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음악의 역사 (글 이효영, 이무영)
1.랩 음악의 역사
랩은 오랜 핍박에 시달려 온 미국 흑인(Afro-American)들의 자긍심이며 그들의 한과 분노, 저항 정신이 담긴 넋두리이다. 흑인 빈민가 문화를 통칭하는 힙 합의 음악적 형태인 랩은 20세기 말에 대중 음악 최고 인기 장르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후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백인들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과 말콤 엑스(Malcom X)의 저항 운동이 미국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지 벌써 3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흑인들의 저항은 바로 랩이라는 가장 진보적인 대중 음악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랩이 언제 시작됐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흑인들이 흘린 눈물이 그 근원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랩 형태의 음악이 처음 레코딩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현재 영화 감독 겸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마리오 밴 피블스(Mario Van Peebles)의 아버지 멜빈 밴 피블스(Melvin Van Peebles)가 A&M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던 Brel soul이 대부분의 음악 전문가들에 의해 첫 랩 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밴 피블스는 원래 소설과 희곡을 쓰던 작가 겸 영화 감독으로 '미국 흑인남성들의 정신(brother soul)'이란 뜻이 담긴 Brel soul에 가난한 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9곡을 수록했다.
'70년대에는 DJ 킹 스코트(DJ King Scott)와 유 로이(U Roy), 길 스코트-헤론(Gil Scott-Heron), 그룹 라스트 포이츠(Last Poets) 등이 랩의 정착을 위해 꾸준히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랩의 전설적 그룹으로 추앙되고 있는 라스트 포이츠는 흑인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Wake up, niggers를 믹 재거 주연의 영화인 Performance('70년)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발표했다.
멜로디가 없는 '단순한 내뱉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창기 랩은 드럼 머신(비트 박스)을 도용했고, LP 레코드를 스크래치하여 비트의 효과를 얻기도 했다. 음반을 통해 들리는 음악에 말을 싣는 것은 이미 레게에서도 활용된 바 있기 때문에 자메이카에서 건너 온 수많은 무명 DJ들에 의해 댄스홀-레게와 랩의 접목이 시도되기도 했다.
멜빈 밴 페블스가 랩 형태의 첫 레코딩 시도
랩이 대중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 당선을 위해 선거 운동에 열중하던 1979년이다. 당시 그룹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이 발표했던 Rapper's delight가 처음 팝 차트 히트를 기록함에 따라 일반 팝 팬들은 이 때까지 흑인 빈민가에만 숨었던 랩의 존재를 깨닫게 됐다. 또한 랩 뿐만 아니라 브레이크 댄스(Brake Dance) 등 흑인 빈민가의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이 선보인 문 워크(Moon Walk)나 영화 <플래시 댄스>에서 보여진 거리의 춤 등은 바로 흑인 빈민가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80년대 초반까지 흑인들 스스로의 각성을 촉구하고 평화를 부르짖는 등 긍정적 메시지로 일관하던 랩은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미국 내에 백인 중심의 보수주의가 뿌리를 내림에 따라 체제를 부정하고 폭동을 주장하는 등 점점 과격한 메시지로 변모하게 됐다. 공화당 정부가 흑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을 삭감함에 따라 흑인 빈민가는 더욱 황폐하게 변해 버렸고 흑백간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됐다. 범죄와 마약만이 난무하는 거리는 흑인들의 소박한 꿈을 앗아갔고, 랩에는 서서히 욕설과 폭력을 담은 메시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랜드매스터 플래시 &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 Furious Five)는 1982년의 싱글 The message를 통해 흑인들을 우롱하는 공화당 정부를 비판하고, 흑인 빈민가의 비참한 현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마치 10년 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예견한 듯한 이 곡의 가사 일부분이다.
"창 밖은 마치 정글과 같다. 왜 나는 항상 이 정글의 밑바닥에 머물 수 밖에 없는가?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말아라. 난 더 이상 참지 않을 테니까. 지금 난 폭발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레이건에서 조지 부시로 이어지는 보수 정책의 고착화와 미국 경제의 악화로 인해 진보성이 강한 래퍼들의 메시지도 더욱 강렬하고 폭력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처럼 현실을 폭력으로 깨뜨리려는 의도를 바탕으로 과격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랩을 소위 '갱스터 랩'(Gangsta Rap)이라고 일컫는다. '80년대 중반 첫 선을 보인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와 N.W.A.(Niggaz With Attitude)는 동부(East Coast)와 서부(West Coast) 갱스터 랩의 선두주자들이다.
