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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fucker, 그리고 힙합 속 비속어에 대한 단상 (글 강일권)

seimo 2020. 5. 1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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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fucker, 그리고 힙합 속 비속어에 대한 단상 | 리드머 - 대한민국 대표 흑인음악 미디어

중학교 시절 별명 중 하나가 'Motherfucking Man'이었다. 반에서 'Motherfucking'과 'Motherfucker'란 단어를 전파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였다. 어감이 너무 멋있어서. 미국 힙합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당시, 'N Word(Ni**a)'와 'Motherfucker'에서 오는 느낌과 맛이 그렇게 찰지고 멋있을 수 없었다(투팍의 발음으로 한 번 들어보라.). 특히, 원래는 심한 욕설이지만, 친한 사이끼리 쓰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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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 작성 | 2017-10-30

 

 

 

중학교 시절 별명 중 하나가 'Motherfucking Man'이었다. 반에서 'Motherfucking'과

'Motherfucker'란 단어를 전파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였다. 어감이 너무 멋있어서. 미국 힙합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당시, 'N Word(Ni**a)'와 'Motherfucker'에서 오는 느낌과 맛이 그렇게 찰지고 멋있을 수 없었다(투팍의 발음으로 한 번 들어보라.). 특히, 원래는 심한 욕설이지만, 친한 사이끼리 쓰면 '인마' 정도의 친근한 표현이란 정보를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발판 삼아 시저처럼 ‘Motherfucker’를 전파했고, 단어는 시미안플루처럼 퍼졌다. 1993년도만 해도 그냥 ‘fuck’이 아닌 ‘mother’가 붙은 ‘fuck’까지 아는 학생은 드물었다. 어느새 친구들 대부분과의 등교 인사는 “와썹! 머더뻐커~(What’s up! motherfucker~)”가 됐다. 그리고 이는 교실 문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motherfucker’를 듣게 된 영어 선생과 일대일 면담을 하던 날까지 지속됐다. 어렴풋하게나마 욕에 숨겨진 함의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PC 통신을 중심으로 힙합 동호회가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 즉, 한국 힙합 씬이 형성되기도 전부터 ‘Motherfuck-‘에 대한 힙합 마니아들의 애정과 집착(?)은 대단했다. 이야길 나눌 때든 랩을 하고 놀 때든 ‘존나’ 못지않게 ‘Motherfuckin’’을 사용했을 정도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단지 어감이 멋있었을 수도 있고, 강해 보이는 느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힙합 가사에서 많이 나오는 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Motherfuck-‘은 한때 미국 힙합 좀 듣는 이라면 기본적으로 써줘야 하는 속어였다.

시계를 현재로 돌려보면, 한국에서도 ‘Motherfuck-‘은 더 이상 낯선 속어가 아니다. 월드 와이드 웹(www) 시대가 열리고, 랩/힙합이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을 넘어서면서 누구나 익숙한 말이 됐다. ‘Motherfuck-‘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폭풍같이 배급되는 현실도 중요한 배경이다(2002년 영화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가 “뻑! 머더뻑커!”를 외칠 때만 해도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속어에 관해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구석이 많다. 국외엔 오로지 ‘Motherfuck-‘과 관련하여 작성된 칼럼과 논문이 여럿 나와 있는 것은 물론, 책까지 출간돼있는 상태다.

우선 어원을 살펴보면, 어머니를 뜻하는 ‘Mother’와 성교를 뜻하는 ‘Fuck’이 결합한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매우 패륜적인 의미가 내포되었다. 남북전쟁 이전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선 옛날에 대가 끊길 수 있는 상황에서 아들이라면, 어머니와 성교를 해서라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렇다 보니 ‘Motherfuck-‘ 역시 꽤 오랫동안 여성혐오(*필자 주: 정확히는 ‘Misogyny’)의 사례로 간간이 제시되어왔다. 그 이유는 복합적인데, 어머니를 성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넘어 여성을 생식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도 결정적이다.

