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노예 해방은 전쟁의 원인이 아니었다
*원문: https://www.vop.co.kr/A00001598337.html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2021-9-21
*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다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수에즈 운하의 패권을 다투다 _ 수에즈 전쟁
② 구아노가 남미를 초토화하다 _ 새똥 쟁탈전
③ 사실은 세금을 내기 싫었던 거였다 _ 미국의 독립
④ 노예 해방은 전쟁의 원인이 아니었다 _ 미국 남북전쟁
⑤ 주식회사의 출발로 촉발된 바다의 패권 다툼 _ 영란 전쟁
노예를 둘러싼 인류의 처참한 분쟁을 살펴보기 전에 간단한 질문부터 하겠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신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신이 존재한다 치고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신은 과연 백인일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중세 이후 서양을 지배한 종교는 기독교였고, 기독교신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신을 백인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백인이기에 그들은 흑인과 황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엄연한 ‘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피부색으로 구분했고, 노예로 부리는 처참한 일을 자행했다.
신은 백인인가?
미국에서 흑인 분리 운동을 주도한 흑인 운동가 말콤 엑스(Malcolm X)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말콤 X〉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감옥에 갇힌 말콤이 설교를 늘어놓는 백인 목사에게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백인이었소?”라고 묻는다. 목사는 한참을 얼버무리다가 “신은 백인이오. 그건 명백하지 않소?”라고 답한다. 말콤은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일갈한다.
“당신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예수는 명백히 백인이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요? 예수가 태어난 지역은 유색인종이 살던 곳이었어요. 거기서 왜 예수만 백인으로 태어났단 말입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믿는 성경의 계시록에는 ‘예수의 머리는 양털 같고 그의 발은 구릿빛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게 백인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말콤의 주장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는 백인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 ‘신은 백인이다’라는 주장은 백인들의 허황한 망상일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어떤가? 유럽인들이 그린 모든 그림에서 아담과 이브는 백인으로 묘사된다.
실로 황당한 이야기다. 성서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 홀딱 벗고 살았다. 이 지구에서 홀딱 벗고 평생을 살 수 있는 지역은 열대 지역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 여러 과학적 조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심지어 유럽 백인들조차 한때 에덴동산의 위치가 에티오피아 근처 어디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상상해보라. 아프리카로 추정되는 열대지역에서 거주했던 아담과 이브가 백인일 확률이 높을까, 흑인일 확률이 높을까?
신이 흑인이라거나, 아담과 이브가 흑인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세 이후 유럽 백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인 중심 사고가 얼마나 허황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신은 인류를 피부색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그런데 백인들은 제멋대로 자신들을 우월한 인종으로 규정하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사고팔았다.
플랜테이션, 노예 거래를 부추기다
유럽 백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약탈을 시작한 16~17세기, 유럽인들은 광활한 신대륙(아메리카)의 비옥한 땅을 발견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은 그 땅에서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는 플랜테이션 농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농업이란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이었다. 그런데 신대륙의 비옥한 대지에서는 사탕수수, 담배, 커피, 차 등 유럽 귀족들이 좋아하는 농산물이 잘 자랐다. 백인들은 이 땅에 식량이 아니라 기호식품을 재배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이런 작물을 재배하는 데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백인 농부만으로는 도저히 일이 감당되지 않자, 유럽 백인들은 흑인이나 원주민을 노예로 부릴 생각을 했다. 플랜테이션 농업의 발전이 노예무역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영국은 1562년부터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이들을 사고팔았다.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장주들은 이들을 싼값에 사들여 죽을 때까지 부려 먹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신사가 다 얼어 죽지 않고서야!
노예 산업으로 영국이 떼돈을 벌자 무역 강국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가 잇따라 사람을 사고파는 산업에 뛰어들었다. 역사는 이를 노예 쟁탈전(scramble for African slaves)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더 많은 노예를 차지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서로의 목에 칼끝을 겨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노예 쟁탈전이 한창이던 1562~1807년 유럽인들이 서부 아프리카에서 배로 실어 노예로 팔아 치운(!) 아프리카인은 무려 1,1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신사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영국의 배들이 미국으로 데려간 아프리카인은 약 300만 명이었다.