뉴욕 출신의 처크 D(Chuck D)에 의해 결성된 퍼블릭 에니미는 '랩의 블랙 팬더(Black Panther)'라 불리울 정도로 과격한 메시지를 전파하며 미국 사회 제도의 변화와 흑인 혁명을 부르짖었고, 로스앤젤레스 갱 출신인 닥터 드레(Dr.Dre)와 이지 이(Eazy-E), DJ 옐라(DJ Yella), 엠시 렌(MC Ren), 아이스 큐브(Ice Cube) 등으로 구성된 N.W.A.는 욕설로 가득찬 가사 내용 때문에 판매 반대 운동에 부딪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또다른 갱스터 래퍼인 아이스 티(Ice T)도 흑인 빈민가의 현실을 고발하며 억압하는 자들을 상대로 한 유혈 폭동을 예견했다. 영화 배우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가 연출한 영화 Colors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그는 4년 후에 벌어지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예견했다.
"내 인생은 폭력 투성이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그 자체가 폭력이다. 모두가 소원하는 평화는 꿈 속에 있을 뿐 오직 칼만이 현실을 얘기한다."
해머의 성공 이후 주류 음악으로 진입
대중 음악계 주류로의 진출을 꾀하던 랩은 '90년 엠씨 해머(M.C. Hammer)의 앨범 Please hammer don't hurt 'em의 대성공으로 그 꿈을 이루었다. 무려 21주간이나1위를 기록한 이 앨범은 Pray와 Have u seen her, U can't touch this 등의 10위권 히트곡들을 낳았다. 비록 너무 팝적인 사운드 때문에 하드코어 랩 진영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이 앨범은 분명 랩이 대중 음악계의 인기 장르로 도약하는 데 크게 공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해머의 성공을 시작으로 흑인들이 랩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게 되자 레코드사들은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와 그룹 서드 베이스(Third Base), 마키 마크(Marky Mark) 등의 백인 래퍼들을 기획 상품으로 내 놓았다. 바닐라 아이스의 To the extreme이 데뷔 앨범으로 16주 동안 빌보드 팝 앨범 차트 정상에 머무는 기록을 세웠고, 마키 마크 앤 더 펑키 번치(Marky Mark & The Funky Bunch)의 싱글 Good vibrations가 팝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백인들의 랩은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나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을 제외하곤 수준 미달이란 평가를 받았다.
한편 랩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자 순수 음악 지향파들은 멜로디가 없는 약점 때문에 랩은 마치 '70년대 말의 디스코처럼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랩은 '단조로운 내뱉음'을 극복하기 위해 묘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키 위해 타 장르와의 결합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랩 뮤지션들에 의해 결실을 맺고 있다. 이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진보적 대중음악의 양대 산맥인 하드코어 랩과 얼터너티브/메탈의 만남이다. 보수적 문화 분규주의에 쐐기를 박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두 장르의 만남은 '80년대부터 실험성이 강한 로커들의 음악에 랩이 간헐적으로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랩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을 세운 트리오 런 디엠시(Run D.M.C.)는 '86년 노장 록밴드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함께 Walk this way를 발표했고, 퍼블릭 에너미는 Bring the noise란 곡을 메탈 밴드 앤스랙스(Anthrax)와 함께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메탈 랩 그룹'으로 불리는 비스티 보이스는 앨범 Licensed to ill의 레코딩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곡을 샘플로 사용한 바 있다. 랩과 록의 만남이 가장 돋보인 앨범은 스티븐 홉킨스(Stephen Hopkins) 감독의 영화인 Judgement Night의 사운드트랙으로 런디엠시와 드 라 소울(De La Soul),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 아이스 티(Ice-T), 서 믹스얼랏(Sir Mix-A-Lot) 등의 랩 아티스트와 펄 잼(Pearl Jam),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 소닉 유스(Sonic Youth), 헬멧(Helmet), 리빙 컬러(Living Colour)등의 록 밴드들이 참여했다.
