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미국도 4월이 오면 '시(詩)의 봄비'에 젖는다
    힙합 아카이브/스포큰워드 2011. 10. 5. 23:01


    미국도 4월이 오면 '시(詩)의 봄비'에 젖는다 2009-03-02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내고, 욕망과 추억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20세기 최고 시인 중 한 사람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 첫 문장이다. 여기서 착상을 얻어 미국의 4월은 '시(詩)의 달'이 되었다. 일상에 쫓겨 사람들과 공감하지도 못하고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두들겨 깨우는 일, 그것이 시의 달이 내건 '잔인한' 목표다.

    3월이 되기도 전에 각종 공고가 나오기 시작하고 4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시에 관련된 행사가 줄을 잇는다. 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기관이나 교육계, 출판계, 예술단체들이 나서서 이 행사를 지원한다. 미국의 시인아카데미가 1996년에 발의해서 시작된 시의 달은 이제 연례행사가 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내용이 풍부해지고 있다.

    유명 배우들이 나와서 애송시를 읽는 것도 인기 있는 시인의 달 행사 중 하나다. 메릴 스트립 같은 유명 배우들이 자신의 애송시를 읽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펼쳐 진다. 도서관이나 서점들은 거의 매주 시에 관련된 행사를 연다. 전국적으로 조직된 네트워크는 각급 학교의 시 창작과 시 교육을 지원한다. 지방 거주 문인들이 이러한 문학교육 현장에 자주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4월은 시인들이 가장 바쁜 달이다.

    일반시민들도 4월이 되면 시의 봄비에 젖게 된다. 시인아카데미에 이메일 주소를 등록하면 4월 1일부터 한 달간 이메일을 통해 날마다 '오늘의 시'를 받게 된다. 올해 시의 달 행사에서 화제가 될 이벤트는 아무래도 '호주머니 속의 시' 운동이 될 것 같다. 말 그대로 호주머니 속에 시를 가지고 다니다가 잠시 틈이 날 때 읽어보라는 뜻에서 하는 운동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조그만 쪽지에 육필(肉筆)로 적거나 타자로 쳐서 시인 아카데미에 보내면 그것을 다시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거리나 공원에서 나누어준다. 그리고 전봇대나 게시판 등 눈에 띄는 장소에 시 쪽지를 붙이기도 하는데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처럼 예쁘게 장식된 것들도 많다. 작년에는 종이만 사용했지만 올해는 휴대전화 메시지나 이메일도 이용해서 4월 30일은 미국 전역이 시로 가득한 날이 될 거라고 한다.

    미국을 여행한 사람들은 더러 본 적이 있겠지만 많은 카페가 금요일 저녁에는 시 낭독 경연대회인 '포이트리 슬램(Poetry Slam)'을 연다. 업소에 따라 어떤 카페는 연중 내내, 어떤 카페는 사월에만 하는데 아마추어를 포함한 시인들이 얼마 안 되는 참가비를 내고 자신의 시를 낭독한다. 일등으로 뽑힌 사람이 참가비 모두를 갖는다. 시인과 독자가 함께 시를 즐기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런 행사는 생활 깊숙이 시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보여준다.

    시가 대중문화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도 시의 달이 성공적으로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시에 관련된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젊은 시인들은 아예 시 낭독을 랩으로 공연하기도 한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몇 번이나 추천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수들이 시집을 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 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대접을 받게 된 계기는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서 기도를 시 낭독으로 대체한 케네디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초청되었는데 노(老)시인의 시 낭독은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 겼다. 클린턴 대통령이 그 뒤를 이어 마야 안젤루를 초청했는데 《아침의 맥박》이란 시를 낭독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버락 오바마는 대학 시절 시를 발표한 사람이다. 이번 시의 달에 오바마가 어떤 행사에 참가할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리노이=이영준·영문 한국문예지 AZALEA 편집장 ] ⓒ 조선일보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