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 조작? 음원 사재기 실체 추적 (출처 JTBC 뉴스)
원문: http://news.jtbc.joins.com/html/091/NB11039091.html?cloc=jtbc|news|index_showcase
[단독 | 탐사플러스]
순위 조작?…'음원 사재기' 실체 추적해보니…
기사입력 2015.09.21
[앵커]
음원 사재기. 연예기획사와 팬들이 소속 가수들의 음원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해 해당 가수의 음원을 대거 사들이는 걸 말하지요. 지금까지 소문만 무성했는데요. JTBC 탐사플러스팀이 국내 유명 가수들이 내놓는 음원 사재기를 집중취재했습니다. 그 결과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신인부터 탑클래스 가수까지 많은 가수의 음원이 이런 식으로 사재기되고, 사실상 음원 순위는 왜곡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빗나간 팬덤인지, 아니면 기획사의 조직적인 개입인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제윤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9월 중순. 국내 대형 기획사 A사의 아이돌 그룹이 처음으로 음원을 공개했습니다.
한 시간 만에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의 순위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멜론 순위 차트는 인터넷상에서 음악을 재생하는 스트리밍 건수와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한 건수 등을 합산해 반영합니다.
취재진은 멜론에서 이 그룹의 팬으로 등록돼 있는 아이디 3만여 개를 일일이 분석해봤습니다.
그 결과, 가짜로 의심되는 동일패턴 아이디가 1천300여 개 발견됐습니다.
동일패턴 아이디란 앞의 영어 조합은 같지만, 뒤에 숫자만 다르게 만들어진 겁니다.
이런 아이디 대부분은 이 그룹만 팬을 맺고, 이 그룹 신곡만 '좋아요'를 누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부는 최근 들은 노래가 이 그룹 신곡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아이디들이 다양한 노래에 '좋아요'를 표시하고, 여러 가수와 팬맺기를 한 것과 확연히 다릅니다.
특히 동일 패턴 아이디들에선 해당 가수만 팬으로 등록하고 최근 들은 곡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획사 관계자 : 최근 들은 노래가 없는 아이디 중에서 단품 다운로드한 아이디가 많다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다보면 로직에 걸려서 차단돼 돈이 다 날아가 버리거든요.]
기계적으로 해당 음원을 다운로드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지난 6월 말 신곡 발표와 동시에 멜론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한 또 다른 대형 기획사 B사의 그룹. 멜론에 등록된 이 그룹의 팬 5만 3천여 명을 분석해봤습니다.
가짜로 보이는 동일패턴 아이디는 역시 4천개 가까이 확인됐습니다.
지난 7월에 신곡을 발표한 C기획사 소속의 아이돌 그룹은 4만3천여개의 팬 아이디 중 절반에 달하는 2만6천여 개가 동일패턴 아이디였습니다.
기존 가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8월 신규 앨범을 발표한 D기획사 소속 한류 스타의 경우, 팬을 맺은 아이디 12만여 개 중 절반 가까이인 5만여 개가 동일패턴 아이디였습니다.
취재진은 멜론차트에 올라와 있는 모든 가수들의 팬클럽 아이디들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대형기획사의 경우 대부분 가수에서 최소 수백개에서 많게는 10만개에 달하는 동일패턴 아이디들이 발견됐습니다.
대형 기획사 E사 소속인 남성그룹의 한 멤버는 아이디 3만7000여개 중 동일패턴 아이디가 2만7000여개로 3분의 2 이상이었습니다.
국내 6대 음원사이트 중 멜론이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반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멜론 차트가 방송이나 각종 행사에서 섭외 대상이 되는 겁니다.
[업계 관계자 : 인기의 척도를 재는 게 음원 순위잖아요. 얘네가 팬이 얼마나 있구나. 얘네가 음반이 나오고 하루 만에 순위를 찍고, 어느 정도 유지를 하고 있구나. 이런 것들이 방송 관계자들의 기준이 되겠죠.]
그렇다면 음원 사이트에 가입된 이런 가짜 추정 아이디들은 누가 만든 걸까.
[기획사 관계자 : 저희가 그렇게 정상에 오래 올려놓고 싶었으면 계속 뭔가 작업이 있었겠죠. 딱 한 번 (1위를) 치고 하루도 안 돼서 내려왔기 때문에.]
팬들은 지나치게 조직적이라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아이돌 그룹 팬 : 팬들이 돌리는 거랑 소속사 같은 큰 단체가 개입하는거랑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가요 홍보대행사 업체들 혹은 브로커들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취재진은 음원 사재기 제안을 받은 한 기획사 관계자의 얘길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성광 대표/하은 엔터테인먼트 : 제의가 굉장히 많이 들어와요. 바이럴 (마케팅 업체) 쪽이나 사재기 하는 업체. 몇 위권 안에서 일주일 동안 있게 해주겠다. 이런 조건에 얼마. 앨범 시작을 하면 최소 다섯통에서 열 통은 오는 거 같아요. 그런 전화가.]
취재진은 음원사재기 추적 과정에서 국내 한 기획사가 음원 조작 브로커에게 입수했다는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기종의 휴대폰 수백대가 진열대에 놓여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등에 이같이 공장을 차려놓고, 특정 가수의 노래만 스트리밍하거나 다운로드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장치를 비밀리에 알리면서 음원 순위를 사실상 조작해주겠다고 접근한다는 겁니다.
[기획사 관계자 : 소위 말해서 마케팅회사라고 얘길 하면서 그런 걸 하는 거죠. 거기에다가 돈을 주고 다운로드를 엄청 받을 거 아니에요.]
이들 업체들은 기획사 측에 많게는 억 단위의 돈을 요구한다고 전해집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 최소 몇 천이고, 그래도 웬만큼 쓴다고 하면 몇 억 단위로 올라가죠.]
음원 사재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해당 음악을 듣는 소비자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보미/서울 동작구 : 순위에 있는 게 아무래도 인기도 많고, 친구들도 그런 음악을 많이 듣다보니까 순위대로 듣는 편인 거 같아요.]
멜론 측은 "최근 의심가는 아이디들이 많이 보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해당 아이디들이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걸러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요계에선 음원 사재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신대철 대표·가수/바른음원 협동조합 : 음원 사재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예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차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