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아카이브/음악지식

R&B (출처 리드머)

seimo 2010. 11. 4. 20:45
R&B
2002-04-15

알앤비는 매우 광범위한 음악이다. 어떤 스타일이랄지 하나의 음악적 특징을 지닌 작은 장르로서 논의되어질 음악이 아니라 우리가 많이 듣는, Rock이나 Jazz 등과 같은 하나의 커다란 장르인것이다.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 전통은 매우 깊다. 일단 그 원초적인 형태의 알앤비라는것은 예전 흑인들이 노예로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이후 탄생된 블루스까지 찾아 올라가기 시작하며 끝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앤비다! 라는 말을 넓게 처음 사용한 시기는 대충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찾아볼수 있다. 알앤비의 기본은 가스펠이라고 할 수 있다. 흑인음악을 들을때 가장 유념해야 할것은 흑인음악의 궁극적인 면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 그리고 '신으로의 귀의'. 모든 흑인음악은 앞의 두가지를 목적으로 탄생되었고, 그 중에서 신의로 의 귀의라는 측면이 바로 '가스펠'인것이다. 그리고 음악적인 자유스러움을 표현하는 음악, 그것이 바로 나중에재즈를 낳게되는 '블루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모여서 흔히 우리가 쉽게 알앤비라 부를수 있는 '자식'을 낳게 되기에 이른다.

앞에서 전쟁 이야기를 했다. 알앤비의 탄생에 전쟁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원래 전쟁이 끝나면 많은사람들이 허무주의 증후군(?)을 겪게 된다. 이는 전쟁에 승리한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흑인병사들이 붐비는 도시에서 그 허무를 풀어낼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연 히 무대를 원했고, 가수가 필요했다. 당연히 노래 부르고, 기타를 치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중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재주꾼을 찾는것은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물론그 중 대다수는 팻 분이나 빙그로스비 같은 백인뮤지션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흑 인음악인들의 설 무대도 많아지게 되었다. 당시 흑인들은 대부분 블루스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이 블루스 음악인들이 감미로운 음악을 펼쳐보이던 팻분이나 빙 그로스비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이른다. 비 비 킹이나 리틀 리차드 같은 음악인들이 그들인데, 이들의 강도높은 블루스 음악은 후에 락앤롤이라는 것을 탄생시키게 된다. 즉 우리가 현재 rock이라고 부르는것의 초기형태인 셈이다.(락이흑인들의 음악이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락이 탄생하면서 문화적 인종적으로는 그들에 대항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 바로 그때 사람들이 알앤비라는 말을 크게 부르기 시작한것이다. 이름으로서는 리듬과 블루스의 만남. 즉 쉽게 말하면, 당시의 블루스음악에 좀더 팝적이며 리듬감을 부여한것이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이다.

50년대가 지나고 60년으로 접어들면서 알앤비를 내세우는 가수들은 점점 늘어나게 되는데..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폭발로 상영된 '백투더퓨쳐'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 마티는 친구이 과학자인 **박사가 개발한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향한다. 거기서 엄마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미래를 바꾸기도 하고..등등 신나는 모험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다가과거의 엄마와 아빠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댄스파티에서 우연히도 파티의 음악을 맡은 밴드의 기타를 치게 된다. 맨처음 슬로우 곡을 연주한 마티는 사람들이 부추기며 '신나는 것을 해보라!'고 하자, 아주 옛날 곡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온 미래에선 옛날이니까) 실제로는 55년도의 히트곡이었던 척 베리 의 노래 '자니 비 굿'이라는 곡을 부르게 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이 노래를 들은 대중들은 크게 열광하게 되는데, 특히 음악을 들은 밴드들의 표정은 가관이다. 그러다가 그 밴드멤버중 한명이 전화를 걸어 자기사촌에게 '새로운 음악이 있으니 어서 들어보라' 고 말을 하는데 그 사촌이 바로 그 노래의 원래 작곡자인 '척 베리'였던 것이다. 즉,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마티때문에 척 베리가 그 곡을 만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코미디를 하는 것이다...참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왜 영화 이야기까지 하면서 이야기를 했나하면, 바로 척 베리라는 사람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척베리는 알앤비의 스타로서 혹은 락앤롤의 시조로서 중요시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척베리의 라이브 앨범등등이 지금 시중에서도 유명 레코드점에 있으니 초기의 알앤비 혹은 락앤롤을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서 듣기 바란다. 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현재까지 알앤비와 소울의 대부 격으로 추앙받는 레이 찰스가 등장하게 된다. 척베리와 레이 찰스는 흑인들에게 자신들만의 음악이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며 최고의 음악인,스타로 자리잡는다. 참으로 억울한것은 흑인이 만든 알앤비,재즈,락이란 장르에서 실제로 흑인이 돈을 무지 잘 벌어서 잘살게 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도 인종 차별이란게 있으니 그 당시는 말할것도 없고, 당연히 가수도 백인가수, 연주자도 백인연주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당연히 돈도 그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는것은 당연한 일. 락은 점점 백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고, 현재까지 그 영향으로 인해 락음악에서 변변찮은 흑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돈이 모이지 않는 사업은 망하는법...알앤비도 쇠퇴의 일로를걷게 된다.

