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의 발자취 7~8부 (출처 리드머)
한국힙합의 발자취 - 7부
글.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 업데이트. 2007-11-06
(2) 국내 대중 음악에서의 힙합 음악의 위치
1) 멜로디에서 리듬으로
힙합은 멜로디보다는 리듬 중심의 음악 장르다. 힙합의 특징인 묵직한 드럼과 그 위를 넘나드는 랩, 그리고 샘플링되어 반복되는 마디가 주는 느낌은 분명 멜로디보다는 리듬에 더 가깝다. 타 장르와 차별화되는 이러한 힙합의 매력은 멜로디 위주의 주류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대중들에게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힙합이 오랫동안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매니아적, 대안적 음악으로 머물러 있었던 사실도 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한국 힙합의 꾸준한 성장은 대중들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그만의 매력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이 ‘멜로디’에서 ‘리듬’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2) 미국 본토 음악 씬의 흑인음악 강세를 그대로 이어받은 국내 대중음악 씬
① 미국의 대중가요가 되어버린 힙합
우리가 바다 건너 접하는 미국의 힙합 씬은 그 범위가 꽤나 방대하며 뮤지션들의 수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힙합이 미국에서 계속하여 주류로 자리 매김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에서도 역시 힙합은 주류음악이라기보다는 매니아적, 대안적 음악에 가까웠다(물론 한국의 사정과 단순비교하자면 비교 자체가 되지 않겠지만). 빌보드차트는 여전히 팝과 락이 지배하고 있었고, 힙합 뮤지션의 이름은 기껏해야 한둘씩 눈에 띌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닥터드레와 투팍(2Pac)은 90년대 중반 힙합 씬을 평정하며 힙합을 주류에 한걸음 가까이 올려놓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어느 장르나 그렇겠지만 힙합의 주류 진입을 위해서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갖춘 슈퍼스타가 필요했고, 닥터드레와 투팍을 이어 제이지, 에미넴(Eminem) 등이 ‘랩을 하면서 동시에 주류 음악 시장에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며 힙합 열풍을 가속화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빌보드 상위권에 힙합 뮤지션들의 이름이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고, 최근 피프티센트(50Cent)나 카니에웨스트(Kanye West) 등의 엄청난 인기는 힙합의 주류 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빌보드는 온통 흑인음악이 독식했고, 힙합과 관련 없던 뮤지션들까지 힙합 뮤지션들과의 조인트를 추진하거나 혹은 아예 자신의 앨범을 힙합으로 채워 나오기도 했다. 이제 힙합이 엄연한 ‘미국의 대중가요’가 되어버린 것이다.
② 인기 대중가수들의 힙합 따라하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미국의 음악시장이 온통 ‘힙합판’으로 바뀌어버리자, 한국의 음악판 역시 발 빠르게 ‘힙합화’되어갔다. 최신 트렌드를 흡수하여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인기가수들은 저마다 ‘힙합스러운 음악’을 앨범에 담고 나왔다. 이효리의 “Ten Minutes”가 가장 좋은 본보기일 것이며, 인기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였던 은지원은 아예 래퍼로 변신해 드렁큰타이거 등이 소속되어 있는 무브먼트 크루에 들어가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가요프로그램에서는 연신 힙합이 흘러나왔고,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힙합에 물들어갔다. 행여 힙합에 관한 지독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일지라도, 대중들의 선망의 대상들이 앞 다투어 힙합을 들고 나오니 그 색안경을 벗어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힙합은 국내 대중음악시장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3)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과 성과
①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의 주류 진출을 위한 노력
주류 가수들이 힙합 음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가치를 계속 유지해나갔다면, 힙합 뮤지션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쌓은 실력과 입지를 바탕으로 주류 입성을 위한 노력을 전개해나갔다. 자신만의 철학과 남성성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주석은 케이블 및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며 활로를 모색함과 동시에 김범수와 이소은, 채연 등 대중가수들과의 조인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다이나믹듀오는 씨비매스 시절부터 꾸준한 방송 출연과 활발한 활동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 주류에 가까이 다가간 힙합뮤지션의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나우누리 흑인음악 동호회 SNP의 운영진을 맡기도 했던 실력파 힙합 뮤지션 데프콘(Defconn) 역시 윤종신과 함께 곡 작업을 하고 케이블 방송 쇼프로의 엠씨를 맡는 등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들은 이제 힙합 팬들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더 이상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힙합과 주류 음악시장의 간극은 이렇게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
② 힙합 뮤지션들의 잇따른 성공
