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아시아엔 없던 흑인 차별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608/119684625/1
《서양 중심의 세계로 재편된 근대 이후에 형성된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3년 전 흑인의 차별에 대한 큰 논쟁을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보듯이 세계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다른 피부색에 대한 차별과 오해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대중매체에서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인어공주 영화의 주인공으로 흑인이 등장하면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도 빠르게 국제화되고 다문화 가정이 일반화되었다고 해도 검은 피부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수백 년간 이어온 검은 피부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우리 역사 속 흑인들의 진정한 위치와 그 역할을 살펴보자.》
16세기 들어 만들어진 ‘인종 개념’
인종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전혀 생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자의적인 분류이다. 다양한 피부색은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지구의 다양한 지리 환경에 적응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서로 피부색이 다른 것은 각자 속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현된 것이다. 고대 역사를 보아도 사람들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다만 바바리안, 즉 ‘오랑캐’라는 말로 자기와 이질적인 사람들을 구분했을 뿐이다. 피부색과 신체적인 특징으로 인간 사이의 우열을 가르는 ‘인종(race)’이라는 개념은 16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서구가 다른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때로는 학살을 하는 근거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50년 유네스코에서 인간은 모두 단일한 종이며 인종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언명할 정도였다. 다양한 첨단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 인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흑인이라고 하면 아프리카의 원주민들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흑인계에는 적도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일본의 토착 세력인 조몬인들은 피부색이 검은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계와 미크로네시아인의 영향이 컸다. 지금 아이누인의 모습에서도 곱슬한 머리와 수염을 한 흑인과 비슷한 모습이 간혹 보이는 이유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상나라 때부터 흑인의 흔적이 발견된다. 중국은 기원전 13세기 상나라의 수도였던 인쉬 근처의 시베이강이라는 무덤에서 400기에 가까운 인골을 발굴했다. 그 두개골의 형태를 분석한 결과 몽골로이드 계통이 가장 수가 많지만 그 밖에도 유럽인, 북극해의 에스키모(이누이트),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 계통의 사람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중 흑인들과 유사한 형태는 40여 구로 전체의 10분의 1에 해당된다. 상나라는 다양한 지역과 전쟁을 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포로나 이민으로 상나라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3000년 전 황하 유역에는 이미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 다양한 인종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은 특별히 없었다.
흑인은 차별 아닌 신비로운 대상
동아시아 고대문화에서 다시 흑인들은 한나라 이후 등장하여 당나라 때는 사회 전반에서 그들의 흔적이 보인다. 당시 검은색 피부는 차별이 아니라 신비로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는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를 한 사람들을 ‘곤륜인’ 또는 ‘곤륜노’라고 불렀다. 곤륜은 티베트와 파미르를 잇는 산맥으로 고대 중국에서는 땅끝 같은 이미지였다. 즉, 땅끝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마치 얼마 전까지 한국 사람이 서양인들만 보면 ‘미국 사람’이라 생각하던 것처럼 곤륜인이라는 의미는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에 이르는 흑인 계통의 사람을 통칭하는 것으로 쓰였다.
이 곤륜인들은 실크로드의 불화에서 문수보살이 탄 사자를 이끄는 모습으로 주로 등장한다. 사자 역시 동아시아 고유의 동물이 아니라 서역을 통해 들어온 신화적 동물이다. 환상의 동물인 사자를 달래서 이끌어주듯 이질적인 불교를 동아시아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승려 또한 ‘검은 머리의 이방인’이라는 뜻의 묵호자이다.
이런 곤륜인의 청동상과 조각품이 발해 수도인 상경성의 불교 사원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비록 극동에 치우쳐 있지만 기독교(네스토리우스교)와 다양한 실크로드의 문화를 받아들인 발해의 개방성이 그대로 보인다. 또한 백제 정림사지에서 발견된 불상이나 통일신라 시기 법주사에 남아있는 석인상이 곤륜인의 모습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듯 삼국시대 이래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결코 차별이나 노예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불교라는 인도에서 시작하여 동아시아로 퍼진 이질적인 종교가 도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던 주역이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곤륜노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과 중국에서 널리 사랑받으며 다양한 소설과 연극으로 재창조되었다. 그리고 곤륜인의 이야기는 도술을 부리는 사람으로 표현돼 전우치나 램프요정 지니와 같은 캐릭터와 연결된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반대로 18세기에 프랑스인이 시리아에서 채록한 유명한 알라딘의 이야기에서 알라딘은 머나먼 동방 중국 어딘가의 출신으로 되어 있다. 이렇듯 동서를 교류하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에서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들은 열등한 노예의 상징이 아니라 대륙 간의 활발한 교류를 담당하는 능력자의 의미였다.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편견들
최근에 미국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인종, 종교, 언어, 성 등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바로잡자는 뜻으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많이 강조한다. 최근 클레오파트라와 인어공주 등의 영화에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의 대중매체가 철저하게 아시아와 흑인을 배제한 백인 위주의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한 반발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며 불편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대 이후 만들어진,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흑인과 인종에 대한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다. 단순하게 영화 매체의 주인공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이질적인 피부에 대한 편견은 근대 이후 형성된 무의식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차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곤륜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고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