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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 CEO, 슈그나이트의 훼방 역사가 낳은 앨범들 (출처: 리드머)

seimo 2021. 3. 29. 01:58

*원문: m.rhythmer.net//src/magazine/feature/view.php?n=16237

 

무뢰한 CEO, Suge Knight의 훼방 역사가 낳은 앨범들 | 리드머 - 대한민국 힙합/알앤비 미디어

지난 1999년, '데스 로우(Death Row)'에서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Chronic 2000]은 타이틀과 발매 시기부터 레이블을 탈퇴했던 닥터 드레(Dr. Dre)를 겨냥하여 만든 색이 짙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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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데스 로우(Death Row)'에서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Chronic 2000]은 타이틀과 발매 시기부터 레이블을 탈퇴했던 닥터 드레(Dr. Dre)를 겨냥하여 만든 색이 짙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갑작스레 이 앨범이 발매되는 바람에 드레는 최초 [The Chronic 2000]이었던 앨범의 타이틀을 그냥 [2001]로 바꿔야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데스 로우의 수장 슈그 나잇(Suge Knight)이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악명을 떨치던 때라 누구도 크게 공론화시키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해당 앨범에 참여했던 독 파운드(Tha Dogg Pound)의 대즈 딜린져(Daz Dillinger)가 'Vlad TV'와 인터뷰를 통해 [Chronic 2000]는 닥터 드레에게 복수하기 위해 제작한 앨범이었음을 확실히 밝혔다.

"그건 슈그 나잇의 아이디어였어. 닥터 드레에게 복수하려 했던 거지. 그래서 가짜 스눕 독(Snoop Dogg/*필자 주: Top Dogg을 비유)과 가짜 투팍(2Pac/*필자 주: Tha Realest를 비유)을 데려왔던 거야."

지금이야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비난받는 슈그 나잇이지만, '90년대 그의 영향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이를 악용하여 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다고 생각한 뮤지션들에게 참 많은 몹쓸 짓을 가했다. 그것도 함께 갱스터 랩(Gangsta Rap)의 전성기를 일군 가족같았던 이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마침 대즈 딜린져가 소신 발언(?)으로 다시 한 번 슈그 나잇의 악행을 회자하고 있는 바, 대중음악계 폭력과 착취의 대명사였던 그가 남긴 몹쓸 '훼방의 역사'를 풀어 보았다.

Suge Knight Represents: Chronic 2000

닥터 드레가 [The Chronic] 이후, 7년여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과 함께 'The Chronic 2000'이 타이틀임을 알리자 슈그 나잇은 어떻게 하면, 이 계획에 찬물을 끼얹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드레는 슈그와 불화 끝에 데스 로우를 나와 독자적인 레이블 '애프터매스(Aftermath)'를 운영하는 중이었는데,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레이블이 에미넴(Eminem)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되자 슈그의 배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먼저 'Chronic'이란 타이틀을 내세워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본작 [Chronic 2000]이다. 그러나 그 시기 데스 로우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드레는 물론, 스눕도 떠났고, 투팍(2Pac)은 사망한 상태였다. 대즈 딜린져와 수파플라이(Soopafly)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앞선 이들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전율의 플로우를 자랑하는 크루킷 아이(Crooked I)도 그땐 무명에 불과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슈그가 생각한 핵심 전략은 바로 두 가지. 하나는 스눕과 투팍을 대체할 이들을 데려오는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투팍의 미공개 음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전자를 위해 그들의 모창 랩퍼라 해도 과언이 아닐 탑 독(Top Dogg/스눕 대체자)과 더 리얼리스트(Tha Realest/투팍 대체자)라는 신인들을 참여시키고, 고이 꿰차고 있던 투팍의 미공개 곡 "Who Do U Believe In?"과 "Late Night"을 수록했다. 그리고 무려 2CD로 제작된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여기저기서 혹평받았지만, 데스 로우의 전성기적 음악에 대한 향수를 지닌 이들과 투팍의 새로운 음악에 솔깃한 이들 덕에 상업적으로 꽤 쏠쏠한 성과를 올렸다. 참고로 투팍의 "Who Do U Believe In?"은 정말 명곡이다. 물론, 그해 11월에 나온 닥터 드레의 [2001]이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슈그 나잇의 것보다 월등히 높은 결과를 기록했으나 잃을 게 없던 슈그 나잇으로서는 꽤 성공적인 훼방 놓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타깃은 스눕 독이었다.

