곳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랩퍼라는 이유로, 게이라는 이유로, 살인사건이 저질러질 수 있는 장소다. 그 골목길의 불안감은 그녀들의 일상과 꿈을 갈갈이 헤집어 놓는다.

    이 영화 속 어두운 밤의 골목길은 세상의 가지지 못한 자(여성, 빈민, 성소수자 등등)들의 불안과 공포를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인 이미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급작스런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서 관객들이 훨씬 행복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으니(아무리 현실이래도 계속 우울하면 너무 힘들잖아, 그런 영화를 어떻게 영화제 개막작으로 틀겠어. ^^;;) 그걸로 됐다. 프레타, 바바라, 마야, 레나, 그녀들의 감미롭지만 거칠고 힘 있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의 거침없는 랩에 극장은 일순간 해방구가 됐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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