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아카이브/랩

가장 논쟁적인 그룹 N.W.A.

seimo 2021. 4. 28. 12:35

원문:  music.bugs.co.kr/musicpd/albumview/19737?wl_ref=list_mab_01

 

갱스터 랩의 시대를 열다, N.W.A. / 남성훈

2015년 "세상에 반기를 든 문제적 그룹이 온다!" 라는 광고문구를 걸고 개봉한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다. 전국 누적 관객 수 5만명이 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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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성훈
2016.11.29

2015년 "세상에 반기를 든 문제적 그룹이 온다!" 라는 광고문구를 걸고 개봉한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다. 전국 누적 관객 수 5만명이 채 안 되는 저조한 성적으로 극장에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2천 8백만불이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와 유명 배우 한 명 없이 무려 1억불이 넘는 깜짝 흥행을 거둔 히트작이 됐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흥행은 저조했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미국의 음악 시장을 뒤흔들고 영원히 바꿔 버린 힙합 그룹 N.W.A.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며, N.W.A.는 당시 세계적으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한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N.W.A.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걸쳐 있으며 힙합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슈퍼그룹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논쟁적인 그룹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N.W.A. 멤버들의 인간적인 면과 여러 일화를 살필 수 있는 영화도 추천하지만, 힙합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면 N.W.A.에 대해 천천히 알아보며 그들의 음악을 꼭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컴튼(Compton)출신의 이지-이(Eazy-E)는 20대 초반부터 이미 큰 돈을 벌고 있던 마약상이었다. 당연히 거리의 실상과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음도 물론이다. 그러던 중 사촌이 총격으로 죽음에 이르자, 그는 범죄의 세계와 거리를 두고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힙합 신(Scene)에서 돈을 벌고자 했다. 스스로 음악가가 되기 보다는 사업가가 되길 원했던 그는 당시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컴튼(Compton)출신의 이지-이(Eazy-E)는 20대 초반부터 이미 큰 돈을 벌고 있던 마약상이었다. 당연히 거리의 실상과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음도 물론이다. 그러던 중 사촌이 총격으로 죽음에 이르자, 그는 범죄의 세계와 거리를 두고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힙합 신(Scene)에서 돈을 벌고자 했다. 스스로 음악가가 되기 보다는 사업가가 되길 원했던 그는 당시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반면, N.W.A.의 존재감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활동기간은 충격적으로 짧다. 1986년에 결성되어 [N.W.A. And The Posse]라는 편집앨범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88년의 데뷔작 [Straight Outta Compton]이었다. 그리고 아이스 큐브가 탈퇴한 상황에서 발표한 1991년의 [Niggaz4Life]가 마지막 앨범이 됐고, 닥터드레와 디제이 옐라 역시 발매 직후 레이블을 옮기며 그룹은 해체되고야 만다. 기껏해야 3년의 활동기간,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했던 그룹 내 갈등에도 N.W.A.는 힙합 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으로 남는다. 바로 그들이 남긴 두 장의 앨범, 특히 모든 멤버가 함께했던 걸작 [Straight Outta Compton]이 가진 힘과 영향력 때문이었다.

[Straight Outta Compton]은 이후 20년 넘게 미국 힙합 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된 갱스터 랩(Gangsta Rap)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명의 첫 트랙 ‘Straight Outta Compton’이 시작할 때 나오는 내레이션 “당신은 이제부터 거리의 지식이 가진 힘을 목격 할거야 (You are now about to witness the strength of street knowledge)”는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닥터드레와 디제이옐라의 샘플링 작법으로 만든 견고한 비트 위에 래퍼들이 쏟아 내는 이야기는 마치 손에 잡힐 듯 청각을 넘어 시각적으로 펼쳐졌다. 대부분의 가사는 아이스큐브와 엠씨렌이 적긴 했지만, 당연히 다른 멤버보다 실제로 거리의 범죄와 맞닿아 있었던 이지-이의 감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뛰어나다고 볼 수 없지만, 이지-이의 랩이 뿜어내는 기운이 대체 불가능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직설적인 그들의 가사는 당시에도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 논란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 우선 대중음악 시장과 문화계, 정치계를 포함한 외부의 불편함이었다. 현재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80년대 당시 흑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차별적이었고, 힙합 음악을 바라보는 백인 중심 기성세대의 시선도 물론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거주 지역인 컴턴 출신임을 밝히며 과격한 언어의 랩을 하는 그들은 주류사회에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특히 차별적으로 흑인을 대하는 경찰의 모습을 그린 ‘Fuck The Police’ 때문에 FBI로부터 경고를 받는 등 많은 일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외부의 시선은 N.W.A.의 성공과 영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N.W.A.의 직설적인 가사에 사회 전복적인 음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열광했고, 또한 흑인 거주지역의 무자비한 현실을 알리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가사가 결과적으로 모두 멋진 움직임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N.W.A.의 가사를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오히려 흑인 커뮤니티 내부였다. 주요 골자는 바로 N.W.A.의 가사가 사회전복적이기는커녕 흑인에 대한 편견을 확대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입지를 좁힐 것이라는 내부의 문제제기였다. N.W.A.의 가사가 흑인 간 범죄를 담고 있는 것은 흑인 거주 지역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복지보다는 억압을 불러온다는 주장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였다.

더불어 여성혐오적인 가사 역시 흑인남성에 대한 편견은 물론 흑인 사회 여성들, 특히 10대 이하의 여성들의 자존감 형성에 위협적이라는 문제제기도 많았다. 이런 논의는 앨범의 의심의 여지 없는 완벽한 완성도와 별개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후에 닥터드레는 가사가 일부 문제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어쨌든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은 힙합 음악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래퍼들은 더욱 과감하게 거리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고, 이는 랩 가사의 수준을 또 한 단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래퍼들은 이전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출신 지역을 드러냈고 자신의 지역구에서 유명 래퍼가 탄생하는 것을 바라는 이들도 많아졌다.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 빈민가의 거주민들은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춰지기를 바랬던 것도 한 몫 했다. 짧은 활동이었지만, 그래서 N.W.A.는 불꽃같은 인상을 남겼다. 수 많은 후배 래퍼들은 지금까지 끝없이 그들의 가사를 인용하며 존경을 표하고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N.W.A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시킨 갱스터 랩의 영광을 닥터드레와 아이스큐브가 90년대에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것도 N.W.A.가 위대한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