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과학

음악을 듣는 신경세포들의 '합창'

seimo 2021. 1. 5. 18:41

원문: 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167&m=0&document_srl=34707

 

[새연재] 음악을 듣는 신경세포들의 '합창'

(1) 연재를 시작하며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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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5. 18

 

 

음악은 놀라운 것이다.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레츠 겟 잇 온(Let’s get it on)‘을 들어보자. 곡을 시작하는 기타의 단 세 음만으로 이 곡이 표현하는 감정이 즉각, 온전하게 전해진다. 이 곡의 첫 세 음은 이 곡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울 때, 선생님이 ’장조‘와 ’단조‘의 차이를 처음으로 가르쳐 준 순간이 기억난다. “이게 단조야”라는 설명과 함께 어떤 음계를 연주하셨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픈 기분이 몰려왔다. 어린 꼬마에게는 너무 생경했던 그 슬픈 느낌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몇년 전엔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친척 조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단조 음계를 처음으로 들려준 순간 그 녀석은 아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음악이 아무런 구체적인 표현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뭉크의 그림처럼 절규하는 사람의 표정을 묘사하지도, 셰익스피어의 소설처럼 주인공의 고뇌를 그의 가족사와 함께 서술하지도 않는다. 하나씩 떼어놓으면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전달하는, 게다가 그 정보마저도 우리가 일률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소리 몇 개를 이어붙이면 어린 아이가 눈물을 흘리기도, 다 큰 어른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장조 음계와 단조 음계는 일곱 개의 음정 중에서 단 두 개의 음정이, 그것도 반 단계씩만 차이를 지닐 뿐이다. 그러나 두 음계가 유발하는 심상은 매우 다르다.

 

게다가 같은 선율이라도 연주하는 악기의 음색이나 리듬, 빠르기에 따라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체 이 ’음악‘이라는 소리가 귀에 입력되면(물리적으로는, 아름다운 음악도 듣기 싫은 소음도 모두 다 공기라는 매질의 교란이 고막을 진동시키는 현상일 뿐이다), 이 소리를 해독하는 ’뇌’(마음과 정서를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원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뇌‘라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세 가지 방법

 

17세기엔 마틴 드뢰슈트(Martin Droeshout)의 그림(위)과 같은 실험이 실제로 행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자들도 여전히 비슷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해 가던 2007년 봄학기에, ’신경 부호화와 소리의 지각 (Neural coding and perception of sound)‘이라는 과목을 청강할 기회가 있었다. 그 시간에 처음으로 고양이의 뇌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다. 소리의 높낮이를 지각하는 데 관련된 뇌간 부분의 신경세포 배열이었는데, 그걸 보았을 때 느꼈던 놀라움이 아직 생생하다. 그 순간,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어 답답했던 우리의 뇌가, 전기를 튀기며 정보를 전달하는 물리적인 대상, 즉 ’내가 공부하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두개골을 열어 뇌세포를 들여다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은 뇌전도(electroencephalography, EEG), 뇌자도(magnetoencephalography, MEG),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e, MRI) 등의 기법을 사용해 밖에서 뇌 안의 신경 활동을 들여다본다. 그 중 내가 주로 사용하는 실험도구는 뇌자도인데, 뇌 안의 신경세포가 집단적으로 전기화학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발생하는 미세한 자기장을 초전도 코일을 이용해 기록하는 장치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뇌의 어떤 부분의 신경 활동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시시각각 변화하는 패턴에 많은 정보가 들어 있는 ’소리‘에 대한 반응을 연구하는 데 많이 쓰인다.
 

하지만 여전히, 뇌의 신경세포를 들여다보거나 활동을 관찰하는 것보다, 여러 신경세포들이 무수히 연결되어 만들어진 ’뇌‘라는 ’시스템‘의 동작 원리를 알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더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피험자의 행동·반응을 살피고 의견을 묻는 전통적인 실험심리학적 접근과, 이 모든 실험 결과들을 종합해 뇌의 메커니즘을 ’상상‘해보는 연산·이론적인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

나는 되도록 위의 세 가지 방법론을 모두 사용하여 소리 지각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음악과 뇌에 관련한 큰 질문을 좀더 잘게 쪼개고, 그 중 쉬운 것들부터 골라 차근차근 답을 구해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사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음악‘의 ’인지‘에 관한 연구라기보다는 ’소리‘의 ’지각‘에 관한 연구다.

어쩌면 이 방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기 때문이다. 각각의 음에 대한 뇌의 반응을 알아도, 그 음들을 이어붙인 선율에 대한 뇌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에 여지없이 해당되는 경우다.

 

■ “수박 겉이라도 핥아봐야 할 얘기도 있지”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청각기관 연구의 선구자로 1961년에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헝가리의 베케시(Georg von Bekesy)는 바로 코끼리의 귀를 가지고 달팽이관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내 지도교수셨던 성굉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주 하신 말이 있다. “코끼리 뒷다리라도 만져보고 수박 겉이라도 핥아본 사람이 그나마 할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 연재도, 작고 간단한 문제들부터 시작해 점점 더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이어가 보려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소리를 크다고 느끼는지, 어떻게 높은 음과 낮은 음을 구분하는지, 피아노 소리와 첼로 소리를 어떻게 구분하며, 왜 목욕탕에서 듣는 소리보다 콘서트 홀에서 듣는 소리가 더 아름다운지 등의 이야기다. 어쩌면 이런 주제가 음악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논의와 지식을 바탕으로 ’음악을 듣는 뇌‘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결국 더 직접적으로 이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이 연재의 방향이기도 하고, 내가 ’연구자‘로서 자신에게 주는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될지, 어렴풋한 계획은 있지만 확실하게는 아직도 모르겠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두자.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연재의 뒷 부분에서는 선배, 동료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음악과 뇌에 관한 연구를 더 먼저 시작한 선도자들(오하이오주립대의 데이비드 휴런(David Huron) 박사, 맥길대의 대니얼 레비틴(Daniel Levitin) 박사, 가까이는 하버드대의 사이키 루이(Psyche Loui) 박사 등)이 조금 더 야심차고, 더 음악적으로 나아간 신경과학 연구를 하고 있다. 늘 그들의 연구 결과에 감탄하고, 배우며, 영감을 얻고 있다. 그 ’이해‘에 나의 ’질문‘을 덧붙이고, 조금이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생각해보면서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연재를 통해서 더 많은 영감을 주는 독자를 수없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처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때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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