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아카이브/한국힙합 랩

다모임의 '중2병' 심층 해부하기 (글 안승배)

seimo 2020. 2. 12. 20:04

 

원문보기:  http://bitly.kr/SkBhGV81

 

[다모임 특집] '중2병' 심층 해부하기

다모임의 '중2병'은 누가 봐도 스트레이트한 힙합이다. 단순명료한 곡 구성과 달리 그들의 가사는 흘려보내기 아쉬운 재미있는 레퍼런스로 가득하다. '곧 죽어도 힙합'인 다모임의 태도와 이 문화를 향한 애정을..

maedi.kr

2020.2.11

 

다모임의 '중2병'은 누가 봐도 스트레이트한 힙합이다. 단순명료한 곡 구성과 달리 그들의 가사는 흘려보내기 아쉬운 재미있는 레퍼런스로 가득하다. '곧 죽어도 힙합'인 다모임의 태도와 이 문화를 향한 애정을 함께 알아보자.   


Verse 1 : Deepflow

"늘 XXL fit 입어, 머리는 밀었지 2mm"

-'XXL' 은 90년대 힙합 열풍 시절 익숙했던 사이즈다. 당시 (패션의 관점에서) 힙합퍼들의 집결지인 압구정 로데오거리로 가면 자신의 두 배는 되보이는 크기의 옷을 걸친 무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기에 거의 삭발에 가까운 2mm 반삭은 덤. 또한 'XXL'은 'The Source'와 함께 당시 힙합매니아들이 거금을 주고서라도 모았던 미국의 유명 힙합 잡지이기도 하다. 

 

Verse 2 : The Quiett

"그 해 여름 종성이의 Panasonic CDP"

-지금은 mp3 플레이어조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힙합 붐이 일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당시 CDP는 음악 매니아들에게 필수템이었다. 이 중 파나소닉 CT800 이나 소니 EJ2000 의 이름을 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신도 힙합 아재. 

전설의 명기 파나소닉 CT800

"이대 앞에서 사입은 Sean John과 ECKO는 fake 빌려 신어 Timbaland"

-힙합 열풍은 빈부의 격차를 실감케 했다. 압구정 로데오의 직수입 힙합 의류는 너무 비쌌고, 이태원 힙합 스토어는 삐끼(?) 형들에게 털릴 것이 두려워 함부로 발 들일 수 없었다. 이대 앞과 문정동 아울렛은 이런 고민을 안고있던 힙합키드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당신이 진짜 친구라면 브랜드는 확인해도 구입처는 묻지 않고 넘어가는거다. Timbaland는 왜 빌려 신었었냐구? 학교 축제 공연만 해결하면 됐으니까!

"그래, No way out 듣고 범생 out I thought about"

-'No way out'은 미국 흑인음악 계의 전설적인 제작자 Puff Daddy가 97년 Notorious B.I.G.의 사망 직후 발매한 솔로 앨범이다. 당시 이 앨범은 힙합과 팝 차트를 모두 점령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심의제도로 인해 미국 힙합앨범을 라이센스 하기 쉽지 않던 그 시절, 이 앨범은 무난히 라이센스되어 국내에서도 1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라이센스된 해외 힙합앨범 중에서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필자도 당시 이 앨범을 구매했던 누나의 영향으로 힙합에 입문했다.  

"혹시 기억하니, 잡지 Bounce"

-Bounce는 99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YG 엔터테인먼트에서 매월 배포하던 무가지다. 당시 많은 힙합 키드들은 이 잡지를 보기 위해 매달 초 Bounce가 입고되는 힙합의류점을 기웃거렸다. 특정 아티스트 편애 논란 등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뮤지션 인터뷰부터 공연 및 패션 정보 등 매월 다양한 힙합 콘텐츠를 제공하고 YG, MP, Movement 등 1세대 파이오니어들로 기억되는 대부분의 시작을 조명한 공로는 재조명 받아 마땅하다. 

YG 엔터테인먼트에서 1999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무료로 배포했던 힙합 잡지 'Bounce'

"Vince Carter 신인 때부터 난 랩했지"

-미 프로농구(NBA)에서 현재 최고령 현역 플레이어로 뛰고 있는 빈스 카터. 1977년생인 그의 데뷔년도는 1998년. 빠른 85년생인 더콰이엇이 힙합과 사랑에 빠져 랩을 시작한건 이 노래 제목처럼 중2 때부터. 

