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뮤지션 살펴보기 (출처 SBS뉴스)
2013.5.2 김도균 기자
[취재파일] 악동뮤지션 살펴보기 ① 정말 창의적인 거야? (화성 편)
원문:
http://news.sbs.co.kr/news/endPage.do
news_id=N1001764351&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첫 회에 나타난 몽골에서 온 남매, 악동뮤지션의 음악은 신선했습니다. 회를 거듭하면서 하나 둘 공개되는 그들의 자작곡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음원 차트 1위는 물론 100위 안에서 몇 달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요즘에 기획사에서 몇 억씩 투자를 해서 가수를 키우고 또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신곡을 만들어도 음원차트 1위 한번 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근데 이 어린 친구들이 계속해서 음원차트 1위도 하고 상위권 오랫동안 점령한다는 건 정말 수많은 기획사 기획자들을 절망에 빠트리는 일이고 굉장히 놀라운 성과인 거죠.”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성과에 ‘창의적’이라는 붙였습니다. 다리꼬지마, 매력있어, 라면인건가, 크레센도, 외국인의 고백 등 나오는 대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던 그들의 자작곡. 여전히 쌓여있다는 50여곡의 노래들. 게다가 이런 음악성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미성년의 청소년 남매라는 사실. 또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지도 않은 아이들이라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노래 가사에서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 몇 가지 곡의 가사들을 살펴볼까요?
♬ 다리꼬지마
네가 시크를 논해서 내 본능을 건드려
앞뒤 안 가리고 다리 치켜들고 반대 다리에 얹어 다릴 꼬았지 아니 꼬았지.
내 다리 점점 저려오고 피가 안 통하는 이 기분
네가 도도를 논해서 내 본능을 건드려
주먹 불끈 쥐고 책상 내리치고 모두를 주목시켜 다릴 꼬았지 배배 꼬였지
발가락부터 시작된 성장판 닫히는 이 기분
♬ 크레셴도(Crescendo)
노을빛 보며 빌은 이른 아침의 소원 얘기든 시름 시름 앓았던 사랑 얘기든
일단 말하고 봐 바라던 바 시작도 안하고 포기는 마
맘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꿈 thanks 오늘의 날씨는 기쁨
Don't cry You can fly You don't even try
있는 듯 없는 듯 축 쳐진 고개는 들고 선 들뜬 애들처럼 놀아 라시도레미파
올라가는 멜로디 빨라가는 템포를 따라 laugh aloud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모두가 날 알아보도록 Crescendo 날 알아듣도록 Crescendo 모두가 날 알아보도록 Crescendo 날 알아듣도록 Crescendo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이 친구들의 가사가 억지로 어디서 꾸며낸 뭐 환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완전히 생활 공감의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 그 나이 대 친구들이 정말 예쁘게 공감할 법한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사에 공감을 하는 거고 요즘에 우리나라 가요 가사가 4차원, 외계어,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들 이런 가사들이 굉장히 많았다 보니까 더욱 더 우리의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해주는 이런 생활 밀착형 가사가 사람들한테 환영을 받고 있는 겁니다.”
대중의 인기를 많이 받고 있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 극찬하고 1등을 했다는 것을 넘어서서 여전히 이들의 음악이 창의적인가라는 문제는 조금 더 ‘음악적’인 관점에서 검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아이들, 그저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엄격하게 학적으로 접근해 줄 사람을 찾던 <현장21>팀이 분석을 의뢰한 전문가는 권정구 기타리스트였습니다. 같은 기타에 대해 이해가 깊으면서도 음악학적 분적을 해줄 장르가 다른 사람으로 권정구 씨는 적합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여러 악기들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권정구 씨에게도 대중음악 분석은 사실 도전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왜 대중음악을 분석하고 있지? 이제 클래식은 안하는 건가? 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권정구 씨는 새로운 도전과 후배 음악인으로 등장한 악동뮤지션에 대한 사랑으로 분석에 응해줬습니다. 설명은 화성적 분석을 먼저 하고, 가사 분석을 나중에 해보겠습니다. (덧, 방송에 나왔던 불완전종지를 사용한 크레센도는 제외하겠습니다.