재즈와 랩의 접목으로 탄생한 뉴 재즈 스윙(New Jazz Swing)도 흥미롭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와 유 엠 시스(The U.M.C.'s), 드 라 소울(De La Soul), 메인 소스(Main Source), 피트 록 앤 시 엘 스무스(Pete Rock & C. L. Smooth), 그리고 디거블 플래니츠(Digable Planets) 등이 자신들의 랩에 쿨 재즈(Cool Jazz)의 샘플을 사용했고, 정통 재즈 뮤지션들도 랩을 연주에 도용하고 있다.
타 장르와의 접목 활발히 시도
뉴 재즈 스윙을 처음으로 시도한 연주자는 '90년 랩의 영향을 수용한 앨범 North on south를 발표했던 트럼펫 주자 허브 앨퍼트(HerbAlpert)다.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도 사망 직전 젊은 래퍼 겸 프로듀서인 이지 모 비(Easy Mo Bee)와 함께 뉴 재즈 스윙의 걸작인 Doo bop을 탄생시켰다. 이 외에도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인 로니 조단(Ronny Jordan)과 색소폰 주자 그레그 오스비(Greg Osby), 아트 포터(Art Porter) 등의 재즈 뮤지션들이 랩의 영향을 담은 실험적인 연주 음반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처럼 랩과 재즈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장르 모두 진취적이며 실험성이 강한 음악이라는 점이다. 또한 랩은 재즈와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억눌린 미국 흑인들에 의해 시작됐고, 초기에 기존 대중문화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면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알리 샤히드(Ali Shaheed)는 '초창기 래퍼들과 재즈 뮤지션들은 흡사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고, 색소폰 주자 조지 하워드(George Howard)는 '랩은 도시의 정글 리듬 위에 깔린 시(詩)와 같다. 하지만 랩과 재즈는 초기에 모두 가치없는 음악으로 배척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대중 음악계 주류의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랩은 록과 재즈 외에도 레게와 미국의 토속적 사운드와의 접목 등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의 샤바 랭크스(Shabba Ranks)나 헤비 디(Heavy D.), 섀기(Shaggy) 등이 레게 리듬에 뿌리를 둔 자마 랩(Jama-Rap)을 발전시키고 있고, 지금은 해체됐지만 래퍼 스피치(Speech)가 이끌던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는 블루스와 컨트리 등 미국의 토속적 음악의 영향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드코어 계열 랩은 사양길
한편 갱스터 랩을 포함한 하드코어 계열은 '92년 N.W.A.로부터 솔로 독립을 선언한 닥터 드레(Dr. Dre)의 앨범 Chronic이 대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약 2-3년간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진보적인 철학과 도시 빈민가의 생활에 바탕을 둔 저항정신, 욕설과 함께 거침없이 뿜어대는 과격한 메시지는 흑인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백인 청소년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 왔다. 뉴욕의 프로듀서 숀 '퍼피' 콤즈(Sean 'Puffy' Combs)와 래퍼 노토리어스 비 아이 지(The Notorious B.I.G.) 등이 이끄는 배드 보이(Bad Boy) 레이블과 닥터 드레가 미식 축구 선수 출신인 마리온 서지 나이트(Marion 'Suge' Knight)와 함께 설립한 데스 로(Death Row)레이블을 중심으로 양분된 동부와 서부의 하드코어 랩은 한 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래퍼들의 무절제한 사생활과 욕설로 가득찬 가사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로 이제 서서히 사양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9월 총격으로 인한 투팩(Tupac)의 사망으로 동서부 랩간의 반목 질시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으며 거의 깡패 집단과 같은 하드코어 랩 전문 레이블의 실상이 파헤쳐지기도 했다. 특히 <배드 보이>에 비해 훨씬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데스 로>는 투팩의 사망과 닥터 드레의 탈퇴, 그리고 기대했던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의 두번째 앨범이 상업적 실패를 거둠에 따라 거의 파산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태이다. 이와 같은 동서부 랩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닥터 드레와 NAS 등의 래퍼들이 함께 레코딩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 큰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2.가사 속에 담긴 랩의 정신과 메시지
하드코어 랩을 다룰 때 가사를 논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음악이 어쩌니 저쩌니하는 것보다 파격적인 가사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단 대부분의 하드코어 랩은 굉장히 폭력적이기 때문에 살인 등의 범죄를 뜻하는 섬뜩한 단어와 다양한 욕설이 등장한다. 'shit'이나 'ass'는 보통이고 'fuck', 'fucked up', 'motherfucker' 등의 심한 욕설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런 욕설 때문에 대부분의 하드코어 랩 앨범 커버에는 'Parental Advisory, Explicit Lyric'(과격한 가사가 담겨 있으니 부모의 지도 요망)이란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흑인 여성들을 비하하는 'bitch'나 'ho'',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말하는 말하는 'puxxy', 'cxnt'와 같은 단어는 얼핏 듣기에 역겨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흔히 흑인들을 차별할 때 쓰는 'nigga(nigger)'라는 표현이 흑인 래퍼들에 의해 자주 쓰이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단어들이 상당히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빈민가 흑인들은 흔히 '여자(girl)'를 말할 때-결코 부정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bitch'나 'ho''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흑인 남성'이란 뜻으로 'nigga'를 쓴다. 만약 백인이 흑인에게 'nigga'라고 하거나 흑인 여성에게 'bitch'라고 하면 큰 욕이 되나 흑인들 사이에선 단순히 '친구'나 '여자'를 뜻할 수도 있다.
