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음악, 그 태동기를 추억하다 (글: Mr. TExt)
*원문: https://hiphople.com/music_feature/117911
[기획] 그들은 힙합을 알았다 (90년대 말 이야기)
부제: 한국 힙합 음악, 그 태동기(90년대 말~2000년 초)를 추억하다
Mr. TExt ㅣ 2011.7.17
★ 예전에 현장르포 제3지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1998년 12월 21일 방송) 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죠. 이 방송은 그야말로 힙합 문화 자체가 한국에서 겨우 싹이 틀 무렵에 힙합 문화의 4대 요소를 다 다루었던 선구자적인 프로그램으로 기억합니다. MP 뮤지션(MC Meta, Joosuc, DJ Wreckx 등)이 주축이 되어 B-Boy, DJ 및 여러 랩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죠. (무려 고등학생이던 Verbal Jint가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직접 작사한 가사를 패기있게 랩하는 모습까지 포함되어 있었음) 저도 사실 가물가물한 기억이기는 합니다만 당시의 그 영상을 찾아준 어느 고마운 분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그 때'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같이 기억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 시작하기 전에 이 말을 언젠가는 꼭 한 번 이상 하고 싶어서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을 가리온, 특히 메타님께 바칩니다. 물론 한국 힙합 씬에서 1세대로 구분되는 모든 분께도. 그럼 Go.
1. '그들의 힙합'을 아시나요?
먼저 하나의 고백부터 하고 시작하겠다. 솔직히 90년대 말을 회상하면 본인은 국내 힙합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2Pac과 Nas를 위시한 이른바 '본토 힙합'과의 만남에 푹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 결국 글을 쓰는 본인도 사후적인 자료나 간접적인 경험에 의거하여 당시의 '추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회상은 'Respect'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점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힙합 문화도 유행의 주기를 따라 '특수(?)'를 타던 시기가 있었다. 대략 90년대 말 2000년 초로 기억한다. '힙합'이라는 단어가 그 전에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주목을 받았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패션, 특히 미국의 랩퍼들이 즐겨입던 배기팬츠(당시 어른들의 기준으로 '똥싼 바지')가 유행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힙합 문화의 확산을 돕지 않았나 회상한다. B-boyin', 즉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악 또한 일찌감치 '반복되는 샘플의 멜로디'에 거부감이 없는 '힙합 뮤직 얼리어답터(?)'들에 의해 수용되고 이들의 관심은 '영어가 아닌 우리의 말로 랩을 하는 것'에 옮겨간다. 물론 이전까지 가요에서 양념처럼 삽입되던 '몇 마디의 랩'이 아니라 랩 자체로 온전하게 곡을 이루는 '힙합 트랙'으로.
'패닉'이라는 걸출한 그룹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결국 관철했던 랩퍼 '김진표'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랩이 양념이 아니라 오히려 보컬이 양념이 되는 곡을 선보였고 그의 솔로 1집은 후에 의미있는 작업으로 많이 언급된다. 또한 미국에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고 1995년에 잠시 한국에 얼굴을 비췄지만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Tiger JK'라는 한 랩퍼는 DJ Shine이라는 파트너와 "취한 호랑이"라는 팀으로 패기있는 도전을 한다. "난 널 원해"라는 곡으로 어느 정도 대중적인 반향을 끌어낸 이 팀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곡으로 이른바 '본토 힙합의 느낌'이 나는 우리말 가사를 선보인다. (이 가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앞서 언급된 '김진표'의 도움이 컸다. 여러모로 선구자적인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공중파, 즉 90년대 말의 TV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홍대를 중심으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라는 집단적인 움직임의 씨앗이 발아하고 있었다. 미국, 즉 본토의 '힙합 음악'이 이런저런 경로로 유입되고 구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이 음악을 즐기고 나누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PC통신 상에서 의기투합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BLEX"라는 이름, "SNP"라는 이름이 그 의기투합의 결과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자료가 존재하므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또한 Rock을 핵심으로 하는 라이브클럽이 유행하던 당시에 신촌의 클럽 "푸른굴 양식장"을 인수한 몇 분의 선각자에 의해 우리는 '우리말로 하는 랩 트랙을 들을 수 있는 장소'를 얻게 된다. 이제는 언급하기가 살짝 지겨울 수도 있는 그 '마스터플랜'이다.