먼저, <라면인건가>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를 끝내고 심사위원인 박진영씨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 곡도 두 번째 코드가 작곡가들이 안 가는 코드에요. 항상 저 코드 뭐지 하다가 30초가 흘러요. 그런데 그 한 코드 빼고 나머지는 우리가 말하는 머니코드라고 굉장히 대중적인 코드를 쓰면서 그 한 부분만 살짝 새로운 코드를 썼기 때문에 작곡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굉장히 뛰어난 거죠. 우리가 가장 이상적인 거는 가장 대중적인 것에서 약간 다른 걸 섞는 게 가장 히트할 확률이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작곡이고요.”
이 곡의 코드 분석을 해보면 G(지) – F#7(에프 샵 세븐) – Bm(비 마이너) – Am(에이 마이너) – D7(디 세븐)입니다. 박진영 씨가 주목한 코드는 바로 이 F#7코드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속7화음입니다. 부속7화음이 무엇인지 지금 설명하기엔 또 이해하기엔 너무 큰 어려움이 따르지요. 과연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만 설명을 들으면 됩니다.
권정구 / 기타리스트
“전문용어로 부속7화음이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그래서 그 이걸 아주 적절하게 쓰다 보니까 느낌이 하나 내려가 버리니까 훨씬 더 느낌을 편하게 만들죠.…전혀 그 코드에 그 노래에서 전혀 나오지 않을 만한 형태의 코드가 등장합니다. 보통 우리 그냥 마치 한국말 하는데 중간에 영어가 나오는 듯한 그런데 그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닌 매우 세련된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본 형태에서 부속7화음을 누가 잘 넣고 하느냐 이런 것들이 하나의 작곡의 테크닉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착시현상>이라는 곡입니다.
http://netv.sbs.co.kr/player/netv_player.jsp?uccid=10001996055
대중성이 없다고 일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런 반응도 나왔습니다.
“제 심사가 나머지 두 분과 같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계속 첫 번째 코드 청음 따느라고요. 청음이라고 첫 번째 코드를 따려고 했는데 못 따겠어요. 그 코드 뭔지 모르고 치죠, 또? 굉장히 어려운 화성 진행이고요. 저 나이에 저런 친구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저는 그냥 저 코드 세 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계속 듣고 있을 수 있었어요.“
이 곡을 코드 분석해보면 FM7sus4(에프 메이져 서스펜디드 포) – G6(지 식스) – A9(에이 나인)입니다. 자꾸 등장하는 숫자들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예전에 중,고등학교 음악 수업에서 배운 코드들은 1도, 3도, 5도가 합쳐진 쉽게 도,미,솔 화음입니다. 7이면 도(1)레(2)미(3)파(4)솔(5)라(6)시(7)에서 ‘시’를 붙이는 코드인데 이 정도는 많이 쓰고 쉽게 씁니다. 하지만 6, 9(위의 설명과 연장선상에서 레) 같은 건 대중음악에서 쉽게 쓰이질 않습니다. 즉 7에 4도까지 더하고 6에 9까지 쓴다는 건 왜 대중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코드 진행이지요. 이 곡에 대해 권정구 씨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권정구/ 기타리스트
“화성적으로 분석하면요. FM7sus4(에프 메이저 세븐 서스펜디드 포)라고 하는 아주 어려운 용어가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박진영씨도 저거 코드가 뭔지 잡는다고 되게 힘들었다고 했죠.…사실 거기서는 그게 무슨 코드인지 잘 모르는 이유는 이게 화성학적인 기반을 하지 않은 형태기 때문에 그런 분석 자체가 사실은 무의미한 곡입니다.”
기껏 어려운 코드 분석을 하고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여기엔 변하지 않는 손 모양에 비밀이 있습니다. 착시현상에서 기타 코드를 잡는 찬혁군의 손모양은 세 코드를 모두 연주하면서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즉 한 코드를 잡고 그 손 모양은 그대로 한 채 위치만 바꾸는 겁니다.