보상과 처벌, 어느 쪽이 효율적일까?
노예를 기반으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 중심 사회는 자본주의의 출발과 함께 와해됐다. 왜 그랬을까? 백인들이 마침내 인간의 소중함을 깨달아서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노예제가 무너진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험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미국의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는 ‘동물은 물론 인간의 행동도 훈련으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물이다. 그는 훈련을 통해 비둘기 두 마리에게 탁구도 가르쳤다.
스키너는 제2차세계대전 때 ‘미사일 유도 임무를 훈련된 비둘기에게 맡기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흔히 보는 돌고래쇼도 모두 이런 훈련을 통해 이뤄진다.
스키너가 동물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처벌과 보상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 처벌보다 보상이 훨씬 더 큰 효과를 냈다. 그래서 스키너는 잘못했을 때 처벌하는 것보다 잘했을 때 보상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단언했다. 이는 현대 행동경제학에서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인간은 처벌보다 보상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노예제가 보상이 아니라 처벌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제도라는 데 있었다. 노예에게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상이 없으면 사람들은 절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노예들이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으니 노예주들은 더 가혹하게 이들을 처벌했다. 이로 인해 노예주들이 쓰는 돈도 늘어났다. 주인은 노예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노예들이 먹고사는 일까지 주인들이 책임졌다.
게다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예를 때리거나 죽이면, 그건 결국 주인이 자기 재산을 훼손하는 바보짓을 하는 셈이었다. 근본적으로 노예제도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지 않는 제도였다.
남북전쟁과 노예제의 종말
이런 이유로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서 노예제는 점차 폐지됐다.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이 1807년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뒤이어 네덜란드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명목상 이유는 ‘노예제도가 비인간적’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노예제도가 경제적으로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노예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나라들도 있었다. 그중 한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노예제 유지를 놓고 심각한 내전에 빠졌다. 이 전쟁이 그 유명한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이다.
많은 사람이 남북전쟁을 노예해방 전쟁으로 알고 있다. 노예제에 반대한 북부의 지도자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미국 제16대 대통령)이 노예제를 수호하려 한 남부를 물리쳐서 노예해방을 이뤘다고 말이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모습ⓒ기타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링컨 대통령은 적극적인 노예해방론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원인 자체도 노예제가 아니었다. 물론 북부가 노예제에 반대했고 남부가 옹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전쟁의 원인은 관세, 즉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에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에 관한 분쟁이었다. 그 당시 미국 북부와 남부의 경제구조는 완전히 달랐다. 북부는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아 공업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런 공업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매우 비효율적이다. 북부가 남부보다 이른 시기에 노예제를 폐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남부는 드넓은 대지를 활용한 면화 농업으로 먹고사는 지역이었다. 여전히 중세 농업사회가 유지됐기 때문에 노예제는 이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었다.
이 시기 미국 사회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할 때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 시작됐다. 공업사회인 북부는 ‘영국 수입품에 막대한 관세를 물리자’고 주장했다. 그래야 영국 공산품의 가격이 뛰어 미국 내에서 자기들이 만든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사회인 남부는 영국에서 수입한 물건의 가격이 뛰면 치명타를 입는다. 남부에서는 공산품을 거의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대부분 영국 제품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관세를 높여 수입 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남부 주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영국의 생필품을 사야 했다. 당연히 남부는 관세를 높이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남부는 ‘이런 식이면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묶일 이유가 없다’며 독립을 요구했고, 북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벌어진 원인은 이것이다.
이 전쟁에서 노예제가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노예가 별 필요 없던 북부가 남부를 비난하기 위해 그 문제를 끌어 들였기 때문이다. 노예해방이라는 명분까지 확보한 북부는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남부의 패배로 그 지긋지긋한 노예제는 현대사에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노예제가 폐지된 이유는 백인들이 인권에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벌인 전쟁은 경제적 이권을 위한 것이었고 ‘노예제 폐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구호였을 뿐이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예제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노예제가 더 이상 돈을 잘 벌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인간적인 제도를 수 세기 동안 운영한 자들 가운데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