그리고 1998년 12월 경 "취한 호랑이"라는 팀이 던진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제목으로 하고 '마스터플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힙합 문화의 태동기'의 면면을 담은 재미있는 방송이 방영된다. 그것이 바로 현장르포 제3지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이다. 보다 자세하고 깊이있는 당시의 이야기는 좀 더 읽어볼만한 자료인 『한국힙합 | 열정의 발자취』(2008)이나 여타의 자료를 통해 가능하리라 보고 본인은 당시 그 방송에 대한 리뷰로 그때에 대한 회고를 축약적으로 전달할까 한다.
2. 어른들은 몰라요?
당시의 힙합 문화를 많이 수용하고 나누었던 계층은 앞서의 언급과 같이 BLEX, SNP, Soul Train 같은 동호회와 대학의 동아리가 중심이 되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환영은 아무래도 나이가 비교적으로 젊은 계층에서 적극적일 것이다. '기성세대'라고 구분될 연령대의 계층은 '신세대'에 대한 불만을 투영하여 그 문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 다큐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서도 그러한 괴리감, 서로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힙합'이라는 명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이 된 오늘날에 이르는 과정까지 이 다큐 또한 한 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문화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소개하며 그 문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기록물로서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부분의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다큐의 주인공과 그를 바라보고 '공감이 없는 타인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그저 좋아서 빠졌을 뿐' 일지도 모를 그들은 '시기적으로 외로운 선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무언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것을 즐기는 계층은 뿌듯함과 외로움을 같이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법이 아닐까?
사후적이지만 이 다큐의 재미는 한국 힙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얼굴들이 오늘날 뭐하고 있나를 생각해 보는데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다큐 속 '얼굴들'은 잊혀져 간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도 있으며 '살아있는 한국 힙합의 전설'이 된 사람도 있다. 한국 힙합 문화의 자생적인 확산과 자발적인 '이 사람들의 젊음의 투자'에 대해서는 그저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 한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좀 혼란이 왔다. 이 다큐에서 묘사되는 '힙합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젊은 층'이 나이를 먹으면서 '힙합'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이 다큐 속에서 '힙합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이 그 결과를 본 것일까? 이제는 이런 사실의 분명함을 밝히는 행동 자체가 촌스러울 정도로 '힙합'이 낯선 것은 아니나 이 다큐를 보다 보니 '영상 속 어른들의 낯설고 불편한 시선'과 과연 '힙합 문화'는 화해를 하였나가 궁금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생각점을 던져주는 기록물이다.
3. 옛 것을 익히어 새것을 알아볼까?
저 당시의 한국 힙합의 미덕은 '세미나와 연구가 활발했고, 거리에서의 공연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크게 하려는 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이러한 경향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조건 앞서 이루어지고 실천되었다 하여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 우월한 것'으로 정해버리는 것은 '힙합 문화'가 가진 '재미있는 진보적 측면'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언제나 바람직한 형태는 균형, 특히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발전이 공존하는 형태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영상은 어느 정도의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느낀다. 지금 당신의 '한국 힙합에 대한 시각'과 선구자들, 이들이 영상 속에서 진술하고 있는 '의견'이 어떻게 같고 어디가 다른가를 생각하는 것은 본 영상을 '이 영상의 가치에 맞게' 즐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듯 큰 숫자는 아니었지만 순수하게 이들의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팔아준 티켓에 기뻐하는 '현재 한국 힙합계에서 존경의 블랙홀(?)'이신 분처럼 말이다. - 리뷰를 좀 냉철하게 진행시켜야 되는데 Respect이란 것이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니 양해 부탁한다. 인생이 '힙합 문화'인 분이 아닐까 싶다.