다만, 욕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대를 거치면서 품은 함의가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고 ’Motherfuck-‘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표기도 이젠 ‘Mother’ 부분을 발음에 따라 변형하여 ‘Muthafucka’, ‘Mo’fucka’ 등등, 여러 형태로 쓰인다. 그만큼 ‘Motherfuck-‘은 오늘날 약자 혐오 논란과 끊임없이 결부되는 대표적인 속어들, ‘B Word(Bit*h)’나 ‘Fag*ot’과의 온도 차가 확연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친근한 사이끼리 썼을 때는 욕설의 가장 보편적인 기능(혐오와 비하)이 상실된다는 점, 그리고 문장, 혹은 말의 맥락에 따라 꾸며주는 말 정도의 역할에 그칠 때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기에 ‘Motherfuck-‘의 어원은 여성혐오적일지언정, 현재 이를 엮어서 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상황에 따라 심한 욕설로써도 쓰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흔치 않긴 하지만, 상대방의 어머니를 모욕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2009년에 출간된 [The Complete Motherfucker: A History of the Mother of All Dirty Words]의 저자 짐 도슨(Jim Dawson) 역시 현재 ‘Motherfucker’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긴 하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관계는 어떠한가, 어떤 상황인가 등에 따라 의미와 반응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즉, 오늘날 ‘Motherfuck-‘을 무조건 여성혐오와 직결하여 논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겐 ‘혐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Motherfuck-‘은 한국문화 속에서 탄생하지도 않았거니와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와 문화는 서로를 배제하고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이며, 언어 그 자체가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논쟁이 있는 언어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몇몇 현상 외에 문화적인 배경과 맥락 또한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Motherfuck-‘은 블랙 커뮤니티 내에서도 밑바닥 계층에서 비롯된 속어다. 그리고 이것이 앞서 언급한 약자 혐오 속어들과 다르게 보편적인 기준에서 문제없는 욕설로 체화된 데에는 여러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게토의 흑인들 사이에서 상대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게임이 성행했던 사실은 대표적인 예다. 비단 블랙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미국엔 상대의 어머니를 성적 대상화, 혹은 희화화한 농담과 게임이 꽤 많다. ‘다른 건 다 허용해도 패륜적 드립만큼은 안 된다.’라는 한국의 상황과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Motherfuck-‘이 탄생했고 변화했으며, 통용되는 중이다. 또한,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도 현지엔 이 단어의 성차별주의 여부에 관한 논쟁이 잔존한다.

이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Motherfuck-‘에 대해 혐오 여부를 단정하여 얘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단지 힙합 가사에 자주 등장한다는 이유로 아무 문제 없다고 확신하는 현상 자체가 바람직한가. 만약 미국에서 별문제가 없다면, 무조건 한국에서도 문제 되지 않는 것인가. 많은 이가 이 지점을 간과하고 있다.

강조하건대 난 지금 ‘Motherfuck-‘의 여성혐오 여부를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문화와 관계가 희미하며,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다면, 더욱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특정 표현이나 단어를 두고 ‘혐오다.’와 ‘혐오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양쪽 모두에게 해당된다. 단,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일수록, 문제를 제기한 측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그편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그동안 미 속어와 연관된 한국 힙합 속의 혐오 논란을 지켜보며, 가장 답답하고 아쉬웠던 부분이다

세상에 만연한 혐오문제는 보통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제기된다. 혐오문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제 제기가 그렇다. 중요한 건 그 주관적인 잣대에 의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가와 그것이 얼마나 공감을 얻느냐일 것이다. 판단 역시 그 주체가 인간인 이상 주관적이지 않은 판단이란 없다. 그저 좀 더 많은 주관이 모여서 더욱 설득력 있거나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주관 쪽을 기준으로 할 뿐. 무엇보다 상대의 의견을 ‘너무 주관적인 잣대’라고 판단하는 행위조차 주관적인 것이다.

현재의 한국 힙합 씬에선 더 많은 주관적인 의견들이 활발히 부딪쳐야 한다. 힙합 팬을 자처함에도 정작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매년 불거지는 혐오 논란에 ‘힙합의 특성’과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힙합을 위해 전혀 도움 되지 못한다. 하물며 이는 힙합의 특성으로 설명할만한 성질의 논제가 아니며, 해당 문제 제기가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지도 않는다. 세계적으로 힙합 씬이 움직이는 흐름과도 동떨어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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