주류 입성을 위한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은 때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는데, 그 중 가장 가시적인 것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일이었다. 순위는 곧 대중들의 지지와 인기도를 반영하는 척도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드렁큰타이거는 “Good Life”로 1위를 차지하면서 자신들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힙합 뮤지션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고, 조PD는 인순이와 함께한 “친구여”로 정상을 차지하면서 한때 큰 인기를 모았다. 최근에는 에픽하이와 리쌍 등이 앨범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주류가요계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③ 힙합 뮤지션과 대중 가수와의 공동 작업
위에서 살짝 언급한 내용이기도 한데, 힙합이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대중 가수들은 힙합 음악만을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힙합뮤지션들과의 작업을 성사시키면서 흐름에 발맞춰 나갔다. 이효리의 솔로 앨범엔 언더그라운드래퍼 라이머(Rhymer)가 참여했고, 이기찬과 JK김동욱의 앨범엔 주석의 랩이 수록되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로, 힙합뮤지션들이 자신의 앨범에 대중가수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주석의 앨범엔 김범수와 이소은, 채연의 이름이 들어가 있고, 에픽하이의 앨범엔 김연우와 이정이, 데프콘의 앨범엔 윤종신과 자두의 이름이, 다이나믹듀오의 앨범엔 바다의 이름이 자리해 있다. 힙합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힙합 뮤지션과 대중가수들은 서로 협력하며 윈-윈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3. 한국 힙합의 문제점과 한계
1) 여전한 대중들의 오해와 편견
한국의 힙합은 그동안 많은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지만, 대중들의 오해와 편견은 여전히 잔존한다. 힙합은 저질 혹은 하급 문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적지 않고, 힙합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부분을 힙합의 전부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들은 여전히 ‘힙합’하면, 일단 자기 몸보다 두 세 치수는 큰 티셔츠를 입어주어야 하고,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금목걸이를 주렁주렁 목에 걸어야하며, 거만한 표정과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욕 몇 마디를 섞어 랩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심지어는 힙합 뮤지션들 중 일부도 그러한 편견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힙합 뮤지션은 방송에 얼굴을 내밀면 안 된다는 생각 역시 하루빨리 무너뜨려야 할 힙합에 관한 오해와 편견들이다.
2) 힙합음악 그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하여
앞서 힙합 뮤지션들의 성공 사례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더 살펴보면, 단지 힙합음악 만으로 성공을 일궈낸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조PD의 “친구여”나 에픽하이의 히트곡들 역시 타 장르와의 크로스오버에 의한 성과이지 순수하게 힙합만으로 거둔 성공은 아니었다. 즉, 힙합과 대중음악의 적절한 조합은 그 시너지 효과를 크게 발휘했지만, 아직도 ‘힙합 그 자체’가 지니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힙합 뮤지션들이 분명 주지해야 할 사실이기도 하다.
3)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애환
한국의 힙합 씬은 그동안 꾸준히 그 크기를 불려왔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생각보다 그 규모는 미미하다. 단적으로, 힙합뮤지션 중에서 전업 뮤지션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음악 시장을 강타한 mp3와 자금력 부족 등은 뮤지션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위한 또 하나의 직업을 갖기를 반강제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비단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만의 문제가 아닌 힙합 음악을 하는 뮤지션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뮤지션이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또 하나의 직업에 치중해야 한다면, 그것은 결국 힙합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게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까.
4) 위축되어 가는 공연 문화
한때 클럽가에 불어 닥쳤던 힙합 공연 열풍은 시간이 지나며 많이 위축되었다. 물론, 여전히 크고 작은 공연들이 매주 펼쳐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예전만큼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어떠한 음악 장르보다 힙합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그 생동감을 생명으로 하는 음악인데, 공연 문화가 위축되어 간다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주체적 수용이 아닌 모방과 흉내 내기
한국의 힙합 음악은 예전의 어설픈 음악적 형식과 완성도를 집어 던지고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국내의 힙합 프로듀서가 미국 본토의 힙합 팀에게 곡을 써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본토 음악의 주체적인 수용이 아닌 단지 모방과 흉내 내기로 점철되어 있는 음악들이 간혹 눈에 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지만, 창작자의 양심과 도의를 저버린 음악들이 버젓이 음악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본토의 유행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주체성과 고집은 지켜낼 줄 아는 뮤지션들의 역량이 필요하다.
