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의 발자취 4~6부 (출처 리드머)
한국힙합의 발자취 - 4부
글.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 업데이트. 2007-07-02
2) 과도기(1996~2000) : 힙합 문화 주체들의 결속과 교포 래퍼들의 등장
① PC 통신을 통한 힙합 문화 주체들의 결속
이렇게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시작된 한국 힙합음악의 역사는 바야흐로 컴퓨터 통신이 꽃을 피우던 시기인 199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이 당시 한국 힙합의 흐름은 대중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왜곡된 힙합 문화에 대응하여 몸소 힙합문화에 대한 실천을 행하기 위해 뭉친 컴퓨터 통신의 흑인음악 동호회와 미국 본토 힙합을 표방하고 나섰던 교포 출신의 뮤지션들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당시 대표적인 PC 통신 업체들이었던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흑인음악 동호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미국 본토의 음악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직접 곡을 창작하며 자신들만의 공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것은 ‘미국 힙합 음악의 모태가 되었던 거리의 개념이 국내에서는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거칠고 배고픈 역사를 가진 거리의 음악이 국내에서는 테크놀로지의 산물을 통해 소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개개인의 취미로부터 시작된 PC 통신 동호회들의 힙합음악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힙합문화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클럽 공연문화와 한국 힙합음악이 질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 시발점이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이들의 창작 활동은 정식 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친목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힙합을 이끌고 있는 실력파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통신 동호회 출신이라는 점은 이 당시가 실력 있는 래퍼들의 잠복기였음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통신 동호회 출신 뮤지션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한국힙합의 현재를 논하는 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다.
② 교포 출신 래퍼들의 등장, 그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 문화적 주체들이 결속하던 이 시기와 비슷한 때에 국내 가요계에는 교포 출신 래퍼들의 상륙이 시작된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업타운(Uptown)과 드렁큰 타이거 등은 자신들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출신이라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이른바 정통 힙합을 외쳐댔으며, 대중 매체들도 이들의 미국 출신 이력을 부각시키며 정통 힙합 열풍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기존의 음악보다는 미국 본토의 감성에 가까웠던 음악과 더불어 이들이 능수능란하게 뱉어내던 영어 랩은 미국의 힙합 음악에 노출되지 못했던 일반 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이들은 서서히 한국에서 정말 제대로 된 힙합 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포 출신 가수들의 모습에 열광하던 일반 대중과 달리 오래전부터 미국의 힙합 음악을 들어왔던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대단치가 않았다.
이유인즉, 이들의 음악은 분명 댄스음악과 힙합 음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기존의 가요와 차별화되긴 했지만, 이미 미국 힙합을 접하고 있던 이들에겐 굳이 영어 랩을 듣기 위해 국내 뮤지션의 앨범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단지 그 느낌만을 흉내 내는데 그쳤던 비트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힙합 팬들에게는 별 메리트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무단 샘플링을 이용한 곡이 다수 숨어 있었던 이들의 음반은 교포 출신 뮤지션들에 대한 국내 힙합 마니아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더욱 더 깊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부들은 “듣기에 좋으면 됐지”라는 비틀어진 가치관을 가진 일부 대중과 매체 등에 의해 가려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 서야 할 전국의 힙합 마니아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안주하며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통 힙합을 표방했던 래퍼들이 정작 힙합 팬들에게는 외면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한국 힙합의 역사는 계속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흘러만 갔다. 그래도 이들이 랩을 음악에 양념을 쳐주는 정도로만 여겨오던 일반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하다. 가타부타하더라도 어쨌든 교포 출신 뮤지션들 덕에 힙합이라는 것이 단순히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대중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후원하던 듀오 지누션은 업타운이나 드렁큰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멤버 모두가 외국 생활을 했고 영어에도 능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영어를 가능한 배제하고 한국어로 된 랩을 선보였던 이들은 자신들이 해외파임을 내세우는 대신 ‘힙합의 대중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활동을 전개했는데, 비교적 힙합 본연의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데뷔곡 “가솔린”에 이어졌던 “말해줘”는 지누션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뚜렷이 보여주는 곡이었다. 적당히 멜로디가 가미되어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비트에 빠르게 이어지는 랩, 그리고 대중스타 엄정화의 보컬까지 그야말로 대중성을 위한 삼박자를 고루 갖췄던 이 곡을 통해 지누션은 새로운 국내의 힙합스타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지누션 역시 힙합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지 못 한 것이 사실이다. 역시나 이들의 랩에서도 라임에 대한 고심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이후로 계속된 상업성에 가까운 대중성의 추구로 점점 이들은 힙합 팬들의 뇌리 속에서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는 한국 힙합의 발전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뮤지션으로 뽑히고 있지만, 정작 힙합 팬들에게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의 명제는 지누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③ 라임에 대한 인식과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등장