그러나 60년대가 되면서 알앤비계에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정치는음악과도 어느정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전쟁이 그랬고, '정권의 교체'라는 것도 나름의 큰 의미를 가진다. 60년대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 된다. 보수 적인 성향이 강했던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많은 개혁정책을 펴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인종정책이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 흑인들에게 대대적인 유화정책을 편 사람으로 유명한데, 음악에 영향을 끼쳤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흑인들은 기존의 알앤비 음악에 그들만의 '목소리'를 담게 된다. 인종적인 슬픔, 주장, 자존심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예전 처음 알앤비가 태어날때의 자존심이 부활하였던 것이다. 그것들에는 케네디 대통령 외에도킹 목사라던가 말콤 엑스등의 지도자들의 역할도 컸다고 볼 수 있는데, 여러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음악인들도 그들의 강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음악에 여러가지 새로운 특징을 도입한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강한 목소리를 강조하는 샤우트 창법, 그리고 음악에 넣은 비트감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을 우리는 '소울'이라고 부르게 된다. 소울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강렬함에 매료되었고, 기존의 가수들은 모두 이 스타일로 바꾸게 되었다. (하나의 유행이었던 것이다) 즉, 소울이 너무나 인기가 있었던 나머지, 알앤비 하면 소울! 이라는 공식이 세워졌고, 이 때문에 지금도 소울과 알앤비를 같은 용어로서 섞어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대표적인 소울 가수로는 James Brown과 Aretha Frankline등이 있다. 특히 제임스 브라운은 후에 프린스나 마이클 잭슨이 음악을 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아레사 프랭클린은 저 유명한 휘트니 휴스턴이나 , 머라이어 케리, 토니 브랙스톤에게 음악적인 기초를 제공한 셈이 되었던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소울의 영향으로 흑인음악이 중흥기에 이르자, 여러가지 다른 스타일을 모색하고 있던 사람들을 음악계로 뛰어들게 만든다. 원래 거친것이 있으면 부드러운것이 공존하듯, 이제 부드러운 알앤비도 서서히 부활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타운 사운드'이다. 모타운은 다 들 알다시피 레코드 회사의 이름이고, 자동차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모타운 사운드의 특징은 부드럽고, 흑인의 유연함을 강조한 스타일인데,특히 백인의 화성적인 측면이나 감미로운 측면이 보강이 되면서 매우 대중적인 형태의 음악으로 자라나게 된다. (모든 음악은 엄밀히 말해서 흑과 백의 만남속에서 형성이 된다. 어느쪽이던지 완전한 솔로 작품은 없기 마련이다.)