서서히 마무리 지을까 하며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곡인데 '왜 당시에는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격한 반항의 곡'으로만 이해를 했는지 모를 "장유유서"의 가사를 한 번 부록 차원에서 가져와본다. 뭔가 투박하지만 '그 당시의 느낌'이라는 것을 살짝 느껴볼 수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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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rus>
어! 지하철에서 어른오면 잠 자는 (새끼)
이유없이 어른 말씀 씹는 (새끼)
돈 안준다, 어른 때리는 미친 (새끼) (장유유서!)(장유유서!)
엎어진 노인 그냥 보고가는 (새끼) 랩하는 형님 옆에서 깐죽거리는 (새끼)
그런 새끼 유서 써야돼, 유서 써야돼(장유유서!)(장유유서!)
<Verse 1/BLEXMAN>
언제나 항상 들려오던 웃어른 공경의 소리들은
그 귀한 소리들은 이젠 귓전에 남지 않아.내 맘에도
남지 않아 난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아 받들지도 않아
그런 사람들도 많아 나만 그렇지도 않아
예 난 미쳐버린것 같아 예 난 정신나간 것 같아 예
<Verse 2/R-Killa>
무심코 던진 너의 한마디에 병들어 가는 그들의 마음
또 그들의 미움그걸 받고 자라나는 우리들 앞날은 또
이런 생활의 반복인가? 어른들께 반말하는 저 (싸가지
없는 놈) 그옆에 서있는 (너도 똑같은 놈)
언제부턴가 변해버린 (이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Verse 3/META>
하루에 우린 얼마나 엄마말을 무시하나? 짜증내나?
무너져 내린 가정교육의 현실을 보여주나?
어제 길을 가다 본 내 본 어린 어떤 새끼, 어른에게
담배불을 빌리는 지랄같은 새끼를 난 보고 말았지!
황당한 표정 그 분의 그 모습, 민망스러워 하는 주변의
그 모습, 뻔뻔한 그 놈의 개같은 모습!
<Verse 4/MALCOM>
내 앞에서 껄떡대며 지나가는 그 색끼 건드렸다 지랄
떨며 어른에게 미친짓 소리치는 그 새끼는 잘했다 잘
났다고 잘못없고 죄 없다고 악지르며 큰소리너는 이제
죽었다고 헛소리 개소리 집어쳐 너같은 개 좆같은 색끼
들은 가버려 이마를 후좆까서 피를 내어 죽여라 그런 뒤
잘 꼬매서 살려봐
<Verse 5/BLEXMAN>
기억해줘 명심해줘 다신 내게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넘쳐져 있고 이젠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은 너의 모습에
울부짖는 우물안의 너의모습 너만이 절대 옳은 모습과
숙여지지 않는 고개, 얼어붙어 버린 심장을 이젠 버려야
해 썩어빠진 거짓정신은 이젠 갖다 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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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를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느낌 자체로 접하기를 바라며 최대한 영상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면서 쓰다 보니 살짝 길을 돌아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이 저 영상을 접했던 과거와 현재의 생각이 어느 정도 충돌을 하면서도 맞물려 나온 듯하다. 여러분도 이러한 '충돌'의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다. '다큐'인데 이렇게 흥겹게 즐길 수 있고 즐기는 가운데 한국 힙합 씬에 대한 배움이 있다니! 힙합 팬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직접 즐겨주시라.
사랑과 평화.
※ 이 영상의 주소를 알려주고 많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래퍼 UnBomber에게 고마움을 밝힙니다. 1세대라는 딱딱한 구분보다 "이 다큐에 나온 '그 시대, 그 당시를 뜨겁고 멋지게 보낸 당신들' "에게 너무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또한 밝힙니다. Keep It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