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아카이브/랩

쿨 모 디, 랩 배틀의 시작 (출처 국제신문)

seimo 2019. 2. 8. 01:47

원문: https://goo.gl/SiSnj9



랩 배틀의 시작, '쿨 모 디가 잘못했네'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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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의 다양한 특징 중 하나는 분노다. 특정한 상대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혹은 가끔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음악은 힙합뿐이다. 무대에 올라 반대편의 상대에게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는 것도 힙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성시경이 조성모를 무대 위로 불러 조성모의 흑역사 '조매실'을 언급하는 발라드를 부르거나, 태진아가 송대관과 마주 서서 누가 더 '리얼'한지를 가리는 노랫말을 담아 트로트를 부를 일은 없다. 그건 그 장르의 음악적 특성과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래퍼 서출구가 원(One)과 마주 서서 "원(One)망하게 될 것"이라며 중의적인 랩을 뱉고, 앤덥이 마이크로닷에게 "내 마이크로, 닷(dot)"이라며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일 모두 오직 힙합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힙합은 이 태생적 분노 때문에 많은 오해와 비난을 사기도 한다. 힙합의 특성이 모두 분노라고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번 글은 래퍼 슈퍼비가 타블로를 디스(Diss. Disrespect의 약자로, 힙합씬에서 상대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해 이슈가 되었던 가사 '앰뷸런스' 첫 가사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OK. Go back to day one. 돌아가 보자고, 1981년 맨해튼 할렘가로.

   

(사진 = 할렘가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북동쪽 흑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말한다. 1981년 맨해튼의 할렘가에서 비지 비와 쿨 모 디의 역사적 랩 배틀이 벌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시 이 분야 1등이었던 비지 비는 절규했다. 구글 어스 캡처)


비지 비(Busy Bee)와 쿨 모 디(Kool Moe Dee)가 랩 배틀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18살에 불과했던 쿨 모 디가 기존 전략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쿨 모 디가 이날 랩을 시작하기 전까지 랩 배틀은 물론 존재해왔지만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도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틀 무대에 오른 래퍼들은 단지 관객들에게 더 많은 호응을 받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비지 비는 기존 방식의 1인자였다. 

   

그런데 이 날 쿨 모 디가 비지 비를 공격하는 랩을 선보이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쿨 모 디가 랩 배틀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Hold on, Busy Bee". 먼저 마이크를 잡은 쿨 모 디는 시작부터 비지 비를 거론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쿨 모 디의 랩에는 슬럼 특유의 비속어가 많아 당시 음성이 담긴 영상으로 대체한다. 가사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지 비를 겨냥한 쿨 모 디의 배틀 랩

https://youtu.be/86XG7gw4RIA



 

중요한 건 영상의 1분 32초쯤이다. 모욕적 언사를 참지 못한 비지 비는 배틀 상대 쿨 모 디의 랩 위에 "Shut Up, Shut up!"이라며 분노한다. 2분 5초쯤 들리는 비지 비의 분노는 이보다 좀 더 커져 흡사 피처링처럼 들린다. 당사자는 참담하겠지만, 비지 비의 이 '피처링'은 역사적 랩 배틀을 듣는 또 다른 재미다. 그 뒤로도 비지 비의 '절규'는 몇 번 더 이어졌고, 4분쯤부터 쿨 모 디가 비트를 가지고 놀면서 상황은 완전히 끝났다. 이날 배틀은 쿨 모 디의 완승, 비지 비의 완패로 기록됐다.

   

힙합 칼럼니스트 시어 세라노(Shea Serrano)에 따르면, 이날 이후 힙합은 마치 스포츠처럼 '경쟁적'인 음악으로 바뀌었다. 쿨 모 디의 돌발 행동이 힙합을 피 튀기는 스포츠로 만든 것이다. 이 때부터 랩은 분노를 머금게 되었다. 런-디엠씨(RUN-D.M.C)가 1983년 발표한 'Sucker M.C.'s'가 처음으로 랩의 배틀 요소를 정식 음원으로 기록한 이후 무수히 많은 배틀 랩이 발표되었다. 쿨 모 디의 고교 동창인 DJ 이지-이(Easy-E)의 트랙 'Real Muthaphuckkin G's', 너무나도 유명한 제이 지(Jay-Z)의 'Takeover', 이에 맞선 나스(Nas)의 'Ether', 더게임(The Game)을 겨냥한 50센트(50cent)의 'Not Rich, Still Lyin',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투팍(2pac)의 'Hit'em Up' 등 많은 명반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투팍의 'Hit'em Up' 뮤직비디오를 첨부한다. 1996년 6월 발표된 이 노래는 4개월 만에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피격 당시 투팍은 마이크 타이슨의 권투 경기를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스스로 힙합 음악에 분노를 불어넣었던 쿨 모 디 역시 1987년 'How Ya Like Me Now'를 발표해 LL.쿨 제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국내에는? 힙합 씬의 문제아라 불리는 블랙넛의 '100'과 'Higher than E-Sens'나 'Part 2', 스윙스의 믹스테잎 '황정민', 한 때 같은 소속사였던 래퍼 아웃사이더를 대놓고 겨냥한 MC 스나이퍼의 '자러가자'도 있다. 산이와 비프리, 이센스와 개코의 배틀 랩은 검색만으로 간단히 나온다. 슈퍼비의 '앰뷸런스'도. 


그러나 단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재미로 시작한 1981년 할렘가의 랩 배틀이 진짜 분노를 담기 시작했으니 어찌해야 할까. 투팍처럼 장렬히 전사할 수도, 35년 전 비지 비처럼 '닥쳐!'라고 외칠 수도 없는데.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는 배틀 랩을 듣는 재미도 좋지만, 비지 비의 슬픈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듣기에 조마조마한 감도 있을 것이다. 


신동욱 에디터 

201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