모타운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모타운은 실로 이후 흑인음악에서 위대한 스타들이 나오게 되는 ..한마디로 '스타탄생의 모체'였다. 마이클 잭슨이 소속 되어있었던 잭슨 화이브, 다이아나 로스,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같은 당대의 스타들이 이 모타운 레코드사에서 데뷔를 하거나 계속 앨범을 내거나 혹은 영원히 이 레코드사에 남는등 그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 70년대까지를 우리는 모타운의전성시대로 보고 있는데,그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국민들, 비단 흑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백인에게도 그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어서, 지금도 미국에서 모타운 시대의 음악을 한곡이라도 부를줄 모르면 한마디로 '간첩'인 셈이다. 사실상 흔히 우리가 요새 말하는 알앤비란것들...보 이즈 투 멘이랄지, 올 포 원, 혹은 컬러 미 배드, 포트레이트등등..의 음악들은 대부분이 이때 음악의 후예들이다. 물론 그 음악에 여러가지 요소들 (힙합이라던지 랩)이 가미되긴 하였지만, 그들 자신이 이때의음악을 듣고 자랐고, 이때의 뮤지션들을 존경하고 있다. 잭슨 화이브와 스티비 원더는 요새 미국 알앤비 가수들의 50%이상이 자신의 훼이보릿 아티스트로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모타운의 음악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되면서 결국 미국의 알앤비는 소울과 모타운이 양분하는 모양새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 중 소울은 그 탄생에서 민주당의 정권과 함께 했듯이, 민주당 정권의 내리막길과 더불어 역시 내리막길로 이르른다. 그러나 그 소울음악의 정신만은 아직도 살아있어서 아직도 많은 알앤비 가수들이 자신을 '소울'가수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미국 대중들도 흑인음악하면'소울'이라고 흔히 이야기 할 정도였던 것이다.

한편, 한때 트위스트 열풍에 휩싸였던 미국은 락의 강렬한 비트를 흡수한 소울이 새로운 댄스 음악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름하며, 디스코! 소울이 퇴색한 대신 그 자리에는 디스코가 있었고,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토요일 밤의 열기라는 영화 이후 비지스의 스타덤에 오름과 동시에 디스코는 미국 최고의 댄스음악이자 최고의 흑인음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디스코의 인기를 우려한 일부 보수층과 여타 세력들의 보이지 않은 반발로 디스코는 '저질음악'이라는 멍에를쓰고 서서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을 정치이외에 다른데로 관심을 쏟게 하려는 의도로 더욱 권장된 디스코가 그 큰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한편 디스코 이외에도, 소울의 음악적인 면을 적절히 개성있게 조화시킨 '훵키'도 등장한다. 흔히, 디스코보다는 좀 난해한 음악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음악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어쓰 윈드앤 화이어, 쿨 앤 더 갱, 타워 오프 파워 등의 음악인들이 바로 이런 훵키음악을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들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다시금 흑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들이 거리에서 외치던 주장들을 담은 음악들이 등장하게 된다. 힙합은 그것들중 대표적인 장르로서 음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 음악적으로는 훵키와 새로운 전자악기에 의한 댄스적인 감각, 그리고 흑인의 휠에 의한 브레이크댄스의 영향을 두루 흡수한 형태를 띄고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 힙합은 알앤비의 큰 틀 안에서 형성된 것이었지만, 표현방법이나 음악적 스타일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며 현재는 뚜렷한 독립적 장르로서 사랑받고 있다.