이러한 교포 출신과 해외파들의 눈부신 활동 사이로 당시 한국 힙합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앨범 네 장이 발표됐다. 김진표의 [열외]와 갱톨릭의 [A.R.I.C], 조PD의 [In Stardom], 그리고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1999 대한민국]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김진표의 [열외]는 라임을 지닌 랩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공식적인 앨범이라 일컬어진다. 1995년에 이미 벗헤드와 D2라는 그룹이 오로지 랩으로만 구성된 앨범을 발표했었으나 라임의 부재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된 상태였던지라 본격적으로 라임에 대한 인식이 엿보인 최초의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를 갖는다. 비록 김진표의 라임은 명사를 이용한 각운 맞추기가 대부분이었던 1차원적 라임이긴 했지만, 당시 오버그라운드는 물론이고 PC 통신 동호회를 기반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많은 힙합 뮤지션과 리스너조차도 라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열외]는 신선한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김진표의 앨범 이후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점차 라임을 갖춘 랩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99년 등장한 조PD는 여기에 직설적인 욕설을 얹으며 한국 힙합 씬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래퍼들이 대부분이었던 가요계의 관행 속에서 PC 통신을 통한 데뷔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여주었는데, 조PD의 앨범은 이전까지의 그 어떤 앨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원색적 사회비판과 욕설로 화제를 모으며 랩 가사의 저항성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힙합이라는 하위문화 자체를 이슈화시켰다. 하지만 사회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이 부족했고 당위성을 상실한 의미 없는 욕설의 남발은 한때 ‘의식 있는 래퍼라면 가사에 욕을 담아야 한다’는 왜곡된 유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가뜩이나 힙합음악을 10대들 만의 반항적인 음악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기성세대들로부터 질 낮은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부과 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김진표와 조PD 앨범의 중간에는 갱톨릭의 데뷔작 [A.R.I.C]가 존재한다. 천편일률적인 가요계와 아이돌만을 양성해내는 매스미디어를 강하게 비판한 “변기 속 세상”이라는 곡으로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의 앨범은 거대 기획사의 입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앨범이라는 것과 인디레이블에서 발표한 국내 최초의 랩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인 라임의 부재 때문에 현재 이들의 앨범이 한국 힙합 역사에서 점하는 위치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 상태다. 한편, 조PD의 앨범이 여과 필터를 거치지 않은 가사들로 주목을 받았다면, 같은 시기에 나온 [1999 대한민국]은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 간의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PC 통신 천리안의 기획 하에 나왔던 이 앨범에는 이미 인기를 얻고 있던 업타운과 드렁큰 타이거를 비롯하여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쌍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허니 패밀리(Honey Family)와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전신인 씨비매스(CB Mass) 등이 이 앨범을 통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2001 대한민국]의 천리안 버전 앨범에 수록됐던 셔니슬로우(Sean2Slow)의 “Moment Of Truth”는 국내 최정상급 래퍼 셔니슬로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안정된 비트 위로 몰아치는 셔니슬로우의 랩은 가사와 스킬 두 측면 모두 완벽한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대중음악 속에서 표류하던 힙합 본연의 외침을 들려줬다. 다만, 가사의 3분의 1이 영어로 채워졌다는 점은 역시 아쉬운 점이다.
여하튼, 2000년대에까지 이어지는 이 컴필레이션 시리즈는 앨범 판매고면에서 계속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무명이었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지상으로 올려주는 계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고 이 시기에 나왔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낸 몇 안 되는 힙합 앨범으로서 위치하게 되었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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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힙합의 현재 (2001~2007) : 정착의 단계 혹은 여전한 과도기
이렇듯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제점들을 간직하고 있던 한국의 힙합음악 씬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그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한국 힙합은 초기의 씬과 비교해 괄목할만한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어갔으며, 이는 힙합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키려는 한국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파트에서는 뮤지션들의 한국 힙합음악의 정착을 위한 노력들과 대중들의 힙합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에는 한국힙합의 문화적인 양상에 대한 고찰도 포함된다.
