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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하녀 관점서 백인의 삶 바라보기
    인종주의 2011. 11. 13. 21:44

    [한겨레] 흑인하녀 관점서 백인의 삶 바라보기  
                                                                                                   

     남다은의 환등상자 <헬프> 2011.11.13

    » <헬프>

    어느 날부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위생을 걱정하는 백인 여자들은 흑인 하녀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집 밖에 따로 만들기 시작한다. 흑인 하녀들은 백인 가족들과 같은 식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금기를 장차 하녀가 될 자신의 딸들에게 전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흑인 하녀들은 마치 통학버스처럼 이들을 흑인 마을로 실어 나르는 전용 버스에 오른다. 그 어떤 차별보다 원초적이고 가시적이고 그래서 모욕적인 접촉 금지의 명령.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부유한 백인 엄마들이 낳은 아기들은 모두 흑인 하녀들의 품에 안겨 있다.

    사교계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백인 엄마들의 손에 카드가 들려 있을 때, 흑인 유모들의 가슴에는 엄마의 빈자리를 갈망하는 아기들이 파고든다. 그뿐인가. 백인 가족들의 의식주는 온통 흑인 하녀들에게 맡겨진다. 말하자면 이 콧대 높은 백인 여자들은 흑인 하녀들과의 간접적인 접촉에는 온갖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삶의 가장 사적이고 긴밀한 부분들이 하녀들의 몸과 맞닿아 있다는 모순에는 개의치 않는다.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헬프>에서 백인 열혈 작가 지망생 스키터(에마 스톤)는 위와 같은 현실을 흑인 하녀의 관점으로 다시 쓰고 싶어 한다. 그녀는 오랜 시간 하녀로 일해 온 에이블린(바이올라 데이비스)과 여러 하녀들이 가슴에 담아둔 세월을 꺼내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고향에 돌아온 그녀가 금발의 하우스 와이프가 된 친구들 집의 하녀를 보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할 때, 그건 특별한 정치의식의 발로나, 현실 폭로의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상 모든 작가들의 근본적인 꿈, 즉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욕망과 타인의 삶을 만져보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를 움직였을 것이다. 그 열망이 반드시 현실의 구조를 건드리고 타인의 자리를 숙고해야만 윤리적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백인 중산층 소녀의 낭만적인 문학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스키터가 쓴 소설 <헬프>가 획기적인 소재를 찾는 백인 출판사와 착하고 상식적이나 자신의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은 없는 백인 작가의 기획물인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영화가 부각하는 흑인 하녀들의 경험담과 그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백인 여자들과 하녀들 사이에 오간 사소하고 웃긴 추문들이다. 백인 여자들은 그 추문이 자신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한 낄낄거리며 허구의 이야기로 그 책을 소비한다.

    수다와 조롱이 그 어떤 엄숙한 저항보다 유쾌하고 신랄한 이야기의 힘일 때가 분명 있지만, <헬프>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식 휴머니즘이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백인 가정 대신, 자신의 삶을 보듬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현실을 박차고 나선 에이블린으로부터 흑인 하녀들의 소설 ‘헬프’가 다시 쓰이면 좋겠다. 스키터 앞에서 그녀가 고백한 이야기의 용기가 아니라, 그녀가 비로소 자기 삶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의 뒷모습에 이 영화의 유일한 위엄이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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