또한 거기서 불거져 나온 랩은 락과 재즈까지 섭렵하면서 명실상부한 90년대 최고의인기장르, 혹은 음악적 요소로 사랑받고 있다. (랩음악에 대해서는 논의를 생략하기로 하겠다) 또한 재즈의 스윙적인 요소와 알앤비의 느낌을 적당히 섞어 완성시킨 뉴잭스윙 이랄지, 올드스쿨 재즈를 힙합과 접목시킨 에시드 재즈랄지...현재의 흑인음악은 말만바꾸면 그 조합이 수만가지가 되고 있는실정이다. 알앤비가 무엇인지 음악적으로 어떤것인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대표적인 음악인에는 누가 있는지, 어떻게 현재 흑인음악계에 이어져 오고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한마디로 알앤비는 넓은 의미에서 '모든' 흑인음악을 가리키는 넓디 넓은 장르이다. 우리 나라에서 알앤비 하면 보이즈 투 멘을 떠올리는 것은 그들이 인기있는 그룹이라서이지 그들 음악 자체가 알앤비를 대표하고 있는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댄스 비트가 있어서 알앤비가 아니다''랩이 들어가면 알앤비가 아니다' '소울은 알앤비가 아니다' 라는 주장들은 앞에서 살펴본 역사적 관점 내지는 음악적 흐름을 볼때 타당성 없는 주장들이며, 누가 뭐랬건 그 논리는 정확하다는 사실을 밝혀두는 바이다. 마이클잭슨이 알앤비다 라고 해서 틀린것이 아니며, 업타운도 알앤비이고 솔리드도 알앤비이다. 다만, 그들이 하는 알앤비는 알앤비라는 커다란 나무에 있는 하나의 가지들에 불과하며 어떠한 가지들도 나무 전체라고 말할 수는 없을것이다. 오로지 그 가지들이 모여있을때에만 진정한 알앤비나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0년대에 그랬고 50년대에 그랬고 60년대 70년대 80,90년대에 이렇게 변화해 왔듯이, 이제 알앤비도 또 변화할 것이다. 이미 그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고 '뉴소울'이라던지 '어번소울'이라고 해서 새로운 흐름들이 보이고 있다.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어떻게 변했건 그것이 알앤비인것만은 명확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선조인간들이 우리와 달랐다고 우리가 human 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것과 매 한가지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이 알앤비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사람이나, 오해하고 있던 사람들, 몹시 궁금해 하는 사람들, 알고 있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마친다.

알앤비여 영원하라!

※ 본 글은 하이텔 김영대님의 글을 개제한 것입니다.



R&B의 역사 이야기
2002-04-15

&B의 역사 이야기

▷ (1) RHYTHM & BLUSE

대부분의 미국 흑인음악과 마찬가지로 리듬앤 블루스의 다양한 양식들은 재즈 리듬을 바탕으로 음의 굴절, 특히 당김음의 처리와 반음 내려 연주하는 블루스 화음이 뒤섞여 유럽 음악의 영향을 한데 섞인형태를 하고 있다.리듬 앤 블루스의 뿌리는 미국 남부의 시골에서 유행하던 블루스 음악에서 시작됐다 . 흑인들의 음악 양식인 블루스가 발전하여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갈라진 것 이다. 재즈가 유럽의 도시에서 유행하던 백인음악과 만나 재즈로 발전했다면 리듬 앤 블루스는 유럽의 시골에서 유행하던 음악과 만나 정착된 장르다.

흑인들이 백인으로부터 가혹한 중노동의 고통에 시달리면서 불렀던 슬픔의 노래였기에 전체적으로 슬프고도 애절한 리듬과, 멜로디, 가사를 담고 있다. 블루스가 발전하여 흑인 교회의 가스펠송으로 분화됐기에 가스펠송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초창기 리듬 앤 블루스에 속하는 여러 양식은 3가지 주된 형식으로 구별된다. 그중에서 가장 최초의 형태는 레이스(Race)로 [1940년대 후반까지는 `레이스 뮤직'이라고 불렀다. 1950년대부터는 백인에게까지도 충분한 인기를 모았고, 흑인의 지위도 어느 정도 향상되었으므로 멸시의 느낌이 강한 `레이스뮤직' 이라는 용어를 `리듬 앤 블루스'로 부르게 되었다.] 이는 `점프악단'의 양식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 나타나 가장 먼저 나타나 가장 먼저 사라졌다. 점프 악단의 특성은 강한 리듬과 흥분된 연주,샤우트 창법으로 요약된다. 이들 악단의 음악은 `두왑시대' [미국에서 1940년과 1950년대 연주 도중에악기를 입으로 대신하여 내던 소리를 `두왑(Doo-Wop)' 이라 한다. 이렇게 목소리로 반주하던 그룹을 `두왑그룹'이라 하는데 이 부류의 그룹들은 대개가 흑인 빈민들 거주 지역인 뉴욕의 할렘등에서 생겨났으며 열악하게 반주를 담당할 악기도 없이 연주하고 노래 불렀다.] 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점프악단들은 1950년대초 대부분 사라졌다.또 하난의 양식은 1940년말 시카고 남부의 바나클럽을 중심으로 태동한 시카고 블루스 무디 워터스, 서니 보이 윌리암슨, 훌린 울프로 대변되는 연주자 그룹들이소규모로 편성된 악기 - 전자기타, 전자 오르간, 하모니카, 드럼 - 로 소란스럽게 연주하는 형태였다. 마지막으로 가스펠 양식은 보컬을 중심으로 편성된 연주 형태였다. 리드싱어가 위 음역을 맡고 코러스가 밑을 바쳐주는 형태로 밑집화음을 사용하여 거의 가라앉은 분위기의 느린 템포가 뒤따랐다.