① 한국 힙합의 문화적 양상
*힙합 문화의 4대 요소 - 디제잉, 엠씨잉, 그래피티, 비-보잉
‘힙합은 디제잉과 엠씨잉, 그래피티(Graffiti)와 비-보잉(B-Boying)를 아우르는 흑인의 삶과 관련된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문화’라는 가장 흔하고 간단명료한 정의 아래에서 사실 힙합 음악은 거대한 문화의 4가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와의 타협에 성공한 랩 음악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의 문화 - 디제잉, 비-보잉, 그래피티와 같은 문화들은 아직 주류로 입성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디제이들의 경우는 나머지 둘에 비해 사정이 좀 나은 편이기는 하지만 디제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 또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초기 힙합에서 보여주었던 디제이와 엠씨의 구조에서 엠씨의 랩 음악이 더는 디제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디제이들은 단순한 기교의 연마에서 벗어나 보다 음악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결실이 바로 턴테이블리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턴테이블리즘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근원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한 면모가 부각되는 힙합의 여러 가지 하위 장르들 중에서도 유독 테두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턴테이블리즘이란 사운드의 믹싱과 컷 앤 페이스트, 스크래칭이나 비트 저글링a과 같은 디제이들의 여러 기교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음악 장르(힙합과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등을 비롯한)를 아우르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80년대 이전까지 디제이들의 주 무대가 클럽이나 파티장이었던 것과 달리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스타급 디제이들이 제조해낸 턴테이블리즘 음악과 각종 디제이 경연 대회들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자 이들은 라이브 공연장으로 자신들의 무대를 옮긴다. 그리하여 디제이 섀도우(DJ Shadow)나 닌자 튠(Ninja Tune), 비트 정키스(Beat Junkies)와 엑세큐셔너즈(X-ecutioners) 등의 디제이 혹은 디제이 집단들은 이제 턴테이블리즘 팬들이나 힙합 음악팬들이 아니더라도 전체 대중음악계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스타급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디제이들은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국내의 대중들에게 턴테이블리즘이라는 장르가 어색할뿐더러 비트메이커 혹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들도 마니아들의 두터운 지지와는 반대로 대중들의 관심을 얻어내지 못해 선뜻 주류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디제이의 자존심으로 평가되는 디제이 소울스케입(DJ Soulscape) 같은 경우야 두 장의 정규 앨범과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느 정도 노출되었지만 아직도 마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에게 디제이는 클럽에서 판만 돌리는 사람 내지는 스크래칭과 같은 기교적인 부분만을 담당하는 사람일 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아직까지 디제이를 비롯한 국내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위치는 엠씨들과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구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비-보이 문화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비-보이에서 “B"란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를 나타내며 댄서의 성별에 따라 비-보이와 비-걸로 구분해서 명명하지만 통상 전체를 아울러 비-보잉으로 지칭한다. 8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인 붐을 타기 시작한 비-보잉은 런-디엠씨 등이 MTV를 통해 보여준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락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와 스톰(Storm)같은 국제적인 지명도를 획득한 해외의 비-보이들을 중심으로 각종 대회와 공연을 개최하며 현재까지 계속 발전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비-보잉과 관련한 스트릿 댄스 문화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대표적인 청년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당시 만화가 김수용씨의 만화 작품 ‘힙합’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피플 크루나 DMC 등의 댄스 팀은 마니아들에게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랩 앨범을 발표했으며, 엑스 틴(X-Teen) 등의 몇몇 힙합 음악 그룹은 비-보잉의 화려한 춤동작을 전면에 내세우고 인기몰이를 하며 브레이크 댄스 열풍을 몰고 왔다. 그러나 더욱 성숙해진 실력과 반대로 한때 엄청났던 열기가 지금에 이르러 마니아층의 스트릿 문화 정도로 그 인지도를 잃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국내에서 비-보잉은 마니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갬블러, 리버스, TIP, 라스트 포 원, 익스프레션등의 국내 비-보이 팀들이 해외의 유명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 그 증거이다. 최근에는 KBS의 스포츠 채널과 CF 등의 여러 방송 매체들을 통해 대중들의 외면 속에 일구어낸 그들의 좋은 결과가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래피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80년대부터 지하철 벽과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스프레이 벽화 그래피티는 거리의 문화이자 여가활동인 동시에 노동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초창기 힙합의 전형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문화이다. 그러나 그래피티 문화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친 뉴욕시의 제재와 여러 디자인 회사들의 러브콜, 그리고 뒤늦게 인정받은 예술적 가치로 인해 트레이시 168(Tracy 168)이나 톡식(Toxic) 같은 유명 그래피티 작가들을 예술과 디자인 시장에 뺏기고 말았다. 거리가 곧 자신의 작업실이자 갤러리였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전용 작업실과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게 된 유명 작가가 되어 거리를 떠났고 태거들의 놀이이자 나름의 문화적 활동이었던 그래피티는 곧바로 유명무실해진 문화가 되었다. 당연히 국내의 그래피티 문화가 더욱 초라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중이나 자치기관들은 아직도 그래피티를 길거리 낙서의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슈퍼그래픽b의 형태로 변형된 그래피티조차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다른 힙합 요소들이 주로 음악과 관련된 요소임에 반해 그래피티는 미술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의 그래피티는 힙합 문화와 이념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분리된 수준이다.