권정구/ 기타리스트
“이 속에는 다시 클래식적인 하나의 이론이 숨어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페러럴리즘(parallelism)이라고 하는 어떤 현대적 기법인데요. 똑같은 폼을 하나를 잡고 그대로 옮기는 겁니다. 이런 상태 이것은 이미 1900년 초반부터 사용된 형태인데요. 특히 기타에서 아주 특징적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보시면 기타는 줄이 6개인데 이 곡에서 보면 이 두 가지를 쓰지 않습니다. 이 두 줄을 치지 않아요. 실제로 이거 4줄 밖에 그러니까 6개를 다 치기는 하지만 짚지 않아요. 짚어야 소리음이 올라갈 텐데 그래서 짚지 않은 음을 개방 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연주) 그래서 계속 이 개방 현 소리가 나는 거죠. 그런데 이 개방 현 소리가 나는데도 어울리거든요. 이상하지 않게.”
놀라운 것은 악동뮤지션은 이런 것을 알고 작곡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찬혁 / 악동뮤지션
배운 거라기보다는 코드는 독학. 또 어려운 코드는 잘 몰라요. 쉬운 기본 코드. 여러가지 치다 보니까 음이 좋은 것들도 많아서 발견한 코드들도 있어요.
이수현 / 악동뮤지션
솔직히 만들면서 이론적으로 이게 원래 다 안 쓰는 코드고 이런 거 다 몰라요. 그냥 만들어 놓고. 그냥 듣기 좀 신비하다. 신비하다. 그런 거.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작곡을 하는 건지 물었습니다.
이찬혁 / 악동뮤지션
그러니까 뭔가 생각이 났을 때 그때 급하게 처리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걸 시작하고, 끊어지면 다시 그 느낌이 생각이 안 나요. 그러니까 한 번 했을 때 한시간 혹은 가장 짧게 만든 건 5분 막 갑자기 필 받으면 막 쓰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끝낸 곡들이 제일 좋더라고요. 제일 빨리 끝낸 곡들이. 그래서 그런데 딱 하고 그 다음 날 되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그 곡은 좀 어려워져요.
이찬혁 / 악동뮤지션
생방송에서 첫 번째로 불렀던 라면인건가도 그냥 이 자리에서 기타 땅 치다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오, 좋은데? 해서 이수(이수현 – 가족들은 수현 양을 이렇게 부름)가 옆에서 듣다가 화음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오, 완전 좋아. 해가지고 거기서 지은 거예요. 라면 먹고 싶어서 쓴 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그냥 오, 뭔가 떠오른다하고 여기 공책 딱 펼치고 한 거예요. 그 자리에서.
그러면서도 악보는 쓰지 못했습니다. 가사만 적어놓는다고 합니다. 음이나 코드진행 모두 그 자리에서 외우는 방법을 씁니다.
이수현 / 악동뮤지션
그냥 다 기억해요.
이찬혁 / 악동뮤지션
잘 안 까먹어요. 혹시 까먹어도 동생한테 미리 들려주니까 동생이 기억해 놨다가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이런 악동뮤지션에 대해 권정구 기타리스트는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권 씨는 화성적으로 또 기타 연주 측면에서 악동뮤지션의 음악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6th, 9th, 11th 계류화음 등 비화성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2. 오른손에서 아르페지오(코드안의 음을 풀어서 치는 방법)와 타악기적 효과(기타를 탁탁 치는 소리)를 적절히 배합하여 경쾌한 느낌을 만들고 있다.
3. 간단한 반주패턴을 동일 반복하여 가사 전달이 매우 효과적이다.
4. 이미 검증된 코드 패턴을 사용하여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다음 취재파일은 독특하고 개성있다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시작에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악동뮤지션 노래의 가사를 분석해 봅니다!
[취재파일] 악동뮤지션 살펴보기 ① 정말 창의적인 거야? (가사 편)
원문: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767568&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이번 편에서는 악동뮤지션의 삶을 하나씩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취재하는 내내 또 지금 이 글을 쓰는 가운데에서도 악동의 창의력을 만든 건 바로 ‘부모력’이다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군은 1996년 9월에, 이수현양은 99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몽골에 가기 전까지 이들의 삶은 그저 평범했다고 합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여느 가정과 거의 비슷하게 지냈죠. 아빠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들어오고 거의 아이들하고 저하고 하루종일 있는 그런 편이었죠. 다른 가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어요.