또한 하드코어 랩 그룹 중 마약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그룹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빚기도 한다. Tha crossroads로 지난 여름 8주 동안 빌보드 팝 싱글 차트 정상을 석권했던 클리블랜드 출신의 본 석스 앤 하모니(Bone-Thugs-N-Harmony)와 로스앤젤레스의 남미계 트리오로 국내 아티스트의 표절 문제로 많이 거론됐던 사이프러스 힐 등이 바로 이와 같은 그룹들이다. 'coke'나 'crack', 'dope', 'rock', 'ice' 등의 단어들은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을 뜻하는 단어들이다.
대마초를 뜻하는 단어로는 멕시코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marijuana(마리화나)', 'ganja', 'pot', 'joint', 'hemp', 'cannabis' 등이 있다. 이 그룹들은 마약의 이용도 인간의 권리이며, 특히 대마초는 의약용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합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약을 합법화할 경우 일단 가격이 엄청나게 하락할 것이고, 이에 따라 마약 거래로 빚어지는 살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이 펼치는 논리 중 하나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현재 미국에서 마약 사용자가 저지르는 살인보다 마약 거래에서 빚어지는 살인이 몇 배 더 높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하드코어 랩은 보수적 정치인이나 노장 가수들에 의해 아직까지 배척받고 있다. 미국의 전 부통령인 댄 퀘일(Dan Quayle)이나 현재 부통령인 알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 등은 랩 음반의 판매 금지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여가수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은 공개적으로 '랩은 음악이 아니다'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인물들의 방해로 아이스 티(Ice-T)가 워너 레코드사에서 쫓겨났고, 일부 대형 쇼핑 센터의 레코드 매장에서 랩 음반을 찾아볼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96-'97년 현재 하드코어 랩 음반의 판매 실적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제 랩은 더 이상 단순한 댄스 음악의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유로 댄스를 비롯한 많은 형태의 댄스음악에 랩이 도용되고 있으나, 이는 원래 랩의 정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특히 가장 진보적인 갱스터 랩은 대부분 템포가 늘어지기 때문에 댄스 클럽의 음악으로는 적당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댄스를 생명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갱스터 랩의 정신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않 맞는 주장이다.
랩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북미 대륙에 노예로 팔려 온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수백년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아직도 가난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이들의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로 랩에 담긴 정신을 깨닫을 수 없다. 랩은 흑인들의 항거 의식이 탄생시킨 가장 진보적인 음악이다. 만약 이것이 결여돼 있다면 진정한 힙 합의 정신이 담긴 랩이라 할 수 없다.