8부에서 계속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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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의 발자취 - 8부
글.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 업데이트. 2007-12-04
5. 한국 힙합의 대안과 미래
1) 국내 음악 시장 주체의 변화
단순한 따라 하기나 트렌드 성의 음악이 아닌, 힙합 음악의 제대로 된 정착은 많은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수년간 국내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 기획사들에 의해 키워진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은 비단 힙합 음악 뿐 아니라 각 장르의 뮤지션들이 실력 그 자체로 자신들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철저히 자본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 속에서, 각종 매체 속의 인기 가수들이 힙합을 도입한다고 해서 그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뮤지션이 음악적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 평단과 팬들에 의한 피드백을 거치다면 그 음악은 발전하는 것이다. 결론인 즉, 메이저 기획사를 통하는 채널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힙합 가수들이 주류로 편승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 존재하는 패거리(Collective) 개념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대중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에픽하이는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이 출중한 멤버 타블로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음악적으로도 같이 주목받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드렁큰타이거를 주축으로 리쌍, 더블 K, 다이나믹 듀오 등으로 구성된 무브먼트 패거리는 기획사의 자본의 논리를 떠나 서로의 음반 작업과 공연 활동에 도움을 주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바 있다. 이러한 패거리 개념에 기초한 움직임은 비록 그 대상이 한정적이긴 하나, 실력 있는 동료들을 자신들의 네임 벨류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대안이라 할 수 있다.
2) 매체의 다양화
KBS, MBC, SBS 등의 공중파 방송 채널은 물론이고, M.net, MTV 등의 메이저 음악 방송은 대중을 타깃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체인 만큼 이른바 ‘시청률에 의한 방송 편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프로모션 활동을 진행하는 기획사들의 가수들만 노출되는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 하의 현 시점에서는 불가피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는 매체가 너무나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익숙해져 있는 것에 매달리는 이러한 대중의 성향은 후발주자로 사업을 벌이고자 하는 사업체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진입장벽이며 때문에 그들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서는 보다 대중적이며 보다 자극적인 방송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매체의 다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른바 음악 마니아들의 양적 증가와 그들의 바람을 담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힙합 음악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매체의 발전과 음악의 발전이 함께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휴대폰을 통한 방송(DMB)a의 경우만 봐도 다양한 힙합 음악 채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방송 매체와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나 공중파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힙합 전문 방송을 만든 것이다. 최초 한국 힙합문화의 형성에 있어 PC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테크놀로지의 힘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리고 휴대폰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얻고 있는 젊은 층의 문화를 떠올려 볼 때, 이러한 움직임은 다시 한 번 음악과 기술이 동시에 번영할 수 있는 하나의 긍정적인 모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3) 클럽 공연 문화의 활성화 노력
현재 홍대 부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클럽 문화는 파티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지속적인 발전 추세에 있다. 클럽 문화 협회에서 조사한 2006년 자료에 따르면 주말에 홍대 클럽을 찾는 인원수는 무려 5만명에 이르고 있으며b, 이것은 클럽 공연이 뮤지션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홍보 채널임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클럽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음악을 듣기 위한 장소로써 클럽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무와 음주를 위한 장소로써 클럽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국내의 유명 파티 플래너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나의 파티가 제대로 치러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기존 클럽 입장료(평균 10000원)에 익숙해져 있는 클러버들로 인해 제대로 된 수익 창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결국 비용을 삭감하는 부분은 파티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게스트 뮤지션의 비용이 되며, 이는 곧 공연 무대의 감소로 이어진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이렇듯 파티 플래너들이 제대로 된 기획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각각의 클럽들이 자체적인 파티를 진행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클럽이 하나의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전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밤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클럽문화협회가 진행 중인 ‘사운드 데이’ 행사는 정부의 지원 하에 수많은 클럽들이 자본적인 도움을 받으며 특정 주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공연을 진행하는, 공연 문화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행사이다. 물론 자발적인 발전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안타깝지만, 클럽 씬에서 주류 음악으로 통하는 실력파 힙합 음악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며 관객들에게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는 점에서 힙합이라는 문화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크게 고무시킬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힙합뮤지션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힙합플레이야쇼(Hip Hop Playa Show)’는 매달 정기적으로 펼쳐지는 힙합 전문 공연으로서 현재 유일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힙합 전문 공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4) 힙합 아이콘의 등장