이찬혁 / 악동뮤지션
저는 전혀 노래 쪽에는 앞으로 제 꿈을 노래 쪽으로 잡겠다. 그런 게 없었어요. 작곡도 아니었고, 전에는 좀 춤에도 관심 있었고 그림에도 관심 있었고
이수현 / 악동뮤지션
그냥 저는 옛날부터 그냥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좋아했는데 언제 한 번 장기자랑 같은 게 있어서 그냥 나가봤는데 주위에서 목소리 예쁘다고 그때는 노래를 잘하지 못했으니까 그냥 목소리 예쁘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 아, 내가 목소리가 예쁜가?
평범한 삶. 하지만 부모의 교육법은 우리나라에서도 남들과 조금은 달라보였습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그게 딱 원칙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보내는 것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말 뭐가 하고 싶니? 했을 때 찬혁이가 저는 태권도가 배우고 싶어요. 그럴 경우에는 저희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보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나이에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공부야 뭐 학교에서 얼마든지 충분히 배우고 집에 와서, 집에 와서는 놀아야 된다. 라는 그런 좀 나름대로의 그런 생각이 있어서 그랬죠.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성적은 아이들이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던 거 같아요. 그냥 숙제만 좀 챙겨주고 이렇게 하면 한 중간 이상은 했던 거 같고 꼭 1등을 하지 않아도 그냥 학교생활 열심히 재미있게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학원을 안보내도 되겠냐는 주변의 걱정이 있었지만 악동의 부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교육 방식의 흔들림은 다른 방식으로 왔다고 합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한 번 찬혁이가 저희 부부에게 엄마, 학원을 좀 보내 주세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학원에? 왜? 가서 공부하게? 공부하고 싶어?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요. 친구들이 다 학원에 있어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친구들하고 놀려면 학원에 가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서 아, 그렇구나. 현실이 이렇구나.
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원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노력해서 놀아줄게.’ 정말 열심히 놀아주는 게 그 방법이었습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애들하고 운동장에 거의 매일 나갔었고 그래서 아빠가 좀 일찍 들어오는 날은 아빠도 같이 나갔었고 아빠는 찬혁이랑 축구를 해준다든지 나는 딸이랑 소꿉놀이를 해준다든지 아니면 뭐 그밖에 다른 것들 놀이터에서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또 주변에 있던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 또 모여요. 모여서 같이 축구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 이들 가족은 몽골로 갑니다. 선교사인 부모가 5년 동안 고심한 결과였죠, 떠날 당시 찬혁 군은 초등학교 6학년, 수현 양은 3학년이었습니다. 몽골에 간 처음부터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missionary kids school, MK school)을 다녔습니다. 1년 정도 학교를 다녔을 때, 악동 가족은 두 가지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한 가지는 몽골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급상승한 환율로 경제적 압박이 커진 것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악동들이 교우 관계도 아닌 몽골어도 아닌 영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겁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아이들이 몽골에 갈 때만 해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고, 지금 다 배우죠. 그런데 몽골에서는 아무래도 외국 환경이다 보니까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웠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그 학년에 들어가서 영어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과목이고 항상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게 다른 과목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 상태에서는 이 학교의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겠다.