3. 주요 랩 음악 레이블
토미 보이 Tommy Boy
뉴욕의 이스트 85번가에 위치한 톰 실버맨의 가정집에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탄생된 토미 보이는 오늘날 랩 음악 전문 레이블로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일렉트릭 펑크 운동을 전개하면서 명성과 실력을 쌓아간 실버맨은 '댄스 뮤직 리포트'라는 매거진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경력을 지닌 그의 음악적 감각을 바탕으로 토미 보이 레이블은 퀸 라티파, 디지털 언더그라운드, 노티 바이 네이처 등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으며, 드 라 소울의 앨범의 성공으로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94년에 토미 보이는 유럽에 지부를 설립할 정도로 부상했고 K7과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의 차트 진입으로 랩과 힙 합 전문 레이블 다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봄 스쿼드(Bomb Squad)
퍼블릭 에니미의 프로덕션에서 일했던 척 디, 에릭 '베트남' 새들러, 행크 쇼클리, 키스 쇼클리 등이 만든 레이블로 아이스 큐브의 앨범을 히트시키면서 화제를 모으게 되었다. 계속해서 알리 디, 독 이. 프레시, 런 디엠시, 선 오브 바제릭 등의 앨범 작업에 관여하면서 각광받는 레이블로 부상했다. 행크는 '90년에 또다시 독립하여 Soul이라는 레이블을 설립하기도 했다.
쿨 칠링(Cool Chillin')
워너 레코드사를 통하여 배급하고 있는 이 레이블은 A&R 맨인 벤 메디나, 플라이-티스 타이론 윌리엄스(Fly-T's Tyrone Willams) 등과 레이블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마레이 마를로 구성되어 랩 음악 전문 레이블로 출발하였다. '87년에 워너와 계약을 맺은 쿨 칠링 레이블은 비즈 마키, MC Shan, 빅 데디 케인 등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지명도를 쌓아가고 있다.
데스 로(Death Row)
닥터 드레가 설립, 그 자신의 앨범을 프로듀서하여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였다. 이 레이블에서 공개된 앨범으로는 스눕 도기 독의 Doggy style과 영화 사운드트랙이자 옴니버스로 여럭 랩들이 수록된 앨범 Above the rim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외 다트 니거 다즈(Dat Nigga Daz), 크루펫, 레이디 오브 레이지, 주얼(Jewell) 등이 최근의 다크호스들이다.
데프 잼(Def Jam)
러셀 시몬즈('56년생)와 릭 루빈스('61년생)가 설립한 스트리트 랩 레이블 데프 잼은 비스티 보이스와 퍼블릭 에니미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T La Rock and Jazzy Jay's의 싱글 It's yours를 처음으로 발표한 이래 이 레이블을 통해 공개된 앨범은 엘엘 쿨 제이(LL Cool J), 런 디엠시(Run DMC), 게토 보이스(Geto Boys) 등의 것들이 있다. 최근에 이 레이블은 메이저 회사의 배급을 통해서 더욱 상승중이다.
딜리셔스 비닐(Delicious Vinyl)
DJ이자 프로모터인 믹 로스, 매트 디크 등이 '87년에 설립한 레이블로 힙 합 사운드와 랩 음악을 주로 발표해 주목받았다. 새로운 웨스트코스트 사운드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이 레이블은 나이트 클럽에 샘플링을 한 작품들을 주로 공급하면서 영 엠시(Young MC), 톤 록(Tone Loc) 등을 발굴했고 '94년에 컴필레이션 앨범 Natural selections를 공개해 빅 히트를 기록했다.
이치반(Ichiban)
런던에서 태어나 그룹 블루스 앤 소울의 매니저로 명성을 떨친 존 E.에비가 '85년에 애틀랜타에서 만든 레이블이다. 조지아 코포레이션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레이블은 그의 부인 니나 K. 이스턴과 함께 회사를 경영했으며, '90년에 바닐라 아이스의 앨범 To the extreme을 히트시키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소속 아티스트로는 디트로이트 모스트 원티드, 키드 센세이션, 카와미, '95 사우스, 트레처우로스 등이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자이브 레코드(Jive Records)
좀바 그룹에서 클리브 카들러가 독립하여 설립한 레이블 자이브는 '81년에 영국에서 그 화려한 역사를 시작했다. 3년 후 미국에 지부를 설립한 자이브는 후디니스의 Magic wand를 '83년에 첫번째 랩 앨범으로 발표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계속해서 쿨 모이 디, 부기 다운 프로덕션스, 위 걸 파파 파퍼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등의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랩 전문 레이블로 주목 받았다.
팝 아트(Pop Art)
힙 합 레코드 레이블로 필리델피아에서 설립되었다. 스테디 비의 사촌인 로렌스 굿맨이 이끄는 이 회사는 엘엘 쿨 제이, 록산느 셴트, 다 영스테스 등 비교적 전통적인 음악에 충실한 작품들을 공개하여 주목 받았다.