Snoop Dogg - Dead Man Walkin'

드레 없이 만든 2집 [Tha Doggfather]를 끝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데스 로우와 결별한 스눕은 당시 힙합 씬의 손꼽히는 재력가였던 마스터 피(Master P)의 '노 리밋 레코즈(No Lomit Records)'와 손잡았다. 슈그 나잇의 마수에서 벗어난 건 환영할만한 일이었으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노 리밋과 계약은 많은 힙합 팬을 당황스럽게 했는데,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마스터 피의 제작 아래 나온 첫 작품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는 커버 아트워크부터 프로덕션까지 모든 게 노 리밋 클리셰로 범벅 된 앨범이었고, 이에 스눕 독의 캐릭터와 랩이 전혀 녹아들지 못하면서 혹평 세례를 받았다(그럼에도 판매량은 좋았다). 나 역시 이 앨범은 스눕의 정규 커리어 중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빠르게 시행착오를 인지한 두 뮤지션은 다음 앨범 [No Limit Top Dogg]에서 닥터 드레를 불러오는 등, 음악적인 균형을 꾀했고, 지난날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슈그 나잇은 스눕의 커리어가 부활의 기미를 보이자 곧바로 움직였다.

이듬해 또 한 번 닥터 드레의 참여 소식으로 기대치가 오르던 새 앨범 [Tha Last Meal]의 발매를 약 두 달 앞둔 상황에서 데스 로우는 스눕의 옛 미발표 곡들을 모아 [Dead Man Walkin']을 내놓는다. 그리고 슈그는 [Doggystyle]의 향수에 젖은 팬들을 노리고 이렇게 홍보했다. '진짜 여러분이 원하는 스눕 독의 음악이 담긴 앨범'. 실제 앨범은 스눕이 1992년부터 1998년 사이에 녹음한 곡들로 구성되었는데, 전부 대즈 딜린져, 수파플라이, 엘티 허튼(L.T. Hutton), 디제이 푸(DJ Pooh) 등등,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전성기에 활약한 프로듀서들의 비트였으나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는 곡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백한 허위 광고였다. 어쨌든 스눕이 직접 팬들에게 앨범을 사지 말아달라 당부하며, 공식적으로 보이콧했음에도 약 20만 장이 판매됐는데, 이것이 [Tha Last Meal]의 상업적인 결과 여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스눕과 레이블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슈그 나잇은 적당히 훼방을 놓으며, 잘 먹고 빠진 셈이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타깃은 독 파운드였다.   

Tha Dogg Pound – 2002

최초 스눕 독의 백업으로 등장했던 듀오 독 파운드는 1995년에 첫 앨범 [Dogg Food]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불화와 탈퇴로 얼룩진 레이블의 상황 속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멤버 커럽(Kurupt)은 생존을 위해 솔로 활동을 모색하며 레이블을 탈퇴했고, 그 과정에서 형제와도 같았던 대즈 딜린져와 앙숙이 되고 만다. 이때부터 두 랩퍼의 긴 암흑기가 시작된다. 커럽은 꾸준히 양질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상업적으로 변변치 않은 성적을 거뒀고, 반강제적으로 데스 로우에 남은 대즈는 비트를 착취당하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후, 슈그 나잇과 데스 로우의 기반이 현저히 낮아진 때를 틈타 독립을 선언한 대즈는 커럽과 화해하고 다시 뭉쳤는데, 슈그가 이를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했다. 슈그는 먼저 당시 웨스트코스트 힙합 팬들 사이에서 상징적인 이름 중 하나였던 '독 파운드'라는 팀 명을 쓰지 못하게 했다. 계약상 이름에 대한 저작권이 데스 로우에 있었고, 대즈와 커럽은 고민 끝에 그들뿐만 아니라 스눕, 네잇 독(Nate Dogg), 수파플라이 등등, 함께 활동한 동료의 모임을 총칭하는 '독 파운드 갱스타즈(Dogg Pound Gangstaz)'의 준말 'D.P.G'로 이름을 바꾸고 2001년 5월에 드디어 두 번째 앨범 [Dillinger & Young Gotti]를 발표한다.