▷ (2) 모타운의 태동, 상업적 음악으로의 전진

이처럼 비상업적인 흑인음악으로 이어져 오던 리듬 앤 블루스가 상업적인 흥행음악의 장으로 자리잡은것은 1960년대부터, 뉴욕의 아틀란틱 사운드와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이들 레코드 회사들은 흑인음악만을 본격적으로 기업화하여 스타를 만들었던 레이블이었다.아틀란틱을 대표하는 가수는 맹 인 가수 레이찰스. 그는 59년 `What i'd Say' 를 히트시켜서 백인들에게 인정받은 최초의 흑인가수가 되었다. 여기에 샘 쿡과 재키 윌슨이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의 접점에서 히트곡을 양산해냈다. 또 하나의 레이블인 모타운은 미국 팝 음악의 역사를 바꿔 놓은 기념비적인 레코드 회사였다. 흑인음악의 대부 베리 고디 주니어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디트로이트의 평범한 흑인 청년, 그는 탁월한 음악적 감각과 빠른 두뇌회전, 사업적 투지를 갖추고 모타운 신화를 준비했다. 스모키 로빈슨, 브라이언 홀랜드, 라몬드 도지에, 에디 홀랜드 등 작곡가를 한데 묶어 이른바`H.D.H'팀을 결성 팝 음악계를 뒤흔드는 히트곡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모타운 최고의 스타는 빈민가 출신의 여가수 다이아나 로스가이끄는 수프림스였다. 이들은 `Baby Love', Back in My Arms Again' 등을 히트시키면서 60년대 최고의여성그룹으로 군림했다. 이에 대적한 남성그룹은 모타운 출신의 템테이션스. 이들은 5명의 흑인멤버가 보여 주는 완벽한 하모니로 인기를 얻었다.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도도 모타운이 나은 천재 가수들. 마빈 게이는 모타운에서 가장 돋보였던 천재 가수로 다른 가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정교함과 깊이를 갖춘 가수였다. 12살때 데뷔앨범을 냈던 그는아직까지 건재를 과시하면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흑인가수. 60년대 `For Once in my Life',`Yester Me,Yester You,Yesterday'등을 히트시켰다. 모타운의 마지막 스타는 잭슨 파이브 였다. 68년 마이클잭슨과 재닛잭슨이 포함된 잭슨가의 다섯 형제들이 첫 싱글 `I Want You Back' 으로 단숨에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모타운은 베리고디 주니어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떠나는 바람에 그 신화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러나 모타운은 흑인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블로 남았고 미국 팝 음악의 또 다른 변주인 로큰롤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흑인음악의 영향 아래 성장하여 최고의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이었다.60년대 리듬 앤 블루스의중요한 양상 가운데 하나는 흑인 소울의 등장이었다. 흑인음악의 3대 레이블중 하나인 스탁스가 주도한 이 음악은 흑인의 영혼을 담으려는 음악으로 디름 앤 블루스와 달리 좀 더 흑인적이고 여운이 오래 남는 음악이었다. 윌슨 피켓, 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등이 본격적인 소울 음악으로 시장을 주도 했다. 67년 히트곡 `I Never Loved A Man' 을 히트시키면서 최고의 소울 가수로 등장한 아레사 플랭클린은 불후의 명곡 `Respect' 를 남기면서 소울의 여왕에 등극했다.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열정과 흑인들의 일상을 담아낸 노래말, 강한 리듬과 비트로 이뤄진 그녀의 노래는 소울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대선배인 레이찰스는 그녀를 가리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가수"라고 칭송했고 여성 백인 가수를 대표하던 제니스 조플린 역시 "최고의 여성" 이라고 말했다.