*그 외의 사회 문화적인 형태의 힙합
국내에서 음악과 함께 힙합 문화를 대변하는 또 다른 코드는 바로 “힙합 패션”이다. 통이 넓은 바지와 모자의 챙이 쭉 펴진 뉴에라(New Era) 모자, 헐렁한 박스 티셔츠로 대변되는 힙합 패션은 힙합 음악이 대중 음악계에서 지금의 입지를 다지기 전부터 이미 패션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엔 서태지와 아이들과 이후 등장한 아이돌 그룹들이 이러한 힙합 패션을 표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초기 나이키(Nike)나 아디다스(Adidas) 같은 스포츠웨어들의 트레이닝 복 위주였던 것과 달리 요즘은 제이지나 피. 디디 등의 뮤지션과 힙합 관련 레이블들이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푸부(Fubu), 션 존(Sean John), 라카웨어(Roc-A-Wear), MF, 칼 카니(Karl Kani) 등의 전문적인 힙합 패션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패션 다음으로 힙합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영화이다.
비단 널리 알려진 에미넴의 ‘8 마일’이 아니더라도 스파이크 리 (Spike Lee) 감독의 ‘똑바로 살아라’나 존 싱글턴(John Singleton) 감독의 ‘보이즈 앤 더 후드’ 같은 흑인 사회를 조명한 영화들에서 우리는 힙합 문화의 파편과 그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배우이자 랩퍼인 윌 스미스 (Will Smith)가 주연했던 ‘나쁜 녀석들’이나 래퍼 출신의 DMX가 주연한 ‘크레이들 투 더 그레이브’ 같은 상업 영화에서도 다소 왜곡된 면모가 있긴 하지만 미국 현지의 힙합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듯 힙합 음악과 문화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힙합 관련 영화들이 속속들이 제작되었는데 올드 스쿨 힙합을 주제로 한 ‘와일드 스타일’이나 프리스타일 랩과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을 취재한 ‘프리스타일’ 등의 영화는 평단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으며, 투팍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타리 ‘부활’, 더 나아가 아예 힙합 음악을 컨셉으로 내세운 ‘브라운 슈거’ 같은 멜로 영화도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 뮤지션들의 영화계 진출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의 테마 전체가 힙합 음악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힙합 문화가 흑인 사회를 조명하는 영화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힙합 문화에 대한 미국의 다양한 경로를 통한 표현과 재발견에 비해 국내에서의 힙합 문화에 대한 접근은 일차적으로 그 매체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 미디어의 제약이 너무 심해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면모로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은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② 힙합 음악의 정착
힙합 음악이 한국의 음악 씬 한 편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주류 대중음악과의 확실한 차별성 때문이었다. 물론 음악은 장르마다 특성이 있고 저마다 다르지만, 힙합은 유독 우리에게는 신선한 동시에 낯선 음악이었다. 랩이라는 것. 음의 높낮이에 구애받지 않고 리듬에 맞춰 지껄인다는 건 멜로디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당연히 파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저런 것도 음악이냐’며 혀를 차거나 분노했고, 어떤 이는 비슷비슷한 대중음악에 질려버린 자신의 귀를 힙합에 맡기고 즐거워했다. ‘랩’은 확실히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멜로디라는 새장에 갇힐 필요가 없었고(물론 ‘라임’이라는 새로운 새장을 만났지만 이는 차라리 또 다른 즐거움에 가까웠다), 내용적으로는 무제한으로 늘어나버린 가사의 공간에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더욱 더 풍부하고 자세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의 래퍼 들이 흔히들 꼽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약 없이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다는’ 랩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매력은 주류 대중음악과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인 동시에 힙합을 어느 정도의 대안 음악으로 부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샘플링을 주 작법으로 하는 힙합 음악의 진행적인 방법론과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반복 구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특성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기존의 가요들과 비교할 때 그 단순성으로 인해 자칫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지만, 대신 힙합은 반복적인 루프(Loop)에서 파생되는 극대화된 리듬감으로 다채롭게 변화하는 가요의 멜로디에 맞서는 차별적인 매력을 내세웠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샘플과 익숙한 곡의 재해석이 주는 호기심과 친근감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면서 힙합 음악은 나름대로 그 자리를 잡아가는데 성공했다.
6부에서 계속
※참고
a 유명 디제이 랍 스위프트(Rob Swift)가 도입한 디제잉 기술의 일종으로 턴테이블과 턴테이블 사이에 믹서를 놓고, 두 가지의 드럼 소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드럼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b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환경 디자인의 유형으로 건물의 외벽 등을 장식하는 그래픽작업을 말한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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