슈그의 본격적인 만행은 매체를 통해 듀오의 새 앨범 소식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그와 데스 로우는 앞서 스눕 독의 [Dead Man Walkin'] 때와 마찬가지로 레이블의 전성기적 녹음된 듀오의 미발표 곡을 모아 [2002]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제작했고, '이 앨범이야말로 진짜 독 파운드의 사운드가 담긴 앨범'이라며 옛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을 펼쳤다(이 역시 과장 광고였다). 그리고 [Dillinger & Young Gotti]가 발표된 지 약 3개월되는 시점에 앨범을 발매했다. 결과적으로 두 앨범 모두 이전처럼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빌보드 앨범 차트 성적은 [2002]가 훨씬 높았다. 이후로도 이름 '독 파운드'에 대한 소유권은 슈그 나잇이 쥐고 있었으며, 커럽과 대즈는 200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 파운드'라는 이름을 되찾아 새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Snoop Dogg - Death Row: The Lost Sessions Vol. 1

한때 힙합 씬을 호령하며, 절대로 침몰할 것 같지 않던 데스 로우 함선은 닥터 드레, 스눕 독, 독 파운드의 뒤를 이을 스타의 부재와 메인스트림 힙합 음악의 트렌드 변화로 인해 점점 침몰하기 시작했다. 결국, 슈그는 파산을 선언하며, 2006년 회사에서 물러났고, 2009년에 캐나다에 거점을 둔 레이블 '와이드어웨이크 엔터테인먼트(WIDEawake)'가 데스 로우를 인수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슈그가 가장 어필한 게 바로 투팍과 스눕의 미공개 음원들이다. 이에 와이드어웨이크는 그해 발매 예정이던 스눕의 새 앨범 [Malice n Wonderland]보다 두 달 앞서 그의 미발표 곡들을 모은 앨범 [Death Row: The Lost Sessions Vol. 1]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스눕 독'이 아닌, '스눕 도기 독'이란 이름을 앞세워서….

무엇보다 이 앨범은 앞선 [Dead Man Walkin']과 달리 소장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상품이었다. 그동안 조악한 음질로만 떠돌던 스눕의 미발표 명곡들인 "Doggystyle"과 "O.G."가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Doggystyle"은 동명의 클래식 앨범 [Doggystyle]에 왜 수록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탁월한 트랙이었다. 분명, 구성 면에서 앞서 언급한 앨범들보다 골수 팬의 향수를 제대로 자극하는 결과물이었지만, 주인공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점이며, 실제 스눕은 이번에도 공식적으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슈그는 파산했으나 그의 마수는 여전히 뻗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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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슈그 나잇의 훼방 속에서 탄생한 앨범들이다. 그나마 굵직한 이름의 경우만 언급해서 그렇지, 슈그는 스타건 신인이건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라면, 가리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훼방을 놓아왔다. 무려 10년 넘게 앨범 한 장 발표하지 못하고 아까운 재능을 쳐박아둬야했던 크루킷 아이는 대표적인 희생양이라 할만하다.

슈그 나잇은 현재 살인을 비롯하여 여러 건의 지난 범죄 항목까지 더해져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3월에는 법정에서 약 278억3,500만 원에 이르는 보석금 판결을 받고 쇼크로 쓰러지기도 했으며, 'GoFundMe'라는 펀딩 사이트에서 그의 보석을 위한 모금 운동이 전개되자 해당 사이트가 펀딩 자체를 삭제해버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를 보면 인과응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르지만, 슈그가 최종적으로 얼마나 강한 판결을 받든, 그동안 그로 인해 뮤지션들이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 그리고 커리어의 손실은 두고두고 남아 있을 것이다. 수집가로서 소장 욕구를 참지 못하고 이 모든 앨범을 구입했음을 고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