▷ (3) 70년대 이후, 리듬 앤 블루스를 바탕에 깔고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70년대 들어와서는 잭슨 파이브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코모도스, 라이오넬 리치, 퀸시 존스등 대형 가수와 뮤지션들이 줄줄이 활동을 펼쳤다.흑인 6인조 그룹인 코모도스는 아직도 스테디 송으로 불리고 있는 `Three Times A Lady', `Still' 등을 히트시키며서 흑인음악의 계보를 이어갔다. 레이 찰스로부터음악적 영감을 이어받은 퀸시 존스 역시 70년대 흑인음악을 주도해 온 아티스트 였다.그는 뛰어난 작곡과 편곡 실력으로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음반을 히트시키면서 단숨에 스타 자리에 올랐다. 앤디 윌 리암스, 사라 본, 프랭크 시나트라 가 그의 손에 의 해 만들어졌다. 가수로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You've Got It Bad, Baby' 는 재즈와 소울, 팝챠트를 휩쓸면서 최고의 인기곡으로 떠올랐 다. 그가 세운 공적 중에 가장 큰 공적은 마이클 잭슨의 앨범 을 제작하여 84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마이클 잭슨으로 하여금 8개 부분을 석권하게 만들었다. 잭슨 5의 귀여운 꼬마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마이클 잭슨의 성공 신화는 음악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여기서 길게 얘기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80년대 흑인음악을 얘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는 프린스.그의 음악은 관능적이고 대담하면서 성적인 모험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80년대 초반 잇단 히트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그는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의 결합을 추진한 흑인 가수 였다. 새로운 로큰롤 또는 섹스 로큰롤 로 정의되는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Up Town'과 `1999' 등 히트곡은 그의 음악성에 대한 경외심까지 느껴지는 곡이다. 80년대 중반 휘트니 휴스턴의 등장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사건. 90년대 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인기는 리듬 앤 블루스 계열의 수많은 여성 가수들의 전성기를 연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놀라운 가창력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당대를 대표하는 디바로 인정받고 있다. 또 재닛잭슨과 머라이어 캐리, 토니 블랙스턴으로 이어지는 현대 팝 디바 계보의 맨 처음을 장식하고 있다.

▷ (4) R&B 의 다양한 행진은 끝나지 않는다

90년대 들어 리듬 앤 블루스는 속칭 R&B로 불리우며 보다 다양한 변주로 이어졌다. 재닛 잭슨과 토니블랙스턴등을 머라이어 캐리 등에 이르기 까지 R&B 여가수들의 등장은 빼 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또흑인 여성그룹 TLC의 약진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의 배후에는 베이비 페이스라는 탁월한 아티스트가숨어 있다. 그는 탁월한 프로두서 감각으로 흑인음악의 복고 바람과 상업적 성공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90년대 흑인음악의 주류는 힙합인데, 50~60년대를 주도하던 흑인음악의 흥겨움을 이어받은 소위 두왑시대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음악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힙합은 정통 리듬 앤 블루스 적을 두고있으면서도 탈장르를 부추키는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흑인그룹 퓨지스의 경우는 복고의 경향을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정통 리듬앤 블루스 리듬을 계승한 보이즈 투 맨 등도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들이다.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마이클 볼턴과 조지 마이클처럼 백인이면서도 흑인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들도 생겨났다. 소위 블루 아이드 소울 (Blue-Eyed Soul)로 통칭되는 이들의 음악도 리듬앤 블루스의 중요한 변화중의 하나다.

리듬 앤 블루스는 단순한 흑인음악을 넘어서 이제 팝 음악의 주류가 된 지 오래다. 짧은 글에서 사실 그 계보와 의미를 분석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듬 앤 블루스를 이해하는 일이야 말로 팝 음악의 역사를 이해하고 팝 음악을 감상 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 본 글은 하이텔 김영대님의 글을 개제한 것입니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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