 

Verse 3 : YUMDDA

"나는 싸가지가 너무 바가지 / 힙합바지 입고 나가지"

-지금 보면 다소 1차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위 라인의 가사와 라임은 한국 랩의 파이오니어 김진표가 1999년 솔로 2집의 '진표생각'에서 선보인 가사다. 당시 PC통신 힙합게시판들을 불태웠던 '라임논쟁', ㄱ나니?

"정상을 향한 독주, 휘파람, 후후,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woo, YG가 가만두지 않아!"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의 한국힙합 클래식들을 나열한 구절. 당시 음악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YG, MP, 무브먼트가 한 라인에 빠르게 언급되는 것에서 세월을 실감할 수 있다. (왼쪽 부터 주석, CB Mass, 드렁큰 타이거, YG패밀리 순)

 

Verse 4 : Simon Dominic

"이 live king의 시작은 98년도 클럽 2pac"

-믿기 어렵지만 당시 98년의 부산에는 중학생도 공연 오디션을 볼 수 있는 클럽이 존재했다고 한다. 패기넘치는 이름의 클럽 '2pac'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신을 맞이하는 건 미국 웨스트코스트의 전설 투팍의 벽화. 사이먼 도미닉 '쌈디'가 중학교 2학년 겨울 단 6명 앞에서 처음 랩을 한 곳이기도 하다. 클럽 '투팍'은 그 이후 콜라텍 '투팍'으로 변신했으나 줄어드는 손님으로 인해 결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는 후문. 

"기억나니 검은 소리 블렉스, 나만 못 가본 Master Plan"

-검은소리 블렉스 (go BLEX) : PC통신을 기억하는가? 천하삼분지계 와도 같았던 하이텔-나우누리-천리안 중 가장 유서깊은 흑인음악 동호회는 단연 하이텔의 '검은소리 블렉스' 였다. 97년 정식모임으로 승격된 '검은소리'가 여타 PC통신 힙합동호회와 구분 되었던 점은 흑인음악 정보, 앨범 리뷰, 뮤직비디오 공유를 넘어 흑인음악 창작과 교류가 가장 활발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1세대 레전드로 불리는 가리온의 엠씨메타와 주석은 본래 '검은소리' 운영진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검은소리'는 한때 (2000년 1월 기준) 회원수 1,500명까지 육박했으며, 회원들과 함께한 창작활동을 통해 한국힙합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형성하고자 했다. 김진표가 97년 랩으로만 모든 트랙을 채운 첫번째 메이저 가요앨범 '열외'를 발표했을 때, 같은 해 PC통신에서 모인 소수의 래퍼들이 힙합의 태도를 온전히 담은 언더그라운드 랩 앨범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클럽 마스터플랜 (Master Plan) :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신촌에 있던 힙합 클럽.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지 그 자체로, 수많은 1세대 래퍼와 DJ들을 배출한 곳이다. 래퍼 빌스택스 (구. 바스코)의 말처럼 당시 마스터플랜은 하나의 "보증수표였다". 오디션에 합격해 공연진이 되는 순간 실력을 인정받는 곳이기 때문에 타 힙합클럽에서 활발하게 공연하던 래퍼들도 심심찮게 오디션을 지원했다.

마스터플랜은 이후 클럽 주축 멤버 몇몇과 함께 힙합 레이블로 거듭난 뒤, 지금은 공연기획사로 변신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매년 성황리에 개최하고 있다. 

클럽 마스터플랜의 마지막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Verse 5 : Paloalto

"One two, 돕자, 둘이 돕자, 셋이 돕자"

-1996년 2인조로 데뷔한 언타이틀의 1집 수록곡 '돕자'의 후렴구를 재치있게 인용했다. 

"몰래 본 HipHop the Vibe 프로가 오히려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잖아"

-2000년 엠넷에서 기획/제작한 힙합 전문 프로그램으로 '쇼미더머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 그대로 힙합이 가진 분위기나 매력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 이 프로는 지금 들으면 손발이 시공간을 이탈하는 '프리스타일 배틀', 지금은 소식을 찾아볼 수 없는 1세대 래퍼들의 라이브 등 몇몇 기억할만한 흔적을 한국힙합의 역사에 남겼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엠넷에서 방영했던 '힙합더바이브'

Written by 안승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