하나의 문화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그들의 의식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그 문화의 이른바 “아이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중음악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천대받던 음악 로큰롤(Rock'n'Roll)을 모든 미국인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Nirnava)의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c은 80년대를 주름잡던 헤비메탈과 LA메탈을 단숨에 밀어내고 비주류였던 얼터너티브 록을 주류로 이끌었다. 힙합에서도 투팍d과 에미넴e이라는 흑과 백의 아이콘이 있었다. 가까운 국내 가요시장만 보더라도 서태지가 아니었으면, 랩이 들어간 음악과 하드코어한 기타 사운드에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 열광하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하나의 음악이 대중을 사로잡고 문화로까지 이어져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아이콘이 될 만한 인물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국내에 힙합 음악이 전파된 이래, 힙합 아이콘이라 부를만한 인물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 음악을 귀에 익숙한 음악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긴 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의 음악은 힙합음악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고, 더구나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을 바꿔가며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을 힙합 아이콘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TV를 켜면 다양한 힙합 가수들이 가요무대에서 랩을 선보이고 있으며, 실제로 10대의 취향이 크게 반영된 국내 가요차트의 상위권에도 힙합 가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 속에서 힙합아이콘의 등장은 한국 힙합의 진정한 전성기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6. 나오는 글
현 국내 대중음악의 대부분의 장르가 그렇듯 힙합음악 역시 이식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힙합음악이 ‘한국 힙합’이라는 이름으로 자생력을 갖추게 된 것은 그 역사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그러한데다가 여전히 힙합음악은 일반 대중들과 마니아들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힙합 음악은 주류 음악이 되기 위한 충분한 바탕을 이미 형성하고 있다. 가요와 록 음악에 익숙해져 있던 이른바 X세대f가 생소한 힙합 리듬과 랩에 이질감을 느낀다면, 현재 10대 음악 팬들은 TV와 라디오 등의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힙합 리듬과 랩에 익숙해져 있으며 더 이상 힙합 음악은 이들에게 생소하고 낯선 음악이 아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되었다. 랩과 힙합 리듬은 이제 더 이상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랩은 청년들의 문화적 실천이라는 차원을 넘어 일상의 각 영역에서 스스로가 담화의 주체로 설 수 있는 발화의 양식g으로서 존재 할 수 있다. 어떠한 장르의 음악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포용력과 실험 정신은 힙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 보게 해준다. 비록, 한국힙합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에는 지금까지 본문에서 언급한 내부적인 문제 이외에도 음반시장의 악화 등 외부적인 문제점이 많지만(편집자 주: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추후에 좀 더 자세한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음악적인 기반이 잡힌 만큼 창작자를 위시로 한 매체와 리스너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9부에서 계속
※이로써 대략적인 한국힙합의 발자취를 살피는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9부부터는 한국힙합 씬의 중요한 앨범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a 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 멀티미디어 신호를 디지털 방식으로 고정·휴대·차량용 수신기에 제공하는 방송 서비스
b 클럽문화협회(http://www.clubculture.or.kr) 자료 제공
c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은 얼터너티브 락밴드 너바나의 리더로서 활동하였다. 뛰어난 음악성과 잘생긴 외모, 특유의 카리스마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나친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오는 부담감과 고질적인 우울증으로 인해 1994년 4월 자택에서 권총 자살하여 사망하였다.
d 미국 내 가장 권위 있는 힙합 음악잡지 『소스(Source)』는 힙합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투팍을 꼽았다. 92년 9월 댄 퀘일 미국 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투팍의 앨범을 비난했으나 시인/교수인 니키 지오바니는 투팍의 랩이 가진 진실성을 호평했다. 투팍의 시와 가사들은 97년 버클리 대학의 아반드 엘리후가 개설한 <역사98:투팍 샤커의 시와 인생>강좌에 사용되기도 했다.
e 2002년 흥행 전문지 『박스 오피스』와 『CNN』은 에미넴을 21세기의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딘으로 표현했다. 당시 그의 앨범은 8백만장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자신이 주연한 영화 <8 Mile>은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f X세대란 2635세대(2005년 기준으로 26세에서 35세의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로써, 미국의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Douglas Coupland)의 장편소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책에서는 힘들게 살아온 기성세대와는 달리 부모의 지원 하에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난 x세대는 사회적 성공에 열망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들만을 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다.
g 박애경, “랩의 수용 과정을 통해 본 대중가요의 이식성과 자생성”에서 발췌. 구비문학연구 vol 16, 2003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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