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DJ DOC 공연 무산, 중요한 건 과정이다 (출처 리드머)
강일권 | 2016-11-29
DJ DOC의 “수취인분명”을 둘러싼 여러 기사와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초점 대부분은 문제의 가사가 여성혐오인가 아닌가에 맞춰진 상태다. 당연히 이는 이번 논란의 주요 쟁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꽤 많은 이가 간과하고 있는, 그러나 매우 중요한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공연이 결정되고 무산되기까지의 과정 말이다. 이에 대해 일부 평론가와 언론, 그리고 각계각층의 논객들이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결부시키면서 다소 왜곡된 프레임이 덧씌워졌고, 혼란 또한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초점을 ‘여성혐오 여부’에서 ‘공연 무산 과정’ 자체로 옮겨와 보자.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초 DJ DOC는 지난 26일에 있었던 박근혜 퇴진을 위한 ‘5차 촛불집회’ 무대에 서기로 했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저격한 비판곡 “수취인분명”을 부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하루 앞서 공개한 가사에서 여성 혐오 논란이 불거진다. 페미니스트 그룹을 표방한 페미당당과 일부 여성 집단의 문제 제기 및 보이콧 선언이 이어졌고, 결국, 그들의 공연은 취소되었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이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논의 후 결정한 결과였다.
DJ DOC 측의 공식입장을 보면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있다. 집회 연출진 쪽에서 몇몇 여성단체의 항의가 있었으니 나오지 말아 달라는 통보를 했고, DJ DOC는 문제의 곡을 제외하고라도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DJ DOC가 나오면 보이콧을 하겠다.’라는 강경한 반응이 있다는 얘기까지 듣곤 ‘조금이라도 누가 된다면 안 나가는 게 맞다’라는 생각에 단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문제 제기에 앞장선 페미니스트 그룹과 이를 지지하는 여성들에게 검열이란 정의를 씌운 비난의 화살이 향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이름의 사전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게 이유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비판, 혹은 비난은 합당한가.
여기 이번 건과 다른 듯 비슷한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 2013년, 미국에선 랩스타 릭 로스(Rick Ross)가 홍보 계약을 맺었던 유명 브랜드 리복(Reebok)으로부터 퇴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가 발표한 "U.O.E.N.O."란 곡의 가사 일부가 데이트 강간을 암시한다는 여성단체의 문제 제기와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주도했던 유력 여성단체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을 비롯한 일부 여성 활동가들은 뉴욕에 있는 리복 매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직접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여론에 위기감을 느낀 로스는 사과를 표했으나 여성단체의 항의는 계속됐다. 결국, 리복은 ‘릭 로스가 정말로 강간을 용납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가사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고, 리복을 애용하는 고객의 명예와 브랜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에 파트너십을 끝낸다.’라는 견해 표명과 함께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이 경우는 어떤가. 마찬가지로 검열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일단 현지에서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CNN, 폭스 뉴스(FOX News), 롤링 스톤(Rolling Stone), MTV 등등,절대다수의 유력 매체와 힙합 전문 사이트들은 그저 알려진 과정과 사실을 덤덤하게 전했을 뿐,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해당 결과를 두고 ‘여성인권단체의 중대한 승리’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곡이 발표된 순간 표현의 자유는 침해된 것이 아니며, 국가공권력의 압박이 아닌 대중의 여론을 바탕으로 한 결정을 검열의 범주로 논할 수 없다는 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DJ DOC 건과도 일맥상통한다. 집회에 참여하는 수많은 단체 중 일부이자 국민의 일부가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법적인 제재 권한이 전혀 없는 주체(퇴진행동)가 수용하고 가치판단 아래 결정한 뒤 행동에 옮겼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과 결과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많은 이가 문제 삼는 자유를 대입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개념은 다르지만,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심 개념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유는 단순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공적 담론의 쟁점 대부분과 직결되며, 오늘날 여성 문제는 자유의 문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결국, DJ DOC의 공연 무산은 양측의 자유, 즉, ‘해당 가사는 여성 혐오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자유와 ‘그럼에도 큰 맥락에서 의미가 더 크니 공연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자유 vs ‘해당 가사는 여성 혐오다.’라고 주장할 자유와 ‘그러므로 의미가 퇴색되었으니 공연해선 안 된다.’라고 주장할 자유가 맞붙은 결과인 셈이다. 최초 소수의 여성 단체가 제기했던 여성 혐오 문제는 이후, 대중에 의해 공론의 장으로 옮겨졌고, 대중에 의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공권력의 개입도 없었다. 더불어 한쪽에선 DJ DOC의 촛불집회 무대 출연을 원하는 측의 아고라 청원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주최 측이 좀 더 원활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부분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할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론을 참고한 주최 측의 가치판단에 근거한 행위였으며, 이는 정부가 독단적인 판단 아래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악용하는 검열 행위와 명백히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 공권력에 의한 음반사전심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에 의한 검열이란 건 사실상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성 단체, 큰 틀에선 대중 일부의 문제 제기와 보이콧을 강요로, 주최 측의 판단을 검열과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로 프레임 씌운다면, 어느 쪽으로 결판이 났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측은 그렇게 프레임을 씌운 이들이 주장하는 똑같은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심지어 혹자는 관료제까지 들먹이며 주최 측을 비판하는데, 관료제는 흔히 독선과 복종을 수반한다. 여기 어느 부분에서 이것들을 찾을 수 있는가.너무 가볍게 말들을 뱉어내고 있다.
만약 공권력이 개입하여 곡의 발표나 공연을 막는 진짜 검열 행위가 발생했다면, 난 이번 DJ DOC뿐만 아니라 어떤 아티스트의 경우든 무조건 '표현의 자유'를 외쳤을 것이다. 설사 해당 곡이 명백한 여성혐오로 점철된 곡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앞서도 밝혔듯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정보와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혼란을 바로잡거나 더 깊은 논의를 끌어내야 할 전문가와 언론 집단에서까지 자극적인 검열 비유와 표현의 자유 주장이 나오는 현실은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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