영어 스트레스를 벗고 자신들의 수준에서 공부할 수 있던 악동들은 1년 만에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홈스쿨링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악동 가족들은 그저 학교 시간표대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런 과정에 위기가 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이수현 / 악동뮤지션
처음에는 그냥 되게 학교에서 하던 것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딱 시간에 맞춰서 딱딱딱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진짜 공부 열심히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다시 학교 가면 안 되냐고 막 그랬어요.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그때 비로소 고민 했어요. 그래서 몇 가지 좀 참고 서적들도 찾아보고 했는데 저희들이 하는 방식은 진정한 홈스쿨링이 아니더라고요. 일반 홈스쿨이 아니어서 일단 홈스쿨의 정신 자체가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더라고요. 또 삶의 중요한 가치를 찾게 하는 거 만약에 이것이 진정한 홈스쿨의 의미라면 우리 교육은 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거다…여기서 일단 정리를 해야 되겠다.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도, 아빠도 봐야 되고 아이들이 스스로 또 깨달을 수 있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풀어주고 놀게 해야겠다. 그래서 그때는 얘들아 이제부터 공부하지마. 그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너네들 하고 싶은 거 하자.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 결정대로 밀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춘기를 겪던 찬혁군과 아버지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찬혁 군이 무언가 잘못을 하고 아버지는 꾸짖고, 그에 대해 찬혁 군이 쉽게 인정하지 않고, 이게 또다시 아버지가 화가 나고 이런 식의 악동 가족의 속앓이는 계속됐습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나는 예전에 이 나이 때 이러지 않았는데 얘는 왜 이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해 할 마음이 없었던 거예요.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제가 인정을 했어요. 아이한테는 잘못이 없었다는 걸. … ‘이건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 나이에 너무 당연한 일이구나. 문제는 그것을 보고 그 상황들을 바라보고 있는 또 그것에 대해서 판단하고 뭔가 가르치려고 하는 아빠에게 문제가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알고 제가 잘못 했다고 용서를 구했어요. 아이한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해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용서를 빈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찬혁 군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다시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찬혁 / 악동뮤지션
지금 당장만 보고 이거 할 거예요. 이러거든요. 엄마 아빠는 좀 더 멀리 보라고 저기 있는데 지금 당장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 다 저를 위한 말씀이셨고, 또 제 고집이었고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악동의 부모가 진정 하고 싶은 것과 지키고 싶은 가치를 찾으라고 아이들을 풀어주면서도 마냥 제어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했는데 그때 강조했던 건 바로 이겁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될 일.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있다. 그 해야 될 일이 뭔가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해야 될 거다.
처음엔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했던 악동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벽에 부딪치면서 해야 될 일에 적어 가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스스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찬혁 군은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한 상태입니다. 악동들은 이제 음악 활동을 하더라도 공부는 계속 하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모두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
해맑게 놀던 악동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몽골에 기타 열풍이 계기가 됐습니다. 새로운 놀거리를 찾던 악동에게 기타와 피아노가 눈에 들어온 거죠.
이수현 / 악동뮤지션
저희 집에 기타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놀다보면 그래도 되게 심심해져요. 그런데 공부는 하기 싫고 그러니까 오빠가 기타를 잡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를 막 치기 시작하니까 저도 질세라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그런 거 하다 보니까 노래도 하게 되고.
이찬혁 / 악동뮤지션
기타는 그 전부터 아빠가 하는 거를 보고 그냥 조금 조금 둥당 둥당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작곡을 시작하기 조금 전부터 이제 기타 붐이 일어났어요. 몽골에. 그래서 몽골 또래 친구들한테서 또래 친구들 기타를 막 치니까 저도 그 사이에서 좀 껴서 조금 배우고 친구들하고 같이 치다 보니까 지금은 좀 3년 정도 3년차 정도 되는 거 같아요. 기타 친 지.
아는 형에게 기타를 배운지 2달 째. 찬혁 군은 처음으로 작곡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아는 형이 아이팟이라는 곡을 만들면서 나도 해볼테야라며 만든 첫 곡. 그 곡이 갤럭시입니다.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_CYr2jU3xY )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그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그 재능이 그 순간부터 막 폭발적으로 일어난 거거든요. 저희는 그거 보면서 염려된 게 아니라 너무 신기했어요. 너무 재미있고 또 해봐 해봐 너무 잘한다 해봐 해봐 하니까 새로운 것들 가져오는데 그것마저 너무 놀라운 것들이었어요.
이렇게 지난 2011년 말. 아이들의 음악 즐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악동뮤지션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요소가 있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악동에게는 일상이었다는 겁니다. TV가 없는 몽골 생활에서 아이들은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고 콩트를 하는 등 장기자랑을 했고, 악동 부모들은 환호 했습니다. 그러면 악동은 그저 좋아 새로운 걸 만들어오길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때와 지금 바뀐 건 그 장기자랑의 소재가 음악으로 변했다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동은 수 십 곡의 자작곡을 내놓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악동들도 악동들의 가족들도 모두 놀라울 뿐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저 집에서 놀던 것이었고 부모들은 그저 즐기던 것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게 됐으니 말입니다. 악동뮤지션이 커온 과정이 분명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꼭 해외에 가야만 또 학교를 그만 두어야만 그들의 방식을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악동의 창의력엔 부모의 힘, ‘부모력’이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커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짐 없이 또 아무런 토대 없이 지금의 악동뮤지션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요? 다음 취재파일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악동들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