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와 관련하여 (글 JJK)
출처: https://www.facebook.com/makestheway (JJK 페이스북)
2015.7.4
난 지금 매우 슬프다. 그냥 주절 주절 글을 좀 써야겠다.
1. 사실 그렇다. 거대 자본이 투입돼 하루종일 체계적인 연습 시스템을 받으며 투잡을 뛰지 않아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지 않아도 되는 연예인 연습생, 혹은 아이돌 가수를 사실상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언더그라운드 MC가 무대에서 이기기라는건 매우 어렵다. 애초에 갖다 붙이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런데 랩퍼라는 이유로 비교가 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 하면 억울하면 오디션 봐서 기획사에 들어가라더라.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니까 억울한 랩퍼들은 다 엠넷으로 가서 오디션 보고 있다.
대 다수의 음악인들이 '성공'을 이야기 할 때는 돈과 유명세를 뜻하겠지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은 다르다. 우리는 멋있는 힙합, 멋있는 랩, 멋있는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난 A$AP Rocky가 가장 언더그라운드 MC 다운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목표이자 목적은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돈과 유명세가 따라준다면 그저 감사할 뿐이지.' 과연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서 몇이나 진짜 언더그라운드 일까.
사실 우리는 아이돌이 우리 보다 랩을 더 잘하는건 1도 상관이 없다. 그냥 사장님이 시키면 언제든지 바꿔야 하는 음악 컨셉, 방송 PD가 시키면 해야 하는 언행, 랩 할 때는 Dope한 표정 짓고 끝나면 순진무구한 웃음 보이는.. 그런건 우리가 생각하는 힙합적 태도가 아니니까 그냥 논외 대상으로 여길 뿐. 애초에 이쪽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서 왜 힙합이라는 타이틀을 바라는걸까. 사람들은 랩을 잘하는 것과 힙합다운 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걸 언제쯤 깨닳을까.
2. 랩퍼들은 현실을 두려워한다. 홍대라는 꿈 같은 곳에 취해서 시간을 허비한다. 랩퍼면 마치 랩만 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고 누가 법으로 정한 것 처럼 산다. 결혼하면 현실이니까. 자식은 가져야지. 그럴려면 랩을 해서는 안돼. 왜냐면 난 랩만으로 먹고 살 수 없으니까. 왜냐면 내 랩은 돈을 못 벌어다주니까. 일을 하면서 랩을 하는건 그냥 취미인거나 마찬가지인거고, 그건 진짜 MC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빨리 성공해야돼. 그럴려면 Show me the money가 답이야. 거기서 우승해야 힙합은 자유라 외칠 수 있어. 그걸 애들이 봐줘야만 나를 MC라 불러. ... UMC형이 '이태원에서..'에서 한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광경이 수년이 흘러 다시 보인다.
나도 엄청 현실적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 왜 현실 속에서 투잡 뛰면서 랩을 하면 안되는건지 이해가 안간다. 오히려 굴욕적으로 다른 동시대 MC한테 합격이니 불합격이니 심판 받을 일도 없고 좋지 않나? 내 음악에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 없이, 내 음악으로 번 돈, 내가 다 벌 수 있는데.. 이게 훨씬 더 좋은거 아닌가? 난 언더그라운드 MC이기를 선택한 사람이라서 이 현상이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결혼하면, 아기가 태어나면, 도저히 입에서 랩이 안나올거 같아? 남들이 나를 MC로 봐주지 않으면 도저히 랩을 못 뱉는거야? 그렇다면 지금껏 뱉어왔던 랩은 누구를 위한 랩인거지? 미안하지만, 내게는 그냥 다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로 들린다.
3. 우리, 그러니까 우리 언더그라운드 MC들은, 다 알지 않는가. 미디어에 발 들이는 순간 우리의 기준은 묵살되고 그들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 개인이 시스템을 전복시키는건 불가능하다는 것. 이런 것들은 한국 힙합의 역사 속에서 여러 '유명해지지 못해 언더그라운드 였던 MC들'을 통해서 증명되어왔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뛰어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난 알 수가 없다. 설명을 듣고 싶지도 않다.
4. 이러한 이유 때문에 랩퍼들 보다 랩을 안하는 힙합 팬들이 더 많이 필요한거다. 랩이 아니라 힙합. 음악이 아니라 문화로서 힙합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MC보다 훨씬 많이 필요한거다.
코드쿤스트가 Joey Bada$$와 합작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열광한 매니아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코드쿤스트는 대단한 프로듀서임이 확실하지만, 이 합작은 코드쿤스트의 힘만으로 성사 된 것이 아니다. 이 합작은 루미넌트라는 힙합을 잘 이해하고 힙합에 애정이 있는, 타 유통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유통업계의 생태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유통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10여년 전에 한 힙합 매니아가 힙합이 너무 좋아서 힙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되기를 꿈 꿨다면 Show me the money는 완전 다른 프로그램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 사람은 랩을 했겠지. 한국힙합은 힙합이 아니라 랩이다. 문화는 없고, 그냥 랩.
5. 그들은 한국힙합에 애정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문화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판을 힙합이랍시고 보여줄지 기대해라. 그리고 그 판에 말이 되기를 자처하는 '언더그라운드' 랩퍼가 얼마나 많을지도. 어차피 자기네들이 유리하게 편집하고 ㅋㅋㅋ 하며 끝나겠지만. 생각하는 모든 것의 기준이 다르다니까, 기준이.
6. 마치 언더그라운드 정신의 몰락을 보는거 같았다. 보는 내내 슬펐다. 이런 미디어를 접하며 랩을 하는 친구들에게 언더그라운드 MC들은 어떤 존재로 보일까. 오늘로서 확신이 들었다. 나는 종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이 곳에서 랩을 할 것을 아니까 멸종 될거라고 생각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