프로파일 레코드사(Profile Records)
힙 합 레이블로 '81년 뉴욕에서 스티브 프로니키와 코리 로빈슨이 설립했다. 7만 달러로 시작한 이 회사는 그레이스 케네디, 로니 러브 등의 앨범을 발표한 후 닥터 제킬 앤 미스터 하이드의 싱글 Genius Rap이 히트를 거두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런 디엠시, 스페셜 이디, 푸어 라이처스 티처스 등의 앨범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다.
랩-어-랏 레코드사(Rap-A-Lot Records)
휴스턴, 텍사스 지역의 랩 음악들을 위하여 '9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레이블이다. 제임스 스미스('64년생)가 만든 이 레이블은 게토 보이스를 스타로 만들었고 스카페이스의 앨범도 발매하여 호평 받았다. 또한 신인 피프스 워드 보이스 앤 라힘(5th Ward Boys And Raheem) 같은 뮤지션을 발굴하기도 했다.
렐러티비티 레코드사(Relativity Records)
뉴욕을 근거지로 생성된 랩 음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회사는 임포턴트 레코드사의 한 부분으로 스티브 바이나 조 새트리아니 등과 같은 록 기타리스트를 위주로 앨범을 공개하여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7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블랙 2스트롱, 치 알리스 등과 같은 랩퍼의 앨범을 발표하여 인기를 모았다.
루스리스 레코드사(Ruthless Records)
이지 이가 설립한 레이블이다. 그와 함께 활동하였던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닥터 드레가 후원을 해주어 유명한 레이블로 관심을 모았다. 드레의 레이블인 데스 로우와 함께 흑인들의 랩 음악을 전문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루스레스는 블러드(Blood Of Abraham), 코케인(Kokane), 호스 위드 애티튜드 등의 앨범을 발표하여 주목 받았다.
슬리핑 백 레코드사(Sleeping Bag Records)
뉴욕을 근거지로 설립된 랩 전문 레이블로 맨트로닉스와 토드 테리가 대표이다. '8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레이블은 맨트로닉스의 앨범을 비롯하여 캐시 머니 앤 마벨로우스의 '88년작, 티 라 록의 '90년작 등이 호평 받으면서 랩 전문 레이블로 부상했다.
슈가힐 레코드사(Sugarhill Records)
조이 로빈슨 주니어와 실비아 로빈슨이 설립한 레이블로 할렘의 로컬 사운드나 랩에 보다 많은 앨범들을 발표해왔다. '81년에 옴니버스 앨범 Rapped Uptight Vol. 1을 '82년에 Vol. 2를 공개하여 랩 전문 레이블로 체계를 잡은 다음 MCA와 연계를 맺고 신선하고 의욕있는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중에서 특히 그랜드마스타피시의 작품이 뛰어나다.
언더독(Underdog)
힙 합 음악을 좋아하는 트레버 잭슨(aka Trevor Jackson)이 설립한 랩과 힙 합 전문 레이블로 그는 어린시절에 스크래치의 제왕이자 창안자인 그랜드매스터 피시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아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후 아트 오브 노이즈 같은 전자 음악에 빠졌고 그것을 테크노나 하우스 음악으로 다시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활용하여 자신의 레이블 성격을 확립하였다. 소속 가수로는 록 그룹 유투의 Stay 같은 분위기의 카렌 앤더슨, 사하라 넬슨 등이 있다.
업타운 레코드스(Uptown Records)
'86년에 뉴욕의 맨해튼에서 설립된 레이블로 리듬 앤 블루스 스타일 랩을 구사하여 많은 인기를 모았다. 안드레 하렐이 설립한 이 회사는 헤비 디 앤 더 보이즈, 뉴틴 밧 러브, 파더 엠시: 파더스 데이, 가이(Guy) 등의 앨범을 공개하여 레이블의 개성을 확립하였다. 또한 조데시, 메리 제이 블라이지 등의 여성 리듬 앤 블루스 가수들을 배출시키기도 했다.
와일드 피치(Wild Pitch)
뉴욕의 랩 레이블로 스튜 파인이 설립했다. '94년에 EMI를 통해서 배급을 시작한 와일드 피치는 갱 스터즈라는 그룹의 앨범 No more mr. nice guys가 '90년에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계속해서 메인 소스, 자모스 등의 앨범을 발표하여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